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2차토론 이어 20일에도 문재인 향해 공세 이어가
‘주적’ 표현 1995년에 처음 실렸다가 2004년 삭제
MB때 되살리자 주장 있었지만 ‘우리의 적’으로 정리돼
민주당 “색깔론” 비판…유승민 “문 후보 생각 물은 것”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가 20일 오후 서울 중구 남대문시장에서 대통령 선거 유세를 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바른정당 유승민 대선 후보가 19일 오전 서울 노원역 앞에서 출근길 시민들을 상대로 한 유세를 마친 뒤, 국민의당 안철수 대선 후보 선거운동원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바른정당 제공
“북한이 주적인가”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가 19일 열린 대선주자 텔레비전 토론회에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에게 던진 질문이다. 이 질문의 여파가 거세다. 정치권은 물론 인터넷 공간에서도 주적 논란이 뜨겁다. 급기야 20일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북한 주적은 대통령이 될 사람이 할 말이 아니다”라는 전날 문재인 후보의 발언에 “동의 안한다. 이미 국방백서에 주적으로 명시돼 있다”며 공방에 뛰어들었다.
대선주자 토론회에서 문 후보는 “‘주적’ 같은 표현은 대통령이 할 일이 아니다”며 “국방부는 (이야기) 할 수 있지만, 대통령은 남북관계를 풀어가야 한다”고 답했다. 이를 두고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20일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한국방송기자클럽 토론회에서 “지금은 남북대치 국면이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은 주적이다. 이미 국방백서에 북한은 주적이라고 명시돼 있다”고 문 후보와 각을 세웠다. 단 안 후보는 “북한은 주적이면서 동시에 평화통일을 이루기 위한 대화 상대라는 점에 우리 모두의 고민이 있다”고 덧붙였다. 박지원 국민의당 대표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어제 티브이(TV)토론회에서 주적이 어디냐는 물음에 (문 후보가) 답변을 주저했다. 그런데 엄연히 국방백서에 주적은 북한이라고 나왔다"며 문 후보를 공격했다. 안보문제를 부각해 문 후보와 차별화를 꾀하며 ‘보수 표심’을 잡으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도 이날 경기 평택 2함대를 방문해 “북한을 주적이라고 말하지 못하는 사람이 과연 국군 통수권을 쥐는 게 맞느냐"며 문 후보를 몰아붙였다.
공방은 국방백서에 ‘주적’이 있느냐는 ‘팩트체크’로 옮겨 붙었다. 유승민 후보의 주장과 달리 국방부가 지난 1월 펴낸 ‘2016 국방백서’에 주적이라는 단어는 없다. 대신 “북한 정권과 북한군은 우리의 적”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주적’은 국방부도 폐기해 사용하지 않는 용어이고,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 등 북한 정권 핵심과 북한군을 북한 주민과 분리했다.
북한을 ‘주된 적’으로 지목한 이 용어는 지난 1994년 3월 판문점에서 열린 제8차 남북 실무접촉 당시 북한 쪽 박영수 대표의 ‘서울 불바다’ 발언을 계기로, 1995년 국방백서에 처음 실렸다. 이후 김대중 정부 시절 ‘주적’ 개념에 대한 논란이 일었고, 국방부는 2001~2003년 국방백서를 내지 않았다. 그리고 참여정부는 2004년 국방백서에서 이 용어를 삭제했다. ‘주적’은 ‘직접적 군사위협’으로 바뀌었고 대체로 이 범주 안에서 기술됐다.
군에서 ‘적’이라는 말이 다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0년이다. 천안함 사건으로 보수진영을 중심으로 ‘주적’ 표현을 되살려야 한다는 주장이 거셌다. 하지만 김태영 당시 국방부 장관은 그해 4월30일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주적은 군 내부 문서나 장병들 정신교육에서는 충분히 쓸 수 있는 표현’이지만 대외용 문서에 “다른 나라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주적’이라는 그런 표현을 쓰는 것은 우리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문제”라며 난색을 보였다. 결국 이 논란은 북한을 ‘우리의 적’으로 정리하는 것으로 그쳤고, 이 표현은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
박광온 민주당 선대위 공보단장은 이날 기자들에게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도 국방백서는 ‘직접적이고 심각한 위협, 적’ 이렇게 표현돼 있지 주적이라고 표현하지 않고 있다”며 “이건 안보관 관한 문제 아니라 색깔론에 가까운 정치 공세”라고 반박했다. 우상호 민주당 원내대표도 정례 간담회에서 “2005년 3월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가 방미 중 “주적 표현이 없어진다고 하더라도 당장 우리 군의 변화는 없을 것이며 군은 안보의식을 갖고 든든하게 나라를 지킬 것”이라고 보도한 한 기사를 언급하며 “당시 보도에 실린 사진을 보면 박 전 대통령 옆에 유승민 후보가 서 있다”고 꼬집었다.
주적 논란이 계속되자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는 기자들에게 “어제 한 질문은 과거 정권에서 주적 개념이 유동적이었냐를 물은 게 아니고 문 후보에게 ‘북한이 우리의 주적이라고 생각하느냐. 안 하느냐’ 이걸 물은 것이다”고 말했다.
이승준 김지은 엄지원 기자 gamja@hani.co.kr[관련 영상] 한겨레TV | 더정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