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BAR_커버스토리_홍준표 사당화 논란 1년
암덩어리·연탄가스·영감탱이…
서민적 용어를 쉬운 비유법으로?
고전중인 남경필, 첫 공격이 홍 대표
의원들 “홍, 입 열면 표 떨어지는 소리
지역 적군보다 서울 아군 더 무서워” 독단 홍 대표
창원시장에 앙숙 안상수 배제하고
측근 중 측근 조진래 낙점 무리수
공천 반발 혹은 거슬릴 땐 제명 절차
핵심지 인재영입 맡은 지 100일
한 명도 ‘필승 후보’로 못 만들어 당대표 재도전 욕심
2022년 대선 ‘5개년 플랜’ 순항?
서울시장 출마 촉구 중진들에
“다음 총선 험지 차출” 으름장
여의도연 급기야 홍 ‘변신 프로젝트’
TK 한 의원 “재도전 땐 당 문 닫아야” 언론이 무심했다. 지난달 31일은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보수우파 대통합 대통령”을 선언하며 대선후보직을 수락한 지 1년째 되는 날이었다. 그게 뭐 대단한 날이냐고 할 수 있지만, 요즘 자유한국당 상황에선 정권을 내준 것보다 더 뼈아프다고 말하는 날이다. 당내에선 ‘홍준표 사당화’ 논란의 기원을 당 대표 선출일(2017년 7월3일)이 아닌 대선후보 선출일로 보는 이들이 있다. 2022년 대선을 내다본 ‘홍준표 5개년 플랜’의 서막이 이때부터 열렸다는 것이다. 그런 홍 대표도 요즘은 초조해하고, 다급함을 드러내거나 외로움을 탄다는 게 자유한국당 인사들의 전언이다. 스스로 6·13 지방선거 핵심지역 인재영입위원장을 떠맡은 지 5일로 100일째. ‘곰도 사람으로 변한다’는 이 기간, 홍 대표의 영입 제안을 받아들여 ‘필승 후보’로 변신한 이는 단 한 명도 없다. ■ 홍준표식 막말 1년 돌아보면 신통치 않은 1년이었다. 홍 대표는 휴일이던 지난달 31일 아침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다. 남들은 몰라주는 자신의 대선후보 선출 1주년을 자축하는 것이라 해도 무방한 내용이었다. “나를 막말 프레임에 가둔 것의 출발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살했다는 말에서 출발합니다. 서거했다는 말을 했다면 그런 프레임이 등장하지 않았겠지요. 그 뒤 향단이, 바퀴벌레, 암 덩어리, 연탄가스, 영남지역에서는 친밀감의 표시로 흔히 하는 영감탱이 등 우리가 통상 쓰는 서민적 용어를 알기 쉬운 비유법으로 표현을 하면 할 말 없는 상대방은 이것을 품위 없는 막말이라고 매도를 해왔습니다. 나는 막말을 한 일이 없는데도 그 상황에 가장 적절한 비유를 하면 할 말 없는 상대방은 언제나 그걸 막말로 반격을 합니다. 참 하기 어려운 것이 한국 정치판입니다. 오늘 아침에는 그동안 꼭 하고 싶었던 말을 하고 나니 속이 시원합니다.” 여야 정치권을 뒷목 잡게 했던 자신의 발언을 키워드 삼아 지난 1년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직접 추린 리스트이니 ‘막말의 순도’는 믿을 만한 수준일 것이다. 홍 대표는 속이 시원해졌는지 몰라도, 서민들은 졸지에 주변 사람에게 아무렇지 않게 바퀴벌레, 암 덩어리, 연탄가스, 영감탱이라고 말하는 이상한 사람들이 됐다.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서민과 중산층을 위한 신보수주의 정당으로 거듭나겠다”더니, 고쳐지지 않는 자신의 막말 습관을 서민에게 덮어씌운 셈이다. 홍준표식 비유법은 정도가 지나쳐 눈살 찌푸리게 하거나, 남은 점수마저 까먹는 역풍을 부르곤 한다. 자유한국당으로 복당한 남경필 경기지사가 지난 2일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다. ‘보수의 품격을 다시 생각한다’는 제목이다. “보수를 걱정하는 분들이 많다. 보수는 달라져야 한다. 언어의 습관부터 고쳐야 한다. 사용하는 언어조차 품격을 갖추지 못한다면 국민은 보수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마땅히 비판해야 할 문제를 거친 표현으로 인해 본질을 훼손시킨 일이 반복돼왔다.” 언어 습관을 고쳐야 할 사람이 누구라고 밝히지 않았지만, 그 누군가라는 것은 자명하다. 경기지사 출마를 선언한 더불어민주당 소속 이재명 전 성남시장에게 고전하는 남 지사가, 첫 공격 대상으로 삼은 것이 이 전 시장이 아닌 홍 대표의 언어 습관이라는 사실은 중요하다. 정치인 한 명의 말이 그렇게 보수에 치명적일까. 자유한국당의 한 의원은 “모르는 소리 말라”고 했다. “홍 대표가 입만 열면 지역에서 표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걸 지적하면 홍 대표는 어깃장을 더 놓는다. 지역의 적군보다 서울의 아군이 더 무섭다”고 했다. 홍 대표는 1년 전 대선후보 수락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최순실 사태에서 국민이 가장 분노한 것이 정유라라는 어린 친구가 잘못 말해서다. 돈도 실력이고 백도 실력이라고 한다. 그렇게 이야기하니깐 국민이 얼마나 분노를 하나.” 이 사람은 바퀴벌레, 저 사람은 연탄가스라는 홍 대표의 말에 짜증 내는 보수가 많다고 한다. 친박·진박 행태에 진절머리 치며 이미 2016년 총선에서 표로 심판한 이들이 보수였다. 바퀴벌레, 암 덩어리, 연탄가스 3종 세트를 들고나오지 않아도 그들의 행태를 누구보다 잘 아는 이들이 보수라는 얘기다. 수도권의 한 의원은 “당내에서 홍 대표를 공개적으로 비난하는 사람은 아직까지 중진의원 몇 명에 불과하지만 당 밖 지지층 중에는 솔직히 많다”고 했다. 지지층 사이에선 “말 좀 그렇게 하지 말라”는데 “고쳐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 사당화 논란 1년 “이래서는 우리 당이 문재인이나 김정은 욕을 어떻게 하느냐?” 지난달 30일 비공개로 진행된 자유한국당 의원총회. 한 의원이 6·13 지방선거 공천 과정에서 불거진 홍 대표의 당 운영 방식을 비판하며 했다는 말이다. 홍 대표는 그간 문재인 대통령을 이승만·박정희·전두환에 이은 “4번째 독재자”라고 했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은 그냥 세상 만악의 근원, 절대악으로 통했다. 그런 김정은과 홍 대표를 동렬에 놓은 것이다. 홍 대표는 대선후보 수행단장을 맡겼던 김대식 동서대 교수, 경남지사 시절 정무부지사였던 ‘측근 중 측근’ 조진래 전 경남개발공사 사장을 당 정책연구소인 여의도연구원 원장과 부원장에 각각 임명했었다. 그러더니 김대식 원장은 6·13 보궐선거가 치러지는 부산 해운대을에 전략공천됐고, 채용 비리 의혹으로 경찰 소환 날짜까지 잡혀 있던 조진래 부원장은 안상수 현 시장을 경선도 없이 제치고 ‘100만 도시’ 경남 창원시장 후보로 낙점됐다. 안 시장과 홍 대표가 2010년 한나라당 당권 경쟁 때부터 앙숙이었다는 것은 세상이 다 안다. 그 유명한 ‘개싸움’ 설전까지 치른 두 사람이다. 경남지역의 한 의원은 “홍 대표와 안 시장 관계가 안 좋더라도 선거는 다르다. 일단 이기는 선거여야 하기 때문에 개인의 호불호는 작용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안 시장은 당을 박차고 나가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다. 홍 대표는 “공천에 반발이 없다면 그것은 죽은 정당이다. 잡음 없는 공천은 없다”며 짐짓 여유를 부렸는데, 정작 서울시장 후보 전략공천 방침에 반발하며 “정치 사기”라고 주장한 김정기 서울 노원병 당협위원장에 대해선 곧바로 제명 징계 절차에 들어갔다. 5선의 이주영 의원은 “당 대표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귀에 거슬리는 이야기를 하면 제명 조치를 남발한다. 당 대표에 대한 도전에 과하게 대응하는 것 자체가 사당화의 징조”라고 지적했다. 일부 중진의원이 “서울시장 선거에 직접 나가라”며 압박하자, 홍 대표는 지방선거 뒤 조기 전당대회 가능성까지 거론하며 “다음 총선 때는 (서울) 강북 험지 차출을 추진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이는 홍 대표가 6월 지방선거 후 대표직에서 물러나는 형식을 취한 뒤, 임시 전당대회를 열어 당대표직에 다시 오르겠다는 의미로 해석됐다. 당헌·당규에는 당 대표의 재출마나 연임을 막는 규정이 없고, 올해 선출된 당 대표는 2020년 4월 총선 공천권을 행사할 수 있다. ‘중진 험지 차출’이 빈말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당 관계자는 “홍 대표가 ‘반홍·비홍계 의원들이 발목을 잡아 선거를 망쳤다’며 조기 전당대회를 통해 당원들에게 재신임을 묻겠다고 나설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젊은 유권자들은 연탄가스를 안방 구들장이 아닌 고깃집에서 맡는다. “틈만 있으면 비집고 올라오는 연탄가스”라며 중장년 비유법으로 홍 대표가 맹비난한 일부 중진들은 최고위원-중진의원 연석회의 개최를 요구하고 있다. 홍 대표는 8개월째 소집 거부 중이다. 홍 대표 쪽의 한 의원은 “경상도 사투리만 들리는 곳에서 지역관리도 제대로 안 한 분들이 당을 흔들고 있다”고 했다. 또 다른 의원도 “지방선거 뒤에 당권을 노리고 저러는 것”이라고 의도를 문제 삼았다. 홍 대표의 독단적인 당 운영을 비판하는 복당파 의원도 “정우택 의원 등 일부 중진이 당권을 노리고 내부 총질을 하고 있다. 자제해야 한다”고 했다. ■ 대선 재도전 5개년 플랜 가뜩이나 열세인 지방선거 판세 분석, 한표라도 더 끌어올 지역별 공약을 개발해야 할 여의도연구원 원장·부원장 자리가 비었다. 여의도연구원이 요즘 하는 일은 ‘우리 준표가 달라졌어요’라는 이름의 홍준표 변신 프로젝트 준비다. 언행, 패션, 이미지 교정이 필요하다는 ‘당연한’ 인식에서 출발했다. 김성태 원내대표가 직접 기자간담회에서 “‘준표 때리기 토크쇼’ 등을 통해 홍 대표의 직설적이고 정제되지 않은 거친 인식을 다 털어내겠다. 자유한국당이 지방선거에 다른 모습으로 다가가겠다”며 대대적으로 홍보했지만, 열흘이 넘도록 무소식이다. 개헌을 앞둔 중요한 시점에 ‘희화화’는 안 된다며 홍 대표가 주저하고 있다고 한다. 결국 “변한 것은 홍 대표가 요즘 즐겨 입는 가죽점퍼 패션뿐”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홍 대표가 대선후보로 선출된 직후 한국갤럽이 조사한 자유한국당 정당 지지도는 8%였다. 더불어민주당이 40%를 찍을 때였다. 1년 뒤인 지난달 27~29일 한국갤럽 조사는 자유한국당 14%, 민주당 47%였다. 지방선거 출마 후보를 돕는 당 관계자는 “보수 쪽 표도 별로 없는데 홍준표 체제로 지방선거를 어떻게 치러야 하느냐”고 푸념했다. 지역의 한 의원은 “이런 마당에 우리 당 쪽으로 출마하겠다는 사람들을 고맙게 생각해야 하는데, 완장 차고 앉아서 ‘공천장 받으려면 와서 무릎 꿇으라’는 식”이라고 당의 행태를 꼬집었다. 홍 대표는 지난 1월 “정치 인생의 마지막을 대구에서 하겠다”며 대구 북을 당협위원장 자리를 스스로 꿰찼다. 여전히 빨간 작대기만 꽂아도 당선된다는 대구를 말 한마디로 접수했지만 누구도 막지 못했고, 누구도 막으려 하지 않았다. 당의 한 재선의원은 “홍 대표의 지난 1년은 본인의 대선 재도전을 위한 보수우파 장악 기간, 보수우파 보스가 되기 위한 노력 외에 아무것도 아니었다”고 혹평했다. 대구·경북(TK) 지역의 한 의원은 “홍 대표가 지방선거 뒤 조기 전당대회를 열어 당 대표에 재도전하는 상황이 벌어진다면, 그때는 우리 당이 문을 닫아야 한다”고 했다. 또 다른 재선의원은 “홍 대표가 벌써 내공을 다 보여줬다”고 했다. “지난해 대선 때는 짧은 순간에 득표율을 올리며 보수 결집 가능성을 보여줬다. 친박을 쳐내고 복당파를 받아들이는 카리스마도 좋았다. 그런데 그런 페이스가 계속되면서 문제가 커지고 있다”고 했다. 그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적전분열로 비칠 수 있어 다들 참고 있지만 홍 대표 본인이 더 걱정이다. 호언장담했지만 현실이 그렇지 않으니 초조하고 다급해진 것 같다. 그런데도 반대하면 잘라버리는 식으로 당무를 하니 다들 돕지 않고 바라만 보고 있다”고 했다. 최근 홍 대표의 페이스북 글을 모은 책 <꿈꾸는 로맨티스트>를 펴낸 김대식 여의도연구원장은 홍 대표의 말이 “복잡한 복선을 깔지 않는 직설의 미학”, “기교 부리지 않는 담백한 언어”, “빙빙 돌려 말하지 않고 과감하게 사안의 핵심을 찌르는 언어”라고 평했다. 당의 원로에게 책에 대한 평가를 물었다. “맞춤법이 틀렸다. ‘로맨티시스트’가 맞다”는 말이 돌아왔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 정치BAR 페이스북 바로가기 ◎ 정치BAR 텔레그램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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