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에이(A) 당원협의회의 2021년 12월31일 기준 당원 현황 일부이다. 이 중에서 책임당원으로 인정될 수 있는 자는 몇 명인가?“
17일 국민의힘이 정당 사상 최초로 실시한 공직후보자 기초자격평가(PPAT) 문제 중 하나입니다. 당의 중요 결정에 참여할 수 있고, 전당대회 투표권도 갖는 국민의힘 책임당원은 이준석 대표 취임 뒤 특히 2030세대를 중심으로 크게 늘었는데요, 책임 당원의 요건을 묻는 이 질문의 답은 무엇일까요? 정답은 4번, 5명이라고 합니다.
국민의힘은 이날 전국 17개 시·도 19개 고사장에서 광역·기초의원 공천 신청자 4500여명을 대상으로 기초자격평가 시험을 진행했습니다. 기초자격평가는 이 대표가 지난해 6월 당대표로 취임하면서 내건 공약으로, ‘돈공천’ 등 당내 공직선거 후보자 추천 과정에서 부정의 고리를 끊겠다는 ‘공천혁신’의 상징으로 시행됐습니다. 지역구에 출마한 기초·광역의원 후보의 경우 평가 점수에 비례해 가산점을 받게 됩니다. 또 광역의원 비례대표의 경우 70점 이상, 기초의원 비례대표는 60점 이상을 받아야 공천을 받을 수 있습니다. ‘최소한의 역량’ 평가를 통해 기초비례의원 후보를 걸러내겠다는 취지입니다. 이날 오전 8시30분부터 1시간 동안 진행된 시험의 최연소 응시자는 20살, 최고령자는 81살이었습니다.
국민의힘을 취재한 지 1년6개월차 기자인 저도 응시했습니다. 물론 출마가 목적은 아니었습니다. 국민의힘에서 이번 시험의 취지를 홍보하기 위해 출입기자들과 주요당직자들에게 응시 기회를 부여했고 저는 자격시험의 내용이 궁금해 취재차 ‘수험생’이 됐습니다. 서울 목동고등학교에서 10명의 기자들이 이준석 대표와 함께 시험을 치렀습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왼쪽)가 17일 서울 양천구 목동고등학교에서 실시된 국민의힘 6.1 지방선거 광역·기초의원 출마자 대상 공직후보자 기초자격평가(PPAT) 시험을 보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어려워 vs 평이해…“‘선거법’ ‘지방자치법’ 아는 것도 ‘문제’로 나오니 헷갈려”
평가 영역은 △공직자 직무수행 기본역량(당헌당규·공직선거법) △분석 및 판단력 평가(자료해석 및 상황판단) △현안분석 능력(대북정책·외교안보·안전과사회·청년정책·지방자치) 3개 영역이었고 4지선다 객관식 30문항이었습니다.
1번 문항은 “국민의힘 ‘10대 약속’ 가운데 하나인 ‘모두를 위한 사법개혁'의 취지와 가장 거리가 먼 주장을 고르라”는 것이었습니다. 국민의힘 정강정책은 물론, 사법개혁에 대한 일반상식, 최근 논의되고 있는 주장 등을 모두 인지하고 있어야 풀 수 있었습니다.
‘정당법’ ‘선거법’ ‘지방자치법’ 관련 문제는 일반상식 수준으로 비교적 평이했지만, 지문이 길어 시간은 빠듯했습니다. 국민의힘 정강 정책에 맞게 쓴 연설문을 고르라는 문제는 까다로웠습니다. 투표 참여 권유 활동에 대한 공직선거법 조항을 묻고, 문자메시지 발송에 관한 지역선관위의 답변 중 틀린 것을 고르라는 문항도 어려운 문제였습니다.
앞서 국민의힘은 시험 실시 전 유튜브에 강의 영상을 올렸고, 예상 문제를 뽑아 공개하기도 했습니다. 시험을 보고 나온 응시생들의 평가는 엇갈렸습니다. “강의 영상을 열심히 보고, 예상 문제를 풀어봤다면 어렵지 않았다”는 반응이 있었지만, “아는 것도 문제로 나오니 헷갈렸다”는 반응도 있었습니다. 서울 구로구 기초의원에 처음으로 출마하는 여성 양아무개(39)씨는 “선거법 문제가 제일 어려웠다. 특히 선거 때 문자메시지를 보낼 수 있는 조건이 ‘8회 이하 20명 이하’라는 건 알고 있었는데, 사례로 제시하니 헷갈렸다”고 했습니다. 작가로 일하고 있는 양씨는 지자체의 예술 관련 재정 지원이 부족하다는 것을 몸소 느끼고 출마를 결심했다고 합니다. 그는 “기초역량 평가를 통해 일부는 걸러낼 필요가 있다”며 자격시험 도입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30대 남성 ㄱ씨는 “논리나 이해력을 요구하는 문제들은 아니었다”며 “문제의 70% 이상은 그냥 외우면 됐다. 공부를 했는지, 안 했는지에 따라 (점수가) 갈릴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북한인권법 사장돼” “젊은층의 막연한 반발심”…사실과 판단 혼재된 문제도
‘외교 안보’ ‘청년정책’ 등 일반 정책 관련 질문도 있었습니다. “북한인권재단이 설립되지 않았고, 북한인권대사도 4년째 공석이니 사실상 북한인권법은 사장됐다”는 ‘사실’과 ‘가치평가’가 혼재된 <보기>는 ‘국민의힘 정체성’을 검증하는 의도가 읽혔습니다. 4년 전 2018 평창 동계올림픽 때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에 대한 부정적 여론조사 결과를 인용해 이에 대한 판단을 묻는 질문도 있었습니다. 남북단일팀 비판을 “젊은 층의 막연한 반발심”이라는 판단이 잘못됐다는 주장을 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윤석열 정부’에 대한 관심도를 묻는 질문도 있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가 주요 외교·안보 공약으로 내걸었던 ‘경제안보’의 적절한 방향이 무엇인지 묻는 질문은 평소 윤 당선자의 공약을 눈여겨보지 않았으면 어려울 문제였습니다. 이 대표는 이날 시험이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나 “아무래도 아무리 지방의원에 도전하는 우리 당원이라고 하더라도 윤석열 정부의 철학이 뭔지 우리 당이 타당과 차별화된 지점을 잘 숙지하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이벤트’ 효과 톡톡… 이준석 “자격시험화 하겠다”
이번 시험으로 국민의힘은 ‘이벤트 효과’를 톡톡히 봤습니다. 이 대표와 기자들이 시험을 본 서울 목동고등학교 앞은 시험 시작 1시간 전부터 응시생들과 이들을 응원하러 온 당직자들이 모여들며 활기를 띠었습니다. 이번 시험의 ‘대북정책’ 영역 강의에도 직접 나섰던 태영호 의원은 고사장 앞에서 응시자들과 악수하며 “파이팅”을 외치기도 했습니다. 응시생들은 시험이 끝난 뒤에는 삼삼오오 모여 답을 맞춰보고 정답이 갈리는 문항을 놓고 토론하기도 했습니다. 시험이 생소한 일부 고령층 응시자는 1시간 동안 오엠아르(OMER) 카드를 서너번 바꾸는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고령층 응시자를 위한 대책도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왔습니다.
기자들은 이준석 대표와 한 고사장에서 함께 시험을 봤습니다. 시험의 난도를 평가하고 분위기를 살피기 위해 이 대표도 응시했다고 합니다. 김행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 대변인과 박민영 대변인이 이 고사장의 감독관을 맡았습니다. 사진·카메라기자들의 취재 열기도 뜨거웠습니다. 시험점수는 개별 통보된다고 합니다.
국민의힘 6·1 지방선거 광역·기초의원 출마 후보자들이 17일 서울 양천구 목동고등학교에서 공직후보자 기초자격평가(PPAT) 시험을 치르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이 대표는 시험을 마친 뒤 “오늘 문제지를 보니 공직 수행하는 데 매우 적절한 평가 방식과 내용이라는 생각이 든다”며 “대한민국의 공직을 지내고 싶은 사람이라면 그에 걸맞은 역량을 갖춰야 한다는 걸 저희가 제도화해서 앞으로도 이어나갈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기초의원 비례대표 과락점수(60점)를 넘겼지만 고득점을 얻진 못했습니다. 출마를 향한 진정성과 당을 향한 충성도, 성실한 공부가 필요한 시험임은 분명해 보입니다.
오연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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