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폭등한 집값과 전셋값 문제를 지적한 이문수(가명·45)씨, 화성 동탄 분양전환 공공임대 임주자 이석주(39)씨, 공공임대 보증금 부담을 호소한 장중근(35)씨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한겨레>가 만난 무주택자 23명은 유례없는 집값 폭등이 이어진 문재인 정부를 지나며 후회와 배신감, 좌절과 낙담과 같은 감정을 가감 없이 쏟아냈다. 다만 소득과 자산 수준에 따라
마음가짐은 달랐다. 애초 실명을 전제로 인터뷰에 응한 이들 중 일부는 전세보증금과 월세, 소득과 자산, 부채 등 경제적 프라이버시를 털어놓은 뒤 익명 요구로 전환했다.
“경기도 부천에 사는 친구들이 저한테 ‘집 샀냐’고 물어봐서 아니라고 하니까 ‘벼락거지네’ 이러더라고요. 현타(현실 자각 타임)가 왔죠.”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 전용 84㎡ 아파트에 보증금 4억원에 40만원 월세로 살고 있는 윤영민(가명·42)씨가 한 말이다. 그가 2014년 6억원대에 살 기회를 놓친 마포래미안푸르지오 전용 84㎡ 아파트는 지난해 최고 실거래가 19억3500만원(110A타입)을 찍었다.
한국부동산원 자료를 보면,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2017년 5월 5억7천만원이었던 평균 아파트 매매가격은 지난해 11월 11억4천만원으로 4년6개월 만에 2배로 올랐다. 서울의 평균 아파트 매매가격은 2018년 12월까지만 해도 7억1천만원이었다. 398만가구 중 51.5%(205만가구)가 무주택인 서울에서 ‘벼락거지’와 같은 자조가 횡행하고 “2017년 이전으로 돌아가자”는 ‘타임슬립’ 요구가 빗발친 까닭이다.
폭등한 시세는 공공분양 분양가에 반영돼 공공 공급대책을 바라던 시민들을 절망케 했다. 분양가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택지비가 주변 시세를 반영하는 감정평가를 통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지난해 4차 사전청약에서 공급된 서울 대방 신혼희망타운 분양가는 7억2천만원에 이르렀다. 2020년 신혼부부 연평균 소득(5989만원)을 한푼도 쓰지 않고 12년 동안 모아야 손에 쥘 수 있는 금액이다. 지난해 8월 일곱번째 3기 새도시로 발표된 의왕·군포·안산 지구도 비슷하다. 2018년 이곳에 전세 2억4천만원을 주고 입주한
강주현(37)씨는 당시 2억9천만원이던 매맷값이 최근 6억원 이상으로 뛰었다고 했다. “안 산 내가 바보죠. 집을 못 샀다는 분노나 후회로 너무 고통을 받아서 지금은 체념한 상태예요.”
2기 새도시인 파주 운정의 ‘10년 분양전환 공공임대’에서 절망은 극대화했다. 박혜민
(가명·38)씨는 지난해 8월 분양전환을 두달 앞둔 공공임대 주택인 운정 한울마을 6단지에 입주했다. 건설 현장에서 착실하게 일해온 남편과 아이 둘을 낳으면서 예비번호 18번을 받고 1년 반을 기다린 결과였다. “내 집 마련하라고 하늘이 주신 기회”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두달 뒤 통보받은 분양가는 4억6천만원이었다. 10년 분양전환 공공임대는 만기분양 이전이라도 5년 지난 시점부터 조기분양이 가능한데, 파주 운정에선 9년차인 2020년 조기분양을 했다. 이때 분양가가 2억3천만원이었는데 몇달 사이 2배로 오른 것이다. “저희가 4억6천만원을 마련할 수 있었으면 신혼부부 특별공급으로 민간분양 아파트에 들어갔겠죠. 10년 된 아파트 분양가가 주변 신축 분양가보다 비싼 게 말이 되나요? 정부한테 사기당한 것 같아요.”
파주 운정은 문재인 정부 부동산 정책의 대표적인 실책으로 꼽히는 ‘핀셋 규제’와 ‘풍선 효과’의 직격탄을 맞았다. 대출 규제 등이 적용되는 ‘조정대상지역’을 32곳 신규 지정해 69곳으로 늘린 2020년 6·17 대책 때 2기 새도시가 있는 김포와 파주가 제외되면서 일단 사고 보자는 추격매수 수요가 이곳으로 대거 쏠렸다. 이에 한울 6단지 인근 한빛마을 4단지 롯데캐슬파크(전용 84㎡)의 실거래가는 6·17 대책 이전에 4억원대였는데, 이후 5억원대로 뛰었고, 지난해 최고가가 8억원으로 치솟았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엘에이치)에 따르면, 연도별로 순차 분양전환을 앞둔 10년 분양전환 공공임대 주택이 수도권에만 48개 단지 1만2433호에 달한다. 엘에이치 인천지역본부는 “파주의 경우 지티엑스(GTX) 노선 관련 호재 등 최근 거래 시세 급등으로 가격 격차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2017년 화성 동탄의 10년 분양전환 공공임대에 입주한
이석주(39)씨는 공공주택 제도가 자산형성을 가로막고 있다고 했다. 입주민들은 올해 이 주택을 조기분양 받을 수 있게 되는데, 주변 시세 7억5천만원을 기준으로 분양전환가가 6억원 정도 될 것으로 보고 있다. “
입주 때 공급가(일종의 분양원가)가 2억5천만원이었어요. 이게 6억원이 됐으면 3억5천만원은 엘에이치가 가져가는 거잖아요. 자산이 없어서 민간분양 못 받고 공공임대로 들어왔는데, 3억원대 민간분양 받은 사람들은 시세 6억원이 자산이 되는데 저는 부채가 될 판이에요. 이렇게 차이가 나도 됩니까?”
왼쪽부터 민간분야보다 비싼 분양전환가에 화난 박혜민(가명)씨, ‘벼락거지’가 됐음을 체감한다는 윤영민(가명·42)씨
유권자들은 이렇게 시세를 반영해 치솟고 있는 공공주택 분양가 등에 대한 공약을 요구하고 있지만,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재개발·재건축 완화로 민간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기조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도 기본주택 100만호 외에 민간공급을 위한 규제 완화를 적극 검토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민간공급 확대는 재개발 지역 무주택 세입자들의 ‘주거 위기’로 직결될 우려가 크다.
홍유정(가명·32)씨는 아픈 노모와 둘이 살면서 ‘스리잡’으로 월 200만원 정도 번다. 오래전 가족이 남긴 부채도 떠안고 있다. 중학교 1학년이던 2003년부터 성북구 장위동의 반지하에 살았는데, 이 지역이 민간 재개발에 들어가면서 지난해 3월 집에서 “쫓겨났다.” 세입자 이주비 1600만원은 체납 임대료를 갚느라 집주인에게 넘어갔다. “(재개발 조합이 운영하는) 이주센터에서 공공임대 주택을 신청하라고 했는데, 보증금이 2300만원부터 4천만원까지 있더군요. ‘당신들 쫓겨나는 거니까 나라에서 이렇게 지원해주는 거다’라고 해서 저는 보증금을 해결해주는 줄 알았는데, 그만큼 돈이 있어야 한다는 얘기였어요.”
노숙의 위기에 처한 홍씨 모녀를 구한 건 성북주거복지센터였다. 지난해 12월23일 센터의 지원으로 보증금 50만원, 월세 35만원인 ‘무보증’ 매입임대에 입주했다. 임대주택이지만 20년 거주 기간이 보장되는 이 집을 두고 홍씨는 “내 집”, “로또”라는 표현을 썼다. “저는 지금까지 실패한 사람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이제 5만원이라도 적금 들고 실비보험이라도 들려고 해요.” 김선미 성북주거복지센터장은 “일본처럼 조세를 부담능력에 맞게 ‘응능’ 부담하고, 행정 서비스를 받는 이익의 양에 따라 ‘응익’ 부담하는 제도가 아니라 시세를 기준으로 보증금을 결정하다 보니 보증금이 없어서 공공임대 입주를 포기하는 분들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유권자와 함께하는 대선 정책 ‘나의 선거, 나의 공약’]
②집을 포기했다: 23명의 이야기 下편
“너네 집 전세야?” 월급으론 따라갈 수 없는 집값
https://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1026671.html
진명선 노지원 김용희 기자
tor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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