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한용 선임기자의 정치 막전막후 129
늘 “발목잡기”라고 비판하던 자유한국·바른정당
궐위선거 인수위 설치 반대…법률개정 끝내 무산
이명박·박근혜 당선인 시절 문제 제기 없던 조항
사사건건 야당 방해로 새 정권 출범부터 가시밭길
늘 “발목잡기”라고 비판하던 자유한국·바른정당
궐위선거 인수위 설치 반대…법률개정 끝내 무산
이명박·박근혜 당선인 시절 문제 제기 없던 조항
사사건건 야당 방해로 새 정권 출범부터 가시밭길
박근혜 전 대통령 취임 이후 탄핵 전까지 4년 동안 박근혜 전 대통령과 새누리당 사람들은 ‘발목잡기’라는 단어를 입에 달고 살았습니다. 야당이 대통령과 정부의 발목을 잡는 바람에 박근혜 정부가 제대로 일을 할 수 없었다는 주장입니다. 친여 성향 언론과 논객들도 박근혜 정부가 무능한 원인을 ‘야당의 발목잡기’ 탓으로 돌렸습니다.
5월9일 대통령 선거를 한 달 앞두고 여론조사 추세를 보면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나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19대 대통령에 당선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은 야당이 될 가능성이 그만큼 높다는 얘깁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은 19대 대통령과 새로운 정부가 국정을 잘 이끌어갈 수 있도록 적극 협력할까요?
그럴 리가 없습니다. 과거를 보면 미래를 알 수 있습니다. 1997년 대선 패배로 여당에서 야당이 된 한나라당은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 대해 사사건건 반대했습니다. 국무총리 임명동의를 제대로 해주지 않았습니다. 툭하면 장외투쟁을 벌였습니다. 이재오 원내대표, 박근혜 대표 등이 강경 투쟁을 이끌었습니다.
2007년 대선 패배로 여당에서 야당으로 역할이 바뀐 민주당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우리나라 정치 문화에서는 아직도 야당이 대통령과 정부·여당에 대해 강하게 반대하지 않으면 야당 정체성을 의심받는 것이 현실입니다.
느닷없이 발목잡기 얘기를 꺼낸 것은 대통령 선거가 끝나지 않았는데도 야당의 발목잡기라는 고질이 조기에 발현하는 조짐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통령직 인수에 관한 법률’ 개정을 둘러싼 갈등입니다. 무슨 일인지 알기 위해서는 ‘대통령직 인수에 관한 법률’과 이 법률에 규정된 국무위원 추천과 제청 절차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필요합니다.
우리 헌법은 대통령이 국무총리의 제청을 받아 국무위원을 임명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2005년부터 모든 국무위원들에 대한 인사청문회 제도를 도입하면서, 대통령이 바뀌는 정권 이양기에는 대통령 당선인이 ‘국무총리 후보자’의 ‘추천’(제청이 아님)을 받아 ‘국무위원 후보자’를 지명하고 국회에 인사청문회를 요청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 뒤 대통령이 공식 취임하고 국회의 동의를 받은 국무총리가 임명되면, 국무총리가 인사청문회를 마친 국무위원 후보자를 ‘제청’해서 대통령이 국무위원을 임명하고 있습니다.
추천과 제청을 분리하는 이런 복잡한 절차는 대통령 교체기라는 특수한 시기에 위헌 시비를 비켜가면서 국무위원 임명을 가급적 앞당겨 새 정부 출범을 돕기 위한 장치입니다. 이에 따라 2007년 당선된 이명박 전 대통령과 2012년 당선된 박근혜 전 대통령은 당선인 시기에 국무위원 후보자들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대통령 취임 뒤 곧바로 국무총리의 ‘제청’을 받아 국무위원들을 임명했습니다.
하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으로 ‘대통령 궐위에 의한 선거’가 치러지면서 큰 문제가 생겼습니다. 대통령 궐위에 의해 치러지는 대통령 선거에서는 후보자가 당선되면 신분이 곧바로 대통령으로 바뀌게 됩니다. ‘대통령 당선인’이 없으니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를 구성할 수 없습니다. 당연히 국무총리 후보자의 국무위원 후보자 ‘추천’과 대통령 당선인의 지명, 국회 인사청문회 요청도 할 수가 없습니다.
‘인수위 없는 차기 정부 출범,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토론회가 김진표 더불어민주당 의원 주최로 2월20일 열렸습니다. 모든 참석자들은 대통령 궐위에 의한 선거에서 뽑힌 대통령도 임기 개시 직후 인수위원회를 설치할 수 있도록 ‘대통령직 인수에 관한 법률’을 개정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습니다.
이 즈음에 변재일 원혜영 강훈식 김진표 김관영 의원이 각각 대통령직 인수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제출했습니다. 대체로 당선 즉시 임기가 개시되는 대통령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를 설치할 수 있도록 하고 국무총리 후보자의 추천으로 국무위원 후보자를 지명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입니다.
원혜영 의원 법안은 정당의 대선후보는 후보자가 된 시점부터 인수준비위원회를 설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김관영 의원 법안은 국무총리 후보자가 국무위원 후보자를 추천하고 이를 현직 국무총리가 제청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새 대통령이 국무위원 후보자를 지명하려면 국무총리 후보자의 추천과 현 황교안 국무총리의 제청을 받도록 하자는 제안입니다. 현직 국무총리의 제청을 받도록 하자는 것이 좀 특이하지요?
아무튼 3월28일 국회 안전행정위원회에서는 4당 합의로 대통령 궐위에 의한 선거에서 선출된 대통령이 45일 동안 인수위원회를 설치하고 국무총리 후보자의 추천으로 국무위원 후보자를 지명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대통령직 인수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의결했습니다. 소관 상임위원회를 통과했으니 법률 개정은 시간 문제로 보였습니다.
그런데 3월29일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덜컥 제동이 걸렸습니다. 몇몇 의원이 국무총리 후보자가 국무위원 후보자를 추천하는 것이 헌법 87조 ‘국무총리의 국무위원 제청’에 위배되어 위헌의 소지가 있다는 주장을 편 것입니다.
문제를 제기한 의원들은 바른정당 오신환 의원, 자유한국당 윤상직 의원, 바른정당 여상규 의원, 그리고 바른정당 소속인 권성동 법사위원장이었습니다. 이들은 “위헌의 소지가 있으니 소위원회로 넘겨 심도있는 논의를 거쳐야 한다”거나, 김관영 의원 법안대로 “국무총리 후보자의 추천과 현직 국무총리의 제청을 거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국회 속기록에는 권성동 법사위원장의 발언이 이렇게 남아 있습니다.
“잘 들어 보세요. 그렇기 때문에 추천하면 현직 국무총리가 제청을 하고 대통령이 지명해서 국회에다가 청문 요청하는 것이 문제의 소지를 없애는 것이다 저는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4당 합의사항도, ‘인수법이 잘못됐으니까 국무총리 후보자가 추천하고, 그 다음에 국무총리가 제청하고 대통령이 지명하는 방식으로 바뀌어야 된다’라고 우리 국민의당의 김관영 원내수석부대표도 그렇게 개정안을 발의를 했고, 바른정당의 주호영 원내대표도 ‘그렇게 하라고 4당이 합의를 본 것이다’ 이렇게 하는데 안행위 심사 과정에서 4당 합의사항이 빠져 버린 거예요.
그래서 지금 바른정당과 국민의당에서 이 부분에 대해서, 김관영 수석도 문제 제기를 지금 하고 있는 그런 실정입니다. 그래서 이 부분에 대해서는 좀 논의를 뒤로 미루겠습니다. 논의를 좀 미뤄놓고 우리가 결정을 할 테니까, 나머지 법률안에 대해서 먼저 처리하고―뒤에 쭉 기다리고 있으니까―법사위 마지막에 다시 한번 논의하도록 그렇게 하겠습니다.”
위헌론을 주장하는 의원들의 주장은 결국 국무위원 후보자의 ‘추천’과 ‘제청’을 분리하도록 한 현행 대통령직 인수에 관한 법률이 위헌이라는 것입니다. 2007년 당선된 이명박 전 대통령과 2012년 당선된 박근혜 전 대통령이 대통령 당선인 시기에 국무총리 후보자의 ‘추천’을 받아 국무위원 후보자를 지명한 뒤 국회에 인사청문회를 요청한 것도 몽땅 다 위헌이었다는 의미입니다.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주장입니다.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이 집권 여당이었던 시절에는 위헌 얘기를 하지 않다가 이제 야당이 될 것 같으니까 ‘사실은 그동안 대통령직 인수법이 위헌이었다’는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어쨌든 국회 법사위원회는 이 문제를 3월30일 오후 열리는 국회 본회의 직전 다시 논의할 예정이었습니다. 30일 오전 정세균 국회의장과 4당 원내대표들이 만나서 이 문제에 대한 합의를 시도했습니다. 그러나 주호영 바른정당 원내대표가 위헌론을 강하게 제기하며 법률 개정에 반대하고 나섰습니다.
결국 원내대표들은 “대통령직인수법을 개정하지 않고 현행법 하에서 차기 대통령이 인수위를 설치해 운영할 수 있도록 하자”고 합의했습니다. 현행 대통령직인수법 제6조는 대통령 임기 시작일 이후 30일 범위에서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존속’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차기 대통령이 이 ‘존속’ 조항을 근거로 인수위원회를 설치하더라도 국회에서 문제삼지 않겠다고 정치적 합의를 한 것입니다.
과연 이들의 정치적 합의는 유효한 것일까요? 김진표 의원과 한국정치법학연구소가 4월6일 ‘대통령직인수법 개정 없이 새 정부 인수위 출범이 가능한가’를 주제로 다시 토론회를 열었습니다.
송기복 청주대 정치안보국제학과 교수가 발표를 하고, 노동일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노명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목진휴 국민대 행정정책학부 교수, 손혁재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 조경호 국민대 사회과학대학장 등이 토론을 했습니다.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는 대통령이 존속 조항을 근거로 인수위원회를 설치·운영하는 것은 명백한 위법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대통령이 인수위원회를 설치해 운영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대통령직 인수에 관한 법률을 개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정부에서도 현행 법의 존속 규정을 근거로 차기 대통령이 인수위원회를 설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의견을 국회에 알려왔습니다. 3월30일 국회의장과 원내대표들의 정치적 합의는 물거품이 된 것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김진표 의원은 정세균 국회의장과 각 정당 원내대표들에게 4월 중에 원포인트 국회를 열어서 대통령직 인수에 관한 법률을 개정하자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5·9 대통령 선거 때문에 국회 소집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대통령 선거 후보 등록은 15일과 16일입니다.
대통령직 인수에 관한 법률 개정이 사실상 무산됨에 따라 5월9일 새로 뽑히는 대통령은 정권 인수 절차 없이 대통령 임기를 시작해야 합니다.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새 대통령은 당선 직후 국무회의를 소집해 대통령령을 개정하고 정권인수를 위한 자문위원회 정도를 설치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또 청와대 비서실을 신속히 개편해 정권인수위원회 역할을 맡겨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기구로 정권을 인수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국회 청문회와 본회의 표결을 거쳐 국무총리를 임명할 때까지는 국무위원 후보자를 단 한 사람도 지명할 수 없습니다. 물론 국회 인사청문회도 요청할 수 없습니다. 새 정부 구성과 제대로 된 출범은 한없이 늘어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새 대통령은 새로운 국무위원들을 임명할 때까지 어쩔 수 없이 박근혜 정부에서 임명된 국무위원들과 함께 일하는 일종의 동거체제를 구축해야 합니다. 굳이 비유한다면 새 정부는 수선도 하지 않은채 나침반 없이 일단 출항을 해야 하는 배와 같은 신세로 전락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사태를 뻔히 예상하면서도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의 일부 의원들은 대통령직 인수에 관한 법률 개정을 무산시켰습니다. “어차피 우리는 이제 야당이다. 야당의 임무는 발목을 잡는 것이다. 지금부터 미리 미리 연습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참으로 답답한 일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이든 ‘안철수 대통령’이든 앞날이 캄캄한 것입니다.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
[관련 영상] 한겨레TV | 더정치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지난 6일 오후 전남 목포신항을 방문, 인양된 세월호 현장을 둘러본 뒤 목포신항의 세월호 유가족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가 지난 6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관훈토론회에서 패널들이 질문에 답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주호영 바른정당 대표권한대행이 지난 3월 31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머리발언을 하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가 지난 5일 서울 중구 반얀트리호텔에서 열린 '한경 밀레니엄 포럼'에서 '새로운 대한민국의 비전과 과제'에 대해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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