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사의 정식 직함이 ‘특명전권대사'인 것은 교섭에 관한 전권을 위임받았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대사를 임명할 때는 상대국의 사전동의(아그레망) 절차가 필요하고, 대사가 현지에 부임할 때는 대통령으로부터 받은 신임장을 지참해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1일 청와대에서 나가미네 야스마사 신임 주한일본대사로부터 신임장을 받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외교관의 꽃은 대사다. 대사라고 하면 그 이름만으로도 왕정시대의 고전적인 외교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된다. 이제는 옛 궁정외교 시대와는 달리 턱시도나 모닝코트 등의 예복을 입을 일조차 거의 없어졌지만, 짙은 색 슈트를 잘 차려입고 태극기가 펄럭이는 검은색 대형 세단의 뒷좌석에 몸을 실은 채 대사관저를 나서는 대사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여전히 경외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과 같은 보통사람들의 시대에는 이러한 고전적인 이미지는 오히려 위화감을 안겨주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고고하게 보인다는 게 좋은 의미가 아니라, 세상의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든지 또는 보통사람들의 생활과 유리되어 있다는 부정적인 의미로 받아들여지기도 하는 것이다. 한편으로 동경의 대상이면서 다른 한편으로 위화감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 미묘한 위치에 대사라는 존재가 놓여 있는 셈이다.
세 명만 근무하는 공관도 있어
외무고시(지금은 국립외교원의 외교관후보자 과정)에 합격해서 직업외교관이 되고 난 후 30년 가까이 경력이 쌓이면 비로소 대사나 총영사와 같은 해외공관장으로 나갈 기회가 주어진다. 공관장의 임기가 보통 2년 반에서 3년 정도이니 60살에 정년퇴직할 때까지 많으면 두 번 정도 공관장을 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외교부는 정부부처 중에서도 진급이 가장 늦다. 차관회의 참석자를 보면 공무원 경력이 가장 오래된 사람은 언제나 외교부 차관일 정도다. 같은 해에 행정고시에 합격한 일반직 공무원은 벌써 몇 년 앞서 장관 자리를 마치고 나간 경우가 많다. 청와대에서 비서관을 마치고 나면 원래 소속 부처나 관련 부처의 차관으로 영전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외교부는 그보다 한 직급 아래인 차관보급으로 복귀해야 하기 때문에 다른 부처보다 진급이 한 박자 늦을 수밖에 없다.
이처럼 인사적체가 심한 탓에 해외공관장 자리가 160여개나 됨에도 정년퇴직 때까지 기껏해야 두 번 정도밖에는 공관장을 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돌아오지 않는다. 직업외교관 인력이 충분하지 않았던 예전에는 지금보다 공관장을 할 수 있는 기회가 훨씬 더 많았다. 정년까지 서너 차례 대사로 나가는 것은 보통이고 다섯 번 이상 공관장을 경험한 경우도 있었다. 1975년 12월부터 1980년 9월까지 4년 9개월 동안 외무장관을 지내서 장수 장관의 대명사로 꼽히는 박동진 전 장관의 경우에는 베트남, 브라질, 제네바, 유엔, 미국 등 대사로 재임한 기간만 해도 모두 합쳐서 17년이나 된다. 자리에 비해서 내보낼 만한 인력이 충분하지 않은 상황이었으니 대사로 근무하는 횟수와 기간이 늘어날 수밖에 없었고 ‘대사가 직업'이라는 우스갯소리까지 생겨났다. 정년까지 겨우 한두 번 대사를 해 보는 것이 직업외교관들의 소박한 희망인 지금과 비교해 보면, 그런 꿈같은 시절이 정말로 있었을까 싶다.
정년퇴직 때까지 2~3곳 공관장 거쳐
박동진 전 장관, 대사 경력만 17년
총영사는 아그레망·신임장 불필요
뉴욕·LA 등은 핵심 지역으로 분류
중국, 국장급은 이미 대사 두루 경험
일본은 공관장 경험 없는 간부 많아
현지공관보다 본부 역할 커지는 추세
윤병세, 공관장 경력 없이 장관 올라
외교부에서는 과장을 마치고 나서 국장이 되기 전에 처음으로 대사로 부임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이때는 당연히 아주 작은 공관의 대사로 나간다. 작은 공관이라고 하면 대사 이외에 참사관이나 서기관급의 실무담당자, 그리고 서기관급의 행정업무 담당자를 더하여 세 명으로 구성되는 것이 최소단위 규모이고, 때로는 이보다 더 적은 인원 규모의 공관도 있다. 직급이 올라갈수록 규모가 더 크고 업무가 중요한 공관의 대사를 맡게 되는데, 같은 대사라도 장차관급이 나가는 주요 공관은 정규 외교관만 해도 수십 명에 이르는 대형 공관이다. 군대로 치자면 대대장, 연대장, 사단장과 같이 지휘관의 직급에 차이가 나는 것과 마찬가지인데, 외교부는 큰 공관이든 작은 공관이든 공관장의 직책이 모두 ‘대사’이기 때문에 외부에서 볼 때 그 직급을 구별하기가 어렵다.
공관장이라고 하면 대사만이 아니다. 총영사도 있다. 총영사관은 대사관과는 달리 상대국의 중앙정부와 외교교섭을 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지 않다. 대사를 임명할 때는 상대국의 사전동의(아그레망)가 필요하고, 대사가 현지에 부임할 때는 대통령으로부터 받은 신임장을 지참해야 하지만, 총영사의 경우에는 아그레망이나 신임장이 필요하지 않다. 대통령이 임명장을 수여하는 간단한 절차만 있을 뿐이다.
총영사관의 주된 업무는 자국민의 보호와 영사업무, 그리고 상대국의 지방정부나 민간 차원의 교류와 경제통상 등이다. 외교의 가장 중요한 기능 가운데 하나인 상대국 정부와의 교섭 업무를 수행하지 않기 때문에 대사관에 비해서 한 단계 격이 낮다는 인상을 주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재외한국인의 규모가 크게 증가하고 민간 차원의 교류가 확대되면서 총영사관의 업무가 특별한 외교현안이 별로 없는 중소규모의 대사관보다 오히려 더 중요한 경우가 많다. 뉴욕, 로스앤젤레스, 상하이, 오사카와 같이 한인 사회의 규모가 크고 민간교류도 활발한 곳의 총영사는 예전부터 매우 중요한 핵심 공관장 보직으로 인정받아 왔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직업외교관 출신으로는 이례적으로 공관장 경력이 없이 장관 자리에 오른 인물이다. 지난 2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열린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의 외교부 국정감사에서 윤병세 장관이 질문에 답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세세한 내용까지 본부 지시 받아야
군대에서 야전지휘관을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은 진정한 군인이라고 하기 어렵듯이, 외교의 세계에서도 대사나 공관장을 해 보지 못한 사람은 진정한 외교관이라고 하기 어렵다. 특히 외교부 본부의 간부는 해외공관을 지휘하며 일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자신이 직접 해외공관을 책임지고 운영해본 경험을 갖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 해외에서 모국을 대표한다는 막중한 책임감을 직접 피부로 느껴본 경험은 본부의 간부라면 마땅히 갖추어야 할 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예전에 김성환 장관(2010년 10월~2013년 3월 재임)이 본부 국장은 공관장의 경험을 가진 사람으로 임명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던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인사적체로 인해 대부분 국장을 마치고 나서야 비로소 공관장으로 나갈 기회가 주어지던 당시의 상황에서는 전면적으로 실행하기 어려웠지만, 이제는 인사적체도 조금 해소되어서 공관장으로 나가는 연령이 젊어지기 시작했으니 본부 국장을 맡기 전에 한번쯤 공관장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하면 좋을 것이다.
중국 외교부의 경우에는 국장들이 이미 공관장을 지낸 경우가 많다. 중국은 1966년부터 10년간에 걸친 문화대혁명의 혼란기에 대학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고급인력의 공급에 공백이 생겼다. 따라서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젊은 나이에 관리직으로 발탁되는 일이 많았고, 외교부의 경우에도 국장급 간부가 한국에 비해 나이가 젊은데도 불구하고 이미 공관장의 경험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많은 것이다. 반대로 일본 외무성은 국장들이 공관장의 경험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가끔 총영사를 마치고 국장으로 들어오는 일이 있지만 어디까지나 예외적이다. 게다가 현직 국장이 차관보급인 외무심의관으로 바로 승진하고, 거기서 직업외교관의 최고위직인 사무차관으로 바로 올라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일본 외무성의 상층 지휘부는 공관장, 특히 대사의 경험이 아예 없는 인물들로 채워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외교업무에서 대사의 경험이 그렇게 중요하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일까? 해답은 시간이 흐를수록 해외공관장의 역할이 점점 줄어드는 반면, 본부의 중요성이 커진다는 데 있다. 교통과 통신 수단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에는 본부와 해외공관의 연락이 쉽지 않았기 때문에 외교교섭의 중요한 결정권을 현지에 나가 있는 대사에게 상당 부분 포괄적으로 맡길 수밖에 없었다. 대사의 정식 직함이 ‘특명전권대사'인 것은 국가원수로부터 특별히 임명되어 교섭에 관한 전권을 위임받았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전권을 위임받은 대사의 입장에서는 세부사항을 일일이 본부에 물어보지 않고 자신의 판단으로 결정할 권한이 있었던 것이다.
과학기술의 발달은 본국과 해외공관 사이의 실시간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해주었고 그 결과로 외교 현장의 풍속도를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해외공관은 본부로부터 외교교섭의 세세한 내용까지 전부 외교전문을 통해 지시받고 그 범위 내에서 움직여야 한다. 본부로부터 접수된 지침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 내용이 나왔을 경우에는 현지의 판단으로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대응 방향을 본부에 물어보고 나서 새로운 지침에 따라 처리해야 한다. 전문을 보낼 시간적 여유가 없다면 이메일이나 휴대전화로라도 물어봐야 한다. 물론 보안에 문제가 없다면 말이다. 말하자면 일일이 본부에 물어보고 대응하는 게 원칙이 되어버린 것이다.
오늘날은 중요한 외교정책의 결정에 대해서 해외에 나가 있는 대사가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경우를 점점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외교정책의 입안과 결정은 물론이고 그 교섭과 집행까지도 본부의 주도권이 더욱 강해지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장차관급으로 출세하는 외교관은 해외공관보다 본부에 근무한 기간이 상대적으로 더 긴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국장급 이상의 본부 간부 자리는 직급이 올라갈수록 점점 더 적어지기 때문에 본부의 핵심 간부로 승진하지 못하면 그만큼 해외공관에 더 오래 나가 있을 수밖에 없다. 거꾸로 본부에서 핵심 직위를 많이 경험할수록 해외공관에 근무하는 기간은 짧아진다. 최근에는 본부에서 차관보급 간부를 경험한 후 차관급 자리나 청와대 외교안보수석비서관을 거쳐 장관에 임명되는 패턴이 보통인데 이 경우에는 길게는 5년 가까이 계속 본부에서 일하게 된다. 앞서 소개했던 대로 일본 외무성의 지휘부에 대사 경험이 없는 사람이 대부분이라는 사실도 같은 맥락이다. 한국의 경우에는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직업외교관 출신으로는 이례적으로 공관장 경력이 없이 장관에 올랐고, 김규현 외교안보수석비서관도 공관장 경력이 없다.
CEO 스타일 공관장 시대
이렇게 본부의 역할이 중요해지고 해외공관의 비중이 줄어들면 공관장을 하는 보람은 어디서 찾을 수 있느냐는 의문이 들지도 모른다. 그러나 앞에서 이야기한 것은 어디까지나 외교정책을 기획하고 결정하는 분야에서 본부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는 뜻일 뿐이다. 아무리 시대가 변해도 외교관의 꽃이라고 하면 역시 대사다. 군인이라면 별을 달고 장군이 되어보고 싶듯이, 직업외교관이라면 대사가 되는 것이 꿈이다. 외교부 직원은 해외에 나가야 비로소 외교관인 것이지 국내에서는 다른 부처 공무원들과 똑같은 외교직 ‘공무원'일 뿐이다. 외국에 나가서는 공항의 입국 심사 때 일반인과는 다른 외교관 창구를 통과하지만, 일단 국내에 돌아오면 그런 특별대우는 없고 일반인들과 똑같이 입출국 수속을 밟아야 한다. 본부에서 중요한 외교정책을 직접 다루어 보는 보람은 그것대로 각별한 것이겠으나, 본부 근무 기간이 길다는 것은 본부에서 기획 업무 위주로 일한 대신에 해외에 주재하면서 모국을 대표하고 상대국과 교류하는 외교관 본연의 업무 경험은 그만큼 부족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보고서 작성이라든지 정책 입안 능력이 뛰어난 덕분에 본부에서는 출세했지만 막상 대사로 해외에 나가서는 소극적이고 비사교적인 성격 때문에 그다지 성공적인 활동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반대로 본부에서는 별로 빛을 보지 못했지만 공관장이 되고 나서는 활달하고 적극적인 성격을 살려서 좋은 활약을 보여주는 사람이 있다. 요즈음은 현지에서 상대국 국민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공공외교가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기 때문에 이런 자질을 갖춘 공관장들이 얼마든지 더 큰 역할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존재한다. 관료나 참모 스타일보다는 기업의 시이오(CEO) 스타일이 공관장에는 더 어울리는 시대인 것이다.
▶조세영 동서대학교 특임교수 겸 일본연구센터 소장. 외교부에서 30년 근무한 뒤 정년보다 8년 일찍 퇴직해서 실천적 문필가를 꿈꾸며 살고 있다. 일본, 중국, 예멘,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일했고 동북아시아국장을 지냈다. 저서로 <봉인을 떼려 하는가: 미일동맹을 중심으로 본 일본의 헌법개정 문제>와 <한일관계 50년, 갈등과 협력의 발자취>가 있다. 거창한 외교론이 아니라, 외교라는 일을 쉬운 이야기로 풀어보려는 생각에 연재를 시작했다. 격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