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오른쪽)과 황교안 국무총리가 30일 오전 경북 경주시 경주화백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66차 유엔 엔지오(NGO) 콘퍼런스’에 참석해 대화를 나누고 있다. 반 총장은 이날 6일간의 방한 일정을 마치고 유엔본부가 있는 미국 뉴욕으로 출국했다. 경주/연합뉴스
반기문 총장 정치행보 파장
전·현 외교관료가 본 ‘반기문의 선택’
전·현 외교관료가 본 ‘반기문의 선택’
“반기문은 ‘리스크 테이킹’(risk taking, 모험적 선택)을 하는 사람이 결코 아니다.”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남은 임기 7개월 안에 북한을 방문해 한반도 평화에 기여할 성과를 만들어낼 수 있느냐가 반기문의 실제 대선 출마 여부와 후보로서 입지에 결정적일 것이다.”
2017년 12월 대선의 ‘상수’로 떠오른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20~30년 안팎 함께 일한 경험이 있는 전·현직 외교부 고위 관리들의 평가다. <한겨레>는 다수의 전·현직 외교부 고위 관리들을 상대로 반 총장의 실제 대선 출마 가능성, 잠재적 대선 후보로서 장점과 약점, 본선 경쟁력 등과 관련한 의견을 폭넓게 들었다.
대선출마 현실화 변수
대선후보 경선 참여 ‘모험’ 안할 것
‘꽃가마’ 없는 현실, 실행은 유동적 참여정부 출신 ‘친박후보’ 되나 여권원로 광폭 접촉 등 ‘친여 성향’
‘충청+TK+중도’ 득표계산 노골화 본선 경쟁력엔 의견 갈려 “역대 대통령 자질론 빠질게 없어”
“진흙탕 싸움 견뎌낼 내공 못갖춰”
임기중 방북 성과땐 ‘큰 꿈’ 구체화 ■ 대선에 진짜 나설까? <한겨레>가 만난 전·현직 외교부 고위 관리들 가운데 반 총장의 대선 출마 의지를 의심하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반 총장이 방한 첫날인 25일 관훈클럽 초청 간담회에서 대선 출마를 강력히 시사하기 전부터 그랬다. 오히려 이제는 “반 총장의 마음이 너무 급한 것 같다”(이명박 정부 고위 관계자 등)는 우려가 나올 정도다.
그러나 의지와 실행은 다른 문제다. 이와 관련해 전·현직 외교부 고위 관리들의 일치된 의견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반기문은 승리가 보장되지 않은 대선 후보 경선에는 뛰어들지 않을 것이다.” 결과가 보장된 ‘약속 대련’은 몰라도 ‘진검 승부’는 피하리라는 전망이다. “반 총장은 누군가 자기를 필요로 할 때 거부한 적이 없는 사람이다. 하지만 지금껏 ‘내가 하겠다’고 먼저 나서본 적도 없다. 심지어 유엔 사무총장도 자기가 하겠다고 나서서 된 게 아니다. 상황이 불분명한데 ‘내가 (대통령을) 하겠다’고 나설 사람이 결코 아니다.”(전직 외교부 장관 1, 현직 외교부 고위 관계자 등) 그러므로 ‘공짜’와 ‘꽃가마’가 없는 한국 정치권의 현실을 고려할 때 반 총장이 실제 대선 후보로 나설 수 있을지는, 당사자의 의지와 무관하게, 아직은 확정적이라고 하기 어렵다.
■ 참여정부 출신의 친박 후보? 반 총장은 참여정부에서 외교부 장관을 했고, 노무현 당시 대통령 등 참여정부의 전폭적 지원에 힘입어 유엔 사무총장이 됐다. 각종 대선 후보 여론조사에서 1위를 달리는 반 총장의 ‘정치적 자산’은 모두 참여정부 때 만들어진 것이다. 하지만 이번 방한 행보가 아니더라도, 반 총장이 야당 대선 후보를 염두에 두고 있으리라 여기는 이는 전·현직 외교부 고위 관리 가운데 한 명도 없다. “반 총장의 정치 성향이 친정부적이라는 사실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이명박 정부 고위 관계자 1) 충북 음성 출신인 반 총장이 방한 기간에 보인 ‘충청(김종필 전 총리 자택 방문)+대구·경북(안동 하회마을 방문 등) 연대’를 추구하는 듯한 행보는, 이들한테 ‘낯선 선택’은 아니다.
그러나 “반 총장이 ‘충청+티케이+중도표’를 모으면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정치공학적 계산을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나는 반 총장이 친박 후보로 인식되는 건 문제라고 본다”(전직 외교부 장관 2)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28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이뤄진 정·관계 원로들과의 만찬 참석자 면면은 반 총장의 ‘정치 노선 선택’과 관련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원래 이 모임은 반 총장의 ‘멘토’로 불리는 노신영 전 총리가 반 총장의 방한 때마다 주선해 이뤄졌다. 참석자는 전직 총리와 외교부 장관으로 한정됐다. 그런데 이번엔 친여 성향이 강한 원로 언론인과 여권 출신 정치권 원로로 초청 폭이 확대됐다. 이를 두고 “반 총장 쪽이 새누리당 안에서 대선 후보 자리를 선점하겠다는 포석의 일환으로 판단된다. 그런데 새누리당이 (반 총장 의도대로) 평정될까”라는 의견이 있다.
■ 본선 경쟁력은? 현직 외교부 국장급 간부는 “역대 대통령의 자질에 비춰보면 반 총장이 빠질 게 뭐가 있냐”고 말했다. 경쟁력이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국무위원 또는 청와대 고위직으로 일하며 정치권을 상대해본 경험이 많은 이들은 반 총장의 본선 경쟁력에 유보적이거나 부정적인 의견을 내놨다. “반 총장은 유엔과 외교 협상 등 ‘구름 위의 게임’에선 경쟁력이 있지만, 한국 정치권 같은 진흙탕 싸움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내공을 갖추지 못했다.” “대선에 실제 뛰어드는 순간 만신창이가 될 우려가 크다.”(이명박 정부 고위 관계자 2, 현직 외교부 고위 관리 등)
이런 평가는 평생 외교관으로 살아온 반 총장의 ‘권력 의지’와 ‘외교 분야 이외의 식견과 비전’ 부족만을 염두에 둔 게 아니다. “(경남기업 고문을 지낸 반 총장 동생의 존재 등) 성완종씨 사건이 시사하듯, 반 총장이 10년 가까이 유엔 사무총장으로 지내는 동안 호가호위한 주변 인물이 없을 수 없다. 문제가 될 것이다. 반 총장이 새누리당 후보로 나서는 순간 야권에서는 반 총장의 참여정부 때 ‘용비어천가’를 대대적으로 까발릴 것이다. 반 총장이 이를 견뎌낼지 의문이다. 지금의 대중적 호감이 물거품처럼 사라질 수 있다.”(이명박 정부 고위 관계자 1·2 등)
■비장의 카드, 방북 반 총장 쪽이 이런 우려를 모를 리 없다. 반 총장이 한반도 평화에 기여할 방북 의지를 거듭 강조하는 배경이다. “한국인 유엔 사무총장인 반 총장이 10년 임기를 마칠 때까지 한번도 방북하지 못한다면, 대선 출마는 헛꿈이 될 것이다. 반 총장이 방북해 김정은을 만나 한반도 평화에 기여할 뭔가를 이끌어낸다면 상황은 전혀 달라질 수 있다. 1994년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방북해 김일성 주석을 만나 한반도 전쟁 위기를 넘기고 남북정상회담을 주선한 선례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전직 외교부 장관 2 등) 요컨대 ‘대선 후보 반기문’이 현실이 되기까지는 반 총장의 권력 의지와 국내 정치 상황뿐만 아니라, ‘북한의 선택’이라는 제3의 변수가 강력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뜻이다. 복잡하고 위태로운 게임이다.
이제훈 기자 nom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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