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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열병식 이벤트’, 먹고살기 힘들어서 자꾸 한다

등록 2023-02-13 07:00수정 2023-02-13 22:12

정치BAR_권혁철의 안 보이는 안보
북한이 건군절(인민군 창건일) 75주년인 지난 8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병식을 개최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9일 보도했다. 열병식 참가자들이 군홧발을 높이 치켜들고 거위걸음으로 행진하는 장면.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북한이 건군절(인민군 창건일) 75주년인 지난 8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병식을 개최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9일 보도했다. 열병식 참가자들이 군홧발을 높이 치켜들고 거위걸음으로 행진하는 장면.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북한이 지난 8일 인민군 창건일(건군절) 75주년을 맞아 대규모 야간 열병식을 개최하자 임수석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 9일 정례브리핑에서 “날로 악화되는 식량·경제난에도 불구하고 전시성 대규모 동원 행사에 귀중한 장비를 낭비하고 있는 데에 개탄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임 대변인은 또 “북한이 불법적인 핵 · 미사일 개발과 무모한 핵 위협을 즉각 중단하고 조속히 비핵화 협상으로 복귀할 것을 촉구한다 ” 고 덧붙였다.

인권단체인 국제엠네스티도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 겸 국무위원장을 향해 “강추위 속에서 수많은 군인과 주민들을 동원해 열병식을 개최할 것이 아니라 이들의 식량난부터 우선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고 <자유아시아방송>(RFA)이 지난 10일 보도했다. 한마디로 ‘먹고살기도 힘든 북한이 대규모 열병식을 왜 하느냐’는 것이다.

 북한, 정권 안정기에 열병식 없어

그러나 북한 입장에서는 ‘먹고살기 힘드니까 열병식을 하는 것’이라고 반박할 수 있다. 역대 사례를 보면, 북한은 경제 형편이 어려울수록 열병식을 더 자주 했다. 힘들수록 나라 밖으로 강한 군사력을 자랑하고 내부적으로는 체제가 흔들리지 않게 인민들을 묶어두려는 것이다.

북한은 1948년부터 1994년까지 김일성 주석 집권 기간(46년 간)에 열병식을 13차례 했다. 8·15 광복절 열병식이 많았다. 북한은 1960년대 이후 한국전쟁 피해복구를 마무리하고 정치·경제 분야에서 안정기에 접어들자 열병식을 거의 하지 않았다. 1960·70년대 북한은 놀라운 전후 복구와 빠른 경제성장으로 국제사회주의 경제체제의 우등국가로 인정받았다. 전문가들의 연구 결과를 보면, 1970년대 초반까지는 북한이 한국보다 잘 살았다. 남한의 1인당 소득(543달러)이 북한(515달러)을 앞지르기 시작한 때가 1974년이다. 1960·70년대는 북한 형편이 좋아서 일부러 열병식으로 내부 체제를 결집시키고 외부에 무력 과시를 할 필요가 없었던 셈이다.

1990년대 들어 사회주의권이 무너지고 격심한 식량난으로 북한 형편이 어려워지자 대규모 열병식이 다시 등장했다. 1994년부터 2011년까지 김정일 국방위원장 집권기간(17년 간)에 열병식은 13차례 열렸다. 김일성 주석 집권 기간이 김정일 국방위원장보다 2.7배 길었지만 열병식 횟수는 똑같았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 겸 국무위원장 집권 기간은 12년이지만 지금까지의 열병식도 모두 13차례였다. 김일성-김정일-김정은 대를 이을수록 집권기간 대비 열병식이 더 잦아지는 형국이다.

북한이 건군절(인민군 창건일) 75주년인 지난 8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병식을 개최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지난 9일 보도했다. 열병식에 참가한 대륙간탄도탄인 화성-17형.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북한이 건군절(인민군 창건일) 75주년인 지난 8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병식을 개최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지난 9일 보도했다. 열병식에 참가한 대륙간탄도탄인 화성-17형.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특히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열병식을 극적인 이벤트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 그는 2012년 4월15일 김일성 주석 생일 100주년 열병식에서 20분 간 첫 공개연설을 하면서 ‘김정은 시대’ 개막을 세계에 알렸다. 대외 관계와 정세에 따라 열병식에 등장하는 전략무기도 변화무쌍하다. 북한은 미국과의 관계가 안 좋을 때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등 파괴력이 큰 각종 전략무기를 공개했다. 북·미관계, 남북관계 개선을 모색할 때는 열병식을 하지 않거나 등장하는 무기 강도를 줄였다. 2018년 6월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이후인 그해 9월 북한 정권 수립 70년 열병식에서는 대륙간탄도미사일이 등장하지 않았다. 북·미 대화를 모색하던 2019년에는 열병식을 하지 않았고, 2020년 10월까지 2년 가량 열병식을 중단했다. 그뒤 북한은 2020년 10월, 2021년 1월과 9월, 지난해 4월, 지난 8일 등 5차례 심야 열병식을 했다.

 2차 대전 때 스탈린의 대규모 열병식이 시초

대규모 열병식의 시초는 옛 소련이다. 2차 세계대전 중이던 1941년 11월7일 나치 독일군이 모스크바 턱밑인 30㎞까지 진격해왔다. 모스크바 시내에서도 독일군의 대포 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소련의 운명이 바람앞의 등불 신세인 상황에서 그해 11월7일 모스크바 붉은 광장에서 러시아 혁명 24주년을 기념하는 화려한 대규모 군사 퍼레이드가 벌어졌다. 소련 최고 지도자 스탈린은 라디오 방송을 통해 전국에 생중계된 연설을 통해 이렇게 말했다.

“독일 침략자들이 전쟁을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그들이 원하는 바를 스스로 당하게 해줄 것입니다. 나폴레옹의 운명이 어떠했는지를 잊어서는 안됩니다.”

스탈린이 도망을 안 가고 모스크바에 남아 수도 사수 의지를 밝힌 것이다. 당시 붉은 광장의 열병식은 지리멸렬하던 소련의 결사항전 의지를 대내외에 과시했다. 화려한 열병식을 마친 소련군은 모스크바 외곽의 전선으로 달려갔고, 모스크바 시민들은 큰 용기를 얻었다. 이후 소련은 모스크바 사수에 성공하고 대대적인 반격에 나섰다. 이 열병식은 독일-소련전쟁 승전의 계기가 됐다.

러시아 2차 대전 승전기념일인 지난해 5월9일 모스크바에서 열린 열병식에서 탱크들이 행진하고 있다. 모스크바/EPA 연합뉴스
러시아 2차 대전 승전기념일인 지난해 5월9일 모스크바에서 열린 열병식에서 탱크들이 행진하고 있다. 모스크바/EPA 연합뉴스

 2018년엔 트럼프 열병식 지시에 공화·민주당 반발

최근 북한 사례에서 보듯 화려한 조명을 동원한 심야 열병식은 무척 자극적이다. 평양 김일성 광장을 가득 메운 수만명의 병력들이 군홧발을 높이 치켜들고 행진(거위걸음)하는 장면은 보는 이에게 위압감을 느끼게 했다. 서구 국가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대규모 열병식을 하지 않는다. 2차 대전 이후 소련, 중국, 동유럽, 북한 등 사회주의권이 대규모 열병식을 열면서 서구 사회에서는 열병식이 ‘낙후’, ‘호전’, ‘전체주의’ 이미지로 각인됐기 때문이다.

2018년 2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수도 워싱턴에서 대규모 열병식 개최를 국방부에 지시하자, 공화당과 민주당 가릴 것 없이 강력히 반발했다. 공화당의 존 케네디 상원의원은 “자신감은 침묵으로 표현된다. 미국은 인류 역사상 가장 강력한 국가이며 이를 일부러 과시할 필요는 없다”고 비판했다. 민주당의 셸던 화이트하우스 상원의원은 “트럼프가 북한 텔레비전을 너무 많이 본 것 같다”고 조롱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역대 미국 대통령들이 열병식을 개최하지 않은 것은 북한이 미사일을 자랑하거나 구소련이 붉은 광장에서 벌이는 대규모 군 행사를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미국은 1991년 걸프전 승리를 기념한 이후 열병식을 하지 않고 있다. 한국은 군사독재시절인 1980년대까지는 매년 10월 국군의날이면 서울 여의도에서 대규모 열병식을 하고 서울 강북 도심까지 퍼레이드를 벌였으나, 1990년대 문민정부 출범 이후 열병식을 하지 않거나 대폭 축소했다.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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