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가 23일 충남 당진시 당진어시장에서 열린 ‘서해안의 중심도시 당진, 이재명이 만들겠습니다!' 당진 유세에서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선거를 15일 앞둔 22일 공약집을 발간했지만, 기본소득과 기초생활보장수급 대상자 확대 등 복지 공약과 병사월급 200만원 지급과 같은 정책의 구체적인 재원 마련 방안을 담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기금 고갈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 국민연금 개혁방안과 차별금지법도 빠져 있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선거가 임박한 상황임에도 공약집조차 내놓지 않고 있다.
이 후보는 공약집에서 전체 공약을 ‘신경제'와 ‘공정성장' 등 5대 비전과 이를 세분화한 20대 핵심 추진 과제로 분류했다. 특히 이 후보는 대표 공약인 기본소득을 연 25만원 지급으로 시작해 임기 말까지 연 100만원을 목표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또 2023년부터 만 19~29살을 대상으로 한 청년기본소득 연 100만원, 농어촌 거주 농어민과 문화예술인에 대한 연 100만원 지급을 추진하기로 했다. 아울러 기초생활보장수급 대상도 현행 중위소득 30%에서 50%로 단계적 상향을 검토하기로 했고, 만 8살까지 지급되는 아동수당도 아동·청소년수당으로 확대해 임기 말인 2027년에는 만 18살까지 지급하며, 병사월급도 최저임금 수준인 200만원 이상 지급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런 복지 제도를 시행할 재원 마련 방안은 공약집에 담겨 있지 않다. 애초 국토보유세로 불렸던 토지이익배당과 탄소배당(탄소세)을 재원으로 추진한다는 내용만 적혀 있다. 앞서 이 후보는 지난해 7월 기본소득 공약을 발표하면서 재정구조개혁과 조세감면분 축소에 더해 기본소득토지세로 50조원, 탄소세로 30조~64조원을 걷겠다고 밝혔는데데, 이런 내용마저 빠진 것이다.
특히 기본소득은 연간 25만원을 지급하려면 12조5천억원, 100만원 경우에는 50조원이 필요하다. 청년기본소득과 농어민·문화예술인 100만원도 실현하려면 연간 7조~8조원으로 추산된다. 기초생활보장수급 대상자 확대에도 4조원 정도가 필요하고, 병사월급 인상에만 추가 소요예산은 4조~5조원, 연동돼 올려야 하는 간부 월급과 군인연금에서 국가가 부담해야 할 납부액까지 합치면 10조원이 드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 재원을 추산한 우석진 명지대 교수(경제학)는 “재정구조개혁으로 얻을 수 있는 재원은 한계가 있고, 조세감면은 문재인 정부 내내 확대돼서 줄이기가 어렵다. 토지이익배당은 시행한다고 해도 기본소득에만 쓸 수 있고, 탄소배당은 결국 법인세와 연동해서 거둘 수 있는 규모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며 “결국 증세밖에 방법이 없는데 이번 선거에선 그런 논의 자체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 관계자는 “사회적 안전망을 확충하고 국민들이 그 안전망의 효력을 체감한 뒤 이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세금을 늘리는 경로를 만들어야 하는 측면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연금개혁 공약 두루뭉술…차별금지법 제정도 누락
이 후보의 연금개혁 공약도 △공적연금 이해당사자가 참여하는 연금개혁위원회 운영 △2023년 연금개혁안 마련하고 국민 동의 바탕 개혁 추진 정도의 두루뭉술한 수준에 그쳤다. 국민연금은 2055년이면 적립금이 고갈된다는 추계가 나오면서 가입자가 내는 보험료율을 인상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지난 19일 낸 공약집에 보험료율을 인상하고, 기초연금은 30만원에서 40만원으로 올리며, 공무원연금 등 특수직역연금을 국민연금 방식으로 통합하는 방안을 담았다.
여성과 성소수자 등을 대상으로 한 구조적 차별을 없애기 위한 차별금지법도 공약집에 담기지 않았다. 이 후보는 앞서 <한겨레>의 ‘나의 선거, 나의 공약’ 관련 질의 때도 “차별금지법은 제정되는 것이 타당하다. 다만, 오해와 곡해가 제거될 수 있도록 충분한 토론을 통해 이견을 조정하는 과정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유보적인 답변을 했는데, 결국 공약집에 명시하지 않은 것이다. 손희정 경희대 비교문화연구소 연구교수는 “이 후보가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의 ‘인권 의제’ 질의에도 성소수자 권리 지지 공개 표명과 군대 내 남성간 성관계 처벌하는 군형법 조항 폐지에 ‘추진 불가’라고 답했다. 스스로 진보정당 후보라고 얘기하는 정치인이 ‘나중에 정부’ 시즌2로 나아가고 있다”며 “결국 선거에서 위험을 감수하지 않겠다는 입장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대선 2주 남았지만 윤석열·안철수 공약집은 아직
심상정 정의당 후보가 지난 19일, 이재명 민주당 후보는 대선을 2주 앞둔 이날 공약집을 완성해 공개했지만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아직 공약집을 내놓지 않고 있다. 윤 후보 쪽은 “금주 내로 예상하고 있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고 마지막 점검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사법개혁 공약 설명자료에 여성 혐오 표현인 ‘오또케’가 포함되는 등의 논란이 빚어지자 마지막까지 검토를 거듭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안 후보 쪽은 ”이미 발표한 정책이라도 전문가 의견을 수렴해 수정할 부분은 과감하게 고쳐서 내려고 한다”며 “최선을 다해 마무리하고 있다. 조만간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5년 전 19대 대선 때는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가 선거 24일 전, 심상정 정의당 후보가 23일 전,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15일 전에 공약집을 냈다.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는 12일 전, 문재인 민주당 후보는 11일 전에 공약집을 공개했다. 19대 대선 일정이 박근혜 대통령 탄핵 때문에 갑자기 확정된 점을 감안하면, 이번 20대 대선후보들의 공약집 완성은 그때보다 늦은 편이다.
이재훈 기자
nang@hani.co.kr 김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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