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샷법과 공직선거법 등 현안을 놓고 여야가 신경전을 벌이며 국회가 파행을 겪고 있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원유철 원내대표가 현안을 놓고 정의화 국회의장과 현 상황 돌파를 위한 논의를 하고자 국회 본청에서 의장실로 향하고 있다.(사진 왼쪽) 국민의당(가칭) 주승용 원내대표가 31일 오전 서울 마포당사에서 원샷법 처리와 관련, 견해를 밝히고 있다.(사진 오른쪽) 연합뉴스
원샷법, 원샷법 하는데 대체 이 법이 뭐길래 여야 대치가 길어질까요?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은 3개월의 논의를 거쳐 원샷법 ‘내용’에 대해서는 합의를 이뤘습니다. 그러나 이를 ‘먼저 처리하자(새누리당)’와, ‘뭘 믿고 먼저 해주냐, 선거구 획정과 함께 처리하자(더불어민주당)’로 다투고 있죠. 첨예한 정쟁 속에 정작 내용은 주목받지 못하고 있는데요. 대체 뭐하는 법이고, 국회 논의 과정에서 뭐가 바뀐걸까요?
이헌재(새누리당) 의원이 발의한 기업활력제고를위한특별법(원샷법)에서 가장 쟁점이 됐던 것은 16조입니다. ‘소규모 합병에 대한 특례’죠. 원래 상법에는 이렇게 돼 있습니다.
‘합병 후 존속하는 회사가 합병으로 인해 발행하는 신주의 총수가 그 회사의 발행주식총수의 100분의 10을 초과하지 아니하는 때에는 그 존속하는 회사의 주주총회의 승인은 이를 이사회의 승인으로 갈음할 수 있다.’
쉽게 말해 작은 회사와 합병할 땐 주주총회를 열지 않고 이사회로 대신할 수 있게 하는 조항이죠.원샷법은 여기서 100분의10을, 100분의20으로 늘리는 겁니다. 손쉽게 합병할 수 있는 회사의 범위를 늘리자는 거죠.
예컨대 시가총액이 168조원인 삼성전자는 기존 상법으로는 19조원의 삼성SDS를 이사회 승인만으로 합병시키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원샷법이 통과되면 기준이 20%로 확대되기 때문에 가능해지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9.2%의 지분율로 삼성SDS에서 개인 중 가장 많은 지분을 가지고 있습니다. 삼성SDS와 삼성전자의 합병설은 꾸준히 제기돼 왔습니다. 삼성SDS의 몸집을 키운 다음 전자와 합병해 이 부회장의 지분교환 효과를 극대화한다는 시나리오죠. 원샷법을 두고 증권사들은 그런 내용의 리포트들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최치훈 삼성물산 건설부문 사장이 서울 양재동 aT센터에서 열린 삼성물산 임시주주총회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사진 공동취재단
삼성은 지난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때 엘리엇 사태를 겪으며 주주총회의 어려움을 몸소 겪었죠. 이사회로 갈음할 경우 별 무리 없이 대기업집단 총수 일가가 원하는대로 될 가능성이 큽니다. ‘사외이사’가 있긴 하지만 거수기에 불과하다는 기사들은 수없이 봐오셨을 겁니다. 이럴 경우 주주들이 손해를 볼 수 있겠죠. ‘신속한 구조조정을 돕겠다’는 선의가 지배구조 강화에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는 여기서 시작됩니다. 물론 삼성만의 얘기가 아닙니다. 기존 기준(10%)를 넘되 20%는 넘지 않는 여러 합병 대상 회사들이 원샷법에 따라 새 선택지를 얻을 수 있습니다. 중견·중소기업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문제제기를 3개월간 야당 의원들이 해왔습니다. 사실 통상적인 법안 심사 과정이라 볼 수 있는데, 대통령이 압박에 나서면서 더 꼬여버린 측면이 있습니다. 의원들 중에는 “이렇게 주목받지 않았다면 진작 통과됐을 수도 있다”고 얘기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실제 지난해 11월 삼각분할합병과 역삼각합병을 가능하게 한 상법 개정인이 통과됐는데, 이 역시 경영권 승계를 도울 수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소리소문없이 통과됐죠.
원샷법에 대한 문제제기는 더불어민주당의 홍영표·홍익표 의원, 정의당의 김제남 의원이 주도해왔습니다. 디테일 싸움이었습니다. 그래서 추가된 ‘방지 조항’이 몇 개 있습니다. 성과라면 성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제일 큰 건 이겁니다.
“사업재편계획의 목적이 생산성 향상보다는 경영권의 승계나 특수관계인의 지배구조 강화,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의 계열사에 대한 부당한 이익의 제공 등에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 사업재편계획을 승인하거나 변경승인하지 아니하여야 한다.”
‘고려할 수 있다’나 ‘아니할 수 있다’와 달리 ‘아니하여야 한다’는 꽤 강력한 조항입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이상민 위원장이 1일 국회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법안을 처리하고 있다. 이날 법사위는 기업의 합병과 분할, 주식의 이전·취득 등과 관련된 절차와 규제 등을 간소화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기업활력제고특별법(일명 원샷법) 제정안 등 상정 법안을 처리했다. 이로써 여당이 경제활성화법의 하나로 제출해 숱한 논란을 낳은 원샷법은 본회의 통과라는 마지막 입법 관문만 남겨놓게 됐다. 연합뉴스
심사는 어떻게 할까요? 심의위를 두는데, 국회 소관 상임위에서 추천하는 경제전문가 4인도 포함하게 법안 내용을 보강했습니다. 심의에도 불구하고 ‘아…이게 악용이었구나’를 나중에 알게 되면 어떻게 할까요? 금전적 지원액의 3배를 과징금으로 사후에라도 내게 하는 내용을 추가했습니다. 과징금을 지원액의 3배가 아닌, 원샷법으로 인해 얻은 이익의 3배로 강화하자는 의견도 있었으나 지지를 받진 못했습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악용 여지는 여전합니다. 사후 판명됐을 경우 ‘의도가 처음부터 그거였다vs아니다’, ‘생산성 향상 목적이었는데 경영권 강화 효과가 부수적으로 따라왔다vs아니다’ 등 지난한 법정 다툼이 예상되기도 합니다. 이건 입법 영역 밖의 일로 보입니다. 처음부터 제정하지 않았으면 몰라도.
삼성 등 대기업집단이 악용할지에 대해선 현재로는 부정적 시각이 더 많습니다. 사업재편을 신청하는 순간 온 나라의 관심이 집중될 것입니다. 상임위에서 심의위 위원을 누구로 선정하느냐를 두고도 갑론을박이 이어질 것입니다. 사회적 평판 리스크가 더 클 것이라는 것이죠. 진보쪽 경제학자 중에 김상조 교수는 원샷법 활용이 경영권 승계에는 실익이 되지 않을 거라고 보고 있습니다. 원샷법에 대한 정부 용역을 수행했던 권종호 교수도 법 자체의 효과는 크지 않을 거라 보고 있습니다. 여러 수정으로 ‘누더기’가 됐기 때문이랍니다. 다만 시장에 ‘알림’ 효과가 클 거라고 봅니다. 기업 구조조정에 특별법을 만들만큼 정부가 신경쓰고 있다는 시그널을 줄 수 있다는 것이지요. 반면 전성인 교수의 의견은 다릅니다. 악용하고도 남을 거란 시각입니다. 삼성, SK 등 대기업집단 총수의 상상을 초월한 편법, 탈법을 수도없이 봐오지 않았냐는 거죠. 특검까지 가서 유죄가 확정됐어도, ‘원포인트 사면’으로 모든 게 ‘클리어’된 삼성의 예는 두고두고 트라우마로 남아있습니다.
시기의 문제이지, 원샷법 통과는 되긴 될 걸로 보입니다. 1일 법사위도 통과했습니다. 법이 통과되고 향후 어찌될지는 물론 두고 봐야 알겠습니다. 많이 활용될지, 악용될지, 어느 쪽이 더 많을지 등은 누구도 예단하기 어렵습니다. ‘재벌 특혜 논란’을 두고 3개월간 언론에 오르내렸던 원샷법. 이제 국회의 심사가 충분했는지에 대한 독자들 판단만 남았습니다.
송경화 기자
freehw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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