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20대 대통령을 뽑는 이번 대선은 역대급 혼전이었다. 유력후보들의 도덕성 논란이 불거지며 ‘비호감 경쟁’으로 불렸고 유권자들은 그런 ‘악조건’ 속에서 앞으로 5년을 이끌어갈 차선 또는 차악의 리더를 선택해야 했다. 혼전과 접전이 이어졌던 이번 대선 경쟁을 5가지 장면으로 결산했다.
이번 대선의 또 다른 특징은 여야 후보들의 ‘정책 동조화’다. 이름만 가리면 누구의 정책인지 알 수 없을 만큼 여야 후보들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비슷한 공약들을 쏟아냈다. 정책 비전이나 의제는 실종된채, ‘한줄 공약’ ‘단타성 공약’ 등이 이어졌다.
특히 이번 대선의 주요 변수로 작용한 부동산 정책에서 이런 경향이 두드러졌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 모두 대대적인 주택 공급 확대와 규제완화, 세금 완화를 주장하고 나섰다. 이 후보는 법을 개정해 4종 일반주거지역을 신설하고 용적률을 500%까지 상향해 재건축·재개발에 속도를 내겠다고 했다. 윤 후보 역시 용적률을 최대 500% 높이겠다고 약속하며, 역세권 2·3종 일반주거지역을 준주거지역으로 상향조정하겠다고 약속했다. 이 밖에도 ‘공시가격 제도 개선’, ‘부동산 과세이연 제도 도입’, ‘경인선 전철, 경인고속도로지하화’ 등도 여야 후보들이 비슷하게 내놓은 공약들이다.
여야 후보들이 이미 상대가 발표한 공약을 마치 ‘원래부터’ 자신의 공약인 것처럼 발표하는 경우도 허다했다. 지난달 28일 이 후보는 페이스북을 통해 기초연금을 현행 30만원에서 40만원으로 인상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는 지난달 7일 심상정 정의당 대선 후보가 내놓은 공약을 지난 16일 윤 후보에 이어 이 후보까지 잇달아 발표한 것이다.
2030 청년들과 관련된 공약 역시 다른점을 찾기 어렵다. ‘병사월급 200만원’ 도입은 이 후보가 지난해 12월24일 발표한 뒤, 윤 후보가 약 2주 뒤인 1월9일 같은 내용으로 발표했다. 반면 가상자산 투자수익 과세 기준을 현 250만원에서 5000만원으로 상향하는 내용은 윤 후보가 먼저 치고나간 뒤 이 후보가 따라간 경우다.
이처럼 두 후보의 공약이 비슷해진데는 이번 선거에서 양당의 주요 전략층이 ‘서울’과 ‘2030 청년’에 초점이 맞춰진 것도 무시할 수 없다. 공략층이 비슷하다보니 차별성이 있는 비전을 두고 경쟁하기보다 서로 비슷한 공약을 발맞춰 내놓는 데만 급급한 것이다.
대신 연금개혁이나 노동, 복지, 교육 정책 등 논란이 예고되는 ‘민감한’ 정책은 주요하게 다뤄지지 않았다. 윤석열 후보는 여성가족부 폐지 등 ‘젠더 갈라치기’에 나섰고 선거운동 막바지엔 노조 혐오성 발언도 쏟아냈다는 비판을 받는다. 심상정 정의당 후보의 ‘주4일제’를 제외하고는 후보 자신만의 의제도 눈에 띄지 않는다. 이재명 후보의 ‘기본소득’은 선거운동 과정에서 당 안팎의 우려가 제기되자 후순위로 밀렸다. 한국정책학회·한국행정학회는 지난달 23일 민주당·국민의힘·정의당·국민의당 등 4개 주요 정당의 대선 후보자를 대상으로 정책공약을 평가한 결과를 발표하며 “과거에 비해 후보자들 간의 공약들이 서로 유사해지고 있다”며 “재정을 고려하지 않는 선심성 공약을 남발하고 있다는 비판을 면치 못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서영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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