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담이나 교섭 등 외교 현장에서는 모든 발언들을 서로 기록한다. 그러나 때로는 교섭 상대방이 자신의 말을 “기록하지 말라”고 요구해서 모든 기록을 중단한 채 협상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협상 물꼬를 트기 위한 외교적인 행위의 하나이다. 사진은 중국 어선의 불법 조업과 사드 등 한-중 간의 현안을 논의하기 위해 지난달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도렴동 외교부 청사에서 열린 한-중 고위급 인사 업무 협의 모습이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지금부터 하는 말은 기록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테이블을 마주하고 앉은 상대측 수석대표가 불쑥 꺼낸 한마디에 우리 측 대표단의 귀가 쫑긋해졌다. 우리 측 수석대표의 좌우에 앉아 열심히 상대방의 발언 내용을 받아 적던 실무자들의 손이 노트 위에서 멈추었다. ‘어떻게 할까요?’ 하는 눈길로 바라보는 실무자들에게 우리 측 수석대표가 짧게 고개를 끄덕이자 실무자들은 손에 쥐고 있던 펜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우리 측이 메모를 중단한 것을 확인한 상대측 수석대표가 자기 쪽 실무자들에게도 ‘지금부터는 우리도 기록을 하지 마세요’라고 말했다. 양측 대표단이 모두 펜을 내려놓았다. 회의장의 시선이 일제히 상대측 수석대표에게 쏠렸다. 굳이 기록을 하지 말라고 하면서 대체 무슨 이야기를 꺼내려는 걸까.
외교에서 기록은 생명과도 같다. 영어로 외교를 뜻하는 diplomacy라는 단어가 공문서나 졸업증서를 의미하는 diploma에서 유래되었다는 사실을 보더라도 외교에서 기록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외교관이 된 뒤 처음으로 받는 훈련이 바로 상대방과의 대화 내용을 기록으로 정리하는 것이다. 초년병 시절에는 자기가 직접 외국의 외교관과 교섭할 일은 별로 없다. 선배나 상사가 외빈과 면담할 때 옆자리에 앉아서 대화 내용을 받아 적거나, 회담장에서 말석에 앉아 양측의 발언을 기록하는 일을 맡는 것이 보통이다.
발언 내용 빠뜨리지 않고 적어야
첫째 원칙은 최대한 빼먹지 않고 발언 내용을 다 적는 것이다. 마치 속기사가 된 듯이 신경을 집중해서 빠른 속도로 적어 내려간다. 전문적인 속기사가 아닌 이상 손으로 적는 것이 말하는 속도를 따라갈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도 기를 쓰고 받아 적어야 한다. 통역을 사용하는 대화라면 사정이 조금 나아진다. 한쪽의 발언이 끝나고 나서 통역이 진행되는 사이에 미처 다 받아 적지 못한 내용을 마저 메모할 짬이 생기기 때문이다. 기록자가 양쪽 언어를 다 이해하는 경우라면 더욱 여유가 생긴다. 똑같은 내용을 두 번 반복해 들으면서 꼼꼼히 기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메모한 내용을 가지고 정식 회담기록이나 면담기록을 만든다. 이 기록은 인사말까지 포함하여 모든 대화를 다 정리한 것이므로 분량이 많아지지만 정확한 발언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매우 중요한 자료다. 이와는 별도로 회담이나 면담이 끝난 뒤 결과 보고서 작성을 위해서는 핵심요지를 중심으로 간략하게 요약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길고 상세한 발언 가운데 어떤 부분이 중요한지 골라내려면 관련 내용을 숙지하고 있어야 하고 오랜 경험과 요령도 필요하다. 초년병 시절에는 중요한 내용을 빼먹기도 하고 요약하는 기술도 서툴기 마련이다. 미흡한 부분은 결재를 받는 과정에서 상사들의 첨삭 수정을 통해서 보완되면서 보고서의 완성도가 높아지게 된다.
이처럼 기록을 중시하는 외교 현장에서 일부러 ‘기록을 하지 말아 달라’고 조건을 다는 것은 왜일까? 자기가 발언한 내용의 한마디 한마디가 모두 기록으로 남겨지고 30년이 지난 뒤에는 일반대중에게까지 공개된다고 생각하면 아무래도 발언을 하는 데 신경이 쓰이게 된다. 철두철미하게 자국 입장에 충실한 내용만 말하게 되고 조금이라도 유연성을 보이는 발언을 하기는 어렵다. 자국의 기존 입장으로부터 양보하는 듯한 발언을 한 것이 기록에 남게 되면 나중에 난처하게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상대방이 받아들이든 말든 기존 입장대로만 발언을 하게 되는 것이다. 교섭은 진전되기 어렵겠지만 최소한 자기의 책임 문제가 불거질 위험은 없다.
양측 입장이 평행선을 달리는 상황에서 협상의 물꼬를 트려면 어느 쪽이든 한쪽에서 먼저 유연한 자세를 보여야 한다. 양쪽 모두 곧이곧대로 기본입장만을 앵무새처럼 반복해서는 교섭이 타결될 수 없다. 뭔가 타결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서 큰맘 먹고 유연한 자세를 보이고 싶은데 그러한 발언 내용이 기록으로 남는 게 부담스러울 때, ‘기록에 남기지 말아 달라’고 전제하고 나서 본론을 꺼내는 방법을 사용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기록하지 말아 달라고 했더라도 실제로 기록을 하지 않는 경우는 없다. 현장에서는 상대방의 부탁도 있고 하니 기록을 하지는 않지만, 발언 내용을 외우거나 눈에 띄지 않게 요점만이라도 메모해 둔다. 상대측에 보이지 않게 테이블 밑에서 메모하기도 하고, 회담 자료를 뒤적이는 척하면서 조금씩 키워드만 적어놓기도 하는 등 여러 가지 방법이 사용된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 둔 메모를 가지고 나중에 상세한 회담기록으로 정리한다. 심지어는 상대방이 기록을 하지 말아 달라고 전제하고 말한 것이라는 설명까지 덧붙여 두기도 한다.
양쪽 입장이 평행선 달릴 때
협상물꼬 위해 유연해야 하나
‘기존 입장’ 양보에 부담 가중
이때 기록배제로 ‘솔직 대화’
눈앞에선 받아적지 않더라도
테이블 밑으로 키워드 메모
결국 상세한 회담기록 작성
서로 알고 넘기는 ‘비기록’ 관행
‘기록을 하지 말아 달라’고 말을 꺼낸 사람도 자신의 발언이 모두 기록으로 남을 것임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기록하지 말아 달라고 말하는 것은 ‘지금부터 꺼내는 이야기는 기록에 남으면 내가 곤란해질 수 있을 정도로 솔직한 이야기라는 점을 알아 달라’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더 이상 평행선을 달리는 이야기만 반복하지 말고 서로 한번 터놓고 솔직하게 이야기해 보자는 제스처라고 할 수 있다. 내가 어느 정도 위험을 감수하면서 솔직하고 유연하게 이야기해볼 테니 당신도 한번 솔직하게 이야기해 달라, 그렇게 해서 이 문제의 실마리를 풀어보자는 뜻인 셈이다.
닉슨의 “잊어버리라”는 말까지 남겨
1972년 1월7일 미-일 정상회담 자리에서 닉슨 대통령은 1970년 3월 발효된 핵확산금지조약(NPT)에 일본이 가입하는 문제와 관련하여 사토 총리에게 “(일본 국회의) 비준작업에 시간이 더 걸려도 상관없다. 잠재적인 적국에 걱정거리를 안겨주는 편이 좋다”고 말했다. 일본이 조속히 핵확산금지조약을 비준해주기 바란다는 말이 나올 것으로 예상했는데 오히려 시간이 더 걸려도 상관없다고 하니 뜻밖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의 패전국임에도 세계적인 과학기술 수준을 가지고 있는 일본은 언제라도 마음만 먹으면 핵무장을 할 수 있는 충분한 잠재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런 일본이 하루속히 핵확산금지조약에 가입하여 독자적인 핵무장을 포기하는 자세를 분명히 보여주는 것이 세계적인 핵확산금지 체제를 확립하려는 미국의 이익에도 부합하는 방향이었다.
2015년 9월7일 오전 판문점 남측 평화의 집에서 열린 추석 계기 이산가족 상봉을 논의하기 위한 적십자 실무접촉에서 이덕행 대한적십자사 실행위원(오른쪽 둘째)과 박용일 조선적십자회 중앙위원(왼쪽 둘째)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그럼에도 미국이 일본에 핵확산금지조약 비준을 서둘지 말라고 하면서 모순되는 태도를 보인 이유는 무엇일까? 일본이 핵무장을 하게 되면 중국이나 소련을 비롯한 주변국들이 가장 긴장할 수밖에 없다. 일본이 굳이 서둘러 핵무장을 않겠다는 자세를 보이기보다는, 핵무장의 가능성을 남겨둠으로써 중국이나 소련이 긴장을 늦추지 못하도록 하는 편이 미국에 더 유리하다고 본 것이다. 당시 닉슨 대통령은 불과 1개월 뒤에 역사적인 중국 방문을 앞두고 있었기 때문에 대중국 외교에서 유리한 입지를 확보하려는 속셈도 있었다. 그래서 사토 총리에게 ‘잠재적인 적국에 걱정거리를 안겨주는 편이 좋다’는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이러한 의도를 솔직하게 밝혔던 것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미사여구와는 무관하게 실제로는 냉철한 국익 계산에 따라서 움직이는 강대국 외교의 실상과 국제정치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준 셈이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핵확산금지조약의 가입국을 늘려서 하루속히 핵확산금지 체제를 확립하려고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일본의 조약 비준을 늦추려는 이중적인 자세를 보이는 것이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멋쩍었는지, 닉슨 대통령은 “그런데 지금 한 이야기는 잊어버려 달라”고 한마디 덧붙이는 것을 잊지 않았다. 아무리 상대방이 잊어버려 달라고 했더라도 정상회담 자리에서 나온 말을 그냥 한쪽 귀로 듣고 흘려버릴 수는 없는 일이다. 일본 측 대표단은 닉슨 대통령의 발언을 ‘지금 한 이야기는 잊어버려 달라’고 한 부분까지 포함해서 모두 기록으로 남겼고, 최근의 외교문서 공개에 따라 이러한 내용이 언론에도 보도되었다.
때로는 ‘이 이야기는 전적으로 나의 개인적인 아이디어일 뿐이며 아직 정부 내에서 정식으로 논의되지 않은 것’이라고 하면서 유연한 제안을 내놓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만에 하나 이 이야기가 외부로 흘러나가서 기자들이 질문을 해 온다면 그때는 그런 제안을 한 적이 없다고 부인할 것이라는 말까지 덧붙이기도 한다. 이때도 개인적인 아이디어라고 말은 하지만 실제로는 이미 어느 정도 내부적으로 검토가 끝난 제안일 경우가 많다. 아무리 비공식적인 자리라고 해도 최소한의 검토조차 되지 않은 아이디어를 불쑥 상대국에 제안하는 일은 없는 법이다. 국내의 반대를 무릅쓰고 융통성을 발휘하여 어렵게 만들어낸 제안인데 만일 상대측에서 이를 수용하지 않으면 국내의 반대파들로부터 공격만 받게 된다. 자칫 언론에 이러한 유연한 제안을 했다는 사실이 보도되기라도 하면 국내 여론으로부터 뭇매를 맞을 위험도 있다. 이럴 경우에 조심스럽게 상대방의 반응만 먼저 타진해 보기 위해 ‘개인적인 차원의 아이디어’라고 하면서 운을 떼는 것이다.
기록을 하지 말라든지, 잊어버려 달라든지, 전적으로 개인적인 아이디어라든지, 또는 이 이야기는 없었던 것으로 하자든지 하는 말들은 모두 외교 교섭에서 보다 솔직한 소통을 해보기 위해서 동원하는 다양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자칫 모든 것을 기록으로 남기고 투명하게 공개한다는 원칙에 어긋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지적이 나올 수도 있다.
외교현장의 재량권 허용돼야
한때는 외교 무대에서 강대국들 사이에 음흉한 거래가 난무하던 비밀외교의 시대가 있었다. 한국에 대한 일본의 지배를 미국이 승인한 것으로 악명 높은 1905년 7월의 가쓰라-태프트 밀약이 대표적이다. 러일전쟁에서 일본의 승리가 굳어지고 있던 시점에 만들어진 이 밀약에서 일본은 미국의 필리핀 점령에 도전하지 않을 것을 약속했고, 미국은 일본이 한국에 대한 보호권을 갖는 것이 동아시아의 안정에 기여한다면서 4개월 뒤의 을사늑약 체결을 사실상 지지하는 입장을 밝혔던 것이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비밀외교의 폐해에 대한 반성이 대두되었고 국제연맹 규약에서는 드디어 공개외교의 원칙이 채택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공개외교란 국가 간에 체결된 모든 조약과 협정의 내용을 공개하라는 것이지 그 교섭의 과정까지 모두 공개하라는 의미는 아니다. 국제연맹 규약이 포함되어 있는 베르사유 강화조약 자체도 조약의 내용은 모두 공개되었지만 그 교섭 과정은 역사상 유례없이 철저하게 비밀이 유지되었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베일에 가려 있었다.
소시지 만드는 과정과 법안을 통과시키는 과정은 보지 않는 편이 낫다는 말이 있다. 정치의 이면에는 수많은 타협과 거래가 뒤따르기 때문이다. 오늘날엔 외교 교섭의 결과가 공개되는 것은 물론이고 교섭 과정도 일정 부분 공개되어야 마땅하겠지만, 외교 교섭의 현장에서 외교관들이 유연성을 발휘하여 타협을 이끌어낼 수 있을 정도의 재량은 허용될 필요가 있다. 상호 양보와 타협이 곧 정치와 외교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조세영 동서대학교 특임교수 겸 일본연구센터 소장. 외교부에서 30년 근무한 뒤 정년보다 8년 일찍 퇴직해서 실천적 문필가를 꿈꾸며 살고 있다. 일본, 중국, 예멘,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일했고 동북아시아국장을 지냈다. 저서로 <봉인을 떼려 하는가: 미일동맹을 중심으로 본 일본의 헌법개정 문제>와 <한일관계 50년, 갈등과 협력의 발자취>가 있다. 거창한 외교론이 아니라, 외교라는 일을 쉬운 이야기로 풀어보려는 생각에 연재를 시작했다. 격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