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20일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서해 위성 발사장을 찾아 정지위성 운반 로켓용 대출력 발동기(엔진) 분출 시험 장면을 지켜봤다며 <노동신문>이 공개한 사진. 연합뉴스
이제훈 통일외교팀장 nomad@hani.co.kr
북한의 5차 핵실험(9월9일)에 대응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가 ‘결의 2321호’를 채택(11월30일)한 지 10일로 열흘째다. 북한이 가만히 있을 리 없다. 북한은 2일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내어 안보리 결의는 “주권 침해 행위”라며 “강력 규탄, 전면 배격”한다고 맞받았다. 그러고는 “우리의 보다 강력한 자위적 대응 조치를 불러오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북한은 정말로 ‘결의 2321호’에 맞서 ‘말대포’를 넘어 ‘군사 행동’에 나설까?
앞서 북한은 유엔이 4차 핵실험(1월6일)에 대응해 ‘결의 2270호’를 채택한 3월3일 방사포 6발을 쏜 데 이어 스커드미사일(3월10일)→노동미사일(3월18일)→무수단미사일(4월15일)→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4월23일) 등 군사 행동의 강도를 빠르게 높였다.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은 “핵탄두를 임의의 시간에 쏴 버릴 수 있게 항시적으로 준비해야 한다”(3월4일 <노동신문>)고 했고, 결국 5차 핵실험까지 치달았다.
이번엔 어떨까? 전문가를 자임하는 이들과 한국·미국·일본 정부는, 북한이 미국의 정권 교체기에 ‘군사적 대응 행동’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예컨대 토머스 밴들 주한미8군사령관은 6일 “북한이 30~60일 안에 도발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많은 이들이 ‘미 정권 교체기 북한의 군사 도발’을 ‘상수’처럼 여기지만, 이는 역사적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다.
2000년 이후만 보자. 2001년 조지 부시 행정부 출범 때 북한은 ‘도발’하지 않고 기다렸다. 부시 행정부는 네오콘을 앞세워 강경한 대북정책을 예고했으나, 사상 첫 남북정상회담(2000년 6월)과 미국 대통령 방북 추진(2000년 10월) 등 남북 및 북-미 관계가 ‘해빙’되던 때 출범했다. 북쪽으로선 ‘군사적 선제 행동’의 필요성이 높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반면 2009년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체코 프라하에서 ‘핵 없는 세계’라는 원대한 비전을 제시한 날(4월5일), 북한은 장거리 로켓을 쏴 재를 뿌렸고 5월25일엔 2차 핵실험까지 내달렸다. 북한은 왜, ‘적성국’과도 대화하겠다며 오바마가 내민 손을 잡기는커녕 뺨을 때리는 무리수를 뒀을까?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뇌졸중으로 쓰러져 3남 김정은으로 ‘3세 권력 승계’가 이뤄지던 때였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경험 없는 3세 최고지도자 김정은의 강인함을 인민들한테 과시하며 리더십의 기반을 다지는 게 급선무였던 셈이다. 국내정치적 필요가 외교정책을 압도하는 건, 북한만의 특수성은 아니다. 동서고금의 역사에서 흔한 일이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출범을 앞둔 이번엔 어떨까? 김정은 위원장이 핵실험이나 장거리 미사일 발사 시험을 해야 할 급박한 국내정치적 필요는 눈에 띄지 않는다. 그렇다면 정세 판단이 중요할 터. 북한을 오래 겪어본 전직 고위 인사는 이렇게 짚었다. “트럼프의 첫 대북 메시지가 중요하다. 김정은은 그때까지는 전략적 행동에 나서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미 대선 직후인 11월17~19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미 전직 인사들과 접촉한 최선희 북한 외무성 미국국장도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리뷰가 끝날 때까지는 조-미 관계의 문을 닫을 행동은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다만 최 국장은 “내년 2월 한-미 군사훈련은 예외”라고 단서를 달았다. <노동신문> 등 북한 매체 또한 아직껏 ‘도널드 트럼프’를 입에 올리지 않고 있다.
트럼프 당선자가 어떤 대북 메시지를 내놓을지 가늠하기 어렵다. 그는 선거 기간에 김정은 위원장을 “미치광이”라고 비난하기도 했고, “햄버거를 먹으며 대화할 수 있다”고도 했다. 다만, 대외정책 분야에서 그의 최우선 관심사는 이슬람국가(ISIS) 등 급진 이슬람주의 세력 대응 전략이지 대북 정책이 아니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트럼프 당선자는 언제 어떤 대북 메시지를 내놓을까? 북한은 정말로 그때까지 ‘군사 행동’ 없이 기다릴까? 국회의 대통령 탄핵소추 가결로, 북한 자극에만 열을 올리던 박근혜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된 게 그나마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