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19 신규 확진자가 1200명대를 기록한 12월 25일 오후 서울광장에 마련된 임시선별진료소에서 시민들이 검사를 받기 위해 줄을 서 있다. 연합뉴스
저는 2015년부터 누리집에 ‘성한용의 정치 막전막후’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현실 정치를 주제로 한 칼럼성 기사입니다. 제 의견을 분명하게 밝히는 동시에 가급적 원자료를 풍부하게 제공한다는 두 가지 원칙을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누리집의 특성상 길이에 제한이 없습니다. ‘분량 무제한’의 글은 어떤 사안의 전후좌우를 다 짚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에, 자칫하면 횡설수설하게 된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올해 마지막 ‘정치 막전막후’는 2020년 결산으로 준비했습니다. 1년 동안 ‘정치 막전막후’에서 다뤘던 내용을 중심으로 2020년 정치를 상징하는 단어 10개를 뽑아서 소개하고 그 단어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 설명하겠습니다. 한 해를 되돌아보며 편하게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최근 각 언론사가 선정한 올해 국내외 10대 뉴스의 첫 번째는 모두 코로나였습니다. 2020년 우리나라 정치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안도 바로 코로나입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확진증’ 첫 환자가 발생한 것은 1월 20일이었습니다. 이른바 보수 야당과 언론은 코로나를 문재인 정부를 깎아내리는 선동의 도구로 활용했습니다. 황교안 대표는 ‘우한 폐렴’이라는 표현으로 문재인 정부를 ‘친중-반미-종북’ 프레임에 가두려 했습니다. 마스크 5부제를 북한식 배급제라고 비난했습니다.
하지만 선진국에서 코로나가 대규모로 확산하면서 역풍이 불었습니다. 대통령 직무 평가는 올라가고 야당 지지도가 떨어졌습니다. 국가적 재난을 정략적으로 이용하려고 달려든 야당이 총선에서 심판받았습니다.
백신 논란과 함께 불어닥친 3차 코로나 확산은 어떻게 전개될까요? 총선 직전과 달리 정부의 잘못이 조금씩 드러나고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위기입니다.
이른바 보수 야당과 언론은 정부가 백신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했다고 비판하는 수준을 넘어서 국민의 불안과 분노를 부채질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국민은 이번에도 야당과 언론의 선동이 아니라 국내외 사정을 냉정하게 살펴본 뒤 문재인 정부의 공과를 평가할 것 같습니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2019년 9월 22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민부론' 발간 국민보고대회에서 발표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총선을 앞두고 여당 압승을 예측한 전문가는 거의 없었습니다. 21대 총선은 심판론의 격돌이었습니다. 문재인 정부 심판론과 보수 기득권 심판론이 맞붙었습니다. 결과는 보수 기득권 심판이었습니다.
저는 오래전부터 보수 야당이 박근혜 전 대통령과 태극기 부대를 포기해야 중도층을 얻을 수 있다고 여러 차례 경고했습니다. 바위틈에 낀 자기 팔을 자르고 목숨을 건진 ‘127시간’ 영화 얘기를 자주 했습니다.
그러나 보수 야당은 거꾸로 갔습니다. 공안 검사 출신으로 박근혜 정부 국무총리였던 황교안 대표를 앞세워 당 재건을 시도했습니다. 어쩌면 4·15 총선 야당 참패는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더불어민주당 163석, 더불어시민당 17석을 합친 180석은 개헌 의석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국회 선진화법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숫자입니다. 21대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은 부동산 3법, 공정경제 3법, 공수처법 개정안, 대북전단살포금지법 등 개혁 입법을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절대다수 의석을 만들어준 유권자의 뜻에 따르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다만 야당에 대한 배려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정치의 요체는 대화와 타협이기 때문입니다.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한 금태섭 전 의원이 11월 14일 마포구에서 조정훈 시대전환 대표가 주도하는 ‘누구나 참여아카데미’ 초청 강연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의 금태섭 의원이 당내 경선에서 탈락한 사건은 정치적으로 그 의미가 작지 않습니다. 정당의 주인이 당 지도부에서 당원들로 바뀌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흔히 알려진 대로 “당론에 따르지 않은 금태섭 의원을 더불어민주당이 공천도 주지 않고 내쫓았다”는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이해찬 대표를 비롯한 더불어민주당 지도부는 금태섭 의원을 공천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습니다. 금태섭 의원 지역구에 공천 신청을 하려고 한 정봉주 전 의원을 막았고, 김남국 변호사는 다른 지역으로 돌렸습니다. 상대적으로 약해 보이는 후보와 경선을 붙였습니다. 금태섭 의원에 대한 배려였습니다.
그런데도 금태섭 의원은 권리당원과 열성 지지층 양쪽에서 압도적 격차로 패배했습니다. 총선 이후 금태섭 의원에 대한 징계를 종결시키지 못한 것은 더불어민주당 지도부의 잘못이지만 그렇다고 탈당까지 결행한 금태섭 의원의 행동이 정치적으로 옳았다고 평가하기는 어렵습니다.
총선을 앞두고 더불어민주당이 비례연합정당에 참가할 것인지 아닌지를 당원들에게 물어보고 결정한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이해찬 대표는 애초에 비례 정당을 반대했습니다. 하지만 당원들의 뜻을 꺾을 수는 없었습니다. 이제 정당의 주인은 당원들이라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오거돈 전 부산시장 사건이 터진 것은 4월 총선 직후였습니다. 권력형 성범죄의 충격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파장은 크지 않았습니다. 1년 뒤 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 누가 이기든 정치적으로는 큰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난 7월 박원순 전 서울시장 사건이 터지면서 정치적으로도 엄청난 파문이 일었습니다. 두 가지 이유입니다.
첫째, 박원순 전 시장은 시민운동가 출신으로 차기 유력 대선주자였습니다. 현 집권세력에 대한 실망과 불신이 광범위하게 퍼졌습니다. 둘째, 2021년 4월 7일 보궐선거의 성격이 전국 선거로 격상되며 중요한 정치 일정으로 떠올랐습니다. 박원순 전 시장 사건 이후 여야 모두 4·7 보선에 모두걸기하고 있습니다.
4·7 보선은 정치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4·7 서울시장 보선에서 이기는 쪽이 2022년 3월 9일 대선도 승리할까요?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러나 패배하는 쪽은 상당한 충격을 피할 수 없습니다. 여당이 지면 문재인 대통령이 레임덕에 빠질 수 있습니다. 야당이 지면 국민의힘은 해체의 길을 걷게 될 것입니다. 어떻게 될까요?
문재인 대통령이 1월 14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부동산만큼은 확실히 잡겠다. 지금 대책이 시효가 다했다고 판단되면 또 보다 강력한 대책을 끝없이 내놓겠다”고 말했습니다.
부동산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는데, 마치 시장과 맞서서 싸우겠다는 메시지로 받아들여지면서 정치적으로 상당한 손해를 봤습니다. 전국 아파트와 전셋값 상승세가 꺾이지 않고 있습니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잘 먹히지 않는 데는 여러 원인이 있을 것입니다. 정책 당국의 무능력, 부동산 기득권 세력의 반정부 선동, 코로나 위기에 따른 저금리와 과잉 유동성, 아파트 공급 부족 등이 원인일 수 있습니다.
저는 부동산 정책에 대한 국민의 정부 불신이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정책을 수립하는 공직자와 국회에서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 중에 부동산으로 돈을 번 사람들이 많다면 국민이 그런 정부와 국회가 내놓는 정책을 신뢰할 수 있을까요?
정부 여당은 아파트 두 채 이상 가진 사람은 고위 공직 인사에서 배제하고 집을 여러 채 가진 국회의원에게 집을 팔라고 권고하고 있지만, 실천이 잘 이뤄지고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12월 21일(현지시각) 델라웨어주 뉴어크에 있는 크리스티아나케어 병원에서 간호사 테이브 메이스로부터 화이자-바이오엔테크의 코로나 19 백신 주사를 맞고 있다. 뉴어크/AFP 연합뉴스
미국의 대통령 선거 결과에 따라 국제 정세가 요동칠 수밖에 없는 것이 지구적 현실입니다. 특히 한반도에 미치는 영향은 절대적입니다. 트럼프-김정은 정상회담에 기댄 북-미 관계 정상화가 상호신뢰 부족과 네오콘의 방해로 저지된 상태에서 미국 대선이 치러졌습니다.
미국 대통령 당선자 조 바이든은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을 열렬히 지지했던 사람입니다. 하지만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부통령으로서 ‘한반도 속수무책’이나 다름이 없는 ‘전략적 인내’에 참여했던 사람입니다. 바이든의 대북정책은 어느 쪽에 가까울까요?
김대중 대통령은 1994년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의 방북을 권유해 핵위기를 넘기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대통령이 된 뒤에는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한반도 정책의 주도권을 넘겨받아 2000년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켰습니다.
문재인 대통령도 “한반도의 운명은 한반도의 주인인 우리가 결정한다”는 의식이 매우 강한 사람입니다. 2007년 청와대 비서실장 시절 노무현-김정일 남북정상회담을 챙겼습니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키고 북미 정상회담을 주선할 수 있었습니다. 2021년에도 한반도 평화를 앞당기는 문재인 대통령의 큰 활약을 기대해 봅니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지난 12월 1일 오후 서초구 대검찰청으로 출근하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9년 8월 윤석열 검찰총장이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여러 개의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아 전면 수사에 착수했던 진짜 이유가 뭘까요?
범죄를 보고 반사적으로 달려드는 특수부 검사의 본능에 따른 것이었을까요, 아니면 문재인 정부에 타격을 가해 검찰개혁을 저지하려는 의도였을까요? 여전히 의문입니다.
어쨌든 윤석열 검찰총장은 그 한 수로 현직 검찰총장이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 조사에서 1~2위를 다투는 검찰 역사상 초유의 인물이 됐습니다. 그것도 야권 후보로 말입니다.
서울행정법원에서 정직 2개월 집행정지 결정을 받아낸 뒤 12월 25일 대검찰청으로 출근한 윤석열 총장은 차에서 내리지 않고 주차장으로 곧장 들어갔습니다. 12월 1일 추미애 장관의 직무정지에서 풀린 뒤 대검찰청으로 들어오면서 기자들 앞에서 “대한민국 공직자로서 헌법 정신과 법치주의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을 약속드린다”고 당당하게 말하던 것과는 다른 모습입니다. 아마도 임명권자인 대통령과 맞서는 모양새를 피하려고 한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면 윤석열 총장도 정치 감각이 전혀 없는 사람은 아닌 것 같습니다. 당분간 윤석열 총장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이 쏠릴 것 같습니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2월 25일 국회 의원회관 자신의 사무실에서 김태년 원내대표 및 당 소속 법제사법위원들과 긴급회동을 마치고 사무실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이낙연 대표는 매우 차분하고 점잖은 사람입니다. 어릴 때 별명이 ‘메주’, 그리고 ‘생영감’이었습니다. 메주는 외모 때문에 붙은 별명이고, 생영감은 낮은 목소리 때문에 붙은 별명이었습니다. 학교에서 좋은 선생님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선생님들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이낙연 대표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가 가진 안정감의 원천도 아마 선생님들일 것입니다.
이낙연 대표가 더불어민주당 8월 전당대회에 출마해 승리한 것은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들이 그를 압도적으로 밀어줬기 때문입니다. 김부겸 박주민 후보는 상대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낙연의 시간’이 시작됐습니다.
그런데 차기 대선주자 지지도 경쟁에서 이재명 경기지사에 밀리고 있습니다.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쫓기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차분하고 점잖은 그의 장점이 대선 후보 경쟁에서는 단점으로 작용하는 측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 유권자들은 복잡미묘합니다. 대선주자에게 대통령이 될 만한 ‘능력’뿐만 아니라, ‘나쁜 남자’나 ‘파괴자’가 갖는 ‘매력’을 요구하기도 합니다. 대선 레이스 도중에 대부분의 정치인이 나가떨어지는 이유입니다. 이낙연 대표는 과연 ‘매력’을 보여줄 수 있을까요?
김종인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12월 1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과오에 대해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가끔 김종인 위원장의 장래 정치적 목표가 무엇인지 묻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문(愚問)입니다. 김종인 위원장은 바로 지금 행복하고 보람찬 현재형 정치인입니다.
하지만 그는 권력을 탐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일찌감치 경제민주화를 필생의 화두로 내걸고 매진했습니다. 독재자였던 박정희 전두환 대통령을 도운 것도, 여당과 야당을 넘나들며 비례대표 의원만 다섯번 지낸 것도 경제민주화로 설명이 가능합니다.
그는 박근혜 대통령 국정농단 사건의 본질을 ‘최순실 게이트’가 아니라 ‘삼성 게이트’로 파악할 정도로 안목이 뛰어난 사람입니다. 여당이 국회에서 ‘공정경제 3법’을 밀어붙일 수 있었던 배경에는 야당 대표가 경제민주화 원조인 김종인 위원장이라는 상황이 작용했을 것입니다.
이른바 보수 세력 안에는 김종인 위원장에 대해 노골적으로 반감을 보이는 인사들이 꽤 많습니다. 자본 기득권 세력의 앞잡이거나 극우 세력이라고 보면 크게 틀리지 않습니다.
김종인 위원장이 국민의힘 대표를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요? 내년 4·7 서울시장 보궐선거 결과에 달린 것 같습니다. 야당이 이기면 2022년 3월 대선까지 그의 활동 공간이 활짝 열릴 것입니다. 지면 이번에는 진짜로 퇴장해야 할 것입니다.
지난 9월 <조선일보> 양상훈 주필이 칼럼 제목을 “민주(없)당, 정의(없)당, 정의(판)連이 득세하는 나라”라고 단 것을 보고 상당히 충격을 받았습니다. 필자가 어떤 의도로 그랬는지 모르지만 저에게는 극우 시정잡배들의 욕설로 읽혔기 때문입니다.
저는 연초에 “상식의 힘 앞에서 무너지는 보수언론·파워논객들” “유튜브 편향성 닮아가는 조중동의 문재인 때리기” “확증편향의 시대 ‘증오와 배제’ 파는 언론” 등 언론에 대한 글을 자주 썼습니다. 우리나라 언론의 신뢰 추락이 너무 심각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이른바 보수 성향 신문들은 문재인 정부에 대한 반감이 너무 지나쳐 언론으로서의 본분을 잊은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습니다. 이들 신문의 기사와 칼럼, 사설을 읽다 보면 “이렇게 문제가 많은 문재인 정부가 왜 망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물론 <한겨레>가 잘하고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한겨레>도 확증편향 수용자들 입맛에 맞는 기사와 칼럼, 사설을 자주 게재했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문재인 정부에 너무 편향적인 것 아니냐”는 항의를 많이 받았습니다. 그러면서도 다른 한편에서는 “왜 좀 더 확실하게 문재인 정부를 돕지 않느냐”고 욕을 먹었습니다. 언론의 신뢰 회복, 참으로 어려운 문제입니다.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