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욱 국방장관이 20일 국방부 기자회견장에서 청해부대 34진의 코로나19 집단감염 사태에 대해 국민에게 사과하고 있다. 국방부 제공
아프리카 인근에 파병됐던 청해부대 34진의 90%가 코로나19에 감염된 사태는 한국 군 역사에 길이 남을 ‘병참 실패’라고 해도 무리가 아니다. 일선 부대가 최적의 조건에서 작전을 수행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병참의 실패는 얼마든 피할 수 있는 비극이라는 점에서 엄중하게 다뤄져야 한다.
국방부는 다음달 6일까지 자체 감사를 진행한다고 밝혔지만, 이제껏 군이 보여준 태도를 생각하면 우려부터 앞서는 게 사실이다. 군은 지금까지 감염 사태 책임을 국방부→해군→청해부대 등 ‘아래로’ 떠넘기는 데 급급한 모습이었다.
집단감염 사태의 1차 원인은 군 당국이 2월8일 출국한 대원 300여명에게 백신 접종을 하지 않은 데 있다. 그다음 결정적 이유는 코로나19 진단에 적합하지 않은 ‘항체검사키트’를 사용해 검사를 한 것이다.
국방부·합참·해군이 ‘진단키트’ 문제에 얼마나 무지했는지는 사후 대응 과정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한겨레>가 18일 ‘초기 감염 못 잡는 항체검사, 청해부대 전파 확산시켰다’는 기사를 통해 이 문제를 지적하자, 당시 해군은 “청해부대가 2월 초 출병할 때 (코로나19의 신속 검사에 적합한) 항원키트가 아직 승인되지 않아 어쩔 수 없이 항체키트를 가져갔다”고 밝혔다. 그러나 해명과 달리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전문가용 항원키트와 항체키트를 지난해 11월 허가한 상태였다.
진단키트 논란이 커지자 국방부와 합참은 19일 ‘항원키트를 사용하라는 공문을 내려보냈다’고 책임 소재를 해군에 돌렸다. 그러자 해군은 23일 “사용지침을 문무대왕함을 포함한 예하 함정에 시달”했지만, “파병 전 격리 및 실무부대 간의 확인 미흡 등으로 적재하지 못한 채 출항했다”는 추가 해명을 내놨다. 책임 소재를 일선 함정에 떠넘긴 것이다.
그동안 군은 변명으로 일관하다가 궁지에 몰리면 시인하고 사과하는 패턴을 반복했다. ‘왜 백신 접종을 시도하지 않았냐’는 추궁에 초기엔 ‘응급상황 대처 곤란’과 ‘보관상의 어려움’ 등을 거론하다가 “백신 접종 노력에는 부족함이 있었다”(서욱 국방부 장관 20일 대국민 사과)며 한발 물러났다. 합참 역시 지난해 6월 ‘코로나19 관련 대비지침 및 유형별 대비계획’ 등을 만들어 시달했다고 하지만, 질병관리청과 협의를 거치지 않은 구멍투성이였던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작은 빈틈 하나로 구축함 한대가 무용지물이 되고 마는 현실 앞에서, 군의 치밀하고 책임감 있는 자세를 당부한다. 길윤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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