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이 8월23일 청와대 춘추관 브리핑룸에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종료 결정과 관련한 브리핑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요즘 한국 외교에서 ‘화제의 인물’은 단연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이다.
9월16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정진석 자유한국당 의원이 “두 사람(김현종 차장과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언쟁을 벌이다 말미엔 영어로 싸웠다던데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라고 질문을 던졌고 “부인하지 않겠습니다”라는 강경화 장관의 답변이 나오면서, 김 차장은 단번에 무대의 중심에 서게 됐다.
지난 4월 문재인 대통령의 중앙아시아 순방 당시, 외교부 직원이 작성한 보고서를 김 차장이 질책하다가 강경화 장관과 영어로 언쟁을 벌였다는 ‘사건’은 당시 외교가에서 꽤 유명한 ‘소문’이었지만 주요한 뉴스가 되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후 일본의 보복성 수출 규제에 한국이 강하게 대응하고 특히 미국의 만류에도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을 연장하지 않기로 결정하면서, 김현종 차장이 대미·대일 강경 외교의 핵심으로 지목됐다.
8월30일 <조선일보>는 “문재인 정부의 핵심 외교·안보 라인을 ‘자주파’가 장악해 70년 한-미 동맹을 흔들고 있다”면서, 김현종 차장이 “자주파 야전 사령관”으로 “지소미아 파기 결정 등 대미·대일 강경 정책을 주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9월16일 정진석 의원이 5개월 전 중앙아시아 순방 당시의 ‘말다툼’을 국회에서 끄집어냈고, 다음날 보수 언론들이 일제히 ‘김현종 때리기’에 나섰다. ‘김현종 대 강경화의 갈등’ ‘청와대와 외교부의 주도권 다툼’ 등으로 외교·안보 위기가 악화하고 있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김 차장은 9월18일 트위터에 ‘부덕의 소치’라는 취지의 글을 올려 진화에 나섰다.
이어 10월4일 <조선일보> 1면 기사와 이날 주유엔대표부 국정감사에서 정진석 의원의 질의로, ‘외교관을 무릎 꿇린 김현종’ 논란이 벌어졌다. 김 차장이 9월 유엔총회 당시 의전 실수를 한 외교관을 질책했다는 것인데, 당사자는 김 차장이 무릎을 꿇으라고 요구한 것이 아니라 사과의 의미로 스스로 무릎을 꿇었다고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청와대 트러블 메이커” 김현종 차장을 경질하라면서, “(김 차장이) 소위 자주파의 입장을 대변하면서 무책임한 반일 정책을 견인하는 한편, 지소미아 파기 등으로 안보 포기까지 조장했다”고 주장했다.
<조선일보>와 정진석 의원이 ‘김현종 스캔들’을 폭로하고 다른 보수 언론과 정치인들이 이를 ‘외교 위기론’으로 증폭시키는 패턴이 반복되고 있다. 하지만 국가안보실과 외교당국의 ‘이견’과 ‘갈등’은 다른 나라에서도 벌어진다. 얼마전 ‘해고’된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불화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카터 대통령 시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었던 즈비그뉴 브레진스키와 사이러스 밴스 국무장관은 대소련 정책부터 대중국, 아프리카, 이란 이슬람혁명과 미국 대사관 인질사건 대처 등을 두고 사사건건 대립했다.
마찬가지로 청와대와 외교부 사이에 긴장과 이견은 분명 존재한다. 청와대가 외교부를 신뢰하지 못해 모든 사안을 직접 챙기려 한다는 불만의 공기는 외교부 안을 감돌고 있다. 청와대가 기존 외교관들의 성향에 비판적일지라도, 함께 일할 수 있는 좀 더 많은 외교관을 발굴하고 포용해 정책을 더욱 효율적으로 추진해야 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김현종 대 강경화의 영어 말싸움’ 같은 선정적 소재를 부풀려 ‘문재인 정부 외교 위기론’을 과장하는 것은, 정치적 의도를 품은 공격의 혐의가 짙다.
김 차장은 노무현 정부에서 ‘혜성처럼 등장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주도해 성과를 냈다. 하지만 통상·법률 전문가인 그가 존재감이 부쩍 줄어든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을 대신해 사실상의 외교 사령탑 역할을 하고 있는 현 상황에 대한 의구심은 남아 있다. 지소미아 종료 결정 직후 김 차장은 “한-미 동맹을 한단계 업그레이드시킬 수 있는 계기”라며 첨단무기 도입 등 자주 국방력 강화로 미국이 희망하는 동맹의 기여를 늘리겠다고 말했다. 미국이 50억달러(약 6조원)로 대폭 증액을 요구하는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협상에 대해서도 미국산 첨단무기 대량 구매 등의 ‘기여’를 내세워 설득할 수 있다는 ‘통상 협상식’ 구상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라는 한국 외교의 핵심 과제를 그가 어떻게 풀어가고 있는지도 불분명하다.
김 차장의 강하고 직설적인 발언과 태도는 공격의 표적이 되곤 한다. 함께 일해본 사람들의 그에 대한 평가는 “유능하고 공부를 많이 한다” “추진력과 돌파력이 있다”부터 “독설적이다” “직원들을 너무 몰아붙인다” “성격이 괴팍하다” 등으로 엇갈린다. 하지만 그에 대한 평가는, 트럼프 대통령의 ‘결단’에 의존하던 전략이 한계에 부딪힌 북-미 협상과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비롯해, 미-중 무역·패권 전쟁, 트럼프 대통령 탄핵 정국을 둘러싼 불확실성 등으로 전세계 지정학의 판이 요동치는 전환점에서 그가 얼마나 미래지향적인 목표와 정교한 전략을 마련해 실행하고 있느냐는 질문에서 출발해야 한다.
박민희 통일외교팀장 minggu@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