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오수 검찰총장이 더불어민주당의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 발의에 반발하며 사직서를 제출한 17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의 모습. 김 총장은 입장문을 통해 '검수완박' 법안 입법절차를 둘러싼 갈등과 분란에 대해 국민과 검찰구성원에게 죄송하다며 이러한 갈등과 분란 발생에 대한 책임을 지고 법무부 장관에게 사직서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이 문재인 정부 임기 안에 검찰 수사권 분리 법안을 처리하겠다는 목표를 세웠지만 넘어야 할 산이 많아 지도부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법안 추진을 놓고 국민 여론이 엇갈리는 데다 정의당과 시민사회까지 ‘속도조절’을 주문하고 있어 고립된 모양새다.
민주당이 첫번째로 넘어야 할 산은 검찰 수사권 분리에 대한 여론이다. 민주당은 검찰개혁을 향한 국민적 열망을 입법의 명분으로 들고 있지만 여론의 전폭적인 지원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지난 13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검찰 수사권 완전박탈에 대해 찬성하느냐, 반대하느냐’를 물은 결과 응답자의 52.1%가 ‘반대’였고, ‘찬성’은 38.2%였다. 반면, 미디어토마토가 <뉴스토마토> 의뢰로 지난 12~13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이른바 검수완박이라 표현되는 검찰의 기소권 및 수사권 분리 방침에 대해 어떤 의견을 갖고 있느냐’는 질문에 찬성은 46.3%, 반대는 38.4%였다. ‘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로 질문했을 때와 ‘검찰의 기소-수사권 분리’로 질문했을 때의 답변이 엇갈리는 것이다.
이에 따라 민주당은 자신들이 만든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이라는 표현 대신 ‘수사-기소 분리’를 강조하며 대국민 설득작업을 해나가겠다는 전략을 세웠다. 민주당 원내 지도부 관계자는 “경찰에 대한 직무 수사를 검찰에 남겨뒀기 때문에 ‘검수완박’은 팩트가 아니다”며 “검찰개혁의 정상화라는 메시지를 계속적으로 내야 한다”고 말했다.
민주당으로서는 ‘문재인·이재명 지키기용 방탄 법안’이라는 프레임도 깨야 한다. 리얼미터 조사에서 ‘민주당이 검찰의 수사권을 완전히 박탈하는 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43.9%는 ‘민주당 관련 일부 정치인을 보호하려고’라고 답했다. 원내 지도부를 맡고 있는 한 의원은 “(방탄용 입법이라는) 우려와 함께 수사 공백이 있을 수 있다는 내용은 사실과 다르다는 내용을 설명해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기사에 인용된 여론조사의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누리집 참조)
민주당은 ‘검수완박 속도조절’을 주문한 정의당에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 지명을 계기로 다시 한 번 공조를 요청할 계획이다. 참여연대와 민변까지 4월 강행 처리를 반대하고 나선 상황에서 정의당이라도 법안 처리에 동참해야 민주당의 독주 이미지를 희석할 수 있고 국민의힘이 예고한 ‘필리버스터’(무제한 반대토론)도 저지할 수 있다. 민주당 원내 지도부 관계자는 “민주당의 검찰 수사권 분리의 대명제가 정의당의 정치 철학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며 “같이 야당이 됐으니 서로 협조할 부분에 대해 좀더 심사숙고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정의당 관계자는 “수사·기소권 분리에 대한 입장은 동일하지만 1차 검찰개혁의 문제점이 뻔히 있는데 이 부분을 반영해야 한다는 것”이라면서도 “다만 한동훈 장관 후보자 지명으로 정의당도 정무적인 판단이 필요하다. 당내 다양한 의견을 수렴 중”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은 오는 23일 북미 순방이 예정된 박병석 국회의장이 수사권 분리 법안 처리를 위한 본회의를 열어줄지에 대해서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민주당 안에선 박 의장이 사회권을 김상희 국회 부의장에 넘겨주지 않겠느냐는 전망이 나온다. 민주당 원내 핵심 지도부는 “(국회의장이) 부득이 사회를 볼 수 없는 상황에선 부의장을 지정해서 (사회권을) 위임하고 가지 않느냐”며 “민주당의 상황을 잘 아니 결심이 서면 어떤 방식으로든 의사일정이 진행될 수 있게끔 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한 김오수 검찰총장의 사퇴도 민주당으로서는 달갑지 않은 상황이다. 그는 윤석열 당선자 쪽의 노골적인 사퇴 요구에도 버티며 현 여권에 ‘보복 수사에 대한 보호막이 될 수 있다’는 기대를 줬지만, 민주당의 수사권 분리 입법에 항의하며 결국 사표를 던졌다. 민주당 핵심 지도부는 “우리가 지명한 검찰총장이라고 해서 무조건적으로 복종하라는 의미는 아니다. 검찰 출신은 다 검찰주의자 아닌가. 이미 자신의 거취를 걸겠다고 얘기했으니 어느 정도 예측됐던 일”이라고 말했다.
송채경화 기자
khso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