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도쿄 긴자의 유명한 스시집 ‘스키야바시 지로’에서 노타이 차림으로 저녁식사를 함께 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아스파라거스 수프에 이어 생선구이, 비둘기 요리, 거위간 요리, 송로버섯을 곁들인 안심 요리에 양다리구이까지 5개의 요리가 나오고, 마무리로 치즈와 디저트 모둠, 그리고 커피와 코냑이 제공된다. 어느 유명한 프랑스 식당의 코스 메뉴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구한말인 1905년 9월19일 고종이 주최한 궁중만찬의 메뉴다. 지금부터 110년 전에 이렇게 본격적인 서양 요리를 외교행사에 내놓았다니 선뜻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고종의 황실 의전관으로 초빙됐던 독일 여성 에마 크뢰벨이 남긴 기록을 보면, 조선의 궁중관리들은 상당수가 영어 이외에도 프랑스어나 독일어까지 구사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외교행사에는 마치 유럽의 궁정에 초대받은 느낌이 들 정도로 본격적인 프랑스 요리가 나왔는데, 송로버섯 파이와 굴, 캐비아는 흔한 요리에 속할 정도이고 샴페인은 오히려 본고장에서보다 더 풍족하게 제공되었다고 한다. 19세기 말 외국에 문호를 개방하고 근대화를 추진하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조선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서양식 문물을 받아들이는 데 적극적이었다고는 해도, 이 정도 수준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상대방 기피음식 배려가 기본
서양에 비해 낙후된 사회를 하루빨리 발전시켜 서구의 선진국에 못지않은 근대 국가로 거듭나야 한다는 강박관념은 당시의 한·중·일 동양 3국에 공통된 현상이었다. 세 나라 가운데 가장 빨리 근대화에 성공한 것은 일본이었지만 그 과정에서 무리한 일도 많았다. 1868년의 메이지유신은 한편으로는 일본의 근대화를 알리는 신호탄이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일본 고유의 문물을 미련 없이 버리는 것을 의미했다. 메이지 정부는 1883년 도쿄의 히비야에 외빈 접대를 위한 유럽식 사교시설인 로쿠메이칸(鹿鳴館)을 건립했다. 프렌치 르네상스식의 2층 석조 건물인 로쿠메이칸에서는 연일 유럽식 연회와 무도회가 열렸고, 일본의 고위층은 남녀를 불문하고 이곳에서 서양식 문물을 익히고 즐기기에 바빴다. 근대화 과정에서 일본 고유의 문화가 뒷전으로 밀려나는 데 불만을 가진 민족주의자들이 로쿠메이칸을 퇴폐 문화의 소굴이라고 손가락질할 정도였다. 일본의 근대화를 위해서는 아시아와 손을 끊고 서구국가들과 함께 가야 한다는 소위 ‘탈아입구’론이 등장한 시점이 로쿠메이칸이 생긴 지 2년 후인 1885년이었다는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일본에는 아직도 유럽식 외교의 전통을 중시하는 흔적이 남아 있는 것 같다. 한국은 해외공관에 나가서 일하는 요리사가 거의 예외 없이 한식 전문가이고 한국 대사관저에서 나오는 메뉴는 당연히 한식이다. 그러나 일본은 해외공관에 일식 요리사가 아닌 프랑스 요리 전문가가 나가 있는 경우가 많고, 대사관저의 요리도 반드시 일식만 나오지는 않는다. 한국어로도 번역돼 잘 알려진 일본 만화 <대사각하의 요리사>에 나오는 주인공은 특급 호텔에서 프랑스 음식 요리사로 있다가 주베트남 일본 대사의 관저 요리사가 된다. 실제로 내가 도쿄에 근무할 때 자주 이용하던 작은 프렌치 레스토랑 ‘시프레’의 오너 셰프는 런던의 일본 대사관저에서 근무하다 귀국한 사람인데, 런던에 가기 전에는 긴자에 있는 호텔에서 프랑스 음식 요리사로 있었다. 그밖에도 일본 외무성 친구들의 소개로 해외의 일본 대사관저에 요리사로 나갔던 사람들이 귀국해서 개업한 레스토랑 몇 군데에 가 본 적이 있는데 프렌치나 이탈리안 레스토랑이 대부분이었고 일식당은 한 군데도 없었다.
나중에 대통령의 일본 방문 행사를 준비하면서 일본 측이 미리 보내준 일왕 주최 국빈만찬의 메뉴를 보고 놀랐던 기억이 있다. 당연히 일본식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양식 메뉴였기 때문이다. 턱시도 차림에 서양식으로 진행하는 국빈만찬은 양식 메뉴로 하고, 대신 총리가 주최하는 별도의 만찬에는 일식을 내는 식으로 구분하는 것 같았다. 손님의 입장에서도 일본에 머물면서 두 번 다 일식 메뉴로 대접받기보다는 일식과 양식으로 서로 다르게 대접받는 편이 나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격이 높은 국빈만찬을 전통 일식으로 하고 총리 주최 만찬을 양식으로 하는 방법도 있을 텐데 굳이 국빈만찬을 양식으로 하는 것은 역시 유럽식 외교의 분위기를 고수하려는 의도라고 느껴졌다.
국빈만찬의 메인 요리는 쇠고기 스테이크나 생선요리일 것으로 예상했는데 양고기 또는 메추리 요리 중에서 선택하게 되어 있었던 것도 의외였다. 종교와 음식 문화가 다양한 외국의 정상을 대접할 때는 상대방이 종교적이나 개인적인 이유에서 꺼리는 기피음식이 포함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아마 쇠고기나 돼지고기, 닭고기는 기피음식에 해당될 가능성이 많지만 양고기와 메추리는 의외로 무난한 식재료이기 때문에 국빈만찬의 단골 메뉴로 정착되었을 것이다.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중국의 후진타오 국가주석이 일본을 방문했을 때의 국빈만찬 메뉴를 찾을 수 있었다. 제비집 콩소메 수프, 농어 샴페인 찜(바닷가재와 사프란 라이스를 곁들임), 양다리 구이(감자튀김과 크레송, 더운 야채를 곁들임), 샐러드, 디저트로 구성된 프랑스식 메뉴였다. 일본의 색채가 가미된 것은 디저트로 나온 아이스크림이 후지산을 본뜬 형태였다는 정도다. 일식이 아니라 프랑스식이라서 의외였다는 댓글이 달린 것을 보니 일본인들에게도 자기 나라의 국빈만찬이 양식 메뉴라는 사실이 뜻밖이었던 모양이다.
정상외교는 자국 전통요리 경연장
소프트파워 시대의 주요 외교자산
청와대, 단호박죽·수삼냉채 등 인기
최근 들어 격식 파괴 흐름도 뚜렷
정상들이 시내 레스토랑 만남도
일 메이지정부 유럽식 사교시설 지어
퇴폐문화 소굴이라 손가락질받기도
아직도 유럽식 외교전통 중시 경향
해외공관 프랑스 요리사 파견 많아
한국 대통령 방일 때도 양식 메뉴
고이즈미-부시 만난 ‘곤파치’ 유명세
요즈음의 외교행사에서는 무조건 양식 메뉴를 위주로 하는 경우는 별로 없고 오히려 자기 고유의 음식으로 외빈을 접대하는 것이 보통이다. 어느 나라든지 정상외교에서 내놓는 음식은 자국의 음식 문화를 대표하는 전통 요리로 구성되는 경우가 많다. 경제력이나 군사력보다 문화적 매력을 중시하는 소프트 파워의 시대인 만큼 음식도 훌륭한 외교 자산이 될 수 있다. 과거 청와대에서 열린 국빈만찬을 예로 들면 쇠고기와 야채를 넣은 밀쌈말이와 수삼냉채, 단호박죽, 신선로, 갈비찜, 영양밥과 석류탕(석류 모양으로 빚은 만둣국)에 과일과 한과 디저트가 나오고, 기본반찬으로 김치, 삼색나물, 두부조림, 다시마튀각이 곁들여지는 식이었다.
해외의 한국 대사관저에서 열리는 만찬 메뉴도 보통 호박죽이나 잣죽으로 시작해서 모둠전, 새우찜, 갈비구이와 같은 요리에 때로는 신선로나 구절판이 추가되는 한식 코스 요리다. 대사들의 개성에 따라서 특색 있는 메뉴를 내놓기도 하는데 내게는 아주 기억에 남는 만찬이 한 번 있었다. 유럽지역에 있는 어느 한국 대사관저의 만찬이었는데 코스의 순서마다 나오는 음식의 크기가 조그맣고 그 색깔과 모양이 마치 공예품처럼 예뻤다. 한 가지 요리가 한입 또는 두입을 먹으면 그만일 정도로 양도 적었다. 조금 더 먹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듯했지만 대신 음식의 가짓수는 다른 곳보다 더 많은 편이었다. 음식에도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이 있어서 처음 한두 입을 먹었을 때가 가장 맛있고 그다음부터는 맛있다는 느낌이 줄어든다고 하는데, 이렇게 음식의 양을 적게 하면서 종류를 늘리는 방식은 아주 효과적이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요리의 종류가 많이 나오는 만큼 손님들에게 한국 음식의 다양함을 더 보여줄 수 있으니 일석이조라고 하겠다. 만드는 사람은 힘들었겠지만 공들인 만큼 나에게 이렇게 깊은 인상을 남겼으니 말이다.
정상외교에서 사용된 음식이 유명세를 타는 경우도 종종 있다. 1996년 6월 제주도를 방문한 하시모토 류타로 일본 총리는 김영삼 대통령에게 깍듯하게 예의를 갖췄다. 악수를 하거나 건배를 할 때는 두 손으로 정중하게 했는데 한국 방문 직전에 누군가 한국식 예법을 그에게 입력시켜 준 것 같았다. 항상 왼손으로 오른손의 팔뚝이 아니라 팔꿈치 부분을 받치는 모양이었기 때문에 보기에는 상당히 어색했지만 그러한 노력의 덕분에 만찬 자리에서 두 정상은 술도 많이 마시면서 친밀한 분위기를 만들 수 있었다. 그날 만찬주로 나온 술이 제주도 특산의 허벅술이었다는 사실이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지면서 허벅술은 ‘하시모토 술’이라는 별명까지 얻게 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이름이 난 덕분에 허벅술은 그 후에도 남북 장관급회담이나 2009년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에서 공식만찬의 건배주로 사용되었다.
20세기 초반까지 세계를 풍미하던 유럽식 궁정외교가 점차 막을 내리면서 현대 외교는 격식을 점점 줄여나가는 간소한 형태가 되어 가고 있다. 프랑스 요리가 기본이던 시대가 가고 각국 고유의 음식이 그 자리를 차지하더니, 최근에는 시내의 일반 식당에서 양국 정상이 캐주얼한 분위기로 식사를 하면서 친밀함을 과시하는 경우도 생기고 있다. 2002년 2월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가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을 공식만찬과는 별도로 도쿄 시내의 일본 이자카야식 레스토랑으로 초청해서 저녁 식사를 함께 했다. 당시 도쿄에 근무하던 나는 티브이(TV) 화면에서 두 정상이 노타이 차림으로 2층 복도 난간에서 아래층 홀에 있는 일반 손님들을 향해 손을 흔드는 모습을 보고는 그 레스토랑이 어디인지 궁금해졌다.
2014년 7월 시진핑 중국 주석의 방한을 앞두고 신라호텔 측이 중국 조어대의 후원타오 부총주방장과 직원들을 초청해 국빈만찬 요리를 소개하고 있다. 연합뉴스
다음날 출근해서 그곳이 니시아자부에 있는 ‘곤파치’라는 것을 알아내고는 예약을 해보려고 바로 전화를 했다. 그런데 아무리 전화를 걸어도 계속 통화중이었다. 나중에는 그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사무소 번호를 찾아서 겨우 통화를 할 수 있었는데, 사무소 측에서는 자기들도 업무연락 전화가 연결되지 않아서 낭패를 보고 있다고 하면서 이해를 구하는 것이었다. 결국 몇 달이 지나서 사람들의 관심이 조금 낮아진 다음에야 그곳에 가서 식사를 해볼 수 있었다. 자기 나라 총리가 미국 대통령을 초대했던 곳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엄청난 광고효과가 있었고 흔히 말하는 대박이 났던 것이다. 그 후 2003년에 개봉된 영화 <킬 빌>의 후반부에 나오는 결투 장면이 곤파치의 내부를 그대로 본떠서 만든 세트에서 촬영되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또 한 번 화제가 되기도 했다.
오바마, 스시 절반 남겼다?
최근에는 2014년 4월 도쿄 긴자의 유명한 스시집 ‘스키야바시 지로’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함께 저녁을 해서 세간의 관심을 모았다. 아베와 오바마가 넥타이를 풀고 스시 카운터에 나란히 앉아서 담소하는 사진만으로도 미-일 관계의 긴밀함을 홍보하는 효과를 충분히 거두었다고 할 수 있다. 번화가의 빌딩 지하 1층에 자리 잡고 있는 스키야바시 지로는 카운터 자리 10개가 전부인 작은 곳이지만 2007년부터 계속 미슐랭 가이드에서 별 3개를 받고 있을 정도로 정평이 나 있는 레스토랑이다. 그런데 만찬 직후 일부 일본 언론에 오바마가 20개 정도 나온 스시를 절반이나 남겼다는 이야기가 보도되면서 여러 가지 억측을 불러일으킨 탓에, 이 스시집의 주인으로 당시 89살이던 스시 명인 오노 지로가 외국특파원협회 초청 강연에 나와서 오바마 대통령은 나온 스시를 남기지 않고 맛있게 다 먹었다고 해명하는 일까지 있었다.
이러한 일본의 ‘스시 외교’의 원조는 2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3년 7월 미야자와 기이치 총리는 방일 중이던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을 스시 레스토랑으로 초대해서 비공식 만찬을 했다. 당시만 해도 미국과 일본의 정상이 일반 식당에서 스시를 함께 먹었다는 뉴스는 격식 파괴 외교의 하나로 주목을 받았지만 그때의 사진을 보면 두 사람 모두 넥타이를 맨 정장 차림이었고 식사 장소도 특급 호텔 내부의 스시 레스토랑이었기 때문에 완전히 격식을 벗어나지는 못했다고 할 수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정상들의 만찬에서 넥타이가 사라지고 장소도 보통사람들이 흔히 이용하는 대중적인 식당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외교도 보통사람들의 시대에 맞추어 변해가고 있는 중이다.
조세영 동서대학교 특임교수 겸 일본연구센터 소장
▶조세영 동서대학교 특임교수 겸 일본연구센터 소장. 외교부에서 30년 근무한 뒤 정년보다 8년 일찍 퇴직해서 실천적 문필가를 꿈꾸며 살고 있다. 일본, 중국, 예멘,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일했고 동북아시아국장을 지냈다. 저서로 <봉인을 떼려 하는가: 미일동맹을 중심으로 본 일본의 헌법개정 문제>와 <한일관계 50년, 갈등과 협력의 발자취>가 있다. 거창한 외교론이 아니라, 외교라는 일을 쉬운 이야기로 풀어보려는 생각에 연재를 시작했다. 격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