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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후보의 입’이 많아졌다…‘말의 전쟁’이 된 정치

등록 2021-08-08 15:02수정 2021-08-09 02:44

성한용 선임기자의 정치 막전막후 390
‘말의 전쟁’이 벌어지는 진짜 이유는
“확증편향의 시대 맞춤형 선거 전략”
“표가 있는 곳에서 전투가 벌어진다”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들이 7월 28일 서울 매경미디어센터 스튜디오에서 열린 본경선 1차 텔레비전 토론회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왼쪽부터 박용진, 정세균, 이낙연, 추미애, 김두관, 이재명 후보. 국회사진기자단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들이 7월 28일 서울 매경미디어센터 스튜디오에서 열린 본경선 1차 텔레비전 토론회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왼쪽부터 박용진, 정세균, 이낙연, 추미애, 김두관, 이재명 후보. 국회사진기자단

# 1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 경선 캠프에는 대변인이 14명입니다. 본래 박찬대 수석대변인, 박성준·홍정민 선임대변인, 전용기·김남준·남영희·현근택·최지은(국제 담당) 대변인이었습니다. 최근 강선아·권지웅·이경·정진욱·민병선·송평수 부대변인을 모두 대변인으로 승격시켰습니다.

14명 가운데 4명은 현직 국회의원입니다. 박찬대(인천 연수갑), 박성준(서울 중성동을), 홍정민(경기 고양병), 전용기(비례대표)입니다.

이낙연 후보 경선 캠프에는 대변인이 9명입니다. 오영훈 수석대변인, 배재정·박래용·이병훈·홍기원·오영환·김효은·서누리·김영웅 대변인입니다.

9명 중의 4명은 현직 국회의원입니다. 오영훈(제주을), 이병훈(광주 동남을), 홍기원(경기 평택갑), 오영환(경기 의정부갑)입니다.

경선 캠프 대변인들은 ‘열일’을 마다치 않습니다. 자기 후보의 정책과 공약을 홍보합니다. 경쟁 후보의 약점을 공격합니다. 경쟁 후보가 자기 후보를 공격하면 방어도 해야 합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 국민의힘, 국민의당 등 야권 관련 사안에 대한 논평도 내놓아야 합니다.

경선 캠프에 대변인들이 이처럼 많은 것은 이례적입니다. 2012년 민주통합당 경선 문재인·손학규 캠프, 2017년 더불어민주당 경선 문재인·안희정·이재명 캠프에 대변인들이 이처럼 많지는 않았습니다.

야당도 별로 다르지 않을 것 같습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 최재형 전 감사원장 등 야당 주자들의 경선 캠프가 꾸려지면 아마도 여러 명의 대변인이 활약할 것입니다.

각 정당 경선이 끝나고 대통령 선거 국면이 시작돼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각 정당 대선 캠프에 대변인들이 대거 배치될 것입니다.

자, 궁금하지 않습니까? 대선 캠프와 경선 캠프에 대변인들이 과거보다 훨씬 많아지는 이유가 도대체 뭘까요?

# 2

요즘 정치부 기자들이 매일 아침 가장 먼저 하는 일은 그날 아침 정치인들의 라디오 인터뷰 내용을 확인해서 정리하고 기사를 쓰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시사를 다루는 방송은 거의 다 정치인 인터뷰를 합니다.

방송 인터뷰에 등장하는 정치인은 국무총리, 장관 등 정무직 공무원, 각 정당의 대표, 원내대표를 비롯한 고위 당직자들, 그리고 국회의원 등 다양합니다. 정치인들은 방송 인터뷰를 통해 자신과 자기편을 홍보하고 상대를 공격합니다.

더불어민주당 경선 국면이 시작된 뒤 후보와 캠프 참모들의 방송 인터뷰가 크게 늘었습니다. 상대방에 대한 비방도 서슴지 않습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 최재형 전 감사원장 등 야당 대선주자와 캠프 참모들의 방송 인터뷰도 불이 붙기 시작했습니다.

정치인들이 방송 인터뷰에 점점 더 많이 출연하는 이유는 뭘까요?

# 3

트위터, 유튜브, 페이스북, 메타버스는 정보화 시대의 새로운 소통 수단입니다. 여기에 최근 정치 이야기가 부쩍 많아지고 있습니다. 2022년 3월 대통령 선거를 향해 달리기 시작한 대선후보들의 경쟁과 싸움이 격화하고 있습니다. 매일 매시각이 전쟁입니다. 가짜뉴스와 흑색선전, 인신공격이 판칩니다. 에스엔에스가 정치의 새로운 무대로 떠오르는 이유가 뭘까요?

세 가지 현상에 대해 막연히 부정적인 의견을 내놓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정치의 퇴행’ 정도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정치인들이 옛날보다 가벼워져서”라거나 “요즘 애들은 정치를 모른다”는 의견이 그런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대개 나이가 많습니다. ‘라떼는 말이야’인 것입니다.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습니다. 정당과 캠프에 대변인이 많아지고, 정치인 방송 인터뷰가 많아지고, 에스엔에스에 정치가 많이 오르는 이유는 바로 거기에 ‘표’가 있기 때문입니다.

정치의 요체는 선거입니다. 정치인은 유권자의 표를 모아야 당선됩니다. 정치인과 대화할 때, “이렇게 이렇게 하는 것이 정치적으로 옳다”고 말하면 귓등으로 흘려 듣지만, “이렇게 이렇게 하면 표가 된다”고 말하면 귀를 쫑긋 세웁니다. 표만 된다면 어린아이 사탕도 빼앗아 먹을 수 있는 사람이 정치인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과거 선거는 주로 조직 싸움이었습니다. 조직의 핵심은 지역과 직능단체였습니다.

대통령 선거에서 지역구 국회의원과 지역위원장이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은 각자 자기 지역구에서 대통령 후보의 득표율을 최대한 끌어 올리는 것이었습니다.

비례대표 국회의원들이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은 자기가 대표하는 직능에서 대통령 후보의 표를 최대한 끌어모으는 것이었습니다.

지역구 국회의원과 비례대표 국회의원의 대선 성적표는 다음 국회의원 총선거 공천에 반영됐습니다.

그렇습니다. 과거 대선 후보 및 경선 캠프에 현직 국회의원들이 많이 참여하지 않은 것은 이처럼 따로 해야 할 중요한 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방송 인터뷰에 정치인들이 많이 출연하지 않았던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정치의 생태계가 급속히 변화하고 있습니다. 첫째, 정보화 시대입니다. 둘째, 코로나 비대면 시대입니다.

두 가지 환경 변화가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며 유권자들의 확증편향이 점점 더 강해지고 있습니다. 유권자의 표는 이제 지역이나 직능단체에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공중에 떠다니고 있습니다.

공중에 떠다니는 표를 잡아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지상전이 아니라 공중전을 펼쳐야 합니다. ‘조직 싸움’이 아니라 ‘말싸움’에서 이겨야 합니다.

말을 많이 해야 하니, 캠프에 대변인이 많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캠프에 참여한 정치인들도 자신의 능력을 조직이 아니라 방송과 에스엔에스 기여도로 증명해야 합니다.

생태계의 변화는 종의 진화에 영향을 미칩니다. 강한 종이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종이 강한 것입니다.

정보화 시대와 코로나 비대면 시대를 맞아 각 정당과 캠프의 선거 전략, 득표 전술도 변화하고 있습니다.

고전적인 선거 전략은 집토끼를 단속하고 산토끼를 잡는 것입니다. 가장 효율적인 득표 전술은 중도층을 공략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정보화 시대와 코로나 비대면 시대로 토끼장 울타리가 무너졌습니다. 집토끼와 산토끼가 구분되지 않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공포와 분노를 자극하는 토끼몰이가 효율적일 것입니다. “저쪽 언덕을 넘어가면 사나운 늑대에게 다 잡아먹힌다”고 공포를 부추기는 것입니다. “저쪽 언덕 너머에 사는 나쁜 늑대를 몰아내야 한다”고 분노를 부추기는 것입니다. 득표 전술은 중도층 설득이 아니라, 확실한 ‘자기편’과 상대 후보에게 공포와 분노를 가진 유권자들을 투표장으로 최대한 끌어모으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리얼미터가 지난 5일 공개한 대선후보 개인 호감도 조사가 있습니다.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누리집 참고)

이낙연 ‘호감’ 37.9% vs. ‘비호감’ 57.1%

이재명 ‘호감’ 40.1% vs. ‘비호감’ 56.5%

윤석열 ‘호감’ 46.0% vs. ‘비호감’ 50.0%

최재형 ‘호감’ 39.4% vs. ‘비호감’ 46.8%

자동응답 전화 방식이라 야당 후보에게 유리한 편입니다. 그래도 이 수치를 가지고 한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호감도가 가장 높은 윤석열 후보의 당선 가능성이 가장 큰 것일까요? 비호감도가 높은 이낙연 이재명 후보는 당선 가능성이 별로 없는 것일까요? 비호감도 수치가 가장 낮은 최재형 후보가 혹시 유리하지는 않을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이 수치는 단순한 이미지 조사에 불과합니다.

호감도가 상대적으로 낮아도 지지자들을 투표장으로 많이 불러내는 사람이 승리자가 될 것입니다. 상대 후보의 당선 가능성에 공포와 분노를 불어 넣는 데 성공하는 사람이 승리자가 될 것입니다.

확증편향이 심해지는 현상은 거듭 말씀드리지만 정치 생태계의 변화입니다. 따라서 그 자체를 옳거나 그르다고 판가름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특히 정치인은 새로운 생태계의 변화에 적응하도록 노력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적응하지 못하면 도태하는 것입니다.

그래도 한 가지 무척 아쉬운 점이 있습니다.

확증편향의 심화로 인해서 갈라치기와 선동에 능한 정치인의 득세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통합을 지향하는 정치 지도자의 출현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정치의 본령인 대화와 타협의 문화가 자꾸 변방으로 밀려날 위험이 있다는 것입니다.

현재 대선주자로 나선 사람 가운데 ‘통합의 정치인’ 이미지를 가장 많이 가진 사람은 아마도 정세균 전 국무총리일 것 같습니다. 지난 5일 저녁 <케이비에스> 라디오 ‘열린토론’에서 정세균 전 총리에게 이 부분을 집중적으로 물었습니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가 7월 31일 오전 광주 서구 치평동 대한노인회 광주시연합회에서 간담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세균 전 국무총리가 7월 31일 오전 광주 서구 치평동 대한노인회 광주시연합회에서 간담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세균 전 총리는 “그렇다고 정치인이 자기 본질을 바꿀 수는 없는 것”이라며 “내가 가진 특징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당당하게 경쟁하겠다”고 했습니다.

마무리하겠습니다. 세상은 돌고 도는 것입니다. 확증편향의 시대가 영원히 계속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공포와 분노를 조직해서 표를 모으는 정치인 대신에, 대화와 타협을 중시하고 국민 통합을 호소하는 정치인이 당선에 유리해지는 시대가 올 것입니다. 언젠가는 그럴 것입니다. 반드시 그럴 것입니다.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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