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이 2일 헬기로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가 배치된 경북 성주군 초전면 옛 성주골프장으로 유류를 수송하고 있다. 미군은 이틀 전 유조차 2대를 성주골프장으로 반입하려다 주민들이 막아 실패했다. 성주/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예측불능 돌출 발언이 이어지면서 한국 외교·안보의 중심축으로 작용했던 한-미 동맹에도 적잖은 파장이 일고 있다. 이런 ‘트럼프식 정치’가 단타로 그치지 않을 가능성이 있는데다 언제든 정책화할 수 있어 ‘트럼프 리스크’라는 말까지 나온다. ‘트럼프 리스크’는 당장 일주일 뒤면 차기 정부가 직면해야 할 현실이다. 자칫 ‘리스크 관리’ 차원에 그치지 않고 한-미 동맹을 근본적으로 재조정해야 하는 상황이 닥칠 수도 있다. 차기 정부는 한-미 관계를 어떻게 풀어가야 할까? <한겨레>는 2일 전문가들에게 긴급 진단을 요청했다.
‘트럼프 리스크’가 단적으로 드러난 것은 지난달 27일(현지시각) 트럼프 대통령이 <로이터> 통신 인터뷰에서 한국에 ‘사드 1조원 청구서’와 함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폐기 또는 재협상을 요구하면서다. 이어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허버트 맥매스터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국방부와 청와대·외교부가 각각 입장을 밝히면서 동맹 간 진실공방 양상을 띠었다. 이 과정에서 확인된 것은 확연한 양국의 인식차였다.
문정인 연세대 명예특임교수는 “미국은 지금 사드 배치는 한국 방어를 위해서 하는 것이고 미국이 한국을 지켜주는 것이기 때문에 그 값을 치르라고 말하는 것인데, 이건 사실상 ‘용병’ 개념하고 다를 게 없다”고 말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내놓은 ‘사드 비용 청구서’에는 한-미 관계가 기존 이른바 ‘혈맹’ 관계에서, ‘필요한 보호를 제공하고 비용을 받는’ 관계로 탈바꿈하려는 인식을 바탕에 깔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문 교수는 “국민 전체가 한-미 동맹의 성격을 원천적으로 다시 생각해봐야 할 문제임이 드러났다”며 “한-미 동맹이 우리를 위한 동맹인지 미국의 전략적 이익을 위한 동맹인지 검토가 있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에서 외교통상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을 지낸 위성락 전 러시아 대사도 “동맹의 여러 이슈를 놓고 총체적으로 분절하지 않고 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위 전 대사는 트럼프 행정부를 상대로 한 대미 외교 방향에 대해 “상대가 예측불가하고 자꾸 입장을 바꾸기 때문에 우리가 즉자적인 반응을 하기보다는 상대의 흐름을 총체적으로 파악해서 대처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 정부가 자꾸 ‘사드 비용 원래 합의대로 한다’며 우리가 생각하는 방향으로 피해가는데, 상대가 이미 그 합의를 바꾸겠다는 상황이기 때문에 여러 가능성을 열어두고 어떻게 대응할까 연구할 문제”라며 현 정부의 대응을 비판하기도 했다.
북핵·북한 문제도 차기 정부 앞에 놓인 ‘트럼프 리스크’의 일부다. 지난 4월 ‘한반도 위기설’은 ‘칼빈슨함 파견’에서 비롯된 트럼프발 위기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대북 강경 발언을 이어가던 트럼프 대통령은 1일(현지시각) <블룸버그> 통신과의 인터뷰에서는 ‘적절한 상황이 되면’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과 만날 용의가 있다는 ‘깜짝 발언’을 했다.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차기 정부가 한-미 관계의 중심적인 문제를 무엇으로 둘 것인가 프레임을 잘 짜는 게 중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 대표는 “<블룸버그> 인터뷰처럼 미국의 현직 대통령이 북-미 정상회담에 강한 의지를 표명한 것은 처음인 것으로 보인다”며 “트럼프의 최우선 관심사가 북핵으로 보여 우리한테는 굉장히 중요한 기회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사드 문제의 경우 트럼프 행정부에 협의를 통해서 여러 문제 제기를 한 뒤 시간을 가지고 재검토를 해보자고 유보를 하고, 트럼프가 말한 ‘대화 조건’을 만들기 위해 한국 정부도 노력을 다하겠다며 적극 지지를 표명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정 대표는 “한-미 관계의 접점을 북핵 공조로 맞추는 게 좋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위 전 대사도 트럼프 행정부가 “(북한과) 협상할 가능성을 항상 열어놓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북한의 도발 때문에 압박을 강화하고 있으나 모든 것은 대화를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동시에 “북한도 도발을 하고 있지만 북한식으로 협상을 겨냥하고 있는 것이고 트럼프는 트럼프식으로 협상의 길을 찾고 있다. 접점이 있을 수 있다”며 차기 정부가 대응할 준비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한·미 간 일련의 사건들이 박근혜 대통령 탄핵에서 비롯된 ‘코리아 패싱’의 일환이기 때문에 차기 정부가 이른 시일 내에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야 한다거나 트럼프의 귀를 잡을 수 있는 ‘비선 채널’ 확보가 시급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조세영 동서대 일본연구센터 소장은 “미국과의 접촉을 서두르기보다는 새 정부가 한-미 관계를 포함해 대외전략의 기본 로드맵을 마련한 다음, 그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조 소장은 “예를 들어 사드 배치를 재검토하려면 북한에 대한 억지력은 어떻게 할 것인지, 자체적으로 대안을 마련하려면 국방개혁까지 이어지는 국방 재원 조달의 문제가 생길 수 있는데 이는 증세로 해결할 것인지 다른 의제를 조금 미루고 그 재원을 끌어 쓸 것인지 등 고려할 필요가 있다”며 “대북 억지력을 위해 일본과 안보 협력을 검토해야 하는 건 아닌지, 그렇다면 소녀상 문제는 어떻게 할 것인지 등등 종합적인 청사진이 나와야 대응을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지은 기자
mira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