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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외교

‘보고 싶은 것만 보는’ 해리스 미국대사의 편견과 무례

등록 2019-11-20 15:35수정 2019-11-21 14:21

[현장 칼럼]
해리 해리스 주한미국대사가 10월29일 오전 강경화 외교부 장관을 만나 한미간 대북 공조 방안을 조율하기 위해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로 들어가고 있다. 공동취재단
해리 해리스 주한미국대사가 10월29일 오전 강경화 외교부 장관을 만나 한미간 대북 공조 방안을 조율하기 위해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로 들어가고 있다. 공동취재단

국가를 대표해 파견되는 외교사절인 특명전권대사(대사)는 두 나라를 잇는 가교다. ‘외교의 꽃’이다. 같음은 취하고 다름은 일단 인정해 놔두는 ‘구동존이’(求同存異)가 직업적 화두다. 자기 나라엔 주재국의 여론·상황을 애정을 담아 가감 없이 보고하고, 주재국에 뭔가를 바랄 땐 배려와 외교적 수사로 전한다. 균형감·세련미·배려·절제에 안받침된 언행은 대사의 영혼이다. 그런데 해리 해리스 미국대사는 대사가 뭐하는 직업인지 취임 17개월이 지난 지금도 모르는 듯하다. 언행에 오만과 무례와 편견과 무지의 그늘이 짙다.

해리스 대사는 “(일본의) 수출규제나 화이트리스트 배제와 관련해 핵심 쟁점은 한-일의 과거사 문제다. 이게 경제 문제로 확대됐다. 큰 차이가 있다면 한국이 이 문제를 다시 안보의 영역으로 확대했다는 것이다. 한국에 실망했다”고 말했다. 19일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지소미아(GSOMIA·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가 (23일 0시에) 종료되지 않기를 강력히 바란다”며 한 말이다. 미국 정부의 방침이 ‘지소미아 지지’이니 “실망”할 수 있다.

그런데 ‘실망’의 논거가 틀렸다. “문제를 안보 영역으로 확대”한 주체는 한국 정부가 아니라 일본 정부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수출규제 조처가 “안전보장과 관련된 무역 관리를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7월21일 참의원 선거 직후 기자회견에서다. “안보”를 먼저 문제 삼은 건 아베 총리다. 역사가 길다. 2012년 재집권한 그는 <방위백서>의 한국 관련 항목에서 “가치 공유”(2015년)→“이익 공유”(2018년)→“미래 지향”(2019년) 표현을 차례로 삭제했다. 한국은 일본의 살가운 동지에서 건조한 거래 상대를 거쳐 이제는 함께 미래를 논할 수도 없는 타자로 격하됐다. 해리스 대사의 주장은 무지가 아니라면 ‘보고 싶은 것만 보는’ 편견의 다른 표현이다.

이제훈 기자
이제훈 기자

해리스 대사는 7일 이혜훈 국회 정보위원장을 관저로 초청했다. 초청 이유는 미리 밝히지 않았다. 이혜훈 위원장은 “위원장 취임 11개월 만의 첫 인사 자리”라 여겨 “‘세이 헬로’(안녕) 하는 줄 알고 가벼운 마음으로” 갔다. 대사는 오찬, 만찬도 아닌 오후 2시부터 30분 남짓 이어진 차담에서 “‘만나서 반갑습니다’라고 인사하고 자리에 앉자마자 (방위비분담금으로 한국이) ‘파이브 빌리언’(50억달러·6조원)(을 내라는) 얘기”를 줄기차게 했다. 이 위원장은 “세어보진 않았지만 느낌엔 스무번 남짓”이라 전했다. 이 위원장이 다른 주제로 넘어가려 하면 해리스 대사는 다시 “파이브 빌리언”을 입에 올렸다. 이 위원장은 “당황하고 놀랐다”며 “수십년간 많은 대사를 봤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했다. 미국대사는 대한민국 국회 정보위원장한테 오만하고 무례하게 굴었다.

해리스 대사는 외교가에서 악명이 높다. “생각을 날것으로 드러내고 말을 참 못되게 한다”거나 “얘기를 하다 보면 ‘이 사람 혐한론자인가’ 싶다”거나 “총독처럼 군다” 따위의 혹평이 기자한테까지 전해져온다.

그런데 미국대사는 한국의 유일 동맹인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대리인이다. 적대관계와 핵문제로 뒤엉킨 북-미를 이끌고 항구적 평화로 가는 ‘냉전의 협곡’을 돌파하자면 ‘최악의 미국대사’를 제어할 한국 민주주의의 힘이 필요하다. 정부와 국회의 지혜와 함께, 시민사회의 목소리가 절실한 때다.

이제훈 선임기자 nom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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