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의 ‘다자외교’ 첫 데뷔 무대, 주요20개국 정상회의(G20)의 막이 8일(이하 현지시각) 내렸습니다. 세계경제를 쥐락펴락한다는 나라들이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이런 다자외교 무대에선 두 나라 정상만 만나는 양자회담보다 신경쓸 일이 많고, 자리배치를 두고 미묘한 신경전도 벌어집니다. 공식 일정 기간 지면에 다 담지 못한 이번 G20의 무대 뒤로 정치BAR가 안내합니다.
6일 함부르크 슈미트 공항에서 현지관계자가 가져온 환영꽃다발을 건네 받으려던 문재인 대통령이 “대통령 부인께 드릴 꽃다발”이라는 설명에 멋쩍어하며 크게 웃음을 터뜨리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 내 꽃이 아니었어? 하하핫…
북한 핵·미사일 문제 해결 과제를 안은 문 대통령이 함부르크 슈미트 공항에 착륙했던 6일.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공식일정(7~8일) 전후로, 한·미·일 3국 만찬회동에 중국·일본·러시아 양자회담 등 ‘부담 만발 시간표’를 받아든 문 대통령의 어깨는 굳어 있었다. 비행기에 내린 문 대통령 부부를 마중 나온 독일 쪽 관계자가 꽃다발을 내밀었다. 무심코 먼저 손을 내민 문 대통령.
독일 쪽 관계자가 “실은 대통령 부인에게 전달하려던 꽃”이라고 말하자, 문 대통령은 파안대소하며 뒤로 물러났다. 대통령도, 꽃다발을 건네려던 이도, 지켜보는 사람들도 터져나온 웃음을 참지 못했고, 사진기자들의 플래시는 연달아 터졌다. 긴장을 풀어주는 유쾌한 시작이었다.
문 대통령은 청와대 내각 임명장 수여식 때 ‘배우자나 가족을 함께 참석시켜서 꽃다발을 주자’고 제안한 당사자다. 장관의 배우자에게 꽃다발을 직접 건네면서 “제 아이디어”라고 ‘깨알자랑’을 하곤 했었던 문 대통령이 정작 본인이 꽃다발에 먼저 손을 내민 것이다. G20 회의 준비에 얼마나 몰두해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6일 한-미-일 만찬 회동 기념사진. 청와대 제공
■ ‘이니 블루’부터 ‘트럼프 레드’까지
“100% 우연이다. 그래서 ‘그레이트 케미스트리’ 아니겠느냐.” 청와대 관계자는 9일 ‘절대 사전에 짠 것이 아니었다’고 강조했다. 지난 6일 독일 함부르크 주재 미국총영사관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회담 때, 차분한 심홍색 넥타이를 맨 문재인 대통령, 밝은 다홍색의 넥타이를 맨 트럼프 대통령과 달리 아베 총리만 짙은 남색에 점이 박힌 넥타이를 메며 ‘따돌린’ 것을 두고 하는 얘기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말 한-미정상회담 때는 파란색 넥타이를 맸다. 더불어민주당의 상징색에 평소 ‘이니블루’라고 할 만큼 즐겨 매는 색이다. 또 성공과 신뢰를 상징하는 파란 색을 통해 한-미 정상회담의 성공을 기원한 것이다. 그 땐 백악관 쪽과 사전조율을 거쳐, 트럼프 대통령도 함께 푸른 계열 넥타이를 매고 나타나 ‘한미동맹’의 공고함을 드러내는 ‘깔맞춤 외교’를 보여줬다.
하지만 이번에는 사전조율은 따로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전 조율이 있었다면, 세 나라가 함께 만나는 데 일본 쪽만 따로 할 리가 있느냐”는 게 청와대 관계자의 해명이다. 평소 붉은 넥타이를 즐기는 트럼프의 취향이야 널리 알려져 있지만, 문 대통령의 현지 코디가 우연히 겹쳤다는 것이다. 어쨌거나 두 대통령의 통한 ‘패션’은 한-미-일 3국 중 ‘한미 공조’에 관심을 붙드는 데 일조했다.
7일 오후 독일 함부르크에서 개막한 G20에 참석한 정상들이 회의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 문 대통령과 마크롱의 공통점은?
7일 G20 공식 환영 행사날, 독일 G20 정상회의 기념사진 촬영 때 문 대통령은 맨 앞줄 오른쪽 끝에 섰다. 첫번째 줄 가운데 선 주최국인 독일의 메르켈 총리 바로 오른편엔 중국 시진핑 주석, 러시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순으로 낯익은 얼굴이 눈에 띄는 반면 문 대통령은 왜 끝일까?
힌트는 맨 앞줄 왼쪽 끝, 문 대통령과 대칭점에 선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에서 얻을 수 있다. G20회의 관계자 전언에 따르면 자리는 개최국에서 정하고 구체적인 기준을 공식적으로 밝힐 수는 없지만, 대체로 주요국 가운데 재임기간이 긴 순서대로 가운데에 배치한다는 원칙을 따랐다는 것. 문 대통령과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 5월 취임한 ‘새내기’ 대통령이다. 1월 취임한 트럼프 대통령도 마크롱 대통령 바로 옆에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시진핑 주석은 2013년, 푸틴 대통령은 2012년 취임했기 때문에 가운데 쪽 자리를 배정받았다. 앞 줄은 국제 수반 중에서도 대통령, 두번째 줄은 총리, 그 뒤는 초청국, 마지막 줄은 국제기구 수장 순이며 나머지 자리는 번호표대로 배정한다고 한다.
지난 5월 나란히 취임식을 치른 문 대통령과 마크롱 대통령은 5년 임기를 거의 함께하게 된다. 문 대통령은 8일 마크롱 대통령과 정상회담에서도 “같은 시기에 프랑스, 한국의 대통령이 됐으니 공통점이 많다. 특히 가장 중요한 국정 과제를 둘 다 일자리 창출로 갖고 있는 것도 같다. 저와 정치 철학이 아주 비슷하다”며 공통점을 강조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9월 서울에서 아셈(ASEM) 경제장관회의를 계기로 한 한·프 경제장관회담에 대한 기대감을 나타냈다. 문 대통령은 마크롱 대통령에게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마스코트를 선물하며 프랑스 관광객들이 많이 찾아와달라고 ‘세일즈’하기도 했다.
■ 중국, 우리 보고 있니? 뜨거운 ‘삼각관계’
7일 환영행사날 기념사진 촬영을 마친 각국 정상들은 콘서트홀 ‘엘브필하모니’로 자리를 옮겼다. 메르켈 총리가 문화행사로 마련한 클래식공연을 관람하기 위해서였다. 정상들이 속속 좌석에 자리를 잡기 시작했고, 문 대통령 부부 옆에는 트럼프 대통령 부부가 나란히 서 있었다. 이때 뒤를 흘깃 돌아본 트럼프 대통령은 시진핑 주석이 뒤에 와서 선 것을 확인한 뒤, 갑자기 자신의 왼손을 가로질러 뻗어 문 대통령의 오른손을 잡아당겼다. 트럼프 대통령과 문 대통령 사이엔 트럼프 대통령의 부인 멜라니아 트럼프가 있었기 때문에, 손을 쭉 뻗어야 하는 다분히 의도한 악수였다.
문화공연에 참석한 문 대통령 부부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부부와 나란히 서 있다. 아직 시진핑 중국 주석은 뒤편에 자리를 잡지 않은 상태다. 사진 청와대 제공
문 대통령의 손을 끌어당기는 트럼프 대통령. 뒤편에 자리한 시진핑 중국 주석 부부의 모습이 보인다. 사진 청와대 제공.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손을 잡은 모습을 뒤에서 시진핑 중국 주석이 지켜보고 있다. 사진 청와대 제공.
트럼프 대통령이 문재인 대통령의 손을 두드리며 친분을 과시하고 있다. 사진 청와대 제공.
갑자기 손을 잡힌 문 대통령이 웃으며 트럼프 대통령을 쳐다보자, 트럼프 대통령은 잡은 손을 흔들었다. 사람들의 박수가 터져나왔다. 이때 트럼프 대통령 뒤에 선 시진핑 주석의 시선은 분명히 두 사람의 맞잡은 손으로 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정도로도 너무 짧은 시간이라고 여겼는지, 왼손을 놓지 않은 채 오른손까지 가져와 겹치며 문 대통령의 손을 두어번 가볍게 툭툭 두드리는 것으로 친근함을 과시했다. 문 대통령은 활짝 웃었다. 만족한 트럼프 대통령은 몸까지 돌려 뒤를 휙 돌아봤다. 미소를 잃지 않은 시 주석이 짐짓 모르는 척 눈을 피한 채 자리에 앉는 모습은, 그대로 카메라로 전 세계에 생중계됐다.
대북 제재 공조 및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문제, 동북아 문제에서 미국의 역할, 무역·통상 문제 등을 놓고 중국과 미묘한 갈등을 이어가고 있는 트럼프 미 대통령이, 시 주석 앞에서 한-미동맹을 강조하고 문 대통령과의 친밀함을 한껏 과시한 ‘무대 뒤 외교’인 셈이다.
덧붙여 트럼프 대통령의 왼쪽 편에 서서 한-미-중의 ‘삼각관계’를 고스란히 지켜본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표정도 재밌다. 트럼프 대통령이 ‘악수’를 마치고 환호 속에 보란 듯 뒤를 돌아보자, 상황을 파악한 마크롱 대통령과 문 대통령은 크게 번지는 웃음을 숨기지 못한다. 그래도 예의상 시 주석 쪽을 돌아보지 않는 문 대통령과 달리, 마크롱 대통령은 대담하게 함께 몸을 틀어 시 주석의 반응을 훔쳐보면서 싱글벙글 호기심을 드러냈다.
■ G20 ‘인기인’…캐나다 트뤼도 총리와 즉석만남
G20회의에서 문 대통령의 인기는 높았다. 회담요청을 한 곳은 약 20개국이고, 이중 공식 통로를 통한 요청만 약 15개국이었다고 청와대 관계자는 전했다. 현지에서 일정도 계속 추가됐다. 취임 뒤 첫 참석인만큼 이번 기회에 ‘상견례’를 하려는 나라들도 많았던 까닭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취임 초기인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회담 요청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현지에서 추가한 일정 중 관심을 끄는 것은 캐나다의 쥐스탱 트뤼도 총리와의 만남이었다.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40대의 젊은 나이로, 만 39살로 대통령에 당선된 마크롱과 함께 세계 정상 중 ‘젊은 피’로 관심을 받는 인물이다. 예정에 없던 일정이라, G20회의 세션 참석 도중 시간을 쪼개 만나는 ‘약식’ 회담으로 진행됐다. 다만 약식이라고 해서 가벼운 것은 아니다. 이 자리에서 캐나다 쪽에 대북 공조를 요청한 문 대통령은 “북한이 이번에 발사한 미사일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라면 미국 뿐아니라 캐나다도 사정범위에 들어갈 수 있다”며 “6·25 이후 최고의 위기” 등 묵직한 발언을 쏟아냈다. 트뤼도 총리는 한국계 캐나다인 임현수 목사가 북한에 억류된 사실을 거론하며 “북한에 대한 여러 제재에 동참하겠다”고 답했다. 문 대통령은 이외에도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UN) 사무총장, 도널드 투스크 유럽연합(EU) 상임의장과의 만남 등 일정에 없던 바쁜 스케줄을 소화했다.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강경화 외교부 장관 임용을 두고 “제 밑의 직원을 데려간 것은 논의를 좀 해봐야겠다”고 농담을 건네기도 했다고 한다.
정유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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