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한미연합군사령부 전시지휘소(시피 탱고)에서 한미 장병들이 ‘을지 자유의 방패’ 연습을 하고 있다. 시피 탱고는 경기 성남에 있는 한미연합사 지하벙커다. 국방부가 제공한 이 사진은 공격헬기와 전차가 다급하게 출동하는 조간신문들 1면 사진(아래)과는 분위기가 다르다. 어느 모습이 한미연합연습의 본질일까. 국방부 제공
‘을지 자유의 방패(UFS) 연습' 시작을 보도한 지난 23일치 조간신문들은 1면에 한국군 전차, 자주포, 주한미군 공격헬기가 출동하는 사진을 크게 실었다. 실기동훈련을 재개해 한미훈련을 정상화했다는 판단이 깔린 1면 사진 배치다.
한미가 양국 연합연습인 ‘을지 자유의 방패(UFS) 연습'을 지난 22일부터 9월1일까지 하고 있다. 이 소식을 전한 지난 23일치 조간신문들은 1면에 한국군 전차, 자주포, 주한미군 공격헬기가 바쁘게 움직이는 사진을 크게 실었다.
강인선 대통령실 대변인은 지난 22일 “축소됐던 한미 연합훈련을 정상화하고 연대급 이상 야외기동훈련을 재개해서 한미 연합 방위 태세를 근본적으로 강화한 것"이라고 이번 연습의 의미를 설명했다. 대통령실이 이렇게 공식 설명했으니, 신문들은 1면 사진으로 병력과 장비가 움직이는 야외기동훈련 재개 모습을 실감나게 보여주려고 했다.
윤석열 정부 들어 야외기동훈련 재개? 한미연합훈련 정상화?
그런데 ‘야외기동훈련 재개’란 주장은 사실과 거리가 멀다. 원래 연중 나눠서 하던 13개 훈련을 이번 연합연습기간에 몰아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재개’나 ‘부활’이 아니다. 엄밀히 말하면 ‘훈련 시기 조정’인데 대통령실이 ‘정상화’라고 과도한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야외기동훈련을 재개해 축소됐던 한미연합훈련을 정상화했다‘는 주장에도 귀가 솔깃할 만하다.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한미훈련은 완전무장한 군인들이 바쁘게 뛰어다니고, 땅에선 전차와 대포가 불을 뿜고, 하늘과 바다에선 전투기와 군함이 기동하는 모습이다.
2018년 이후 주요 한미연합훈련을 컴퓨터 시뮬레이션 위주로 하자 지난해 1월 로버트 에이브럼스 당시 한·미연합사령관(재임 기간 2018.11~2021.7)의 ‘불만’이 보도됐다. 그는 “연합훈련이 컴퓨터 게임이 돼가는 건 곤란하다”며 “야외 기동훈련 없는 컴퓨터 훈련으로는 연합 방위 능력에 차질이 생긴다”고 말했다. 한반도 방어를 책임진 현역 미 육군 대장이 이렇게 주장하자 아무도 반박하지 못했다. 이후 실제 병력과 장비가 움직이고 실탄, 포탄을 발사해야 진짜 훈련이고 컴퓨터 시뮬레이션 방식은 비정상이란 사람들의 믿음이 한층 강화됐다. ‘훈련하지 않는 군대는 군대가 아니다’라는 주장도 득세했다. 이를 밑돌 삼아 윤석열 정부는 ‘야외기동훈련을 재개해 축소됐던 한미연합훈련을 정상화했다‘고 주장한다.
2018년 11월8일 오전 경기 평택의 주한미군기지인 캠프 험프리스에서 열린 한미 연합사령관 이·취임식에서 로버트 에이브럼스 신임 사령관(오른쪽)이 빈센트 브룩스 전임 사령관(가운데)과 함께 차량을 타고 사열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 연합사령관 에이브럼스와 브룩스, 실기동훈련 둘러싸고 다른 주장
보수언론들은 지난해 8월 한미연합연습을 앞두고도 컴퓨터 기반 지휘소 연합훈련(CPX) 방식으로 훈련이 축소 진행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에이브럼스 사령관의 전임자인 빈센트 브룩스 전 연합사령관(재임 기간 2016.4~ 2018.11)은 지난해 7월 <미국의 소리>(VOA)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전혀 다른 이야기를 했다. 브룩스 전 사령관은 “8월 연합훈련의 핵심은 지휘소연습”이라며 “대규모 실기동 훈련 미실시를 훈련 축소로 단정짓는 보도가 계속 나오는 상황을 이해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브룩스 전 사령관은 일부 언론이 보도하는 수천에서 수만 명 규모의 병력을 동원하는 실기동 훈련은 지난 1996년 팀스피리트 연합연습 중단 이래 실시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전술적 차원의 실기동 연합훈련은 1년 내내 중단 없이 실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6개월 전 에이브럼스 사령관 발언을 크게 보도했던 한국 언론은 브룩스 전 사령관의 발언은 무시했다.
2020년 1월 미 하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서 데이비드 올빈 당시 합참 전략정책 담당 국장은 “한미가 실기동 훈련을 대규모 한미연합연습 내용의 88% 수준으로 진행하고 있다”며 “대규모 연합훈련이 유예된 이후에도 총 273개 훈련을 진행해 왔다”고 말했다.
한미연합사 작전참모 출신인 데이비드 맥스웰 미국 민주주의수호재단(FDD) 선임연구원도 지난해 7월 ‘3월과 8월 한미연합연습의 본질은 전략적 관점에서 중요도가 높은 한반도 유사시를 대비한 지휘소연습이며, 실기동 훈련은 보조적 훈련의 일환’이라고 말했다. 민주주의수호재단은 미국 워싱턴의 보수 싱크탱크다.
에이브럼스 사령관이 지휘소연습을 ‘컴퓨터 게임’이라 깎아내렸지만, 브룩스 전 사령관 등은 지휘소연습이 연합연습의 핵심, 본질이라고 정반대 주장을 폈다. 누구 말이 맞는 것일까. 먼저 연합연습과 지휘소 훈련이 무엇이고 어떤 관계인지 알아보자.
을지 자유의 방패(UFS) 연습 로고. 국방부 제공
을지 자유의 방패(UFS) 연습은 ‘한미연합연습’이다. 대부분 사람들에게 ‘훈련’이 익숙하고 ‘연습’은 낯설다. 정부 당국조차 ‘한미훈련’이라고 한다. 군사용어로는 훈련과 연습은 전혀 다른 뜻이다. 연습(Exercise)은 작전계획을 시행하는 전시 작전 시행 절차 숙달 과정이다. 흔히 한미훈련이라 불리는 을지 자유의 방패 등은 정확한 군사용어로는 ‘훈련’이 아니라 ‘연습’이다.
훈련(Training)은 ‘전술 제대의 개인 및 부대가 부여된 임무를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기술적 지식과 행동을 체득하는 조직적인 숙달 과정’이다. 일선 소규모 부대들이 하는 유격 훈련, 사격 훈련, 화생방 훈련 등을 생각하면 쉽다.
을지 자유의 방패 연습의 목적은 한반도 전면전에 대비해 한미가 세워놓은 전시 작전계획을 군 주요 지휘관과 참모들이 숙달하는 것이다. 이 작전계획의 핵심은 미군 증원 전력의 수용-대기-전방이동-통합(RSOI)이다. 한반도 유사시 미국 본토 등에서 대규모 미군 병력, 장비가 오는 것으로 돼 있다. RSOI는 미 본토 등에서 오는 병력, 장비를 전방에 투입시키기 전에 대기시키고, 준비가 되면 전선으로 이동시키며, 기존에 싸우고 있던 전력과 통합시켜 전투하는 상황을 말한다.
계획상으론 유사시 미 증원전력은 병력 69만명, 해군 함정 160척, 항공기 2000대 규모이다. 이 규모의 미 증원전력이 한반도에서 실기동훈련을 할 장소를 구할 수 없다. 비용도 엄청나게 든다. 그래서 1993년 3월 한미연합 팀스피리트 연습 때부터 실기동훈련 위주였던 훈련 방식에서 탈피해 컴퓨터 워게임을 이용한 지휘소연습을 새로 도입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지휘소연습이 한미연합연습의 중심이 됐다. 실기동훈련은 거드는 것이다.
한미는 전면전 상황을 상정해 한반도 전역을 대상으로 하는 전구(戰區)급 연습을 전반기(3월), 하반기(8월) 연중 2차례 한다. 한미연합연습의 특성상 지휘관·참모가 컴퓨터 컴퓨터 시뮬레이션 방식으로 할 수밖에 없다. 브룩스 전 사령관이 연합연습의 핵심이 지휘소연습이라고 한 배경이다.
을지 자유의 방패 연습이 진행 중인 지난 23일 한미연합군사령부 전시지휘소(시피-탱고)에서 한미 장병들이 연합작전을 수행하고 있다. 국방부 제공
지난 23일 해군 부산작전기지에서 22년 후반기 한미연합연습 을지 자유의 방패에 참가하는 연합전투참모단 소속 한미 해군 장병들이 토의를 하고 있다. 해군작전사령부와 미 7함대사령부는 이번 연습에서 연합전투참모단을 구성해 한미 연합방위태세 확립을 위해 지휘소 연습을 함께 하고 있다. 해군 제공
지난 23일 국방부·해군 등이 공개한 '을지 자유의 방패(UFS) 연습' 사진들을 보면, 한국과 미국 군인들이 컴퓨터 화면 앞에 나란히 앉아 토의하고 있다. 공격헬기와 전차가 다급하게 출동하는 조간 신문 1면 사진들과는 분위기가 다르다.
뭐가 이번 이번 연습의 본질일까. 차분히 생각해볼 문제다. 스웨덴의 성자 비욘 나티코 린데블라드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틀릴 수 있습니다. 참으로 단순하고 명쾌한 진실이지만, 우리는 너무나 쉽게 잊어버립니다.”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