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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외교

‘워싱턴 스쿨’의 독주는 멈추지 않는다

등록 2016-07-29 19:16수정 2016-07-30 22:06

[토요판] 조세영의 외교클럽
(11) 외교부 내 ‘스쿨’
외교부에서 미국을 담당하는 북미국을 중심으로 한 ‘워싱턴 스쿨’은 핵심 엘리트 그룹을 형성한다. 2011년 6월 서울 용산미군기지에서 제188차 소파(한미주둔군지위협정) 합동위원회가 열리고 있다. 이날 우리 쪽 대표로는 외교부 북미국장이 참석했다. 사진공동취재단
외교부에서 미국을 담당하는 북미국을 중심으로 한 ‘워싱턴 스쿨’은 핵심 엘리트 그룹을 형성한다. 2011년 6월 서울 용산미군기지에서 제188차 소파(한미주둔군지위협정) 합동위원회가 열리고 있다. 이날 우리 쪽 대표로는 외교부 북미국장이 참석했다. 사진공동취재단

‘워싱턴 스쿨’, ‘재팬 스쿨’, ‘차이나 스쿨’…. 학교나 학원의 이름이 아닐까 하는 느낌이 들겠지만, 외교부에서는 다른 뜻으로 통하는 말이다. 본부에서 미국을 담당하는 북미과장이나 북미국장을 거치고, 주미대사관 근무 경험을 가진 미국통 외교관들을 워싱턴 스쿨이라고 부른다. 일본을 담당하는 동북아1과장이나 동북아국장을 지내고 주일대사관 근무 경험이 있으면 재팬 스쿨에 속하고, 중국을 담당하는 동북아2과장이나 동북아3과장을 거쳐서 동북아국장과 주중대사관 근무의 경력을 가진 사람은 차이나 스쿨로 분류된다. 중요한 나라들을 다루는 지역전문가 그룹을 일컫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4강 국가 가운데 러시아가 빠져 있는 것은 아직 러시아 스쿨이라고 부를 만큼 전문가 그룹이 확립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물론 외교부에 미국, 일본, 중국 3개 분야의 전문가 그룹만 있는 것은 아니다. 본부에서 경제통상 업무를 다뤄본 경험이 많고, 제네바대표부나 주미대사관에서 세계무역기구(WTO) 또는 경제관련 업무를 경험한 통상 전문가 그룹은 외교부에서도 상당히 큰 존재감을 자랑한다. 유엔대표부나 제네바대표부를 거치면서 국제기구 분야에 특화한 다자외교 전문가 그룹도 기반이 탄탄한 편이다. 최근에는 환경, 군축, 개발, 재외동포영사와 같은 영역으로 전문가 그룹이 좀 더 세분화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그렇지만 ‘스쿨’이라는 이름이 붙는 것은 여전히 미국, 일본, 중국의 3개뿐이다. 나머지 분야의 전문가 그룹은 아직 외교부 내에서 비중과 영향력이 이들 3개 ‘스쿨’에 견줄 만큼 확고하지 않다.

주요 보직 독식한다는 따가운 시선

스쿨이라는 말이 언제부터 사용되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가장 먼저 등장한 것은 워싱턴 스쿨과 재팬 스쿨이다. 정부 수립 직후 6·25 전쟁을 겪고 국가의 안보를 한미동맹에 의존하게 된 상황에서 한국 외교의 중심은 한미관계에 있을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일찍부터 워싱턴 스쿨이 형성된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1950년대 초반에서 1960년대 중반까지 한국 외교에서 가장 큰 현안은 한일관계였다. 14년이라는 오랜 시간이 걸린 한일 국교정상화 교섭은 국가적인 현안이었던 만큼 당시 외교부의 핵심 엘리트들이 대거 투입되었고 훗날 이들이 외교부의 중추를 이루면서 재팬 스쿨을 이끌게 됐다.

초대 장택상 장관부터 현재의 윤병세 장관까지 총 35명에 이르는 외교부 장관의 경력을 분석해보니, 직업외교관이 20명이고 정치인이나 교수 등 외부인사가 15명이었다. 직업외교관 출신 장관 20명 가운데 워싱턴 스쿨이 9명, 재팬 스쿨이 3명, 양쪽 모두에 해당되는 경우가 6명, 어느 쪽에도 해당하지 않는 경우가 2명이었다. 외교부 출신 장관 20명 중 18명이 미국 또는 일본 관련 업무 경력자이니 2개 스쿨의 비중이 어느 정도인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1980년대에 어느 장관은 외교부 과장 중에 일을 제대로 못하면 장관의 ‘목이 날아갈 수 있는’ 보직이 2개 있는데, 하나는 북미1과장이고 다른 하나는 동북아1과장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외교부에서 출세하려면 미국, 일본 업무를 맡아야 한다는 생각에 인사 때만 되면 북미국이나 주미대사관, 동북아국이나 주일대사관으로 배치되려고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곤 한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외교부 내에서는 2개 스쿨이 자기들끼리 끈끈한 유대관계를 형성하면서 좋은 보직을 독식한다는 따가운 시선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고등고시와 외무고시 출신이 주를 이루는 1990년 이후로 시기를 한정하여 역대 외교부 장관의 경력을 비교해 보면 또 다른 특징이 드러난다. 1990년 이후의 외교부장관 15명 가운데 외교부 출신이 11명이었는데, 이들 중 워싱턴 스쿨이 7명으로 압도적이며 재팬 스쿨이 1명(공로명), 양쪽 모두에 해당하는 경우가 1명(유명환), 어느 쪽에도 해당하지 않는 경우가 2명(이정빈, 최성홍)이었다. 이 시기의 특징은 워싱턴 스쿨 출신 장관이 거의 모두 실무자 시절부터 북미과장이나 북미국장, 주미대사관의 보직을 제대로 거친 정통파 대미외교 전문가들이라는 점이다. 이 시기에 재팬 스쿨로서는 유일했던 공로명 장관이 1996년 11월에 퇴임했으니 그때부터 지금까지 20년 가까이 사실상 워싱턴 스쿨의 독주 시대가 계속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외교부 내 핵심지역 담당 ‘이너서클’
6·25 뒤 한미동맹이 외교 축 되자
북미국 등 거친 ‘워싱턴 스쿨’ 부각
한일 국교정상화 현안 등장하면서
엘리트 외교관 ‘재팬 스쿨’로 편입

90년 이후 외교부 출신 장관 11명
양대 스쿨 출신이 9명으로 압도적
한중 수교 이후 ‘차이나 스쿨’ 등장
중국 업무만 2개 과가 나눠 맡는 중
‘친미파’ ‘친일파’ 등 꼬리표 붙기도

재팬 스쿨에 속하는 나와 같은 사람의 입장에서는 솔직히 워싱턴 스쿨의 독주 현상이 반갑지만은 않을 수도 있다. 물론 어느 그룹에도 속하지 않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워싱턴이든 재팬이든 관계없이 ‘스쿨’이 득세하는 현상 자체에 대해 불만을 느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에는 어쩔 수 없는 시대적 배경이 있다. 1960년대 중반까지 한일 국교정상화가 최대의 현안이었던 것처럼, 1990년대 중반부터는 북한 핵·미사일 문제가 한국 외교의 가장 중요한 이슈로 자리잡았다. 해외공관에서는 주미대사관이 이 문제의 중심이고 본부에서는 한반도평화교섭본부가 이 일을 담당하고 있는데, 한반도평화교섭본부가 새로 생기면서 그때까지 북미국에서 담당하던 북한 핵·미사일 문제를 넘겨받은 것이기 때문에 그 뿌리는 워싱턴 스쿨에 있다. 따라서 1990년대 이후 외교부의 업무에서 워싱턴 스쿨의 비중은 과거보다 더 커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한국 경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날로 높아지고 북한 문제와 관련해 중국의 역할이 커지면서, 외교부에서 중국 관련 업무를 담당하거나 중국 근무 경험이 있는 ‘차이나 스쿨’이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사진은 2012년 12월 중국 베이징의 주중대사관에 마련된 투표소에서 대사관 직원들이 제18대 대통령 선거 재외투표에 참여하는 모습. 연합뉴스
한국 경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날로 높아지고 북한 문제와 관련해 중국의 역할이 커지면서, 외교부에서 중국 관련 업무를 담당하거나 중국 근무 경험이 있는 ‘차이나 스쿨’이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사진은 2012년 12월 중국 베이징의 주중대사관에 마련된 투표소에서 대사관 직원들이 제18대 대통령 선거 재외투표에 참여하는 모습. 연합뉴스

재팬 스쿨 지고 차이나 스쿨 뜬다?

6자회담에서 보듯이, 북한 핵·미사일 문제는 남북한 이외에도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주변 4강이 모두 얽혀 있다. 외교부의 업무분장으로 보자면 동북아국이 그중 2개 국가를 담당하고 있으니 중심적인 역할을 할 법도 하다. 실제로 중국 외교부는 이 문제를 아주국에서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 외교에서 안보분야는 한미동맹을 빼놓고 생각할 수 없기 때문에 북한 핵·미사일 문제도 한미관계의 맥락에서 다루고 있는 것이다. 반면 일본의 경우에는 똑같이 미국과의 동맹에 안보를 의존하고 있으면서도 북한 핵·미사일 문제를 북미국이 아닌 아시아대양주국에서 담당하고 있다. 그리고 직업외교관의 최고위직인 사무차관의 보직도 최근에는 아시아대양주국장 출신이 독차지하다시피 한다. 정식 군대를 보유하지 않은 일본의 입장에서 미일동맹에 대한 의존도는 한국보다 결코 낮다고 할 수 없다. 그럼에도 그들은 북한 핵·미사일 문제를 미일관계의 맥락에 맡겨놓기보다는 아시아 전략이라는 맥락에서 살펴보려는 자세를 잃지 않고 있는 것 같다.

북한 핵·미사일 문제가 해소되지 않는 한 당분간 한국 외교에서 워싱턴 스쿨의 비중이 줄어들기는 어려울 것이다. 현재 차관급 이하의 간부와 실무자급에서는 워싱턴 스쿨이 새로운 형태로 진화할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대미외교 전문가로서의 배경을 가지고 있으면서 주중대사관이나 주일대사관에도 한 차례 정도 근무하여 폭넓은 경험을 갖추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그동안 청와대나 외교부의 핵심 보직에 워싱턴 스쿨의 독주 현상이 심해지면서 상대적으로 중국이나 일본 분야가 취약하다는 지적이 나오곤 했는데, 새로운 형태의 워싱턴 스쿨은 이러한 측면에서 강점을 갖게 될 것이다. 이에 비해 재팬 스쿨이나 차이나 스쿨 출신이 주미대사관에 근무하거나 미국 업무, 북한 핵·미사일 업무를 경험하면서 경험의 폭을 넓히는 경우는 상대적으로 드문 편이다.

외교부에서 새롭게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는 전문가 그룹으로 차이나 스쿨을 꼽을 수 있다. 내가 외교부에서 일하기 시작한 1980년대 중반만 해도 아직 중국과 외교관계가 없던 시절이라 중국 업무를 담당하는 동북아2과의 풍경은 마치 조용한 도서실과도 같았다. 볼일이 있어서 동북아2과의 사무실에 들렀을 때 전화 통화 소리도 들리지 않는 가운데 직원들이 차분하게 앉아서 자료를 읽고 있던 모습을 보고 굉장히 낯설었던 기억이 있다. 같은 아주국(지금은 동북아국)에 속했으면서도 일본 업무를 담당하는 동북아1과가 크고 작은 현안 때문에 눈코 뜰 새 없이 돌아가던 모습과는 대조적이었기 때문이다.

그 후 1992년 8월에 한중 수교가 이루어지면서 본격적인 대중국 외교가 시작됐다. 주중대사관이 개설돼 베이징 근무가 가능해졌고, 그때까지 대만(타이완)에서 이뤄지던 중국어 해외연수도 중국 본토로 가게 되었다. 중국 경제의 급속한 발전과 함께 한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중국의 비중이 하루가 다르게 높아졌고, 북한 문제에 대한 중국의 역할이 중요해지면서 외교안보 분야에서의 비중도 커졌다. 동북공정, 어업 문제, 탈북자 문제 등 어려운 현안이 쏟아져 나오면서 조용한 도서관 같던 동북아2과의 옛 풍경은 상상도 할 수 없게 변했다. 늘어나는 업무 부담 때문에 지금은 동북아3과를 신설해 중국 업무를 2개 과가 나누어서 담당할 정도다. 이러한 가운데 자연스럽게 차이나 스쿨이라는 말이 자리를 잡게 되었다.

최근에는 ‘재팬 스쿨이 지고 차이나 스쿨이 뜬다’는 이야기가 많이 들린다. 차이나 스쿨이 앞으로 재팬 스쿨을 능가할 정도로 점점 더 중요해질 것은 틀림없지만, 한중 수교의 역사가 짧은 만큼 차이나 스쿨은 아직 역사도 짧고 충분한 경험과 인력이 축적되지 못한 상태다. 동북아2과장에 아주국장(지금은 동북아국장)과 주중대사를 거친 김하중 전 통일부 장관이 차이나 스쿨의 대부라고 할 수 있으나, 정통파 차이나 스쿨에서 외교부의 장차관이 나올 정도로 영향력을 가지려면 좀 더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차이나 스쿨은 중국이 갖는 미래의 가능성이 워낙 크기 때문에 한발 앞서 이름부터 자리를 잡은 경우라고 하겠다.

‘일본통’ 왕이 외교부장의 강경 모드

어떤 나라에 대해서 잘 알고 경험이 많다는 것은 자칫 그 나라의 입장에 치우치거나 그 나라를 옹호한다는 비판을 받기 쉽다. 워싱턴 스쿨은 친미파, 재팬 스쿨은 친일파, 차이나 스쿨은 친중파라는 딱지가 붙기 십상이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 친일파라는 비판은 친미파나 친중파라는 비판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치명적이기 때문에 재팬 스쿨에는 남다른 애환이 있다. 이러한 국내의 비판을 피하기 위해서 전문가들이 오히려 강경론으로 흐르기도 한다. 상대방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모습을 보면서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혔다고 배신감을 느낄 수도 있다.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 문제로 중일 관계가 한창 시끄러웠을 때 일본 외무성의 중국 전문가 한 사람이 ‘지금 중국 외교부에서는 재팬 스쿨이 제일 앞에 나서서 대일 강경론을 주장하고 있다’고 내게 불만을 털어놓은 적이 있다. 그런데 내가 알기로는 일본 외무성 내부에서도 차이나 스쿨이 중국에 대해서 약한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고 하면서 강경론을 주장했다고 하니 결국 어느 나라든 사정은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지난주 일본 <아사히신문>에 중국의 대표적인 ‘일본통’인 왕이 외교부장이 최근 들어 부쩍 일본에 대해 강경한 자세를 드러내고 있다는 칼럼이 실렸다. 예의에 벗어날 정도로 고압적인 어투로 일본 비판을 쏟아내는 모습에 제3국의 외교관들도 고개를 갸우뚱할 정도라면서, 내년 가을로 예정된 당대회에서 부총리급인 양제츠 국무위원의 자리를 노리고 있는 왕이 외교부장이 국내적으로 친일파라는 비판을 피하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그런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가 대학에서 일본어를 전공하고 주일대사까지 지낸 인물이니 일본인들로서는 섭섭한 마음이 있겠지만, 거꾸로 왕이 부장의 입장에서는 일본이 원인 제공을 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일본이 역사 문제와 관련해 수정주의적인 자세를 보이는데다 안보 문제나 남중국해 문제에서 미국과 결탁해 중국을 고립시키려 하고 있기 때문에 일본에 대해 온건한 입장을 취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게 되어 버렸다고 말이다. 울고 싶은데 뺨 때려준다고, 그렇지 않아도 친일파라는 비판이 나올까봐 부담스러운 상황에서 상대방이 빌미를 제공해주고 있으니 그 덕분(?)에 부담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워졌다는 심정이 아닐까.

▶조세영 동서대학교 특임교수 겸 일본연구센터 소장. 외교부에서 30년 근무한 뒤 정년보다 8년 일찍 퇴직해서 실천적 문필가를 꿈꾸며 살고 있다. 일본, 중국, 예멘,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일했고 동북아시아국장을 지냈다. 저서로 <봉인을 떼려 하는가: 미일동맹을 중심으로 본 일본의 헌법개정 문제>와 <한일관계 50년, 갈등과 협력의 발자취>가 있다. 거창한 외교론이 아니라, 외교라는 일을 쉬운 이야기로 풀어보려는 생각에 연재를 시작했다.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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