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호중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이 13일 국회 당 대표실에서 비상대책위원회 인선안을 발표한 뒤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이 13일 디지털성범죄집단 ‘엔(n)번방 추적단 불꽃’ 활동가인 박지현(26) 여성위원회 부위원장을 비상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으로 내세우며 당 쇄신 작업에 착수했다. 윤호중 비상대책위원장은 “절실하고 간절하게 변화하겠다”고 고개를 숙였지만, ‘윤호중 비대위 체제’에 대한 당내 반발은 좀처럼 잦아들지 않는 모양새다.
윤 비대위원장은 이날 국회 당대표실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박 공동위원장 인선을 발표하며 “박 공동위원장은 온갖 협박에 굴하지 않고, 불법·불의에 저항해 싸워왔다”며 “이번에 다시 가면과 아이디(ID)를 내려놓고 맨얼굴과 실명으로 선 용기를 보여줬다”고 소개했다. 그는 “청년을 대표하는 결단과 행동이야말로 민주당에 더없이 필요한 소중한 정신이자 가치”라며 “박 공동위원장은 성범죄 대책 및 여성정책은 물론 사회약자·청년 편에서 정책 전반을 이끌어 줄 것”이라고 밝혔다.
윤 비대위원장은 이날 비대위 인선안을 발표하며 “청년·여성·민생·통합의 원칙으로 비대위 구성을 마무리 지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전체 비대위원 절반을 2030세대로 선임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박 공동위원장을 비롯해 광주 선대위 공동위원장을 역임한 청년창업가 김태진(38) 동네줌인 대표와 선대위 다이너마이트 청년선대위 위원장으로 활동한 권지웅(34) 민달팽이 협동조합 이사, 기후·환경·에너지 전문가로 분류되는 이소영(37) 의원이 2030으로 분류된다.
또 ‘재벌저격수’로 활동한 채이배(47) 전 의원과 이낙연 전 총리 비서실장을 지낸 배재정(55) 전 의원, 당내 쓴소리를 도맡아 온 조응천(59) 의원 등도 비대위에 이름을 올렸다. 이들 외에도 오는 25일 새로 선출될 원내대표와 대선 과정에서 이재명 대선 후보 지지 선언을 한 한국노총 추천하는 노동 분야 비대위원 등 2명이 추가 합류해 총 10명으로 비대위가 구성된다.
비대위 인선이 마무리 수순에 들어갔지만, 당 안에서는 ‘윤호중 비대위 체제’의 부적절성을 지적하는 목소리는 계속 터져 나오고 있다. 지난주 ‘이재명 비대위원장 차출’을 주장했던 김두관 의원은 이날도 “윤 위원장은 물러나고, 이재명 후보는 어떤 형태로든 지방선거에 나서서 승리를 이끌어야 한다”는 글을 또다시 페이스북에 올렸다. 이수진 의원도 이날 페이스북에 “국회의원들에게조차도 의견 한 번 제대로 묻지 않고 개혁과제 미완수에 총체적 책임이 있는 윤 원내대표를 비대위원장으로 삼았다”며 “이재명 비대위가 당의 화합책”이라고 적었다.
민주당 보좌진협의회(민보협)도 “과연 제대로 쇄신을 이끌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며 윤호중 비대위를 정면 비판했다. 민보협은 이날 저녁 민보협 게시판에 입장문을 올려 “과감하고 빠른 변화가 필요한데 오늘 구성된 비대위가 과연 제대로 이끌 수 있는가”라며 “이전과는 다른 방향성을 제시하고 제대로 추진할 수 있는 인사가 당을 이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또 “지난 5년 동안의 과오를 면밀히 분석하고, 국민들의 생각을 그대로 인정하고, 철저히 반성하고, 분골쇄신의 각오로 임해야 한다”며 “그런데 지금 우리는 국민의 뜻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제대로 된 변화와 쇄신을 위한 비전과 의지를 다지고 있는지 자문해야 한다”고도 했다.
부친상을 당한 안희정 전 충남지사에게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 의원들이 근조화환을 보낸 것을 두고도 당내 비판이 잇따랐다. “권력형 성범죄로 고통받고 있는 피해자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무책임한 행동”이 민심의 반감을 부를 수 있다는 지적이다. 박지현 공동비대위원장이 전날 밤 페이스북에 “민주당이 내로남불 소리를 듣는 데는 다른 이유가 있는 게 아니라, 피해자를 최우선으로 배려하지 못하는 바로 이런 행동 때문”이라고 비판한 게 대표적이다. 박 공동비대위원장은 “사적인 친분으로 안타까운 마음을 표현하고자 한다면, 드러내지 않고 개인적으로 할 수 있는 방법도 얼마든지 있다”며 “근소한 차이로 선거에서는 패배했지만, 민주당은 승패를 떠나 분명히 쇄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같은날 이탄희 의원도 페이스북에 “결론적으로 섬세하지 못했고, 피해자의 상황에 대해 무감각했다”며 “이런 무감각한 태도는 바뀌어야 한다”는 글을 올렸다. 이 의원은 “바꾸지 않으면 민주당이 추진하는 연합정치 정치개혁안도 성공할 수 없다”고도 했다.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대선 후유증이 표출되고 있다. 이 후보의 강성 지지자들이 이낙연 전 대표에게 경선 과정에서 ‘대장동 특혜 개발 의혹’을 제기한 것과 선거를 열심히 돕지 않았다는 것 등을 비판하는 ‘문자 폭탄’을 보내고, 당 내부 게시판에서 이 후보와 이 전 대표 쪽 지지자들이 서로를 헐뜯는 글들을 잇따라 올리며 논란이 되고 있다.
윤 비대위원장은 “책임을 통감한다”면서도, 이번 비대위 구성이 지방선거를 80일 앞둔 상황에서 혼선을 피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점을 강조하며 진화에 나섰다. 특히 이 후보의 비대위원장 차출 요구에 대해선 “앞으로 거취에 대해선 (이) 후보님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저희가 지지했던 사람들로서 후보님께 시간을 드리는 게 어떨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문 대통령과 민주당 의원들이 안희정 전 충남지사 부친상에 근조화환을 보낸 것을 두고 당내 일각에서 비판의 목소리를 낸 데 대해서도 “고인 상가에서의 예절이란 게 우리가 유교 사회다 보니까 많은 것을 미처 생각하지 못한 면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아울러, 20대 총선 당시 당 사무총장과 총선기획단장을 맡아 위성정당 창당을 주도하고, 이번 대선에서도 민주당 선대위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아 대선 패배에 책임이 있는 그가 비대위원장을 맡는 게 부적절하다는 비판에 대해서도 직접 사과에 나섰다. 그는 “제1야당(국민의힘)의 잘못된 정치 행태에 대해서 불가피한 선택을 우리가 할 수밖에 없었다”면서도 “당시에 우리 당과 함께 정치개혁에 동참해줬지만, 그에 따른 국민의 지지만큼 의석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하게 된 다른 정당들에 다시 한 번 사과 말씀 드린다”고 말했다.
서영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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