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중 가장 슬픈 날은 야구 시즌이 끝나는 날이다.” LA 다저스의 전설적인 명감독인 토미 라소다가 남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저 뿐만 아니라 많은 야구팬들이 슬픈 겨울을 보내며 봄을 기다리고 있겠죠.
그래서일까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최근 국회선진화법 처리와 관련해 ‘권력자’라고 발언하며, “공천권에 발목 잡힌 국회의원들에게 정치적 철학과 소신을 굽히지 말라는 뜻에서 100% 상향식 공천을 하게됐다”고 연일 박근혜 대통령과 각을 세우는 모습을 보면서도 엉뚱하게 ‘야구’ 생각이 났습니다. 100% 상향식 공천이 뭐길래, 김무성 대표는 박근혜 대통령과의 대결을 각오하는 것일까요?
‘상향식 공천’이라는 잘 와닿지 않는 말을 프로야구 올스타전과 비교해 보겠습니다. 혹 억지스럽다고 느껴지신다면, 프로야구 개막을 기다리는 한 야구팬의 간절함으로 너그럽게 봐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지난 18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새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_______ 감독의 국가대표 선발 = 전략공천과 인재 영입
지난해 11월 야구팬들은 프리미어12(12개국 국가 대항전)의 우승에 열광했습니다. 일본과의 4강전에서 거둔 역전승은 아직도 짜릿합니다. 프리미어12에 출전한 국가대표 선발방식은 정당의 기존 공천 방식과 유사합니다.
한국프로야구위원회(KBO)는 프리미어12 대표 선발을 위해 지난해 7월부터 대표팀 감독을 맡은 ‘백전 노장’ 김인식 감독을 위원장으로 하고 KBO 김재박 경기운영위원, 이순철 SBS스포츠 해설위원, 선동열 전 KIA 감독, 송진우 KBS N스포츠 해설위원을 모아 기술위원회를 구성해 선수를 선발했습니다.
이대호가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프리미어12 일본과의 4강전에서 9회초 2타점 적시타를 터뜨리고 있다. 한국은 0-3으로 패색이 짙던 9회초 4점을 뽑아 4-3으로 극적인 역전승을 거뒀다. 도쿄/연합뉴스
정당 역시 ‘감독’인 당 대표와 최고위원회가 공천관리위원회 등을 구성해 당 안팎의 인사들로 위원을 임명합니다, 이 공천관리원회와 기타 기구들이 국회의원 후보 선출을 주도합니다. 물론 야구 대표팀 선발보다는 복잡합니다. 범죄나 탈당 전력 등을 살펴 1차로 자격이 없는 후보들을 걸러냅니다. 그 뒤 특정 지역구 출마의사를 밝힌 복수의 후보들을 지역 여론조사, 당원투표 등의 방식으로 경선을 치르게 해 1명의 후보를 선출합니다. 또 당 대표와 최고위원회는 보통 전체 지역구 출마자들 가운데 20% 정도를 전략공천 합니다. 전략공천이란 정당의 열세 지역구, 상대 정당 거물 정치인이 출마한 지역구에 경쟁력 있는 후보를 내려보내는 건데요. 인지도 있는 정치 신인들이 정계에 진출할 수 있는 통로가 전략공천이기도 합니다. 여기까지가 정당의 통상적인 공천 과정입니다.
결국 당 대표와 최고위원 등 지도부의 의사가 개입될수 있다는 점에서 이런 공천 과정에는 잡음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당 대표의 측근 또는 특정 계파가 공천권을 독점한다는 논란이 계속되는 것이죠. 여야 모두 총선을 앞두고 출마 후보자들이 당대표실을 점거하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수 있습니다. 탈락한 후보자가 당의 공천이 불공정 하다며 항의 표시를 하는 것으로 이 와중에 당직자들끼리 멱살을 잡고 고성을 지르는 소동이 연출되기도 합니다.
국가대표팀 선발도 팬들 사이에서 논란이 되기도 합니다. “왜 아무개 선수는 안 뽑느냐”, “아무개는 올해 보여준 것도 없는데 감독 아들이냐?”등의 항의가 야구 커뮤니티와 포털 댓글로 폭발합니다. 병역 혜택이 있을 땐 선수 선발을 두고 논란은 더 가열됩니다. 병역 혜택을 주려고 실력보다는 군미필자들을 위주로 뽑았다는 것이죠.
_______ 올스타전 투표 = 상향식 공천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지난 28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옆 자리의 서청원 최고위원은 이날 지난 26일 김무성 대표가 2012년 일명 '국회선진화법'의 입법에 당시 '권력자'이던 박근혜 대통령의 찬성이 큰 역할을 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데 대해 ”왜 이런 권력자 발언을 해서 분란을 일으키느냐”고 강도높게 비판했다. 연합뉴스
김무성 대표가 강조하는 ‘상향식 공천’은 이 폐단을 바로잡자는 문제의식에서 나온 것입니다. 지난해 여의도를 달군 오픈프라이머리(완전 국민경선제), 국민참여경선제 등등도 유사한 방식입니다.
이는 프로야구 올스타전 선수 선발방식과 유사합니다. 올스타전은 팬들의 투표로 선출합니다. 인터넷 투표를 통해 각 포지션별로 스타를 뽑는 것이죠. 선수 선발을 두고 자의적인 기준이 적용됐다는 논란이 불거질 수 없습니다.
물론 올스타전 선수 선발 역시 논란이 있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팬들의 선호도가 결정적이다 보니 그해 뛰어난 활약을 보여준 신인보다 이름값 있는 선수들에게 표가 몰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동원’ 논란도 피할 수 없습니다. 팬덤이 강한 특정구단의 선수들에게 ‘몰표’를 몰아주는 겁니다. 2003년 삼성 라이온스가 올스타를 독식한 뒤, 팬들의 지지가 남다른 롯데 자이언츠, LG 트윈스 선수들이 올스타 포지션을 독점해서 다른 팬들의 원성을 샀습니다. 싹쓸이는 최근까지 이어졌습니다. 2012년에는 롯데 자이언츠가 동군의 10개 포지션을 독식했고 2013년에는 엘지가 서군 10개 포지션을 모두 쓸어담았습니다. 2015년에는 한화 팬들과 인기아이돌 엑소의 팬들이 힘을 합쳐 올스타 투표에 참여하자고 해서 논란이 되기도 했습니다. KBO는 이러한 문제를 염두에 두고 팬 투표 외에 감독 추천권을 줘왔고, 2014년부터는 선수단 투표를 30% 반영하는 것으로 선발 방식을 바꿨습니다.
수원 케이티 위즈 파크에서 열린 2015 타이어뱅크 KBO리그 올스타전 드림팀 대 나눔팀 경기. 드림올스타팀이 나눔올스타팀을 6대3으로 꺾고 승리한 뒤 기뻐하고 있다. 연합뉴스
올스타전 선수 선발 방식에서 드러난 장단점은 상향식 공천과 매우 유사합니다. 상향식 공천은 여론조사 등으로 각 지역구의 국회의원 후보를 뽑습니다. (현재 새누리당은 일반국민 70%, 책임당원 30%의 비율로 경선하는 공천안을 확정했습니다) 즉 당원과 일반 국민들이 정당의 국회 의원 후보를 뽑기 때문에 당 지도부의 자의적인 개입이 원천적으로 차단됩니다. 또 유권자의 의사가 반영된다는 점도 있죠. 하지만 정치신인들이 진출하기 어렵고, 동원 논란이 문제로 지적됩니다. 아무래도 얼굴이 알려지지 않은 정치 신인보다, 현역 의원들의 얼굴이 국민들에게 알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또 현역 의원이 자신의 조직을 동원한다면 올스타전 투표처럼 몰표가 쏟아질수 있다는 우려도 나옵니다. 정치학자들은 정당의 후보 선출을 국민들에게 묻는 것은 당원을 소외시키며 정당의 기반을 약화시킨다는 비판을 하기도 합니다.
김무성 대표가 당 대표임에도 100% 상향식 공천을 계속 강조하는 것은 박근혜 대통령과 친박계라는 또 다른 ‘감독’이 있기 때문입니다. 공천 과정에서 박 대통령의 입김을 차단하겠다는 것이죠. 김무성 대표는 1월 27일 열린 ‘2030 새누리당 공천 설명회’에서 “과거에는 공천권이 당의 소수 권력자에 의해 밀실에서 좌지우지돼왔다”고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팬들의 뜻과 상관 없이 감독이 맘대로 ‘국대’를 뽑았다는 것이죠. 친박계 의원들이 전략공천, 인재 영입 등을 주장하는 건 박 대통령과 친박계의 권한을 인정해달라는 얘기로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여러분은 야구 국가대표 선발 방식과 올스타 선발 방식 중 어느 쪽이 더 합리적이라고 보시는지요. 물론 그걸로 새누리당 공천 갈등의 잘잘못을 따지긴 어렵습니다. 당의 감독이라고 할 수 있는 ‘권력자’가 도대체 누구인지 불분명하니까요.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 사진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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