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12월20일에 만난 김대중 당선자와 김영삼 대통령. 청와대사진기자단
대선 직후 현직 대통령과 당선자의 만남은 정치적으로 민감하고 미묘했다. 표면적으로는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주요 국정 현안을 논의하고 대통령이 당선자에게 국정 경험을 전수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현재 권력과 미래 권력은 만남에 앞서 대화 내용, 의제 등에 대해 철저하게 사전 조율했다.
직선제 개헌 후 첫 정권교체가 이뤄졌던 15대 대선 뒤 김영삼 대통령과 김대중 당선자는 대선 이틀 뒤인 1997년 12월20일에 만났다. 당시 대선에서 김 대통령은 아이엠에프(IMF) 사태를 불러온 자신을 출당시키고 ‘3김 청산’을 외치며 화형식까지 거행한 여당 한나라당의 이회창 후보보다 민주화 동지이자 경쟁자였던 야당의 김대중 후보를 지원했다는 소문이 공공연히 나돌았다.
김 대통령은 1층 로비에서 김 당선자를 기다리며 극진히 예우했다. 청와대 경호실도 외국 정상 국빈 방문급으로 의전을 했다. 두 사람은 배석자 없이 대화를 이어갔고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특별사면 등 6개 사항 합의문을 발표했다. 그 뒤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오랜 동지이자 숙적이었던 두 사람은 매주 화요일 정례회동을 이어가며 김대중 대통령 취임까지 모두 8차례 만났다.
노무현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가 2007년 12월28일 저녁 청와대에서 대선 뒤 처음으로 만나 정권 인수문제를 비롯한 국정현안을 논의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정권교체기인 2007년에도 노무현 대통령과 이명박 당선자의 첫 만남은 화기애애했다. 노 대통령은 대선 9일 만인 2007년 12월28일 회동에서 “내 마음에는 당선인이 나보다 더 윗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의전은 아직 제가 가운데로 있나 봅니다”라고 인사하자, 이명박 당선자는 “임기가 다하셔도 선임자시니까 제가 선임자 우대 하겠다”고 화답했다. 두 사람은 2차례 회동을 거쳐 정권 인수인계를 마쳤다.
그러나 이 대통령은 취임 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시위로 정치적 위기에 직면하자 돌변했다. 퇴임 뒤 고향인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 정착한 노 전 대통령과 그의 핵심 참모인 ‘친노 세력’을 촛불시위 배후로 지목하고, 자서전 집필 등을 위해 재임 당시 자신이 생산한 대통령기록물을 열람하는 것을 ‘국가기록물 유출’로 규정해 노 전 대통령을 공격했다. 급기야 ‘논두렁 시계’로 상징되는 보복 수사로 끝내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하는 비극을 불렀다.
정권 재창출을 이룬 2002년(김대중-노무현)과 2012년 대선(이명박-박근혜) 이후의 정권 이양은 순탄했다. 5년 전 19대 대선에선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으로 대통령직 궐위 상태여서 문재인 당선자는 대선 이튿날인 2017년 5월10일 바로 취임해 별도의 인수인계 절차가 없었다.
김해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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