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반려견 토리 인스타그램 갈무리. 현재는 계정 자체가 없어진 상태다.
‘전두환 옹호’ 발언으로 여론의 질타를 받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이번엔 공식 에스엔에스(SNS)에 반려견에게 사과를 주는 사진을 게시해 논란에 휩싸였다. ‘전두환 미화 망언’을 사과한 당일 밤에 ‘사과는 개에게 주라’고 해석되는 조롱성 사진을 올리면서, 사과의 진정성은 물론 대선 후보로서의 자질까지 의심받고 있다.
굳이 이 시점에…24시간 사이 세차례 ‘먹는 사과 사진’ 올린 윤석열
22일 오전 0시10분께 윤 전 총장 개인 인스타그램엔 ‘먹는 사과’ 사진이 게시됐다. 나무에 끈으로 사과를 달아놓은 사진과 함께 “석열이형이 어렸을 적 아버지는 퇴근길에 사과를 하나씩 사 오셨대요. 그러고는 몰래 마당에 있는 나무에 사과를 실로 묶어두었답니다”라는 내용이 게시됐다.
비슷한 시간, 윤 전 총장의 반려견 토리의 사진을 모아둔 인스타그램에도 사진이 올라왔다. 누군가 토리에게 사과를 주는 모습과 함께 “오늘 또 아빠가 나무에서 인도사과 따왔나 봐요. 토리는 아빠 닮아서 인도사과 좋아해요”라는 글이 게시됐다. 두 사진 모두 공개된 뒤 1시간여가 지나 삭제됐다.
윤 전 총장이 만 하루 사이 인스타그램에 사과 사진을 올린 건 총 세 차례다. 윤 전 총장 공식 인스타그램엔 지난 21일 새벽에도 돌잔치 때 그가 사과를 잡고 있는 사진과 함께 “석열이형은 지금도 과일 중에 사과를 가장 좋아한답니다”라는 글이 올라온 바 있다. 지난 19일 오전 윤 전 총장이 “쿠데타와 5·18만 빼면 정치는 잘했다”며 ‘전두환 옹호 발언’을 한 뒤 사과 대신 “곡해하면 안된다”며 기존 입장을 굽히지 않을 때였다. ‘사과를 좋아한다’는 장난스러운 사진은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한 격이었다. 그는 21일 오전 청년공약 발표 기자회견에서 결국 “부적절했다는 비판을 겸허히 수용하고 유감을 표한다”고 했지만, 그런 뒤에도 “아무리 내가 생각해도 할 만한 말이라고 생각했더라도 받아들이는 국민이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하면 그 비판을 수용하는 것이 맞는다는 것”이라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21일 오후가 돼서야 페이스북을 통해 “전두환 정권에 고통을 당하신 분들께 송구하다는 말씀드린다”는 글을 추가로 올리며 거듭 몸을 낮췄으나, 그날 밤 다시 ‘사과 사진’이 올라온 것이다.
윤 캠프 “실무자의 실수”라지만…캠프 난맥상 표출 지적 이어져
‘사과 사진’을 별 문제 아닌 듯 여긴 캠프의 초기 수습 과정도 도마에 올랐다. 캠프에서 종합지원본부장을 맡은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은 이날 오전 <문화방송>(MBC) 라디오 인터뷰에서 “인스타그램은 그냥 ‘약간 재미를 가미한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될 것”이라며 “너무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 없다”고 가볍게 응수했다가, 2시간여 만에 “ 사실관계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해 추정해서 말한 것”이라며 “더욱 사려깊게 임하겠다”고 사과했다.
이어 캠프는 입장문을 통해 “반려견 인스타 계정은 평소 의인화해서 반어적으로 표현하는 소통수단으로 활용했다. 실무자가 가볍게 생각해 사진을 게재했다가 실수를 인정하고 바로 내렸다”며 “앞으로 신중하게 게시하겠다. 시스템을 재정비하겠다”고 사과했다. 캠프는 이후 토리 인스타그램 계정 자체를 아예 삭제했다.
그러나 실언 뒤 뒤늦은 사과, 사태의 심각성을 간과한 가벼운 행동이 이어지자 애초 윤 전 총장의 ‘찔끔 사과’ 또한 진정성이 없었던 것이란 비판이 들끓었다. 자중해야 할 시점에 등장한 ‘사과 사진’은 후보 개인과 캠프의 총체적인 난맥상이 터진 것이란 지적이다.
윤 전 총장 캠프 관계자는 사과 사진이 게시된 배경을 두고 “사과가 가을 특산물이기 때문에 주제로 사진을 찍어 게시한 것”이라며 “캠프 내 커뮤니케이션이 원할하지 않은 상황에서 (전두환 발언 이슈를 고려하지 못하고) 기존에 정해둔 콘셉트를 그대로 가져가는 바람에 논란이 확대됐다. 한 표 한 표가 중요한 상황에서 상식적으로 일부러 사과 사진을 올릴 이유가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그러나 반려견이 등장한 사진이 촬영·게시된 상황을 윤 전 총장과 가족이 정말 관여하지 않았는지를 두고도 의구심은 커지고 있다. 특히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문제 사진 속 반려견 눈동자에 다리를 벌리고 앉은 윤 전 총장과 여성의 모습이 비친다는 의혹까지 제기됐다. 반려견 계정을 윤 전 총장의 배우자인 김건희씨가 직접 운영해왔다는 뒷말까지 돌아다니면서 윤 전 총장이 사진 게시를 알고 있었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이에 캠프 관계자는 “해당 사진은 20일 밤 11시께 촬영했고, 촬영 장소도 집이 아닌 인근 사무실”이라며 “윤 전 총장은 당시 대구에서 토론회를 끝나고 서울로 올라오기도 전이었다. 사진에 등장한 사과를 건네는 손도 윤 전 총장의 배우자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실무자가 편의상 보고 없이 게시해버린 것이다. 통상 게시 내용, 시기를 잡아서 에스엔에스를 활용하는데 그런 판단을 거치지 않고 바로 나가게 된 것”이라며 “캠프가 간과한 게 실수”라고 책임을 캠프 실무자에게 돌렸다.
실언 뒤 뒤늦은 사과, 일탈급 행보…반복되는 논란에 당내도 부글부글
당내에서도 도를 넘어섰다는 반응이 나왔다. 이준석 대표는 이날 오전 페이스북에 “상식을 초월한다”며 “착잡하다”고 글을 올렸다. 홍준표 의원도 페이스북에 “부적선거에 이어 ‘개사과’ 까지 갈데까지 간 야당 경선”이라며 “이쯤 해서 밑천도 다 들통 났으니 결단 하시라. 야당 경선을 국민적 조롱감으로 만들고 모처럼 불기 시작한 야당붐에 찬물 그만 끼얹고 그만 두시고 매일매일 토리와 부인과 같이 인도사과 게임이나 하시라”고 꼬집었다. 유승민 전 의원 캠프의 권성주 대변인은 논평에서 “사과는 개나 주라는 윤석열 후보, 국민 조롱을 멈춰라”라며 “자신의 망언에 대한 사과 요청에 과일 사과 사진을 에스엔에스에 올려 국민을 조롱하더니, 끝내 겨우 ‘송구’하다 말한 그날 심야엔 개에게 사과를 주는 사진을 추가로 올렸다. 누가 봐도 사진의 의미와 의도는 명확했다. ‘사과는 개나 주라는 것’”이라고 일갈했다.
민심을 등 돌리게 한 ‘전두환 망언’, 뒤끝있는 사과, 국민 우롱성 ‘사과 사진’까지 이어진 3연타 악재는 결국 본선에서도 윤 전 총장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진단이 나왔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한겨레>에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진위가 왜곡됐다’는 반응이 먼저 나오는 것은 지도자의 기초적 소양인 ‘성찰’이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이라며 “실무자의 실수라 하더라도 그걸 관리하지 못한 시스템 부재는 후보가 책임질 문제다. 상식을 벗어난 행동이 거듭되고, 열성 지지층 반응에만 몰두한 행보를 보인다면 본선에서는 치명적”이라고 짚었다.
김미나 기자
min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