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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외교

대사님, 좀 들어오시죠, 새벽 2시에

등록 2016-08-12 19:03수정 2016-08-12 19:50

[토요판] 조세영의 외교클럽
(12) 외교관 ‘초치’(招致)
2014년 6월23일 벳쇼 고로 주한 일본대사가 서울 종로구 도렴동 외교부 청사에서 일본의 고노 담화 검증에 대한 한국 정부의 공식 입장을 전달받은 뒤 차에 오르고 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2014년 6월23일 벳쇼 고로 주한 일본대사가 서울 종로구 도렴동 외교부 청사에서 일본의 고노 담화 검증에 대한 한국 정부의 공식 입장을 전달받은 뒤 차에 오르고 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2016년 6월9일 새벽 2시, 도쿄 한복판의 관청가인 가스미가세키는 오가는 차량도 거의 없이 캄캄한 적막감에 싸여 있었다. 이 야심한 시각에 일본 외무성 건물로 검은색 대형 승용차 한 대가 조용히 들어왔다. 일반 승용차의 번호판과는 달리 파란색 바탕에 흰색으로 ‘外’(외)라는 글자에 이어 네 자리의 숫자가 쓰여 있다. 일본에 주재하는 외교관용 번호판이다. 앞의 두 자리가 91인 것을 보니 중국대사관 소속이고, 다음 두 자리가 01이니 그중에서도 대사의 전용차량임에 틀림없다.

중앙 현관에 차가 멈추자 뒷좌석에서 짙은 감색 정장 차림의 남자가 내렸다. 청융화 주일 중국대사였다. 그는 중국대사관의 수행원 한 명을 대동하고 일본 외무성 관계자의 안내를 받으며 곧바로 건물 안으로 사라졌다. 청 대사는 중-일 국교정상화 직후인 1973년에 중국 유학생 1호로 일본에 파견되었던 대표적인 지일파 외교관인 만큼 중-일 관계 발전에 남다른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큰 기대를 모았었다. 그러나 이날은 대사의 굳은 표정, 그리고 무엇보다 새벽 2시라는 시간이 양국 사이에 무언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항의받는 게 대사의 숙명

청 대사는 전날 밤부터 잠자리에 들지 못한 채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 문제를 둘러싼 중-일 간의 신경전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동중국해에서 센카쿠 열도 쪽으로 접근하고 있는 중국 해군의 군함이 이대로 센카쿠 수역에 들어가게 되면 한차례 외교적인 소동이 벌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중국 군함은 일본 해상자위대 호위함의 거듭된 경고를 무시하고 6월9일 0시50분 드디어 센카쿠의 접속수역(영해 12해리의 바깥쪽으로 12해리까지 설정 가능한 수역)에 진입했다.

‘결국 중국이 루비콘 강을 건너고 말았구나….’

사무실에서 긴박한 상황에 대응하고 있던 일본 외무성의 이시카네 기미히로 아시아대양주국장은 새벽 1시15분에 중국대사관의 류샤오빈 공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도대체 중국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겁니까. 즉각 군함을 철수시키지 않으면 일본도 강력한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일본 국내가 어떤 상황인지 류 공사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잖아요.”

언제나 부드러운 태도를 잃지 않는 이시카네 국장의 상기된 목소리에 류 공사는 상황이 꽤나 심각하다고 느꼈다. 평소에는 가깝게 지내는 사이지만 지금은 달랐다.

“자기 수역에서 주권을 행사하는 게 무슨 문제가 되는지 모르겠네요. 아무튼 일본의 입장은 본부에 바로 전달하겠습니다.”

류 공사로부터 통화 내용을 보고받은 청 대사는 아무래도 이 일은 그냥 전화로만 끝날 것 같지 않다는 예감이 들었다. 밤사이에 직접 일본 외무성으로 불려 들어가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지금까지 일본이 이런 야심한 시간에 중국대사를 외무성으로 초치(招致)하는 일은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최근 아베 정권은 영토문제에 단호한 자세를 보이라고 요구하는 여론의 압력을 무시할 수 없는데다 이런 문제에서 과거보다 훨씬 단호했다. 더욱이 센카쿠 수역에 중국 군함이 진입한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었기 때문에 일본으로서도 그냥 넘어가기는 어려울 것이었다.

청 대사는 류 공사에게 심야에 외무성으로 초치될 경우 어떻게 대응하면 좋을지 베이징에 지급으로 훈령을 요청하도록 지시한 뒤, 연락이 오면 입고 나갈 양복과 넥타이부터 챙겼다. 주재국 정부가 들어오라고 부르면 만사를 제쳐놓고 일단 요청에 따라야 한다는 것을 청 대사도 오랜 외교관 생활을 통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사관저에서 편한 차림으로 있다가 새벽에 다시 양복을 차려입고 외무성으로 들어갈 생각을 하니 은근히 짜증이 났다. 그러나 외교적 마찰이 벌어졌을 때 상대국에 나가 있는 대사의 숙명이 으레 이런 것이려니 생각하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이상은 지난 6월9일 새벽 2시에 일본 외무성의 사이키 아키타카 사무차관이 청융화 주일 중국대사를 초치해 중국 군함의 센카쿠 수역 진입에 대해 엄중히 항의했던 상황을 당시의 언론보도를 토대로 개인적인 상상을 덧붙여 재현해본 것이다. 나의 상상과는 다르게 사실은 일본 쪽이 류 공사에게 전화했을 때 잠시 후 대사를 초치할 예정임을 친절하게(?) 미리 알려주었을 수도 있다. ‘외교에서는 상대방이 놀라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는 말이 있듯이 이것이 외교적 예의에 더 맞는 시나리오이기는 하다. 반대로 일본 외무성은 류 공사에게 전화로 우선 항의하고 나서 날이 밝은 후 업무시간 중에 대사를 초치해서 정식으로 항의를 전하려 했는데, 총리실에서 아침까지 기다리지 말고 당장 불러들이라는 강경한 지침이 하달돼 할 수 없이 그렇게 된 것일 수도 있다.

이 사건은 알고 보면 이미 6년 전에 중국이 먼저 그 단초를 제공했다. 2010년 9월7일 센카쿠 근처 수역에서 조업하던 중국 어선의 선장을 일본 해상보안청 순시선이 불법조업 혐의로 체포했다. 일본 쪽이 과거와는 달리 중국인 선장을 사법절차에 따라 엄하게 처리하려는 자세를 보이자 중국 정부도 과거와는 다른 태도로 나왔다. 중국 정부는 선장이 체포된 직후부터 닷새 동안 네 차례나 연속으로 니와 우이치로 주중 일본대사를 초치해서 항의한 데 이어, 일요일임에도 9월12일 심야 0시에 다이빙궈 국무위원이 또 한 차례 니와 대사를 불러 강력한 항의를 전달했다.

중·일 센카쿠 갈등 정점 치닫던 6월
일, 새벽 2시 중국대사 불러 항의
강력한 불만 표출한 것으로 봐야
6년 전 중국 선장 일에 체포됐을 때
중, 5일간 4차례나 불러 따지기도

외교 현장에선 주재국 정부가 ‘갑’
일정 조정해서라도 응하는 게 관례
‘못 가겠다’ 버티는 건 극약처방
오바마가 달라이라마 면담하자
중, 연휴 즐기던 미국대사 소환

2012년 3월12일 장신썬 주한 중국대사(왼쪽 둘째)가 서울 종로구 도렴동 외교부 청사에서 중국의 이어도 관할권 주장과 관련해 외교통상부 차관을 면담한 뒤 엘리베이터를 타고 청사를 나서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2012년 3월12일 장신썬 주한 중국대사(왼쪽 둘째)가 서울 종로구 도렴동 외교부 청사에서 중국의 이어도 관할권 주장과 관련해 외교통상부 차관을 면담한 뒤 엘리베이터를 타고 청사를 나서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중국과 일본, 심야 호출 장군멍군

이러한 중국의 행동에 대해 일본 정부가 정식으로 유감을 표명한 것은 물론이고, 일본의 여론도 주말의 야심한 시간에 대사를 초치한 것은 몰상식한 외교행태라고 격렬한 비판을 쏟아냈다. 당시의 상황을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중국이 새벽 1시(중국시간 0시는 일본시간으로 1시)에 일본대사를 불렀으니 우리는 새벽 2시에 중국대사를 불러내자’는 일본 네티즌의 댓글이 눈에 띄었다. 그로부터 6년이 지난 후에 실제로 일본 정부가 새벽 2시에 중국대사를 초치한 일이 벌어진 것인데, 이것을 우연이라고만 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아무튼 결과적으로는 중국과 일본이 장군멍군 식으로 심야의 대사 초치라는 카드를 서로 주고받은 셈이다.

야심한 시간에 외무성으로 불려 들어가서 자기가 잘못한 일도 아닌데 항의를 받고 나와야 한다는 것은 대사의 입장에서는 정말 당황스럽고 불쾌한 일이다. 그러나 외교 현장에서 주재국 정부는 완전한 ‘갑’이고, 현지의 외국대사관은 철저하게 ‘을’의 입장이다. 따라서 외교관들은 주재국 외교부와 좋은 관계를 만들도록 노력하는 것이 기본이다. 설사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있더라도 싫은 내색을 하지 않고 원만한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예를 들어 주재국 외교부로터 갑자기 몇 시에 들어오라는 연락을 받더라도 곤란하다거나 시간을 바꾸어 달라고 하기보다는 일단 그 시간에 맞추겠다고 하는 것이 바람직한 태도다. 만일 그 시간에 다른 일정이 있다면 그것을 조정하는 것이 원칙이다. 실제로 외교부에서 급한 일로 외국대사를 불렀는데 마침 서울을 떠나 지방에 내려가 있는 경우가 있다. 이럴 때 대사들이 지방 일정을 단축하고 급히 서울로 돌아와서 약속된 시간에 외교부로 들어오는 일도 많다. 상대방이 이렇게 성의있는 태도를 보이면 아무래도 주재국 외교부로서도 좋은 인상을 갖게 되고 그 후의 업무처리도 더욱 부드러워지는 게 인지상정이다.

물론 최소한의 시간 여유도 주지 않고 갑자기 들어오라고 하거나 새벽이나 심야처럼 상식에서 벗어난 시간에 들어오라고 하는 경우에는, 대사관 쪽에서도 그냥 따르기만 하는 게 아니라 시간을 조정해 달라고 요구하는 수도 있다. 이때는 갑자기 들어오라고 하는 주재국 정부나, 시간을 바꾸어 달라고 요구하는 대사관 양쪽 모두가 상대방에 대한 불쾌감을 표시하기 위해서 일부러 계산된 행동을 하는 셈이다. 대사관이 가장 강하게 저항하는 방법은 못 가겠다고 버티는 것인데, 이것은 주재국 외교부의 권위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극약 처방이나 다름없기 때문에 대사관으로서도 본국 정부의 분명한 지시나 허가가 없는 한 사용해서는 안 되는 방법이다.

한·중·일 세 나라의 외교 스타일을 비교해보면, 우선 중국의 경우, 외국대사를 휴일이나 밤늦게 초치하는 일이 자주 있는 편이다. 2010년 2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달라이 라마를 면담하자 중국 외교부가 이에 항의하기 위해 설 연휴기간이었는데도 헌츠먼 주중 미국대사를 초치했다. 사이클링을 하며 연휴를 즐기던 헌츠먼 대사는 갑작스런 연락을 받고 옷을 갈아입을 여유도 없이 사이클복 차림 그대로 외교부에 들어갔다고 한다. 2011년 9월에도 중국 외교부는 대만에 대한 미국의 무기판매에 항의하기 위해 밤늦은 시간에 게리 로크 주중 미국대사를 불러들인 적이 있다. 한국 대사나 북한 대사를 심야에 초치하는 일도 종종 있었다. 중국 외교는 자신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외부의 비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밀어붙이는 거친 구석이 있다.

반면에 일본은 심야에 외국대사를 불러들인 적이 거의 없었는데 최근 들어 두 번이나 그런 일이 생겼다. 앞에서 소개한 중국대사 심야 호출 사건 이외에도 지난 5월19일 심야에 기시다 후미오 외상이 오키나와 주둔 미군 군무원의 일본 여성 살해 사건에 항의하기 위해 캐럴라인 케네디 주일 미국대사를 초치했다. 이례적으로 케네디 대사가 기시다 외상으로부터 항의를 받는 사진까지 공개한 것을 보면서 이제 일본도 예전과 달리 상당히 국내 여론을 의식하는 외교를 하는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한국의 경우에는 내 기억으로는 밤늦게 외국대사를 불러들여서 외교적인 항의를 전달한 일은 없었던 것 같다.

청바지 입고 주재국 총리실에

주재국 정부가 반드시 좋지 않은 일로만 외국대사를 초치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각별한 협조의 뜻을 전하기 위한 경우도 있다. 연평도 포격 사건이 발생한 2010년 11월23일 오후에 갑자기 일본 총리실로부터 센고쿠 요시토 관방장관이 권철현 주일대사를 만나고자 한다는 연락이 왔다. 당시 나는 주일 한국대사관에 근무하고 있었는데 급히 필요한 조치를 취하고 나서 권 대사를 수행해서 약속된 시간에 총리실 건물에 있는 관방장관실로 갔다.

일본에서 관방장관은 내각 서열 제2위로 한국의 대통령 비서실장과 국무조정실장에 정부 대변인 역할까지 담당하는 막강한 자리다. 게다가 센고쿠 관방장관은 민주당 정권의 실세였기 때문에 더욱 비중이 컸다. 그는 일본 정부로서도 북한의 도발을 결코 용납할 수 없으며 한국과 긴밀히 협조해서 대처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러한 일본 정부의 입장을 한시라도 빨리 한국에 전달하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해서 공휴일 저녁 시간임에도 일부러 권 대사를 들어오라고 했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비상상황에서 우방국이 이러한 협조적인 자세를 보여주는 것은 정부 입장에서는 외교적으로 큰 자산이 아닐 수 없었다.

마침 일본의 공휴일이었던 그날 나는 청바지 차림으로 외부에 있다가 갑자기 연락을 받고 대사관으로 나갔다. 짙은 감색 블레이저를 위에 입고 있었기 때문에 그나마 다행이긴 했지만 청바지를 입은 채로 주재국의 총리실에 들어가게 되니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사이클복 차림으로 중국 외교부에 들어갔던 미국대사보다는 낫지 않았을까.

▶조세영 동서대학교 특임교수 겸 일본연구센터 소장. 외교부에서 30년 근무한 뒤 정년보다 8년 일찍 퇴직해서 실천적 문필가를 꿈꾸며 살고 있다. 일본, 중국, 예멘,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일했고 동북아시아국장을 지냈다. 저서로 <봉인을 떼려 하는가: 미일동맹을 중심으로 본 일본의 헌법개정 문제>와 <한일관계 50년, 갈등과 협력의 발자취>가 있다. 거창한 외교론이 아니라, 외교라는 일을 쉬운 이야기로 풀어보려는 생각에 연재를 시작했다.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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