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대화의집에서 대화문화아카데미 주최로 열린 대화모임 ‘진영과 대권을 넘어'에서 박명림 연세대학교 교수가 기조발제를 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학계·정치권 원로들이 비호감 경쟁이 격화하고 있는 이번 대선 결과에 우려를 나타내며 제왕적 대통령제 종식과 이를 위한 헌법개정 필요성을 강조했다.
21일 서울 종로구 ‘대화의집’에서 열린 ‘진영과 대권을 넘어서’라는 주제의 토론회에 발제자로 나선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는 “이번 선거에서 후보 개인과 가족들의 추문과 풍설, 진영대결과 진영적대가 역대 최악이라고 평가될 만큼 심각한 수준”이라고 우려했다. 박 교수는 이번 대선에서 유독 극심해진 “적대와 반목, 혐오와 증오의 언사들과 후보와 후보 요인을 둘러싼 최악의 자질 공방”의 제도적 원인으로 승자독식의 선거 제도와 제왕적 대통령제를 꼽았다. 그는 “민주화 이후 누적된 진영주의, 대통령에 권력 집중, 인물주의 등의 문제가 합쳐져, 지금껏 민주적 검증을 받아본 적 없고 정치 경험이 전무한 후보들의 낮은 자질과 품성을 둘러싸고 분노와 적대가 드러나고 있는 것”이라며 “선진 민주국가를 만들기 위해 개헌과 선거제도 개혁은 미룰 수 없는 필요조건이 되었다”고 말했다. 대통령의 권한은 막강하지만 이를 감당하기 어려운 후보들이 경쟁하고 진영 논리와 결합돼 상대 후보를 향한 분노만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박 교수는 “추호도 국민선택에 따른 민주적 선거결과를 부정하거나 불복하는 민주주의 부인행위를 시도하지 않아야 한다”, “민주주의와 법치의 범주를 넘는 어떠한 정치보복도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며 비호감 대선 이후의 정치적 혼란도 경계했다.
박 교수는 개헌 전에라도 이런 악순환을 막기 위해선 새 대통령이 현행 헌법의 정신을 살려 ”대권 관행, 대권 문화, 대권 의식을 반드시 철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우선 “대통령 1명과 청와대 비서 중심의 국정운영 방식을 확실하게 종식”해야 하며, 헌법이 정하고 있는 △국무총리의 장관 제청권 보장 △국무회의의 심의 기능 실질화 △사법부와 사정·감사·감독기구의 독립을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토론자로 나선 이홍구 전 총리도 “6·29 선언 뒤 직선제 제도가 도입되고 적잖은 시간이 흘렀는데, 많이 발전했나 생각해보면 도저히 그렇게 이야기할 수가 없을 거 같다”며 “그래서 최소한도로 선거를, 또 제도를 제대로 만들어서 잘 운영해야 한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하게 된다”고 말했다. 김원기 전 국회의장도 “한 사람한테 집중돼있는 제왕적 대통령제를 바꿔서 국회가 정치의 중심이 돼야 한다”며 “이를 위해 국민의 공감대를 얻고 개헌을 성사시키는 것이 현재 정치가 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할 길이고, 그 외에 다른 길은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정치학)는 “다수결로 승자독식하는 대통령을 선출하는 선거가 구조적이고 제도적으로 비호감 선거를 만드는 것”이라며 “대통령 중심제와 짝을 이루는 정당정치의 퇴락도 큰 문제다. 선거 때마다 정당은 왜소화되고 캠프가 정당을 대체하는 구조가 이번에도 이어지고 있다. 정당 체제도 정상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야 유력 대선후보들이 권력구조 개편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는 요구도 이어졌다. 헌법개정국민주권회의 대표인 이상수 변호사는 “오는 25일에 열리는 중앙선관위 주최 4자 티브이(TV) 토론회 주제가 권력구조라고 한다“며 “각 후보들한테 당신은 권력구조를 어떻게 할 것이요, 협치를 어떻게 할 것이오, 합의제 민주주의를 어떻게 할 것인지 묻고, 답변을 받고 확인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최하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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