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호정 정의당 의원.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국회의원 류호정에 대해선 호오가 극도로 갈린다. ‘정치 감각이 뛰어나다’는 찬사와 ‘정치를 예능화한다’는 비난이 병존한다. 대중에게 정치인 류호정의 존재를 확실히 각인시킨 건 지난해 8월 국회 본회의장에 입고 나온 ‘물방울 분홍 원피스’였다. 다수 반응은 “패기 있다” “멋지다”였다. 하지만 안전모에 작업복 차림으로 상임위원회 회의장에 가고, 멜빵바지 노동자 패션으로 본회의장에 입장하는 ‘파격’이 반복되자 그를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졌다. “쇼 대신 정치를 하라”는 훈계가 시작된 것이다. 이런 반응은 지난 6월 국회 본청 앞에서 ‘등 파인’ 드레스 차림으로 감행한 ‘타투 퍼포먼스’ 때 정점을 찍었다. “그게 진보정치냐?” “쇼 말고는 할 게 없느냐”는 힐난이 빗발쳤다.
류호정도 알고 있었다. ‘관종’ ‘어그로’라는 멸칭마저 자신의 이름 뒤에 따라붙는다는 사실을. 그럼에도 류호정의 멘탈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더 많은 ‘관심’을 끌 수 있다면 어떤 ‘어그로’도 마다 않을 태세였다. 이런 ‘류호정의 쇼’에는 철학이 있었다. “내가 돋보이는 쇼는 하지 않는다”는 것. 자신의 쇼를 류호정은 “약자들이 처한 상황에 관심을 갖게 만들고, 사람들을 움직여 현실을 바꾸려는 쇼”라고 했다. 그에게 ‘쇼’란 보이지 않던 존재를 보이게, 들리지 않던 목소리를 들리게 만드는 ‘정치 그 자체’였던 셈이다.
지난 26일 국회의원회관 사무실에서 류호정 의원을 만났다. 당시 페이스북 등에서 논란이 되고 있던 류 의원의 <중앙일보> 기고문으로 대화를 시작했다. 그는 ‘저격’이란 타이틀이 붙은 릴레이 기획의 첫 기고문에서 민주노총이 청년들의 ‘공정’ 담론 뒤에 숨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외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민주노총 비판, 더 공론화 안 돼 아쉬울 뿐
애정 담긴 당원들 비판은 신경쓰지 않아
캐스팅보터 구실도 어려운 정의당 상황
존재감 지키려면 누군가 ‘어그로’ 끌어야
내겐 청년·여성·노동자 ‘소수자성’ 응집
심상정·이정미처럼 지역구 도전 계속할 것
류호정 정의당 의원이 지난 26일 오후 국회 의원 회관 사무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한 뒤 사진을 찍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최근 중앙일보 기고문에서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을 ‘저격’한 뒤 또 한번 논쟁의 중심에 섰다.
“그런가? 타투 퍼포먼스 직후와 비교하면 반응이 별로다. 문자메시지도 딱 세통 왔다. 둘은 응원성, 하나가 ‘당신까지 민주노총 때리면 어떡하냐’는 항의 문자였다.”
―페이스북에선 평소 류 의원을 응원하던 이들조차 경솔했다고 비판한다.
“아쉽다. 비판받아 아쉬운 게 아니라, 대국민 홍보활동 차원에서 기고한 건데 반향이 생각보다 크지 않아서.”
―그 신문이 밝힌 기획 취지를 보니, 2030 셀럽들 동원해 운동권 출신 5060 때리게 하려는 의도가 다분하던데.
“하고 싶은 말 쓰면 된다길래 수락했다. 정의당 의원한테는 그런 주류 매체에 글 쓸 기회가 잘 안 온다.”
―굳이 민주노총 위원장을 골라야 했나? 8·15 집회 때문에 구속영장까지 떨어진 상태인데.
“노동자들 처지가 언제 안 어려웠던 적이 있나? 민주노총만 특별히 힘든 상황인 건 아니다.”
―‘친재벌-반노동’ 성격이 두드러진 매체가 선뜻 지면을 내주겠다고 했을 때, 의도가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았나?
“당에서 인터뷰나 기고를 금지한 매체가 없다. 그 신문 역시 원고 청탁하면서 민주노총 저격해달라 부탁하지도 않았고.”
류호정 정의당 의원이 지난 26일 오후 국회 의원 회관 사무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비판을 하더라도 시기, 매체 성격, 메시지의 소비 맥락을 고려했어야 한다는 지적은 수긍하나?
“기고문은 전부 내가 알아서 쓴 거다. 다시 말하지만 그 신문이 뭘 어떻게 쓰라고 강요하고 그런 거 없다.”
―<미디어오늘> 인터뷰에선 ‘내가 이용당한 게 아니라, 오히려 이용했다'고 했던데.
“(기고는) 내가 선택한 거니까. 사실 정규직 노조가 (비정규직 위해서) 연대 잘 안 하는 문제에 대해선 민주노총 활동가들끼리 자주 이야기 한다. 하지만 산발적으로 안에서만 하고 넘어가니 안 바뀌는 거다. 우리끼리 있을 땐 비판해도 좋은데, 공개된 자리에선 안 된다고 하는 건 받아들이기 힘들다.”
―같은 당 의원들은 별 얘기 없었나?
“그냥 좀 놀랐다고 하시더라. 미리 귀띔 좀 해드릴 걸 그랬나?”
―21대 국회의원 가운데 류 의원만큼 호오가 갈리는 경우도 드물다.
“나도 느낀다.”
―같은 진보진영, 정의당 안에서도 ‘비호감’이라는 사람도 적지 않다.
“당원들 비판은 괘념치 않는다. 애정이 담긴 거니까. 그런데 바깥에선 제가 어리고 여성인데다, ‘사' 자 달린 직업 출신도 아니고, 초선에 비교섭단체 소속 비례대표니까 국회의원으로 인정을 못 하겠다는 분위기도 읽힌다. 말 그대로 난 ‘소수자성’이 응집된 존재인 거다. 우리 당 장혜영 의원도 처지가 비슷하다.”
―장 의원과 통하는 게 많을 거 같다.
“서로 많이 의지한다. 술도 먹고 대화도 자주 하고.”
―뭐라고 부르나?
“혜영이. ‘언니’도 싫다며 그냥 이름 부르라고 해서. 청년정의당 대표 강민진까지 셋이선 서로 이름만 부른다.”
―장혜영 의원하고는 스타일이 많이 다르다.
“장혜영은 진지·차분 그 자체다. 오죽하면 닉네임도 ‘시리어스 시스터’겠나? 게다가 원칙주의자다.”
―타협을 모른다는 뜻인가?
“장혜영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 처리도 완강하게 반대했다. 언론중재법도 마찬가지. 당에서 검찰·언론개혁에 대해 장혜영만큼 공부 열심히 한 사람 없을 거다. 많이 배운다.”
―역할 분담이 있는 것 같다. 류호정은 노동, 장혜영은 소수자 인권.
“의원이 6명밖에 안 되니 역할 배분이 효율적이지 않으면 대응이 어렵다. 일단 노동은 의원단 6명이 모두 한다. 나머지는 전공 상임위 하나에 부전공 상임위 둘씩 분담하는데, 난 전공이 산자위고, 과기방통위가 부전공, 윤리특위가 겸임이다.”
―의정활동 하면서 ‘운동가 물이 덜 빠졌다’ ‘행동이 앞선다’는 얘기 듣지 않나?
“지난번 본회의장에서 민주당 의원들하고 충돌했을 때 그랬다. 배진교 원내대표 발언 끝나자 갑자기 민주당 의원 두분(문정복·홍기원)이 우리 쪽에 와서 항의하는데, 장혜영은 `어떡하지, 어떡하지?' 하며 망설일 때, 나는 이미 달려가서 한판 뜨고 있었다.”
―민주당 두 의원은 국회에서 종종 마주칠 텐데, 불편하지 않나?
“요즘은 모두 마스크 쓰기 때문에 중년 의원님들은 구분이 잘 안된다. 일단 배지 다신 분들한텐 무조건 인사부터 하고 본다.”
류호정 정의당 의원이 지난 26일 국회의원회관 사무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관종’이란 얘기, 많이 듣지 않나?
“직접 들은 적은 없고, 그런 말씀 하시는 분이 적지 않다는 건 안다.”
―그들한테 뭐라고 말해주고 싶나?
“음. 저는 여러분의 관심이 절실한 정의당의 비례대표 국회의원 류호정이랍니다. 하하. 사실 과거처럼 캐스팅보터 구실도 어려운 우리 당 처지에선 누군가 그런 일을 해야 한다.”
―의도적으로 ‘어그로'를 끌 수밖에 없다?
“솔직히, 그렇게라도 안 하면 당의 존재조차 지워질 거 같은 불안감이 있다.”
―관심 받는 걸 즐기는 거 아닌가?
“욕먹고 손가락질받는 거 좋아하는 정치인이 누가 있겠나.”
―환기시키려는 현안보다 퍼포먼스가 더 주목받는다는 지적도 있다.
“퍼포먼스가 눈길을 끌면 현안에 대해 설명할 기회도 따라온다. 그러니 점잔만 빼다 묻히는 것보다 ‘저거 관종 아냐?’ 하면서 뒤돌아보게 쇼라도 하는 게 낫다.”
―‘쇼의 철학’이랄까, 그런 게 있나?
“나 자신을 돋보이게 하는 쇼는 하지 않는다. 내가 하는 건 약자들이 처한 상황에 관심을 갖게 만들고, 사람들을 움직여 현실을 바꾸려는 쇼다.”
―매번 다른 현안들로 ‘쇼’를 하려면 쉽지 않을 텐데.
“한번 크게 주목을 받으면 그다음이 부담 된다. 더 세게 안 하면 거들떠도 안 볼 거 같고.”
―아이디어는 어떻게 구하나?
“현안이 정해지면 비서진과 홍보 회의를 한다.”
―원래 그쪽으로 감각이 뛰어난가?
“화섬식품노조 선전홍보부장 하면서 익힌 거다. 이름 없는 작은 사업장 사정을 알리려면 미친 척하고 별짓 다 해야 기사 한줄 날까 말까다. 튀지 않으면 씨알도 안 먹힌다.”
―타투업법 발의하면서 등 파인 드레스 입자는 아이디어는 누가 냈나?
“비서진과 회의했는데, 타투는 직접 보여주는 게 가장 효과적이겠더라. 팔뚝에 하면 작아서 안 보이니 넓은 등판에 스티커를 붙이자. 그러려면 의상도 그에 맞는 게 필요할 거 같았다.”
―등 파인 드레스, 입고 싶어도 못 입는 사람들 많다.
“(옷걸이를 가리키며) 여기 걸린 옷들이 다 퍼포먼스 때 입은 것들이다. 비싼 건 하나도 없다. (등 파인) 저 드레스? 10만원도 안 한다. 계속 입을 것도 아닌데 비싸면 낭비잖나.”
―타투업법은 정의당이 처음 발의한 건가?
“아니다. 그 전에도 두건인가 발의돼 있었다. 국민의힘에선 정책간담회도 꽤 크게 열었는데, 다른 법안들에 밀려 주목을 못 받았다.”
―이번엔 좀 다른가?
“잘될 거 같다. 정의당엔 소관 상임위원이 없어 민주당, 국민의힘 의원들께 열심히 부탁하고 있다. 연말에 통과시켜서 진짜 생살에 타투 하는 게 목표다.”
―원내교섭단체가 아니라서 입법 활동에 어려움이 클 텐데.
“평소에 사회생활 잘해야 한다. 법안 발의에 필요한 10명을 채우려면, 우리 당 6명에 4명을 더 받아야 하니까. 밥도 부지런히 먹고 안부전화도 잊을 만하면 한번씩 드린다.”
류호정 정의당 의원(왼쪽)이 26일 오후 국회 의원 회관 사무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국민의힘 의원들도 관리 대상인가?
“당연히. 최승재 의원님이 손실보상 소급적용 법안 낼 때 같이 했는데, 이제 우리 부탁도 드리려고 한다.”
―어렵게 법안 발의해도 교섭단체가 아니라 상정이 쉽지 않을 텐데.
“그래서 잊을 만하면 ‘쌩쇼’를 하는 거 아니겠나? 상정을 안 할 수 없게 만들어야 하니까.”
―지난 국회 땐 심상정 의원이 민주당 원내대표실 찾아가서 한번씩 뒤집어놓았다. 왜 우리 법안 상정 안 해주냐고.
“그런 궂은일을 언제까지 심 의원님께 맡기겠나?”
―대학 때 게임 동아리 활동을 했다. 게임과 정치를 비교하면 어떤가?
“게임은 어느 정도 결과 예측이 가능하지만 정치는 안 그렇다. 또 게임은 지거나 잘못되면 다시 시작하면 된다. 리셋 하면 되니까. 게임처럼 실패해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현실을 만드는 게 내 정치의 목표다.”
―진보정치가 뭐라고 생각하나?
“권력이 없는 사람들 곁을 끝까지 지키는 정치?”
―드러내놓고 힘있는 사람만 편드는 정치인은 없다. 보수도 힘없는 사람들을 위해 정치한다고 말한다.
“말은 그렇게 해도 실제 하는 행동을 보면 안 그렇다. 민주당 봐라.”
―많은 민주당 의원들이 스스로를 ‘진보’라고 한다.
“우습다. 진보정치에 요구되는 도덕적 가치를 지속적으로 훼손한 게 누군가? 조국 사태 이후 자신들 모습을 돌아보셔야 한다.”
―정의당에 대해서도 ‘정체성 정치'에 매몰된 ‘피시(PC·정치적 올바름) 정당'이 됐다고 비판하는 이들이 있다.
“정체성의 정치가 잘못된 정치인가? 동의하지 않는다. 그것 역시 정의당의 정치, 진보정치의 일부다. 게다가 정의당의 정치는 결코 정체성 정치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젠더·소수자 이슈가 자꾸 부각되니 그렇게 느끼는 거 같다.
“정의당이 가장 중점적으로 다룬 이슈가 노동이다. 그런데 잘 부각이 안 돼 고민이다. 중대재해처벌법도 그렇게 목숨 걸고 싸웠는데, 정작 통과된 법은 누더기였다. 5인 미만 사업장은 적용 대상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민주당은 야당과 재계 반대 속에서 법안을 통과시키려면 어쩔 수 없었다고 한다.
“변명이다. 공수처법이나 언론중재법처럼 강성 지지자들이 요구하는 건 180석 힘으로 밀어붙이면서, 그렇지 않은 건 야당과 이해당사자 핑계 대면서 안 하거나 뒤로 미룬다. 대체공휴일법안 처리할 때는 어땠나? 거기서도 5인 미만 사업장 제외시켰다. 민주당에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은 투명인간일 뿐이다.”
류호정 정의당 의원이 지난 26일 오후 국회 의원 회관 사무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다음 총선에선 지역구에 출마해야 할 텐데.
“성남 분당 쪽을 생각하고 있다.”
―당선이 안 되면 뭘 할 건가?
“엄마도 ‘네 나이에 벌써 국회의원 배지 달면, 나중에 뭐 해서 먹고살래?' 걱정하신다. 그러면 ‘무슨 걱정이야? 어디서든 류호정다운 일을 하고 있겠지' 한다.”
―비례대표로 정의당 국회의원 했던 이들 가운데 임기 끝나고 친민주당 활동을 하거나, 여당 몫인 공공기관 임원으로 가는 경우도 있다.
“당의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꼭 필요한 자리라면 갈 수 있다. 그런데 안 그런 사례가 분명히 있다. 그분들 보면 나는 절대 저러지 말아야지, 다짐하고 또 다짐한다.”
―떨어져도 계속 정의당에서 정치하겠다는 건가?
“정의당 비례대표 국회의원의 책임은 임기 4년으로 끝나는 게 아니다. 두고 봐라. 누가 뭐라든 당에 뿌리내리고 정의당 정치인으로 살 거다. 그러려면 지역구에 계속 도전해야겠지. 심상정·이정미처럼.”
―청년 비례로 국회의원이 됐는데, 그 뒤로 당에 대한 청년층 지지가 늘었나?
“장혜영이나 제가 열심히 활동해서 그런지 여성 청년층에선 지지가 좀 늘어난 거 같다. 물론 충분하진 않다.”
―지난번 중대재해처벌법 제정 요구하며 농성할 때, 국회 찾아온 문재인 대통령한테 도와달라고 소리치는 게 인상적이었다.
“‘대통령님, 김용균 노동자 기억하십니까?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잊지 말아주십시오'라고 했더니, 웃으면서 ‘기억하고 있습니다'라고 답해주셨다.”
―‘국회가 할 일을 왜 대통령한테 부탁하느냐'는 비판도 있었다.
“대통령의 후보 시절 공약이었다. 정부 입법이란 우회로도 있고, 또 대통령이 한마디 하시면 민주당 의원님들, 일사불란하게 움직이시잖나. 다 알면서 왜 그러는지 모르겠더라.”
―‘류호정, 열심히는 하는데, 호감이 안 간다'는 이들한테 한마디 한다면.
“여러분, 저 더 열심히 할게요. 임기 3년이나 남았으니 지켜봐주세요.”
―어떤 정치인으로 기억되고 싶나?
“이 질문엔 항상 하는 대답이 있다. 힘 없는 사람 곁을 끝까지 지킨 정치인.”
이세영 논설위원
monad@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