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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차기는 나야, 나라구!” 송영길·이준석의 ‘미친 존재감’

등록 2021-08-29 10:59수정 2021-08-29 11:18

성한용 선임기자의 정치 막전막후 393
대선주자들보다 더 관심받는 두 사람
‘중도확장’ 송영길…‘준스톤’ 이준석
내년 대선 이기면 정치적 장래 ‘활짝’
7월 21일 <에스비에스> 주최 ‘당대표 토론배틀’에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와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7월 21일 <에스비에스> 주최 ‘당대표 토론배틀’에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와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화·예술 공연 엠시(MC : master of ceremonies)라는 직업이 있습니다. 유능한 엠시는 공연 시작 전과 도중에 작품의 배경과 의미를 설명해 관객의 눈과 귀를 끌어모읍니다. 주인공들을 멋지게 소개하는 것도 엠시의 역할입니다. 그러나 엠시는 공연의 주인공이 아닙니다. 관객들은 주인공을 기억할 뿐 엠시를 기억하지는 않습니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후보 경선을 관리하는 정당의 대표는 문화·예술 공연의 엠시와 비슷한 역할을 수행합니다. 경선을 공정하게 관리해야 합니다. 대선주자들이 돋보이도록 조력해야 합니다. 그래야 흥행에 성공하고 본선에서 이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문화·예술 공연과 마찬가지로 당 대표는 주인공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역대 경선 당시 당 대표가 누구였는지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이러한 대한민국 정당사에서 더불어민주당의 송영길 대표와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는 무척 이례적인 존재입니다. 주인공인 대선주자들보다 더 유명세를 치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치 문화·예술 공연 엠시가 무대에서 퇴장하지 않고 마이크를 계속 붙잡고 노래하는 모습과 비슷하다는 비판이 나올 정도입니다. 하지만 정치인의 욕망은 무죄입니다. 정치인이 ‘자기 정치’를 좀 하겠다는데 그 자체를 비난할 수는 없습니다.

대선주자보다 당 대표들이 더 돋보이는 이례적 현상이 벌어지는 데는 여러 원인이 있을 것입니다. 가장 큰 이유는 두 사람의 강렬한 ‘스타성’ 때문입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얘기부터 해보겠습니다. 6월 11일 전당대회에서 이준석 대표는 나경원 주호영 후보를 누르고 44%를 득표해 당선됐습니다. 보수 야당에서 36세 대표 탄생은 놀라운 사건이었습니다. 후보 등록 당시만 해도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아마 이준석 대표 자신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준석 대표의 일거수일투족은 연일 중요한 정치 뉴스였습니다. 대변인 선발을 위한 제1회 국민의힘 토론배틀의 제목은 ‘나는 국대다-with 준스톤’이었습니다. 최근 정책 공모전의 제목도 ‘나는 국대다 시즌2-with 준스톤’이었습니다. 준스톤은 물론 이준석 대표입니다. 정당 행사에 대표 이름을 내세운 적이 있었던가요? 제 기억에는 없습니다.

이준석 대표의 ‘미친 존재감’이 꼭 긍정적으로만 작용한 것은 아닙니다. 최근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이준석 대표의 갈등, 원희룡 전 제주지사와 이준석 대표의 갈등이 불거졌습니다. 대선후보 선출 경선 국면에서 대선주자끼리 싸우지 않고 대선주자와 당 대표가 싸우는 모습은 참 낯선 장면입니다. 어느 한쪽이 잘못해서라기보다는 이준석 대표의 ‘스타성’이 갈등의 배경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국민의힘 누리집 사진 자료
국민의힘 누리집 사진 자료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존재감도 만만치 않습니다. 송영길 대표는 우선 기골이 장대한 사람입니다. 5선 국회의원에 인천시장까지 지낸 정치 거물입니다.

5월 2일 전당대회에서 대표로 당선된 과정도 극적입니다. 송영길 대표는 당내 비주류입니다. 친문재인 주류 홍영표 후보에게 0.59%포인트의 근소한 차이로 이겼습니다. 4월 7일 서울시장 보궐선거 참패가 없었다면 송영길 대표 체제가 탄생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독선적 리더십 때문에 전당대회 직후 ‘대표 리스크’ 우려가 있었지만, 지금까지 무난하게 당을 이끌고 있습니다. 조국 사태에 대해 사과하고, 부동산 투기 의혹 의원들에게 탈당을 권유하는 등 중도확장 노력이 돋보였습니다.

그런데 요즘 송영길 대표가 좀 이상합니다.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지나치게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그동안 보였던 중도확장 방향과도 잘 맞지 않습니다. 송영길 대표는 언론개혁에 대해 왜 이처럼 강경한 태도를 보이는 것일까요? 

지난 6월 광주에서 철거 중인 건물이 지나가던 버스를 덮친 참사가 있었습니다. 8일 뒤 송영길 대표가 페이스북에 쓴 글이 있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송영길 대표가 왜 언론개혁을 강하게 밀어붙이는지 페이스북 글을 읽어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송영길 6월 17일

악의적인 언론참사입니다. 강력하게 대응하겠습니다

- 제가 그럴 리가 없습니다. 오해가 없으셨으면 합니다.

지난 6월 10일, 저는 늦은 오후에 광주 학동 사고현장을 찾았습니다.

그 날 현장으로 가던 제 심정을 페북에 간략하게 올렸습니다만,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사고였습니다.

현장을 볼 때까지도 아홉 분이나 숨졌다는 게 믿을 수가 없었지요.

사고 하루가 지났어도 현장은 끔찍했습니다.

현장 관계자들과 관련 공무원들, 그리고 유가족분들을 만났습니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유족들의 원성을 그대로 받아 안았습니다.

민주당의 심장인 광주이니 광주시민들이 민주당 대표한테 울분을 푸는 게 당연했지요.

저로서는 죄송합니다. 또 늦었지만 재발방지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렇게 말씀드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가장 큰 원성이 버스정류장을 철거 현장에 그냥 방치했던 문제였습니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명백한 인재(人災)였습니다.

버스정류장만 옮겼더라도, 그 시간 그 자리에 버스가 정차하지만 않았더라도...

생때같은 목숨을 앗아간 그 정류장과 버스와 유족의 눈물이 뒤범벅되었지요.

매번 되풀이되는 이 어처구니없는 일을 무슨 수를 써서라도 끊어야겠다는 다짐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오늘, 사고대책 당정협의회에서 저는 재발방지를 위해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더구나 많은 시민들께서 동구청에 민원을 접수했다는 사실도 확인되었습니다.

행정기관이 현장을 확인하고 조치를 취했다면, 안타까운 목숨들은 살릴 수 있었을 텐데....

제 목소리가 더 높아졌습니다.

“바로 그 버스정류장만 아니었다 할지라도 운전자의 본능적인 감각으로 뭐가 무너지면 엑셀레이터만 조금 밟았어도 사실 살아날 수 있는 상황인데 하필 버스정류장 앞에 이런 공사현장이 되어있으니 그게 정확히 시간대가 맞아서 이런 불행한 일이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버스정류장이 없었다면, 그래서 버스가 바로 그 시간에 정차하고 있지만 않았다면, 혹시 버스가 사고현장을 지나더라도, 이상한 조짐이 보였으면 운전기사는 본능적으로 승객의 안전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취했을 거라는 제 심정을 표현했습니다.

제가 젊은 시절에 택시 몰면서 택시노조 사무국장을 했었습니다. 운전으로 밥을 벌고 젖먹이 애를 키웠습니다. 운전하시는 분들의 사명감을 일반인들보다 조금은 더 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제가 다른 의미를 섞었겠습니까?

그런데, 오늘 회의를 취재하던 어떤 기자는 제가 드린 말씀 중 일부를 잘라내서 기사를 송고했습니다.

‘엑셀레이터만 조금 밟았어도’라는 대목만 키웠습니다.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일이 또 벌어졌습니다. 이건 ‘학동 참사’를 두세 번 거듭하는 ‘언론참사’와 다르지 않습니다. 당장 국민의힘이 오보를 근거로 저뿐만 아니라 민주당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사회적 공기(公器)’라는 언론이 ‘사회적 총기(銃器)’로 작동하는 현실을, 오늘 제가 직접 당했습니다.

집권여당 대표인 제가 이럴진대, 일반 국민들은 어떻겠습니까?

미디어 환경을 개혁해야 하는 당위성을 오늘 언론들이 만들어주었습니다. 그런 점에서는 정말 다행입니다.

미디어 환경 혁신에 제 정치적 소명을 걸겠습니다.

민주당의 대표로서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대응수단을 강구하겠습니다.

그러나, 이와는 별도로 잘못된 보도를 통해 마음의 상처가 더욱 컸을 피해자 유가족분들과 광주시민들께 삼가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제 본의와는 전혀 다른 오보였어도 민주당을 믿고 울분을 풀었던 분들의 마음을 어떻게 위로해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언론의 오보에 단호하게 대응하는 민주당 대표가 되겠습니다.

혹여, 잘못된 보도에 상처 입지 않기를, 호남의 아들인 송영길이 그런 정도로 바보가 아니라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강력히 미디어 환경 개선하여 가겠습니다.

어떻습니까? 송영길 대표의 격한 감정과 분노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습니다. 송영길 대표가 사고의 책임을 버스 기사에게 돌렸다는 보도는 송영길 대표의 발언을 교묘하게 비틀어 쓴 전형적인 왜곡 보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왜곡 보도에는 적절한 반박과 정정 보도 요청으로 대응하면 그만입니다.

어차피 정치인은 언론의 왜곡에 늘 시달릴 수밖에 없습니다. 이 정도 수준의 왜곡 보도에서 갑자기 언론개혁의 거창한 명분을 찾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가 좀 어렵습니다.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를 도입하면 언론의 이런 왜곡 보도 행태가 사라질까요?

언론중재법 개정안의 운명은 8월 30일 결판이 날 것 같습니다. 30일 오후에 더불어민주당 의원총회와 국회 본회의가 잡혀 있기 때문입니다. 계속 강하게 밀어붙일 것인지, 법안 처리를 늦출 것인지 전적으로 송영길 대표의 결단에 달려 있습니다. 어느 경우든 송영길 대표는 언론개혁을 주도하는 정치인의 이미지를 이미 확보했습니다. 그 자체로 적지 않은 성과입니다. 

송영길 대표와 이준석 대표의 독특한 리더십에 대해 여론조사기관에서도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전국지표조사가 8월 26일 발표한 송영길 대표 직무수행 평가는 긍정 36%, 부정 45%였습니다. 이준석 대표 직무수행 평가는 긍정 44%, 부정 41%였습니다. 국내 통신 3사가 제공하는 휴대전화 가상번호(100%)를 이용한 전화면접조사였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누리집 참고)

한국갤럽도 8월 27일 대표 역할 수행 평가를 발표했습니다. 송영길 대표는 ‘잘하고 있다’ 34%, ‘잘못하고 있다’ 45%였습니다. 이준석 대표는 ‘잘하고 있다’ 37%, ‘잘못하고 있다’ 51%였습니다. 휴대전화 알디디(Random Digit Dialing) 표본 프레임에서 무작위 추출(집 전화 알디디 15% 포함)했습니다.

이 정도면 두 사람 모두 꽤 괜찮은 성적표입니다. 송영길 대표는 과거 김한길·문재인 대표보다 훨씬 더 좋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이준석 대표도 나쁘지 않은 편입니다. 국민의힘 지지자들의 평가가 전국지표조사와 한국갤럽에서 엇갈리게 나타난 것이 좀 특이합니다. 어느 쪽이 맞을까요?

자, 이제 송영길 대표와 이준석 대표의 정치적 장래는 어떻게 될까요? 두 사람 모두 내년 3월 9일 대통령 선거 결과에 따라 운명이 뒤바뀔 것입니다. 

송영길 대표는 문재인 정부에서 외교부 장관을 무척 하고 싶어했지만 하지 못했습니다. 이제 당 대표를 했기 때문에 장관으로 가기에는 몸이 좀 무거워졌습니다. 하지만 추미애 대표가 법무부 장관을 한 것처럼 송영길 대표가 차기 정부에서 외교부 장관을 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할 것 같습니다. 국무총리는 어떨까요? 2027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는 것도 물론 가능합니다. 송영길 대표의 앞길은 무궁무진하게 열려 있는 것입니다.

이준석 대표도 마찬가지입니다. 내년 3월 대선에서 국민의힘이 승리하면 이준석 대표는 정권교체의 일등공신이 됩니다. 당장 2022년 6월 1일 서울시장 선거 출마가 가능합니다. 대통령 선거는 40세 이상이어야 출마가 가능하지만, 서울시장은 만 25살 이상이면 됩니다. 물론 2024년 국회의원 총선거에 출마할 수도 있습니다. 2027년 대통령 선거 출마는 어떨까요? 2027년이면 이준석 대표는 42세가 됩니다.

마무리하겠습니다. 모든 분야에 전문가들이 있듯이 정치에도 전문가들이 있습니다. 좋은 정치인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지거나 땅에서 솟아날 수 없습니다. 

제가 송영길 대표와 이준석 대표 두 사람을 높이 평가하는 이유는 바로 이들이 오랫동안 실력을 갈고닦은 정치인들이기 때문입니다. 2022년 3월 9일 대통령 선거는 대한민국 20대 대통령을 선출하기 위한 선거지만, 송영길 대표와 이준석 대표를 비롯한 여러 정치인의 운명이 걸린 한판 대결이기도 합니다. 과연 어떻게 될까요?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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