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성락 전 주러시아 대사가 23일 오후 한겨레신문사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위성락 전 주러시아 대사는 1979년부터 2015년까지 36년 동안 북핵과 4강 외교의 주요 현장을 지켰다. 젊은 시절에는 소련과의 수교 실무를 맡았고, 2002년 10월 북한의 우라늄 농축 의혹으로 시작된 ‘2차 북핵 위기’에선 외교부 북미국장으로 대응을 주도했다. 2009년부터는 북핵 6자회담 수석대표인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으로 두차례 남북 비핵화 회담을 이끌어 2012년 북-미 ‘2.29 합의’에 기여했다. 외교가에선 그를 ‘최고의 외교 전략가’라고 부른다.
‘전략가’의 뒤에는 자료를 치밀하게 분석하는 성실함과 냉철한 판단이 있다. 외교관 시절, 매일 아침 ‘정보를 다 살펴보기 전에는 절대 분석을 말하지 않는다’는 원칙으로 일했고, 주러시아 대사를 끝으로 퇴임한 뒤에도 국제정세에 대한 연구를 놓치 않고 있다. 최근에는 2016년 이후 북핵과 4강 외교를 분석하고 한국 외교의 개혁 방안을 담은 책 <한국 외교 업그레이드 제언>을 냈다.
지난 23일 한겨레신문사에서 위 전 대사를 만나 한국 외교의 개혁 문제, 미-중 갈등 격화와 바이든 행정부 출범 속에서 한국 외교가 나아갈 방향 등에 대해 들었다.
―한국 외교의 업그레이드를 제안한 이유는?
“외교부에서 일한 36년 동안 한국 외교가 행정과 행사에만 치우쳐 있다는 문제 의식을 느꼈고, 정책과 전략 중심으로 업그레이드해야 한다는 생각을 지속적으로 해왔다. 젊은 시절 북방외교 담당자로서 소련과 수교 과정에서 역할을 했다. 냉전이 끝나고 탈냉전 시대가 시작되는 역사적 순간이었고, 서방 일변도였던 우리 외교가 동서 양날개로 처음으로 날게 된 동서 화해 시기였다. 그런 전환점에서도 우리 외교는 수교 행사를 넘어, 동서 양 진영을 아울러 전략을 짜고 탈냉전에 걸맞는 외교를 하는 질적 변화로 나아가지 못했다. 1988년 우리 정부는 ‘7.7 선언’을 발표해 우리가 중국·소련과 수교를 하고 북한이 미국·일본과 수교하는 것을 지원한다고 선언했지만, 우리가 소련에 이어 중국과 수교를 한 뒤에는, 미국이 북한과 접촉하는 것은 반대했다. 북한 입장에서는 박탈감과 배신감이 컸는데, 우리가 일종의 승리주의에 매몰되어서 우리 원하는 대로만 하려 했다. 당시 세바르드나제 소련 외무상이 한·소 수교를 알리러 평양에 갔을 때 북한의 김영남이 핵 개발 뜻을 밝혔고 그것이 북핵 문제의 시작이었다. 탈 냉전을 냉전식으로 다룬 것이 지금의 결과를 가져왔다. 지금도 우리 외교는 자체 판단과 국익을 중심으로 전략을 짜고 실행하는 데 익숙치 못하다.“
―한국 외교의 업그레이드는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한국 외교가 이렇게 된 것은 외교 생태계가 왜곡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국 외교는 자기중심적이고 감정적인 관점, 국내 정치 위주, 이념적 당파적, 포퓰리즘, 아마추어리즘의 5대 수렁에 빠져 있다. 이런 생태계에 한국 외교를 이끄는 6대 행위자인 집권 엘리트, 관료, 정치권, 언론, 학계, 시민사회단체의 문제가 겹쳐 있다. 우선 한국 외교 생태계를 바꿔야 한다는 인식이 범 사회적으로 확산되어야 한다. 집권 엘리트가 개혁 과제를 실행하려하면 제일 빠를 것이고, 차선으로는 외교 관료들이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러려면 먼저 외교관료들이 미국 근무를 했는가와 같은 ‘스펙’만 중시하는 데서 벗어나 진정한 전문성을 존중하고 기르는 쪽으로 바뀌어야 한다. 언론, 학계, 시민사회단체가 여론을 형성하고 감시 감독하는 주체로서 개혁의 역할을 하는 것도 중요하다.”
―미-중 ‘신냉전’ 상황에서 한국은 계속 미국편과 중국편 사이에서 고심하면서 국내 분열만 심해지고 있다. 미-중 사이에서 한국은 어떤 전략을 마련해야 할까.
“한국 사회에는 세가지 의견이 있다. 우선 미국이 강하니 미국을 따라가면 된다는 주장이 있다. 두번째는 이 게임은 결국은 중국이 이길 것이므로 중국 쪽으로 기울어야 한다는 이들이다. 제3의 그룹은 문제를 회피하면서 아무 것도 안하려는 이들이다. 이전에는 큰 나라를 따랐는데 이제 누가 큰 나라인지 모르게 됐으니 편의적으로 강하게 당기는 쪽으로 움직이면서, 어느 쪽을 선택할지 정하지 말아야 한다고 한다. 우리가 해야 할 선택은 중국을 선택할지, 미국을 선택할지가 아니다. 우리의 좌표와 나갈 방향을 선택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미국과 중국의 견인력에 의해 표류하고 방황하면서, 끝없이 양보를 해야 한다. 좌표와 방향을 선택하는 기준은 ‘우리의 자주권과 가치를 타협하지 않는 것’이다. 중국은 역사적으로 수천년간 중화질서를 우리에게 부과했다. 지난 100여년 동안 우리나라는 처음으로 그 궤도에서 벗어났고,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에서 성공했다. 그 두 가치가 대한민국의 정체성이다. 중국은 다른 가치를 가지고 성공해 세계 두번째 강국이 되었고, 이제 그 가치를 다른 나라 특히 주변국가에 부과하려 한다. 중국은 당의 지배를 유지하면서 경제도 계속 성공해야 하는데, 자신들의 가치를 주위에 부과하지 않으면 외부세력이 자기 체제를 침해할 것으로 우려한다. 중국이 영향력을 확대하려 할 경우 첫번째 목표중 하나가 한국인데 그렇게 되면 우리는 자주권과 가치를 타협해야 한다. 민주주의는 한국인의 피와 눈물로 이뤄낸 대단히 소중한 가치다. 그런데 중국은 이를 인정하기 어렵다. 이를 인정하면 중국의 홍콩, 대만, 신장위구르 정책 등은 어떻게 되겠는가. 한국은 헤징(위험 분산)이 필요하다. 우리와 가치가 비슷하고 동맹인 나라를 활용하면서, 그 연장선에서 일본, 러시아, 동남아, 오스트레일리아(호주), 유럽연합과도 연대를 구축해 배후를 튼튼히 하고 그런 입지 위에서 중국과 마찰하지 않고 우호하고 선린하는 관계를 키워가려 해야 한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11월26일 델라웨어 웰밍턴에서 블링컨 국무장관 지명자를 비롯한 외교안보팀을 소개하고 있다. 웰밍턴/AP 연합뉴스
—바이든 행정부가 열겠다고 밝힌 민주주의 정상회의를 비롯해 쿼드 플러스(미국·일본·인도·호주의 안보협의체인 쿼드를 확대해 중국을 견제하려는 구상), 화웨이 문제 등 미-중이 대립하는 이슈에서 한국은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하나.
“예를 들어 미국이 3시, 중국이 9시 방향으로 우리를 당기려 한다면 한국은 1시와 1시반 사이의 좌표를 염두에 두고 지속적으로 정책 결정을 해나가야 한다. 지금 일본, 호주, 싱가포르 등 여러 나라가 그렇게 하고 있다. 우리는 그런 일정한 방향성이 없기 때문에 양쪽에서 강력하게 우리를 잡아당기게 된다. 진보 정부든 보수 정부든 우리가 일단 방향을 정하고 나면 일정하게 움직여야 한다. 예를 들면 G7에 한국, 호주, 인도를 초대하는 회의나 민주주의 정상회의에 한국은 당연히 가야 한다. 우려하거나 피하려 하지 말고 참여해 그 안에서 한국의 역할을 찾아야 한다. 쿼드 플러스에 대해서도 한국이 그렇게 할 여지가 있다. 쿼드에 참가하고 있는 미국 인도 호주 일본도 서로 다 입장이 다르다. 예를 들어 인도는 중국과 잘 지내려 하면서도, 중국의 어떤 행보에는 대응을 해야한다고 생각해 미국과 손을 잡지만 꽉 잡지는 않는다. 한국이 G7을 확대한 회의나 쿼드 플러스에 참여하면서도 그 안에서 반중 연대가 지나치게 부각되지 않고 동아시아의 평화와 안정, 공동번영을 위한 질서와 규범 창출 쪽으로 가도록 역할을 할 수 있다.”
—한중관계에 대해 우리는 어떤 원칙을 지켜야할까.
“한중 수교 이후 30년이 다 되어가지만 우리의 분명한 대중 정책이 없다. 교류 협력이 늘어나고 무역흑자가 커지니까 이대로 내버려두기만 하면 한중관계는 좋다고 여겼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위험할 정도로 대중국 의존도가 심해졌고, 결국 힘센 나라가 레버리지를 가지게 되어 사드 사태를 겪었다. 사드 사태의 교훈을 되돌아보면, 북한의 핵 미사일은 우리한테는 사활적인 안보 이해인데, 중국은 처음부터 ‘미국의 엠디에 절대 들어가지 말라’는 프레임을 만들었고, 우리는 안 들어간다고 약속을 했다. 처음부터 이것은 우리 안보 문제이고 북한 미사일로부터 수도권을 방어하기 위해 우리의 필요에 따라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를 도입한다고 했어야 했다. ‘미국의 엠디에 들어가냐 아니냐’로 보수와 진보 사이에 논쟁이 벌어지자, 군 지휘관이나 외교관들은 문제를 회피했다. 결국 미국이 자기들이 구입해서 배치하겠다고 하면서, 미국의 배치 문제가 됐고 중국은 더 반발했다. 문제를 계속 끌다가 박근혜 정부가 배치를 허용했고 중국이 한국에 보복을 했다. 두번째 문제는 중국의 보복 이후에 우리가 무대응한 것이다. 성명도 내고, 부당한 경제 보복은 세계무역기구(WTO)와 보아오 포럼 등에서 거론해야 했다. 사드 보복 같은 일이 벌어지면, 우리는 중국에서 점점 멀어지는 방향으로 움직여야 한다. 그러면 중국은 ‘우리가 압박하니 한국이 멀어지는구나’ 깨닫게 된다. 활발하게 움직이고, 문제가 해결되면 다시 원래 위치로 돌아올 수 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은 결과 아직도 사드 보복은 끝나지 않았고, 중국은 보복한 적이 없다고 주장한다. 이런 희비극이 없다.”
—하지만,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한중관계를 계속 밀접하게 해야하는 거 아닌가.
“북핵 문제와 한반도 문제를 중국의 도움 없이는 해결할 수 없다. 중국도 북핵 문제가 한반도 평화와 동북아 안보, 국제 핵 비확산체계에 위협이 되는 데 반대한다. 그런데 중국은 또다른 지정학적 이슈가 있다. 북한이 없으면 미국 세력이 중국 국경과 맞닿게 될까 우려한다. 그래서, 중국은 북핵 문제와 지정학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계속 쫓고 있다. 중국이 지정학적 고려를 줄이고, 조금 더 비확산과 동북아 평화쪽으로 오게 하는 것이 우리 과제다. 북한 핵은 한국한테는 죽고 사는 사활적 문제다. 우리는 중국의 핵심이익을 가장 많이 존중해주는 국가다. 그런데 중국은 우리의 사활적 이해를 얼마나 도와줬나? 사드 보복 때 우리가 그만큼 참았으면 중국이 평가를 하나? 아니다. 국제관계에서는 그렇게 대응하면 평가하지 않는다. 역동적으로 움직이면서 상대가 때리면 대응하고 다른 쪽에선 협력해야 하는데, 우리가 아직 그런 외교에 익숙치 않다. 핵심이익도 밀당을 하다가 도와주면 고마워한다. 중국과 관련해 앞으로도 비슷한 이슈들이 계속 나올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한국은 좌표를 잘 정하고 역동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중국이 우리가 사활적 문제라고 여기는 부분을 존중하면 우리도 중국의 핵심이익을 배려하는 식으로 외교를 해야 한다.”
—바이든 행정부 등장 뒤 북미 관계와 북핵 협상에 대해 어떻게 전망하는지.
“바이든 행정부 인사들은 오바마 행정부 때 북한을 경험했고 북한에 대한 불신이 깊다. 또 트럼프에 대한 반대 심리가 강하다. 우리가 트럼프와 같이 북-미 정상외교를 추진했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해 조심스럽게 생각해야 한다. 바이든 행정부가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로 돌아갈 것이라는 전망도 있지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오바마-바이든 쪽은 중앙정보국(CIA) 국장, 부국장을 북한에 보내는 등 대화 노력을 했는데 북한이 응하지 않았다고 생각하지, 자기들이 아무 것도 안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클린턴 행정부 시기 대북정책조정관이었던 페리가 주도한 ‘페리 프로세스’에 주목하는 이들이 있는데, 북한이 핵실험을 6번 하고 미사일 능력이 이렇게 진전된 상황에서는 참고하기가 적절치 않다. 바이든 행정부가 비핵화라는 목표를 버리고 군축이나 상황 관리로 가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비핵화를 최종 목표로 두고 중간단계로 핵군축을 해서 북한의 위협을 줄여보자는 방안을 내놓을 수는 있다. 그런데 미국은 북한이 요구해온 단계적 해법을 받아들이더라도, 북한의 살라미 전술(단계를 세분화해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전술)을 막기 위해 비핵화의 최종 목표를 분명히 하고 로드맵을 정확히 만들고 신고를 제대로 하라고 할 것이다. 이와 함께 바이든은 비핵화나 핵 미사일 감축이 가시화 되어야 한다고 요구할 것이다. 바이든은 대선 후보 토론회에서 ‘북한의 핵 미사일 능력이 감축되면 김정은을 만날 수 있다’고 했다. 정상이 3번이나 만났는데 북한의 핵 미사일 능력이 줄어든 게 없지 않냐고 트럼프를 비판하면서, 실무협상을 통해 북한의 핵 미사일 능력이 감축될 수 있는 내용이 만들어지면 정상회담을 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그는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을 줄이는 것을 가급적 조기에 이행(프론트 로딩)하고 싶어한다. 북한은 싱가포르합의에서 신뢰 구축을 비핵화보다 먼저 하겠다고 합의했고 북미간에 신뢰가 구축되지 않았는데, 어떻게 프론트 로딩을 할 수 있느냐고 할 것이다. 접점이 아주 적다. 북한이 싱가포르합의에 집착할 수록 상황이 어렵다. 싱가포르 합의는 트럼프도 결국 이행하지 못하고 하노이에서 뒤집었다. 그것을 바이든이 그대로 들어주기 쉽겠는가. 다만 바이든이 싱가포르 합의를 부인할지 안할지는 미지수다. 바이든 쪽 참모들과 얘기해보니 싱가포르합의를 비난하는 사람도 있지만, 부인하면 안된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부인하지 않더라도 동의하는 것은 아니기에 다른 안을 낼 가능성이 높다. 중간 단계로 핵 능력 감축을 설정할 수 있지만 비핵화의 최종 목표는 유지할 것이다. 북한이 중간단계를 최종단계로 만들려 할 가능성은 경계해야 한다.”
—결국 한국의 역할이 중요한데 한국은 어떤 로드맵을 마련하고 바이든 행정부와의 첫단추를 끼우는 게 최선인가.
“일단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서면 북핵, 중국, 동맹의 세 영역에서 부담스러운 상황이 올 가능성이 높다고 인식해야 한다. 바이든은 동맹과 연대를 중시하면서 세 이슈 모두 한미가 보조를 맞추자고 할 것이다. 지금까지는 한반도 이슈는 우리가 치고 나가면서 미국을 따라오게 하려는 방식이었다. 바이든은 미국이 동맹의 역할을 충실히 할테니, 북한 문제도 한국이 앞서 나가지 말고 상의해서 하자고 할 것이다. 우리는 임기 후반기이기 때문에 시작해놓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성과를 내야할 때이다. 그 때 북한이 미국에는 도발을 하고, 남쪽의 대화 제의에는 손을 내밀게 되면 한국에는 상당히 어려운 선택이 될 수 있다. 문제를 푸는 방법은 바이든 행정부와 시급히 좋은 신뢰 관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그 다음에 북한의 남북관계 제안이 오면 순조로워진다. 급선무는 바이든 정부가 동아시아와 한반도 정책의 큰 구도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파악해 그 구도 속에서 호감과 신뢰를 유발할 수 있는 방안을 짜야 한다. 큰 구도에선 미국에 도움을 주면서 구체적으로는 한반도 비핵 평화에서 우리 아이디어를 반영할 수 있도록 구도를 짜야 한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미국이 우리 의견에 귀기울이지 않는다. 바이든 행정부와 인맥을 뚫는 게 급선무가 아니라 정책을 짜야 한다. 정상회담 날짜보다는 매력적인 소프트웨어 개발이 더 중요하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19년 2월2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이틀째 정상회담을 시작하기 전 굳은 표정으로 앉아 있다. 하노이/AFP 연합뉴스
—바이든 행정부 출범을 앞두고 고심을 거듭했을 북한이 1월 당대회를 열고 전략 방향을 밝힐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바이든과 어떤 새 게임을 하려 할까.
“도발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싱가포르, 하노이, 스톡홀름을 거쳐 지금까지 온 과정을 북한이 어떻게 해석하고 있을지 북한 입장에서 헤아려봐야 한다. 북한은 미국이 싱가포르 합의를 해놓고 하노이에서 딴 소리를 하고, 스톡홀름에는 새로운 셈법을 가져오라고 했는데 안가져왔다고 볼 것이다. 북한이 ‘더이상 핵 미사일 모라토리엄(유예)’에 묶여 있지 않겠다고 경고를 줬는데 미국은 아무 것도 하지 않다가 트럼프는 갔고, 바이든은 트럼프가 한 것을 다 비판하고 있다. 북한 입장에서는 격앙돼 있을 것이다. 북한은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바이든 당선 확정에 대해 침묵을 지키고 있다. 과거 행적을 보면 2009년 오바마 대통령 취임 직후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했다. 이것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북한이 도발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해야 한다. 우리나 미국은 ‘북한은 항상 도발을 해왔으니 어떻게 하겠냐’고 하지 말고, 도발을 막기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바이든 행정부는 대북 정책 검토를 끝낸 후에나 북한과 대화를 하려고 하면 안된다. 당장 거창한 대화가 아니라 뉴욕채널 등을 조용히 열어서 북한과 대화를 시작하고, ‘도발하면 어렵다, 도발하지 않으면 협상의 길이 있다’는 다양한 시그널을 줘야 한다. 대북정책특별대표를 신속하게 임명하는 것도 방안이다. 미국이 직접 하고, 중국을 통해서도 해야 한다. 한국도 당연히 열심히 해야 하고. 힘을 합쳐서 일단 도발을 막는 노력을 해야 한다. 북한이 도발을 하면 먼지가 가라앉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리고 1년 반 정도 남은 정부 임기 동안 대화 없이 흘러가 버릴 수도 있다.”
—바이든 안보팀이 트럼프 시기의 톱다운 외교 성과를 거부하고 실무협상에 치중하면 북미 협상은 어떻게 될까.
“2018~2019년에는 북-미 사이에 실무협상은 필요 없다는 분위기가 한국 내에서 있었다. 톱다운에 대한 극도의 미화와 바텀업(실무협상)에 대한 극도의 폄하가 있었다. 이제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와 ‘톱다운은 필요 없다’고 하면 그 또한 옳지 않다. 톱다운과 실무협상은 보완적이다. 트럼프식 접근을 평가 안하는 부분도 많지만 트럼프가 직접 나서서 북한과 담판하려고 했던 정치적 결단과 담대한 의지는 필요하다. 바텀업 실무협상으로 준비가 되면 어느 순간에는 최고 지도자의 결단이 필요하다. 그런 부분을 바이든도 따라 했으면 좋겠다.”
—바이든 행정부 외교안보팀은 이란핵합의가 북핵 해법의 모델이라고 하는 데, 어떤 부분을 주목해봐야 할까.
“바이든 안보팀이 이란 핵합의(JCPOA)를 좋은 사례로 거론할 때 염두에 두는 것은 내용보다는 형식이다. 미국·중국·영국·러시아·독일·프랑스가 한편이 되어서 이란을 설득한 형식을 원하는 것이다. 6자회담이라면 5개국이 한편이 되어서 북한을 설득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지금으로선 중국과 러시아의 지정학 때문에 쉽지 않다. 6자회담 경과를 돌이켜보면 초기에 중국과 러시아가 지금보다는 비핵화 명분에 좀 더 진지했다. 김계관이 ‘이게 무슨 법정입니까’라고 항변한 적도 있다. 왜 다들 한편이 되어 북한만 피고 취급을 하는냐는 뜻이었다. 이후 미-러, 미-중 관계가 악화하면서 중, 러 모두 비핵화 명분에 대한 충실도가 낮아졌다. 바이든은 이것을 끌어올리려 할 것이다. 북한은 핵실험을 6번이나 하는 등 이란과는 핵개발 단계가 다르고, 이란 핵 합의는 하나의 합의로 모든 것을 한꺼번에 해결하는 형식이었는데, 북한은 이걸 거부하고 계속 단계를 나눠서 하자고 한다는 차이도 있다.”
—북중관계는 어떻게 될까?
“북중관계는 2017년까지 최저점이었다가, 2018년부터 김정은 위원장의 방중 등을 통해 극적으로 복원되었다. 중국의 대북 제재 이행도 이완돼 북한한테는 유리한 상황이다. 변수는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와 미중관계를 트럼프 때보다는 관리를 하면서 비핵화에 대해 협력하자고 하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도 미국과의 협력 영역을 만들려 할 수 있다. 그 와중에 북한이 도발을 한다면 안보리 제재에 중국도 동조할 수밖에 없다. 그런 상황이 되면 북한이 반발하면서 북중 관계가 마찰 조짐을 보일 가능성이 있다. 주시할 필요가 있다.”
—한·일 관계가 어렵다. 최근 한국이 나름의 ‘해법’을 제안했지만 일본이 거부하고 있다. 바이든 정부의 등장도 중요한 변수다. 한일관계는 어떻게 풀어야 할까.
“한국이 안을 냈는데 일본이 다 거절했다. 우리 제안은 어떤 형태로든 대법원 판결을 이행하려고 하는 내용이고, 일본은 그 부분은 절대 받아들이지 못한다고 한다. 바이든 행정부는 한일관계를 개선하라는 압박을 할 것이고 일본보다는 우리한테 압박이 클 것이다. 일본도 이런 상황을 알기 때문에 양보하지 않을 것이다. 바이든 정부가 압박을 하기 전에 우리가 선제적으로 푸는 게 좋다. 이걸 잘 풀면 바이든 행정부 초반에 한미관계의 호재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상황을 고려하면 정부가 선제적으로 나서기 어려운 점이 있다. 정부가 초당적 ‘현인회의’에 이 문제를 맡기고 거기서 나오는 제안을 따르는 형식을 제안하고 싶다. 그 회의가 운용되는 동안은 한일이 추가 행동이 멈추고 그 사이에 한일 정상회담을 해서 일본이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를 풀고, 한국은 세계무역기구(WTO) 제소를 내려놓으면서 선순환 과정을 촉발할 수 있다.”
—바이든 행정부가 동맹 강화를 강조하지만, 많은 국가들이 ‘쇠퇴하고 있는 미국이 계속 아시아에서 신뢰할 만한 역할을 할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
“미국 역사에는 개입과 고립을 반복하는 밀물과 썰물이 있었다. 2차대전 이후 미국이 초강대국이 된 후에는 줄곧 개입이었지만 트럼프주의의 등장에서 보듯 앞으로는 불확실하다. 그런데 중국의 부상 또한 불확실한 면이 있다. 아시아·태평양 지역 국가들의 입장에서 보면 승자가 확실하면 줄을 서면 되는데 그 때까지 시간이 무척 오래 걸릴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대다수 국가들이 미국이 이 지역에서 쉽게 빠져나가지 못하게 연대를 규범화하려고 한다. 그 중의 하나가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인데, 미국이 함께 논의하다가 트럼프 행정부 때 빠져 나갔는데 다시 CPTPP(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로 돌아오려는 국면이다. 인도태평양전략, 쿼드 플러스 등도 다 같은 흐름이다. 한국은 다수가 가는 그 흐름에 동참해야 격랑을 헤쳐나갈 수 있고, 그 안에 들어가서 역할을 잘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연대 기구들이 반중연대가 되지 않도록 현명하게 대처해야 한다. 중국처럼 독자적 문명과 세계관을 가진 거대한 실체는 외부 압력으로 변하지 않는다. 밖에서 연대해서 방어를 하면서 섬세하게 대처해야지, 대적 일변도로 가면 안된다. 몰아세우면 내부를 청소해서 엉뚱한 극단으로 가버린다. 미-중이 갈등하지만, 팬데믹 극복, 기후변화, 비핵화 등에서 협력해야 하고, 이런 문제에서 한국도 잘 역할을 해서 북핵 문제 해결에도 유리하고 미-중 관계의 안정에도 도움이 될 수 있는 운신 공간을 찾았으면 좋겠다.”
—문재인 정부가 남은 임기 동안 외교·안보 분야에서 꼭 해야만 할 과제는 무엇을 꼽을 수 있을까.
“촛불민심을 받아서 집권한 정부가 성과를 내고 성공하기를 바란다. 촛불민심은 국정 전반을 혁신하라는 시대적 주문이라고 생각한다. 우선 외교 생태계 개혁의 시동을 거는 정부가 되었으면 좋겠다. 다음으로 국제공조냐 민족공조냐 이분법적인 논의들이 한국 사회에 많은 데 이것은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다. 두 요소를 통합해 한국 외교의 기틀을 마련하기 바란다. 미-중 사이에서 좌표와 방향을 정해야 한다. 한반도평화프로세스의 성과를 내야 하는데, 그러려면 우선 바이든 행정부를 설득할 수 있는 대미 방략을 신속하게 만들어야 한다.” 박민희 논설위원
minggu@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