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으로 2014년 당시 의원직을 상실한 이상규 민중당 대표가 1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열린 ‘사법적폐 청산 문화제’에 참석해 사법부 적폐청산을 촉구하며 발언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통합진보당이라는 정당이 있었습니다. 2012년 19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무려 13명(지역구 7명, 비례대표 6명)의 당선자를 냈습니다.
지역구는 서울 노원병 노회찬, 관악을 이상규, 광주서을 오병윤, 경기 성남중원 김미희, 고양덕양갑 심상정, 전북 남원순창 강동원, 전남 순천곡성 김선동 등 7명이었습니다. 비례대표는 윤금순, 이석기, 김재연, 정진후, 김제남, 박원석 6명이었습니다. 비례대표 후보 부정 경선 사건으로 윤금순 의원이 물러나는 바람에 판사 출신 서기호 의원이 의원직을 승계했습니다.
19대 총선에서 통합진보당 당선자가 이처럼 많았던 것은 진보 성향 정치 세력의 통합, 그리고 민주통합당과의 선거 연대 때문이었습니다. 통합진보당의 ‘눈부신 날’은 오래 가지 않았습니다. 비례대표 후보 부정 경선 사건으로 당이 다시 분열했고, 이석기 의원 사건이 터지면서 날개 잃은 새처럼 추락했습니다.
박근혜 정부의 황교안 법무부 장관은 헌법재판소에 통합진보당 해산을 청구했습니다. 박한철 소장의 헌법재판소는 2014년 12월 19일 8 대 1로 통합진보당 해산을 결정했습니다.
헌법재판소 재판관 가운데 유일하게 반대 의견을 냈던 김이수 재판관은 2017년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뒤 헌법재판소장 후보로 지명됐지만, 국회에서 임명동의를 받지 못했습니다.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 그리고 국민의당 의원 일부가 통합진보당 해산 심판에서 소수의견을 냈다는 이유로 반대표를 찍었기 때문입니다.
통합진보당은 이제 사람들의 기억에서 점차 희미해져 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통합진보당 해산 사건은 법률적으로 현재진행형입니다.
대법원 3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오는 4월 29일 오전 김미희, 김재연, 이상규, 오병윤, 이석기 등 통합진보당 전 국회의원들이 제기한 국회의원 지위 확인 소송 판결 선고를 합니다.
무슨 내용일까요?
헌법재판소는 2014년 12월 19일 통합진보당을 해산하면서 통합진보당 소속 국회의원들이 국회의원 자격을 상실한다고 결정했습니다. 헌법재판소의 국회의원 자격 상실 결정은 헌법이나 법률에 근거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통합진보당 전직 의원들은 2015년 1월 법원에 국회의원 지위를 확인해달라는 행정소송을 제기했습니다.
1심은 헌법 해석과 적용에 관한 최종 권한을 갖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이라는 이유로 각하했고, 2심은 법원이 국회의원직 상실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면서도 위헌 정당 해산 결정의 효과로 의원직을 상실한다고 원고 패소 판결을 했습니다. 오는 4월29일 마침내 최종 선고가 이뤄지는 것입니다. 어떤 결론이 나올까요? 궁금합니다.
통합진보당 전직 의원들의 행정소송 제기에는 타당성이 있습니다. 헌법재판소의 국회의원 자격 상실 결정은 처음부터 중대한 논리적 결함을 안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헌법재판소 결정문은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헌법재판소의 해산 결정으로 정당이 해산되는 경우에 그 정당 소속 국회의원이 의원직을 상실하는지에 대하여 명문의 규정은 없으나, 정당 해산 심판 제도의 본질은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되는 정당을 정치적 의사 형성 과정에서 배제함으로써 국민을 보호하는 데에 있는데 해산정당 소속 국회의원의 의원직을 상실시키지 않는 경우 정당 해산 결정의 실효성을 확보할 수 없게 되므로, 이러한 정당해산제도의 취지 등에 비추어 볼 때 헌법재판소의 정당 해산 결정이 있는 경우 그 정당 소속 국회의원의 의원직은 당선 방식을 불문하고 모두 상실되어야 한다.”
정당 해산 결정의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해 국회의원의 의원직은 상실돼야 한다고요? 이게 그렇게 간단한 문제인가요? 국회의원은 국민이 선거로 선출하는 국민의 대표입니다.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유권자는 소속 정당도 보지만 후보자를 보고 투표합니다. 정당이 없어졌다고 아무런 법적 근거 없이 국민의 대표 자격을 박탈하는 것이 온당한 결정일까요? 헌법재판소 결정 당시 이 문제를 다룬 한겨레신문 기사와 기고문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헌법재판소 결정문의 논리적 결함은 다른 곳에도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헌법재판소 결정 선고 이틀 전인 2014년 12월17일 치 청와대 김영한 민정수석의 업무일지에는 이런 내용의 메모가 있습니다.
“통합진보당은 해산하는 것으로 확정되었고, 국회의원직 상실에 대하여는 비례대표 의원의 경우에는 의원직이 상실되는 것으로 결정이 났다. 그런데 지역구 의원들에 대하여는 의원 자격이 상실되는지 여부에 대하여 헌법재판소 재판관들 사이에 이견이 있다. 금일 헌법재판소장이 그 의견을 조절하는 중이다. 조절이 끝나는 시기는 19일이나 22일 초반이다.”
어떻습니까? 통합진보당 해산을 결정하고서도 재판관들 사이에 지역구 국회의원 자격 상실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었다는 증거입니다.
다른 차원의 문제도 있습니다. 헌법재판소는 통합진보당 소속 지방의원에 대해서는 아무런 판단도 내리지 않았습니다. 통합진보당 지방의원들의 주민 대표성까지 부인하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라고 스스로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국회의원은 안 되고 지방의원은 괜찮다는 논리의 근거는 뭘까요?
통합진보당 소속이었던 지방의원들은 지역구냐 비례대표냐에 따라 운명이 갈렸습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선거법 조항을 근거로 비례대표 의원들만 자격을 박탈했기 때문입니다. 지역구 의원들은 무소속으로 의원직을 유지했습니다. 비례대표 의원들은 법원에 소송을 제기해서 승소 판결을 받아낸 뒤 무소속으로 지방의원 자격을 되찾았습니다.
얼마나 한심한 일입니까? 코미디 같은 일이 현실에서 벌어진 것입니다. 헌법재판소의 무리한 정당 해산 결정을 뒤에서 따라가며 수습하느라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와 대법원이 수렁에 빠져 헤매고 있는 모양새입니다. 4월29일 최종 선고에서 대법원이 이런 문제를 얼마나 정리해낼 수 있을지 무척 궁금합니다.
통합진보당 전직 국회의원들의 행정소송은 사법부 안에서도 상당한 골칫거리였던 것 같습니다. 대법원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 특별조사단’이 2018년 5월25일 발표한 조사 결과에는 법원행정처가 통합진보당 의원들의 행정소송으로 헌법재판소, 민변, 보수언론, 법무부 등과 ‘재판거래’를 시도했다고 볼 만한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통합진보당 전직 국회의원들을 대리하는 변호사들은 이를 근거로 전원합의체 회부 및 공개변론을 신청했지만, 대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사건을 다루면 자칫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의 전면전으로 번질 가능성을 우려한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듭니다.
2014년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은 그 자체로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수준을 고스란히 드러낸 부끄러운 장면이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민주주의는 생각이 다른 사람이나 집단과 공존하는 것을 기본으로 설계된 제도입니다.
그런데 2014년 헌법재판소는 통합진보당이 “북한식 사회주의를 실현한다는 숨은 목적을 가지고 내란을 논의하는 회합을 개최하는 등 활동을 한 것은 헌법상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정당 해산을 결정했습니다. 통합진보당은 이른바 ‘종북’ 세력으로 대한민국에 위협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해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가 막히는 논리적 비약입니다. 설사 통합진보당 안에 종북 세력이 있다고 쳐도 대한민국이 그 정도 위협으로 흔들리는 취약한 공동체인가요?
저는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은 분단 기득권 세력의 광기 어린 ‘빨갱이 사냥’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당시 한겨레신문과 경향신문, 그리고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가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어떻게 보도했는지 비교해 보시기 바랍니다. 6년 이상 지난 지금도 이른바 보수 세력은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이 정말로 옳았다고 생각하는지 참 궁금합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그래도 세상은 진화한다는 사실입니다. 2014년 통합진보당 소송대리인단 단장을 맡아 치열한 법리 논쟁을 벌였던 김선수 변호사는 지금 대법관이 됐습니다.
2014년 당시 보수 성향이 압도적 다수였던 9명의 재판관도 모두 물러났습니다. 지금 9명은 유남석(소장)·이선애·이석태·이은애·이종석·이영진·김기영·문형배·이미선 재판관이 헌재를 구성하고 있습니다.
만약 지금 헌법재판소가 통합진보당 해산 사건을 다시 심판한다면 청구를 기각할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지금 재판관들은 대체로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2014년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너무나 비합리적이고 비상식적인 결정이었기 때문입니다.
4월29일 대법원의 최종 선고가 2014년 헌법재판소의 잘못을 얼마나 바로잡을 수 있을지 지켜보겠습니다.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