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황은주 대전 유성구의원이 ‘유기동물 보호를 위한 정책토론회’를 진행하고 있다. 유성구의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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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의원의 장점은 주민과 무척 가까이 있다는 점이죠. 정당 간 이해관계도 덜하고요. 다루는 예산이 크지 않기 때문에 리스크도 적습니다. 제 경우 민원을 듣고 문제를 포착해 해결하기까지 구청과 힘을 합쳐 1년이 채 걸리지 않는 사안도 있었습니다. 그땐 정말 일하는 맛이 났어요. 일상을 변화시키고 혁신적인 정책을 실험해보기 좋은 무대죠.”
2018년 대전광역시 유성구의회에 당시 27살 나이로 당선된 황은주 의원(더불어민주당)은 지난 4년간의 의정 활동이 무척 뜻깊었다고 말했다. 동료 의원들과 구청 공무원들 상당수가 ‘부모님뻘’이었지만 의원으로서 열심히 뛰지 못할 이유는 없었다. 과학기술로 유명한 도시이자 대학생과 청년 인구가 많은 지역에서 황 의원이 할 일은 무궁무진했다. 지역 특성을 살려 ‘유성구 이스포츠(전자스포츠) 진흥 조례’를 만들었고, 덕분에 당내 우수 조례 1급 포상을 받기도 했다. 황 의원은 “시대의 흐름을 빠르게 포착하기에 젊은 나이는 장점이었다. 동물권이나 기후위기 같은 문제를 어떻게 조례로 풀어볼까 고민도 많이 했다”고 했다.
오는 6월1일 치를 제8회 전국동시 지방선거가 한달 앞으로 다가왔지만, 지방자치단체장을 뽑는 일 외에 기초·광역의원 선거는 시민들의 큰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특별·광역시의원 또는 도의원(광역의원), 시·군·구의원(기초의원)은 주민 삶에 필요한 조례를 제정하고, 지방자치단체(지자체) 예산을 의결하며, 단체장을 감시·견제하는 등 중요한 역할을 하는 자리다.
특히 지방의회의 중요성이 점점 커지면서, 기초·광역의회는 신인 정치인의 입문과 경쟁의 장이 되기도 한다. 2018년 지방선거에서 20·30대 지방의원 당선자 수가 4년 전 선거에 비해 두 배 이상 늘어 이목을 끌기도 했다. 실제 2014년 제6회 지방선거에서 2~3%대(광역의원 20명, 기초의원 107명)에 머물던 2030 당선자는 4년 뒤 2018년 제7회 지방선거에서 5~6%대(광역의원 46명, 기초의원 192명)로 상승했다. 청년 정치인들의 지방의회 진출은 지역 정치에 신선한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란 기대감을 높였다.
4년 전 당선의 영광을 안았던 청년 의원들은 그동안 의정 활동을 하며 어떤 성과를 냈을까. <한겨레>가 4년 전 기초·광역의회에 진출한 2030 새내기 의원들에게 보람과 한계, 그리고 지방의회가 더욱 발전하려면 지금 무엇이 필요한가 물었다.
박채아 경북도의원이 도의회 본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경북도의회 제공
지역주택조합의 문제점을 알리고 있는 주무열 서울 관악구의원. 페이스북
“요즘은 조례가 법 제정 이끌죠”
“초선이라 뭣 모르고 덤벼들었죠. 의회에 항상 일정 비율 이상 신인이 들어와야 한다고 생각해요. 개혁하는 역할을 하는 젊은 신인 정치인의 존재는 꼭 필요합니다. 정치에선 기존의 세력과 거리를 유지하고 날카로운 개혁의 칼날을 들이댈 수 있는 역할이 늘 필요하거든요.”(주무열 서울 관악구의회 의원·37·더불어민주당)
“의회는 각종 사안을 표결로 정하니까 여러명이 이야기한 것에 예산이 더 갈 수밖에 없거든요. 그래서 각계각층 다양한 구성원이 필요합니다. 의회 안에 직장인부터 자영업자까지 다양한 사회 경험이 필요하고, 다양한 연령대가 고루 있어야 해요.
지금은 도청에 ‘이런 게 필요하다’고 말할 때 청년층에게 중요한 의제를 이야기할 사람이 저 한명뿐이에요.”(박채아 경북도의회 의원·36·국민의힘)
청년 의원들은 의회와 지역을 오가며 지난 4년간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고 입을 모았다. 소소하지만 일상생활에 영향이 큰 사안을 개선할 때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양기열 서울 은평구의회 의원(37·국민의힘)은 “우리 지역에서 쓰레기 문제가 이슈화됐을 때 ‘재활용 모아모아’ 조례를 발의하고, 민식이법이 생기기 전부터 교통사고를 방지하고자 학교 앞 속도표시계를 설치하도록 조례를 발의한 것이 주민들에게 호응이 컸다”고 했다.
지방의회가 조례를 만드는 과정은 국회 입법 과정보다 비교적 빠르기 때문에 시민 삶에 꼭 필요한 부분을 조례로 먼저 포착해 제도화할 수 있다는 점을 새내기 의원들은 장점으로 꼽았다. 2018년 지방선거에서 27살 나이로 서울시의회 최연소 당선자가 된 이동현 의원(더불어민주당)은 “조례에 대한 시민 관심이 적다곤 하지만, 요즘은 조례에서 시작해 법 제정까지 끌어내는 경우가 종종 있다. 2020년 제정된 청년기본법도 2015년 서울시조례가 생긴 뒤 그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확산돼 결국 법으로 제정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새내기 지방의원들은 현장에서 열정적으로 일하지만 간혹 지방의회에 대한 시민들의 무관심과 불신을 느낄 때도 있다. 국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에 대한 국민 관심에 비해, 자신이 사는 지역 시·도의회, 시·군·구의회가 하는 일엔 관심이 덜한 게 현실이다. 제도 개선이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느낄 때가 많다. 황은주 의원은 “아직 구의회에 생중계 시스템이 없어서 행정감사 등 중요한 시기에 이뤄진 의정 활동에 대해 주민들이 알기 어렵다. 한참 뒤 속기록을 봐야 그때 무슨 말이 오갔는지 알 수 있는 구조다. 녹화 영상이 있지만 한참 뒤에 업로드된다”고 말했다. 주이삭 서울 서대문구의회 의원(34·국민의힘)은 “구의회가 주민과 친밀하지 않고 의원들끼리 놀고먹는 곳으로 인식되는 건, 의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널리 알려지지 않기 때문이다. 의회 회의를 유튜브 생중계로 송출도 해보고, 지역기자 간담회도 종종 열지만, 주민들께 많이 전달되는지 잘 모르겠다”며 정보가 더욱 확산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혼자 뛰는 구조…“비서 한명이라도”
“5분 발언문부터 조례안 쓰기까지, 공무원으로 치면 9급 일부터 5급 일까지 혼자 다 했다. 4년간 일하면서 제 소원은 비서 한분만이라도 저와 같이 일할 수 있다면 지금보다 더 많은 일을 할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비서는 현실적으로 여유 있는 의원만 사적으로 고용한다.”(기초의원 ㄱ씨)
“동네에 펼침막 한번 걸려 해도 벌벌 떨었다. 비용이 많이 들어서다. 의정 활동에 드는 비용이 현실적으로 보전되어야 한다. 월급을 300만원 남짓 받는데, 가정을 유지하기 위한 생활비를 제외하고 남은 돈을 저와 저를 도와주는 후배가 반 갈라서 의정 활동 비용으로 쓰고 있다. 한사람당 100만원도 채 되지 않는다. 단 한명이라도 비서를 고용할 수 있다면 정말 알차게 일할 수 있는데 아쉽더라.”(기초의원 ㄴ씨)
지방의회 활성화를 위해 개선해야 할 점으로 의정비 현실화와 정책 지원인력 고용의 제도화가 꾸준히 논의되고 있다. 1949년 처음 제정된 지방자치법에 지방의원을 명예직으로 규정하면서, 기초·광역의원은 보수라고 할 의정비(월정수당과 의정 활동비)를 받지 못했다. 1994년 법이 개정되면서 이때부터 지방의원들은 공무 활동에 필요한 의정비를 받고 있다. 행정안전부에 게재된 2022년 지방의회 의정비는 지자체마다 다르지만, 광역의원 1인 평균 연간 6017만원, 기초의원 1인 평균 연간 4089만원이다. 주민을 만나고 출장을 다니며 자료를 조사하는 등의 비용을 이 의정비로 충당한다. 하지만 가족을 부양하며 왕성히 활동하기에 넉넉하지 않은 수준이라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지방의원도 의정 활동을 지원받을 개별 정책비서를 고용할 수 있도록 제도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되어왔다. 현재 국회의원은 의원 한명당 입법 활동을 지원하는 보좌직원을 인턴 포함 9명까지 활용할 수 있지만, 지방의원은 이런 제도가 없다. 지방의회의 정책 지원인력으로 의회사무국 공무원이 있지만, 대체로 의회사무국의 행정업무를 할 뿐 개별 의원의 의정 활동을 지원하기 어렵다. 2022년 1월 시행된 새 지방자치법은 모든 지방의회가 정책 지원인력(의회 공무원)을 의원 수의 절반 규모로 반드시 두게끔 하고, 이들의 인사권도 지방의회 의장이 갖도록 법으로 명시했다. 하지만 여전히 개별 의원이 정책비서를 고용하는 것은 아니기에 지원의 폭이 제한적일 것이란 지적도 있다.
의정 질문을 하고 있는 양기열 서울 은평구의원. 페이스북
지역 행사에 참여해 시민들과 대화하는 이동현 서울시의원. 페이스북
동료 의원들과 도시혁신연구회를 꾸려 활동 중인 주이삭 서울 서대문구 의원(오른쪽 끝). 페이스북
“노하우 공유하자” 네트워크 움직임
전국의 지방의원 100명 중 대여섯명꼴에 머무는 소수의 구성원인 20·30대 청년 지방의원들은 올해 지방선거에서 더 많은 청년 의원들이 당선되길 바라고 있다.
“의원도 사람이라 자기 주변에서 체감하는 일을 주로 이야기하는데, 저는 제 주변 20·30대들의 이야기를 할 때 다른 의원들은 50·60대들의 이야기를 한다. 세대 차이로 인해 의원들끼리 서로의 말을 잘 공감하지 못할 때가 있다. 사안을 함께 논의할 또래 의원이 한명만이라도 더 있었으면 좋겠다.”(광역의원 ㄷ씨)
“의원으로서 자료에 근거해 정당한 문제제기를 하는데, 사안 그 자체보다 ‘예의 없다’ 같은 예절의 문제로 접근하는 분들이 계시다. 구성원 한명이 바뀐다고 의회에 당장 새 변화가 생기는 게 아니다. 의회 내 20·30대 비율이 30%는 되어야 소수 취급 안 받고 중량감 있는 목소리를 낼 수 있다고 본다.”(기초의원 ㄹ씨)
전국의 또래 의원들과 경험과 노하우를 나누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한다. 주무열 의원은 “단단하고 촘촘한 인적 네트워크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당내 젊은 기초·광역의원들과 종종 모이고 있다. 전국의 청년 의원들을 만나 그 사람의 정치적 식견은 어떠한가, 꿈꾸는 이상과 비전은 어떠한가를 들어보고 건설적인 일을 같이하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2022년 재선에 도전하는 새내기 의원들은 이제 더이상 자신이 ‘청년’의 나이가 아니라며 올해 새로 당선될 초선 의원들과 함께 연대하고 싶다고 말한다. 양기열 의원은 “조례 제정과 행정감사에 대한 역량을 높이기 위해 다른 지역 청년 의원들과 소통하면서 노하우를 공유하려 노력했다. 이번에 재선에 성공하면 여야 할 것 없이 지역과 지방의회 발전을 위해 4년의 노하우를 공유하는 연구모임을 갖고 싶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청년 정치인이 지방의회를 통해 미래의 정치지도자로 성장해나가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말했다. 한상우 한양대 지방자치연구소장은 “‘지방자치는 민주주의 학교’라는 말이 있다. 지방의회는 민주주의를 학습할 최고의 장소인데, 젊은 인재가 신인 정치인으로 기초의회와 광역의회를 경험하고 중년이 됐을 때 국회의원이 된다면 정치발전의 선순환 구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미향 기자
arom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