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인스타그램엔 회색 니트티에 검은색 롱코트를 입은 남자가 빨간 목도리를 두른 여성과 손을 마주 잡고 있는 사진이 올라왔다. 최근 종영한 <티브이엔>(tvN) 드라마 속 ‘도깨비’ 공유와 ‘기타누락자’ 김고은을 흉내낸
안희정 충남지사와 그의 아내 민주원씨였다. “내가 ‘안깨비’(안희정+도깨비), 내가 ‘안유’(안희정+공유)”라며 이글거리는 안 지사의 눈빛은 “널 만난 내 생은 상이었다”, “비로 올게, 첫눈으로 올게”라는 드라마 속 대사를 당장이라도 쏟아낼 기세였다. 안 지사가 올린 패러디 사진 한 장에 누리꾼 6000여명이 “비로 올게, 첫눈으로 올게, 대통령으로 올게”라는 댓글을 달며 환호했다.
드라마 ’도깨비’의 주인공 공유를 따라한 안희정 충남지사의 사진.
‘양반의 고장’ 출신인 안희정
충남지사가 체면을 내려놨다. 두 손으로 꽃받침을 한 채 ‘추~’ 키스를 날리며 ‘충남빅시’(빅토리아 시크릿의 포즈를 흉내낸다는 뜻)를 자처했고, 백만 안티 무서운 줄 모르고 ‘충남엑소’(연예계에 아이돌 엑소가 있다면, 정치계 아이돌은 충남의 안희정이란 뜻)를 표방했다. 개그맨 양세형과는 탁구를 치고 입에 쌈을 문 채 청문회식 인터뷰(‘양세형의 숏터뷰’)를 했다. 잘생긴 외모에 한껏 점잖을 떨던 안 지사가 망가지자 누리꾼들은 말 그대로 ‘빵’ 터졌다.
‘노무현의 오른팔’, ‘30년 외길만 걸어온 정당인’. 정치권에선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는 안 지사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많은 유권자들이 “여자인 줄 알 정도로” 그를 몰랐다. 도올 김용옥은 그에게 ‘진지빤스’라는 별명까지 붙였다. 지난해 12월, 참모들은 적극적인 뉴미디어 전략 마련에 들어갔다. “안 지사의 진정성이나 본질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라면 뭐든지 오케이”였다. 오프라인 공식석상에선 중도·보수층을 아우르며 진중한 이미지를 고수하지만, 온라인에선 망가지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다. 3만명에 불과하던 안 지사의 페이스북 팔로어가 최근 11만명으로, 트위터 팔로어가 12만명에서 30만명 정도로 훌쩍 늘어났다. 자발적으로 콘텐츠 생산을 돕는 재능기부자들도 붙기 시작했다. 설 연휴 직전 ‘어르신 표심’을 잡기 위해 부모님 스마트폰에 깔아주자고 만든 ‘우리 희정이 앱’도 이들의 지원으로 만들어졌다.
어설퍼 보이거나 실수를 하더라도 괜찮다. 사람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갈 수만 있다면. 지난 2일 국내 유튜브에선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애플 아이폰의 인공지능서비스 ‘시리’가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화제가 됐다. “4차 산업혁명이 뭐예요?” 경상도 사투리가 섞인 문 전 대표의 질문을 시리는 몇 차례나 알아듣지 못하겠다고 한다. 문 전 대표는 당황하고, 보는 사람들은 웃음을 터뜨린다. 문 전 대표 쪽에선 요즘 ‘문재인 일일 영상’, ‘주간 문재인’을 기본으로 항공촬영용 드론까지 동원하며 다양한 동영상을 배포하고 있다. 지난 설에는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씨, 김병기 민주당 의원과 함께 20만8000원으로 전통시장에서 제수용품을 마련하는 ‘세 남자의 설날 장보기’ 영상을 내놓은 바 있다. 일반 예능프로그램과 흡사한 수준의 2회 분량이 공개돼 1주 만에 총 조회 수 20만회를 넘으며 인기를 끌었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 김병기 의원과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씨가 함께 촬영한 ‘세 남자의 설날 장보기’ 동영상 장면.
‘대선 재수생’이자 ‘대세론’을 형성하고 있는 문 전 대표에겐 지지자들의 자발성이 힘이다. 공식사이트 ‘문재인 닷컴’ 등 인터넷 포털 네이버엔 문 전 대표와 관련된 7개의 ‘공식’ 홍보 플랫폼이 등록돼 있지만, 재미난 홍보 짤방, 동영상 등은 오히려 ‘주갤’이나 ‘뽐뿌’, ‘오늘의 유머’, ‘화장빨’, ‘소울드레서’ 등 다양한 인터넷 커뮤니티와 ‘문재인 서포터즈’, ‘모두의 문재인’, ‘문티비’ 같은 페이스북 페이지 등에서 훨씬 더 많이 생산·유통된다. 최근 구글 플레이스토어에 등장한 ‘문재인 앱’ 역시 캠프에서 내놓은 공식 홍보 앱이 아니라 미국에 사는 문 전 대표 지지자가 자발적으로 만든 앱이다.
최근 시작한 ‘문아트 공모전’은 지지자들의 자발적 참여를 극대화하기 위한 홍보 이벤트성 기획이기도 하다. 이 공모전 안내 포스터엔 “문재인 홍보팀 디자이너의 실력이 이렇습니다. 여러분이 도와…아니 구해주세요”라는 디자이너의 호소와 함께, 디자이너의 실력이라곤 믿을 수 없는 조악한 수준으로 그린 문 전 대표의 얼굴이 담겨 있다. 캠프 쪽에선 앞으로 치러질 민주당 경선 출마 포스터는 물론, 선거 캠페인송 뮤직비디오도 이런 자발적 참여 등을 통해 제작한다는 계획이다.
집단지성을 발휘하며 문 전 대표를 위해 열성적으로 움직이는 지지자들은 때로 문 전 대표에게 ‘부담’이 될 때도 있다. 이들은 정치인이 문 전 대표를 조금이라도 비판하는 듯한 발언을 하면, 내용 불문, 여야 불문하고 수천통의 항의 문자와 ‘18원 후원금’ 폭탄을 던지는 등 ‘집단행동’에 나선다. 김부겸 민주당 의원이 당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이 발간한 개헌 관련 문건을 비판했다가, 쇄도하는 항의 문자 때문에 전화번호까지 바꿔야 했던 게 대표적이다. 문 전 대표와 비교적 가까운 의원들조차도 “문재인이라는 이름을 꺼내지 않는 게 상책이다”라며 걱정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에스엔에스에선 민첩함도 생명이다.
이재명 성남시장은 아무리 일정이 바빠도 ‘할 말’이 있으면 페이스북, 트위터 등을 통해 즉각 즉각 반응한다. 그에게 각종 에스엔에스 채널들은 왜곡된 공격을 받아내는 방패막이이자, 자신의 매력을 적극 발산하는 홍보 창구이기도 하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뒤 ‘변방 사또’에 지나지 않았던 그의 이름을 한양 도성에까지 널리 알린 일등 공신은 방송이나 신문이 아니라 트위터 계정이었다. 그는 37만여명의 팔로어를 둔 트위터, 23만여명의 팔로어를 둔 페이스북, 3만여명의 친구를 둔 카스 외에 10~20대가 즐겨찾는 인스타그램에서도 7만여명의 팔로어를 두고 있다. 인스타에서 문재인 전 대표, 안희정 충남지사가 3만여명의 팔로어를 둔 것에 견줘 두 배나 많은 수다.
이재명 성남시장 지지자들이 만든 이 시장의 ‘짤방’ 이미지.
이 시장 쪽은 “에스엔에스를 가장 먼저 활용한 축에 속하기도 하지만, 각 계정을 성격에 맞춰 운용하는 것이 비결”이라고 귀띔했다. 글 중심의 페북은 메시지의 허브다. 정치적 견해, 정책 발표 등 긴 글을 페북에 올린 뒤 연동된 트위터를 통해 확산시킨다. 젊은층이 이미지를 소비하는 인스타에선 ‘친근함’이 열쇠다. 이 시장의 어린 시절 사진, 가족사진 등이 올라오는 공간이다. 미용실에서 염색을 하다 졸고 있는 그의 사진엔 5천여명이 ‘좋아요’를 눌렀다. ‘#올림머리 아님’과 같은 센스 있는 ‘태깅’(열쇳말 달기)은 기본이다. “주부들이 많이 사용하는 카스에는 좀 더 인간적이고 말랑한 이야기를 많이 올리는 편”이다. 반바지를 입은 이 시장이 군 복무 중 휴가 나온 아들과 마주앉아 마늘을 까는 사진 등이 대표적이다. 그는 또 지난달말 ‘이재명 에스엔에스 콜센터’(fairsociety.co.kr)를 열었다. 지지자들이 에스엔에스에 정책 제안이나 질문 등을 올리면 이 시장 쪽이 답변해주는 방식으로 운영되는데, 하루 40~50건의 질문이 올라오고 답변이 97%가량 완료됐다.
자택에서 부인 김미경 교수와 페북 라이브 방송 중인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
이들에 비하면, 다른 주자들의 온라인 홍보 활동은 조기 대선 국면을 앞두고 이제 막 ‘셋업’ 단계에 들어선 정도다.
안철수 전 국민의당 상임공동대표의 경우 페이스북 라이브를 활용해 자신의 활동을 실시간으로 중계하고, 페리스코프와 페이스북 라이브를 통해 집에서 유권자들과 직접 대화하며 실시간 댓글에 반응하는 개인방송을 진행하는 데 온라인 홍보·소통의 초점을 맞춰왔다. 지난달 29일에는 페이스북 라이브 방송을 통해 ‘안철수 부부의 설날 민심 따라잡기-올 댓(글) 퍼포먼스’를 진행하기도 했다. 이 라이브 방송은 78만명이 봤다. 안 전 대표 쪽 채이배 국민의당 의원은 “집에서 부인 김미경 교수와 진행하다 보니 ‘뒤에 냉장고가 양문형이 아닌 게 인상적이다’라는 실시간 댓글이 달리더라.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어서 반응이 좋았던 것 같다”고 전했다. 하지만 20~30대 젊은층이 활용하는 인스타그램은 지난해 6월 이후로 업데이트가 되지 않는 등 ‘개점휴업’ 상태인데다, 트위터나 페이스북의 팔로어 숫자도 문 전 대표나 이 시장 등 선발 주자에 비해 뒤처지고 있다.
유승민 캠프가 ‘낭만닥터 김사부’를 패러디한 작품.
알기 쉽게 자신의 메시지를 알리는 데도 온라인은 유효하다.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의 경우도, 주로 페이스북에 ‘육아휴직 3년법’, ‘칼퇴근법’ 등 공약을 알기 쉽게 정리한 ‘카드뉴스’를 올리고, 출마 선언이나 주요 강연 등을 페이스북을 통해 생중계하는 온라인 홍보에 속도를 내고 있다. 특히 지난달 26일 대선 출마를 선언할 당시엔 <에스비에스>(SBS) 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를 패러디한 ‘국민닥터 유사부’란 온라인 홍보물을 만들어, “대한민국 경제를 대수술하겠다”는 공약을 드라마 대사처럼 전달하기도 했다.
남경필 경기지사도 페이스북 팬페이지인 ‘미남클럽’(미래세대와 남경필 클럽)을 통해 카드뉴스와 동영상 콘텐츠를 활발히 공유하고 있다. 모병제나 사교육 폐지 등 자신의 대표 공약들을 카드뉴스를 통해 일목요연하게 설명하는가 하면, 지난 3일에는 ‘금수저’ 논란에 정면 대응하는 동영상 콘텐츠를 올렸다. 이 동영상에서 남 지사는 미국의 대표적인 금수저이자 친서민 정책을 폈던 프랭클린 루스벨트를 소개하며 “같은 금수저라도 혼자만 배부를 것이 아니라, 같이 나누고 공유하겠다. 남경필은 공유하는 금수저다. 한국의 루스벨트가 되겠다”고 밝혔다.
공관에서 이사가는 남경필 경기지사가 자신의 페북에 올린 셀카 사진. 자칭 ‘남무룩’.
남 지사 캠프에서 온라인 홍보를 담당하는 이길호 전 청와대 온라인 대변인은 “유튜브에 계정을 만드는 등 방송 콘텐츠를 통해 젊고 유능한 이미지를 최대한 활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가 의류업체 광고(히트텍)를 패러디한 동영상.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지난해 12월 한 의류업체 광고(‘히트텍’)를 패러디한 촛불집회 참여 독려 영상을 만들어 에스엔에스에서 화제가 된 바 있다. 배우 김부선씨의 패러디 광고를 또 다시 패러디한 심 대표의 영상은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지금까지 좋아요 2만2000개와 조회수 63만회를 기록하고 있다. 크리스마스 이브에는 루돌프 복장으로 촛불집회에 참가한 사진을 에스엔에스에 올리는 등 젊은이들과의 소통에 공을 들이고 있다.
이정애 하어영 엄지원 이경미 오승훈 기자
hongbyu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