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후보와 홍준표 후보가 11월 5일 오후 서울 용산구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열린 국민의힘 제2차 전당대회에서 악수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국민의힘 경선 결과가 발표된 지난 11월 5일 저녁 민주당 전직 의원은 “우리로서는 다행스러운 결과”라고 촌평했다. 왜 그런지 이유를 물었다.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최근에 젊은층을 많이 만났다. 윤석열도 싫어하고 이재명도 싫어한다. 홍준표를 확실히 좋아한다. 시원하다는 것이다. 귀엽다는 것이다. 홍준표가 후보가 됐으면 속수무책으로 정권이 넘어갔을 것이다. 윤석열? 해볼 만하다.”
보수 정당 대선 주자가 20~30대 젊은 유권자들의 지지를 받은 것은 우리나라 정치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김영삼도 이회창도 이명박도 그런 호사를 누리지 못했다.
20~30대가 국민의힘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한 것은 엘에이치 사태 등으로 문재인 정부가 내세웠던 공정의 가치가 흔들리면서다. 4월 9일 서울시장 보궐선거, 6월 전당대회 이준석 대표 당선 등을 거치며 20~30대의 국민의힘 지지가 올라갔다. 입당도 폭발적으로 늘었다.
그런 20~30대의 지지를 몽땅 쓸어담은 사람은 6월 24일 뒤늦게 복당한 홍준표 후보였다. 이유가 뭘까? 뭐가 시원하다는 것일까? 뭐가 귀엽다는 것일까?
첫째, 선명한 메시지다. 홍준표 후보는 대입 수능시험을 폐지하고 정시로만 대학에 입학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사법시험을 부활해 개천에서 용이 나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우리 사회가 이룬 제도적 합의의 근간을 허무는 위험한 공약이다. 그러나 공정에 목마른 20~30대에게는 희망의 소식이었다.
둘째, 자신 있는 태도다. 정치인의 메시지는 이성보다 감성에 호소해야 통한다. 홍준표 의원은 내용이 부실해도 말할 때 거침이 없다. 그런 태도가 과거에는 막말로 비판받았지만, 지금은 속 시원한 사이다 발언으로 평가받는다. ‘무야홍’(무조건 야당 후보는 홍준표)이라는 감성적 구호가 대표적이다. 젊은 유권자들의 입에 착착 붙었다.
보수 진영 대선 후보 적합도 조사에서 6월까지 홍준표 의원은 한 자릿수였지만 7월부터 무섭게 치고 올라갔다. 9월 둘째 주 추석 연휴 이전에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앞서는 ‘골든 크로스’를 이뤘다.
전국지표조사 10월 둘째 주 보수 진영 대선후보 적합도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대선후보를 여론조사로 뽑는 국민의힘 경선 방식을 옳다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민심에서 10%포인트 앞선 후보를 고연령층 당원들이 똘똘 뭉쳐 떨어뜨린 것은 지혜로운 일이 아니다.
지난 4월 서울시장 보궐선거 이후 국민의힘에 입당했던 20~30대 유권자들의 탈당이 잇따르고 있다. 이들의 탈당 이유는 “노인의힘, 노인당에는 희망이 없다”는 한마디로 응축된다.
윤석열 후보와 이준석 대표도 당황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두 사람의 새로운 과제다.
홍준표 의원을 지지했던 20~30대 표심은 어디로 갈까?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이들이 20대 대선의 최종 결과를 좌우할 가능성이 커졌다는 것이다.
홍준표 의원은 앞으로 어떻게 할까?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차례로 썼다.
“이번 대선에서 홍준표의 역할은 여기까지입니다. 모두 힘을 합쳐 정권교체에 나서 주시기 바랍니다.”
“이번 대선에서는 평당원으로 백의종군하겠습니다.”
“내 나라가 꿈과 희망이 있는 나라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한동안 쉬면서 생각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사상 최초로 검찰이 주도하는 비리 의혹 대선에는 참여할 생각이 없습니다. 다만 이번에 저를 열광적으로 지지해 준 2040들의 놀이터, 청년의 꿈 플랫폼을 만들어 그분들과 세상 이야기하면서 향후 정치 일정을 가져가고자 합니다. 나머지 정치 인생은 이 땅의 청장년들과 꿈과 희망을 같이 하는 여유와 낭만으로 보내고 싶습니다.”
홍준표 의원은 졌다. 그의 정치 역정에 ‘다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보수의 미래에 희망의 싹을 틔운 정치인으로는 남을 것 같다. 그것만으로도 그는 성공한 정치인이다.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