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20일 전북 전주시 덕진구 국민연금공단에서 열린 현안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 쪽 제공.
내년부터 시행 예정이었던 주식 양도소득세 전면 과세가 원점에서 재검토된다. 주식 양도세를 없애겠다는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의 공약에 따른 것이다. ‘소득 있는 곳에 과세 있다’는 조세 원칙을 허무는 정책이어서 논란이 예상된다.
인수위 핵심 관계자는 20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주식 양도세 폐지는 윤 당선자가 페이스북 ‘한 줄 공약’으로 국민들과 약속한 것이고 당선자도 공약을 지키겠다는 의지가 강하다”며 “인수위가 마련하는 새 정부 국정과제에 당연히 들어간다”고 말했다. 당초 부자감세 논란과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조세 원칙 훼손 등의 우려로 공약 수정 가능성이 제기됐지만 밀어붙이기로 한 것이다.
국내 상장 주식을 사고팔아 생기는 거래 차익에 부과하는 주식 양도세는 현재는 한 종목 보유액이 10억원 또는 보유 지분율이 1% 이상(코스피 기준)인 ‘대주주’만 내고 있다. 내년부터는 ‘금융투자소득세’가 신설돼 대주주가 아니어도 주식 거래로 번 돈이 연 5천만원을 넘으면 누구나 세금을 내야 한다.
그러나 윤 당선자가 주식 양도세 폐지를 약속하면서 기획재정부는 아직 시행되지도 않은 금융투자소득세 백지화를 검토하게 됐다. 기재부 고위 관계자는 “이대로 두면 내년부터 금융투자소득 과세가 자동으로 시행되기 때문에 어떻게든 의사 결정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논란의 출발점이 된 윤 당선자의 ‘주식양도세 폐지’ 공약은 주먹구구식으로 마련됐다. 애초 윤 당선자는 지난해 말 주식을 사고팔 때마다 내는 일종의 ‘통행세’인 증권 거래세 폐지를 공약으로 내세웠지만 한달 만에 주식 양도세 폐지로 방향을 틀었다. 윤 당선자 쪽에서는 이런 방향 전환이 ‘표를 얻기 위한 공약’이었다고 설명한다. 윤 당선자는 지난해 12월25일 유튜브 채널 ‘삼프로 티브이(TV)’에 출연한 뒤 이재명 민주당 후보와 비교해 ‘경알못(경제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았고, 이를 만회하고 개인투자자들의 표를 얻기 위해 주식 양도세 폐지 공약을 내걸었다는 것이다. 당시 상황을 잘 아는 윤 당선자 쪽 관계자는 “개미들 표를 끌고 오려는 정치적 목적으로 내놓은 공약”이라며 “일단 공약으로 발표한 이상 세부 시행안은 기재부 공무원들이 만들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주식 양도세를 전면 폐지하면 현재 과세 중인 대주주 세금까지 통째로 없어지는 까닭에 대선 과정에선 ‘삼성 이재용 일가 감세법’이라는 비판도 나왔다. 그러나 윤 당선자 쪽은 “세금이 사라지면 주가가 뛰어 개미도 함께 수혜를 볼 것”이라며 보완책은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다.
주식 양도세 폐지는 새 정부 경제팀과의 ‘소신’과도 정면으로 충돌한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는 2019년 20대 국회에서 증권 거래세 폐지, 주식 양도세 등 금융 투자 소득세 전면 과세를 위한 법 개정안을 대표로 발의했다. 금융위원장 후보로 거론되는 최상목 인수위 경제 1분과 간사도 박근혜 정부 기재부 1차관으로 일하던 2016년 주식 양도세 등 자본소득 과세 강화를 주장했다. 추 후보자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주식 양도세) 관련 질문이 나오면 그때 입장을 얘기하겠다”고만 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내년으로 예정된 금융 투자 소득세 과세를 철회하려면 소득세법의 관련 조항들을 삭제하기 위한 법 개정이 필요하다”며 “국회 합의가 필요한 부분”이라고 했다. 국회 논의 과정에서 주식 양도세 폐지 공약이 실제 이행될지도 불확실성이 크다는 이야기다. 더불어민주당 정책위 관계자는 “지난 대선 때 주식 양도세 폐지에 대해 우리 당의 입장은 반대에 가까웠다”며 “주식 과다보유자 감세 효과가 큰 것이어서 불평등이 확대될 소지가 있다는 의견이 있었고 그런 측면에서 신중하게 들여다볼 것”이라고 말했다.
주식 양도세가 실제로 폐지되더라도 만만치 않은 후폭풍이 예상된다. 조세 정책 전문가인 한 정부 관료는 “양도차익엔 과세하지 않으면서 입장세·통행세 성격의 거래세를 걷는다는 건 말이 안 된다”며 “상당수 소액주주들이 주식 투자로 돈을 잃는 마당에 수십억원을 번 대주주들에겐 세금을 한 푼도 물리지 않고 소액주주에게는 거래세를 내라고 하면 개미들이 가만있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안동현 서울대 교수(경제학부)도 “소액주주는 지금도 주식 양도세를 과세하지 않는 만큼 양도세 폐지로 인해 실질적인 혜택을 보는 건 대주주”라며 “애초 주식 양도세 도입 이유는 (재벌 총수 일가 등) 지배주주가 적은 지분으로 경영권을 행사하다가 주식을 팔아 과도한 양도소득을 얻는 걸 견제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기재부가 대주주 범위를 계속 확대하며 법 취지가 흐려졌고, 이제 양도세 폐지로 인해 지배주주 견제라는 목적 자체가 위협받게 됐다”고 지적했다.
박종오 기자
pjo2@hani.co.kr 최하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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