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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 불체포특권 ‘기명 투표’는 가능할까

등록 2023-01-22 16:29수정 2023-01-22 16:54

정치BAR_조윤영의 알·쓸·정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8일 오후 설 명절을 앞두고 서울시 마포구 망원시장을 방문, 시장 상인들을 만난 뒤 검찰 소환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8일 오후 설 명절을 앞두고 서울시 마포구 망원시장을 방문, 시장 상인들을 만난 뒤 검찰 소환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아무 잘못도 없는 저에게 또 오라고 하니 제가 가겠습니다.”

지난 18일 서울 망원시장을 방문한 뒤 기자들과 만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대장동 특혜개발 의혹’을 수사 중인 검사가 소환 조사를 통보한 지 이틀만입니다. 이 대표는 오는 28일 검찰에 출석해 조사를 받겠다고 밝혔습니다. 검찰에 구속영장을 청구할 빌미를 주지 않겠다는 뜻으로도 읽힙니다. 물론 검찰이 체포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하더라도 국회 문턱을 넘기 쉽지 않을 수 있지만 이 대표의 수사 상황이 물리면서 민주당은 뒤숭숭한 분위기입니다.

‘방탄국회’ 논란은 노웅래 민주당 의원 체포동의안이 지난달 찬성 101표, 반대 161표, 기권 9표로 부결되면서 재점화됐습니다. 2018년 5월 염동열·홍문종 자유한국당 의원의 체포동의안이 부결된 지 4년7개월 만입니다. 표결을 앞두고 민주당 안에서도 체포동의안을 부결시킬 경우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우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돈 봉투 부스럭거리는 소리”, “돈을 주고받는 현장이 이렇게까지 생생하게 녹음된 사건을 본 적이 없다”는 등의 구체적 수사 내용을 공개하며 공세에 나서자 민주당 기류는 부결 쪽으로 급격히 기울었습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28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제4차 본회의에서 뇌물수수·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를 받는 더불어민주당 노웅래 의원의 체포동의요청 이유설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28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제4차 본회의에서 뇌물수수·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를 받는 더불어민주당 노웅래 의원의 체포동의요청 이유설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헌법 제44조는 ‘국회의원은 회기 중 국회의 동의 없이 체포 또는 구금되지 않는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불체포특권은 과거 군사정권 시절 독재권력의 탄압에 맞서 국회의원의 의정활동을 보장하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비리 의원을 보호하는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습니다. 1948년 이후 제출된 국회의원 체포동의안 65건 가운데 가결과 부결이 각각 16건씩이었고 나머지는 임기 만료로 폐기되거나 철회됐습니다.

물론 선거 때마다 국회의원 불체포특권 제한 공약이 나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대선 후보 시절 불체포특권 폐지를 추진하겠다고 했습니다. 문재인 전 대통령도 2012년 대선 때 “낡은 구시대의 관행에서 탈피해 국민의 열망에 부응하는 새 정치가 요구되고 있다”며 불체포특권을 제한하겠다고 했지만 실행되지 않았습니다.

불체포특권 폐지 논의가 제자리걸음을 되풀이하자 72년째 이어진 비공개 투표 방식을 기명투표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옵니다. 1952년 제정된 국회법 112조는 ‘인사에 관한 안건은 무기명투표로 표결한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국무위원 해임안과 탄핵안부터 원내 상임위원장 투표까지 모두 무기명입니다. 신율 명지대 교수(정치외교학과)는 <한겨레>에 “(체포동의안 처리는) 형법상 문제이기 때문에 무기명투표에 부칠 인사 안건이라고 볼 수 없고 적어도 누가 찬성했는지 공개되면 의원들도 신중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부작용을 우려하는 반론도 존재합니다. 민주당의 한 초선 의원은 “불체포특권을 만든 역사적 맥락이 있는 만큼 정치 혐오에 편승해 폐지 여부를 섣불리 논의해선 안 된다”며 “기명투표 역시 의원들의 선택지를 오히려 좁히는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앞서 민주당 정당혁신추진위원회도 지난해 1월 국회의원 면책특권과 불체포특권을 제한하는 혁신안을 발표했습니다. 체포동의안이 본회의에 보고되면 즉시 의결하고 기명 투표로 표결하겠다는 겁니다. 다만 이 대표의 사법리스크가 상존한 상황에서 불체포특권 폐지를 논의하기에는 민주당도 곤혹스럽다는 입장입니다. 정당혁신추진위에서 활동했던 민주당의 한 의원은 “누가 찬반 투표를 했는지 모르기 때문에 찬반을 공개하고 표결에 책임을 질 필요가 있다”면서도 “당 안에서 현실적으로 불체포특권 폐지나 기명 투표를 논의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습니다. 박원호 서울대 교수(정치외교학부)는 “책임성 강화 측면에서 기명투표가 필요하다”면서도 “일반적인 사안도 전자식 기명투표를 도입하고도 제대로 활용하지 않을 정도로 무기명투표에 대한 선호가 있어 국회가 적극 개정에 나설지가 관건“이라고 말했습니다.

대선 후보 시절 불체포특권 폐지 공약을 내걸었던 이재명 대표는 지난 12일 새해 기자회견에서 ‘구속영장이 청구될 경우 불체포특권을 내려놓을 뜻이 있냐’는 질문에 “경찰이 적법하게 권한을 행사한다면 당연히 수용하겠지만 경찰복 입고 강도 행각 벌이고 있다면 과연 어떻게 판단할지,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판단은 다를 수 있다”고 했습니다. 검찰의 수사 자체가 자신을 향한 정치탄압이기 때문에 구속영장이 청구될 경우 불체포특권을 활용할 명분이 있다는 뜻으로 풀이됩니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여야 유불리에 따라 불체포특권 폐지에 대한 찬반 입장이 뒤집히는 현실”이라며 “기명투표를 하더라도 양당의 대결구도와 당내 계파 등을 고려한 정치적인 계산이 들어갈 수밖에 없어 깊이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조윤영 기자 jy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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