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대선의 해. ‘발랄한 전복을 꿈꾸는 정치 놀이터’ 정치BAR에서 20대 청년들을 모아 청춘기자단을 꾸렸습니다. 청춘기자단은 젊은 세대의 고민을 담아 쉽고 재밌고 참신한 정치 콘텐츠를 여러분에게 선보일 예정입니다. 그 첫번째 프로젝트는 더불어민주당 지역위원회가 기획한 5주 연속 대선주자 초청강연 참관기입니다.
“헐, 분위기 대박.”
2월 1일 저녁 7시, 서울 노원구청 2층에 들어서자마자 나온 탄성이었다. 파란 모자를 쓴 남녀노소의 사람들이 대강당에 들어서기 전부터 입구를 꽉 메우고 있었다. 이날 열리는 민주당 노원·도봉 지역위원회가 주최하는 대선주자 초청 강연회의 연사,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때문이었다. 약 3시간 전 발표된 반기문 전 유엔 총장의 불출마 선언 영향인지 당원들은 축제에 온 듯 즐거워보였다. 늦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서있을 자리조차 찾기 어려웠다. 스탠딩 공연에 간 것마냥 앞으로 헤치고 가보려고 했지만 실패. 아, 내 덕력이 부족했구나. 결국 기웃거리며 대강당 맨 뒤쪽에 서야 했다.
서울 노원구청 대강당은 강연 시작 전부터 서있을 자리도 없을 만큼 빽빽하게 들어찼다.
40~50대로 보이는 중년층 당원들이 청중의 대부분이었지만 젊은이들도 심심치 않게 눈에 띄었다. 사회자가 지체 없이 문재인 전 대표를 소개하자 박수와 환호성이 쏟아졌고 문 전 대표는 여유 있게 강연을 시작했다.
그의 강연에선 반복적으로 귀에 꽂히는 단어가 몇 가지 있었다. 예를 들면 “정권교체” 같은 것. 수업 중 선생님의 말버릇을 책상에 적어놓고 바를 정 자를 그리며 횟수를 세는 학생처럼(학창시절에 이런 경험 다 한번쯤 있지 않나) 그 말들을 세어봤다. 대선 유력후보인 문재인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그리하여 1시간 강연 동안 여러 번 언급하며 강조했던 그 핵심어들을 소개한다.
1. “정권교체” 15회: “정권교체의 선두에”
문재인 전 대표는 유독 “정권교체”라는 말을 힘주어 여러 번 강조했다. 지금의 촛불혁명을 완성하기 위해 “정권교체”는 가장 중요한 시대적 과제라는 것이다. 그는 4·19 혁명과 6월항쟁을 언급하며 두 번의 범국민적 시민항쟁은 국민들의 위대한 승리였지만, 4·19는 민주당 정부의 실패로, 6월항쟁은 야권분열로 정치가 실패하는 바람에 혁명을 완성시키지 못 했다고 설명했다. 그때 부패 청산을 하지 못한 한계가 지금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발현된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이자 환호성이 일었다.
“구시대, 구체제 반드시 청산하고 이제는 좀 정상적이고 상식적인 나라다운 나라, 대한민국을 새롭게 만들어 나가야 한다. 그리고 그 시작에는 정권교체가 있어야 한다.”
“와~ 와~”
“정권교체” 구호, 반응이 아주 좋다. ‘정상적’인 것은 무엇이고, ‘나라다운’ 것은 무엇인지 의문이 들더라도 우선은 넘어가자. 무엇보다 정권교체가 가장 중요하니까.
2. “우리 당(원들)” 20회: “문재인 정부 아닌 더불어민주당 정부”
그는 “정권 운영의 중심에 정당이 있어서 정권을 이끌고 성패에 대해서 정당이 책임지는 정치를 해야 한다”며 정당의 책임정치를 강조했다. “문재인 정부가 아닌 더불어민주당 정부로 평가받겠다”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진심은 이 뒷부분에 있었다. 그는 “정당책임정치의 핵심은 인사”라고 운을 떼며, “어떤 사람들과 국정을 이끌 것인지 비전이 미리 준비돼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노원을 지역구에서 왔다는 한 시민이 야권연대·공동정부에 대한 의견을 묻자 “우리 당에 좋은 후보들이 많다,” “우리끼리만 힘을 모으더라도 정권교체 해낼 수 있다고 자신한다”고 답하기도 했다. “정권교체라는 대의 앞에 모든 야권정당, 정치인들과 연대할 수 있다”고 말을 덧붙이기는 했지만 이미 우선순위는 분명하게 드러났다.
문재인 전 대표는 여유 있게 강연을 이어갔다.
3. “일자리” 18회: “공공부문 81만개 새 일자리”
새 나라를 만들겠다는 말은 많았지만, 해결해야 할 문제에 대한 언급은 거의 없었다. 거의 유일하게 짚은 것은 역시 ‘일자리’ 문제였다. 그는 정치적 민주주의에서 나아가 사회경제적 민주주의까지 요구하는 게 참여정부 때와 달라진 상황이라고 짚었다. 이를 성취하기 위해 ‘좋은 일자리’를 창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능한 모든 역량과 재정을 동원해 일자리 창출을 위한 위원회와 상황실 등을 만들어 ‘일자리 대통령’이 되겠다는 포부를 내놓았다. 그는 “이제 일자리는 정부와 공공부문이 가장 큰 고용주로서 주도적으로 만들어내야 한다”며 공공부문 주도의 일자리 확충을 약속했다. 공공부문의 81만개의 새로운 일자리. 전국 공시생들이 환영해야 할 소식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데 어쩐지 공무원 취업 경쟁이 극심해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4. “여성”, “성평등” 13회: “여심 흔들 저의 매력 포인트는…”
서울 서초구에서 왔다고 밝힌 한 중년여성이 “선거에서 이기려면 여심을 흔들어야 한다. 본인의 매력 포인트는?”이라는 질문을 던져 장내에 웃음이 터졌다. 문 전 대표는 잠시 멋쩍게 웃더니 “여성에게 약하다는 것이 저의 가장 큰 매력 포인트”라고 받아넘겼다.
그러나 그가 뒤이어 내놓은 여성정치 비전을 들어보면, 그가 모든 여성들에게 약해지는 것은 아닌 듯했다. 그는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 생산가능인구를 재생산”하여 “지금의 경제위기를 해결할 단초”를 지닌, 가임기 여성을 중요하게 보는 듯했다. 또 참여정부에서 배출된 최초의 여성 법무장관, 대법관, 헌법재판관, 총리 등을 열거하며 여성 지위 향상의 근거로 제시했다. 그러나 문 전 대표는 한 번 더 생각해보았으면 좋겠다. 이들 여성 엘리트들이 아이를 낳았을지, 혹은 아이를 낳은 뒤 모든 걸 다 잘하는 슈퍼우먼이 아니었다면 그 일을 계속해낼 수 있었을지 말이다.
5. “자부한다” 8회: 준비한 자의 자신감
왜 문재인이냐. 그는 자신 있게 네 가지 이유로 대답했다.
하나, 촛불민심이 요구하는 부패청산, 새로운 대한민국을 위한 대개혁에 대한 절박한 의지를 가지고 있다고 “자부한다.”
둘, 깨끗하고 정직하고 청렴한, 검증된 사람으로서, 부정부패, 정경유착 책임질 수 있는 적임자라고 “자부한다.”
셋, 정책 준비하고 로드맵 만들고 내각 구성하고 각종 정부기구들을 구성할 시간 없이 바로 대통령 직무에 들어가야 하는 것이 이번 대선이다. 가장 잘 준비된 후보라고 “자부한다.”
넷, 영남과 호남에서 동시에 지지받을 수 있는 사상 최초, 유일한 후보다. “이 정도면 지지해야 할 이유가 확실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역시나 수준급의 자기 어필과 팬 관리였다.
본인 말대로 문재인은 ‘준비된 후보’처럼 보였다. 강연은 준비된 시간을 딱 맞춰 끝냈고, 질의에 대한 답변도 머뭇거림 없이 세련되게 흘러나왔다. 앞선 실패의 경험 속에서 그는 이 자리에 올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준비된 모습’은 그것이 전부였다. 그가 최근에 내놓은 성과는 무엇일까. 작년의 총선 승리 정도 아닐까. 어쩌면 그는 자신의 성과로써가 아니라 다른 누군가의 ‘실패’ 덕분에 유력한 대선후보가 된 것은 아닐까.
“저는 수많은 공격을 받아왔고, 뒷조사도 많이 받았지만 털어도 먼지 나오지 않는 사람으로 검증받았습니다.” 그의 말마따나 그는 수많은 공격을 받아오며 방어에 탁월한 사람으로 성장했다. 이제는 “대세는 문재인”이라고 하는 시대다. 넘치는 자부심만큼 실력 있는 한 방을 보여줬으면 한다.
글·사진 다정(고함20 기자) tsb0231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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