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지난 4월2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6일 발의한 ‘여성가족부 폐지 법안’(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두고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법안 내용이 부실한 데다 실제 입법화가 어려운 상황에서 ‘보여주기식’ 내용으로 채워졌다는 이유에서다.
권 원내대표는 이날 정부조직에서 여가부를 삭제하고, 청소년·가족 등 여가부의 업무 중 일부를 보건복지부 등으로 이관한다는 내용을 담은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여가부가 맡았던 ‘여성의 권익증진 등 지위 향상’ 등 업무는 법무부·행정안전부·고용노동부 장관에게 승계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박선영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여가부 소관 법률이 25개다. 이를 어떻게 나눌 건지 이번 개정안에 전혀 나와 있지 않다. 예를 들어 ‘양성평등기본법’을 어느 부처 관할로 보낼 것인가. 법무부, 행안부, 노동부 소관으로 다루는 것도 말이 안 된다”고 했다.
권 원내대표가 밝힌 개정안 제안 이유를 두고서도 비판이 제기된다. 그는 먼저 “2021년 11월 한 일간지의 여론조사에 의하면 여가부 폐지에 2030 남성은 90% 이상, 여성도 50% 가까이 찬성하는 결과가 나온 바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권수현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대표는 “한 일간지 여론조사가 전체를 대표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자신에게 유리한 여론조사 하나만 선택해서 언급하는 자체가 편향이 포함돼 있다”고 지적했다.
<한겨레>가 지난 1월 ‘여가부 폐지·개편’ 관련 여론조사 6개의 결과를 비교해 본 결과, 여론조사 질문이 어떻게 구성되는지에 따라 ‘여가부 폐지’에 대한 의견 차이가 컸다. 질문지에서 여가부 폐지와 찬성 중 양자택일을 해야 할 때는 ‘폐지’ 의견이 절반을 넘었지만, ‘여가부 기능 재편’을 문항으로 둔 여론조사에서는 폐지 찬성 응답이 30%대에 그쳤다.
권 원내대표는 또한 “(여가부) 대부분의 업무 영역이 타 부처 사업과 중복돼 효율적 정부운영의 측면에서도 전면 개편이 불가피하다”고 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의 평가는 다르다. 여가부만의 고유 업무 영역이 뚜렷하다는 것이다. 정현백 전 여가부 장관은 “보육 부문에서 여가부가 하는 영역은 아이돌보미 사업과 공동육아 사업인데, 어느 부처와도 겹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현재 여가부가 맡고 있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담당 업무도 권 원내대표의 개정안대로라면 소관이 모호해진 상태다. 지난 2월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외교적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서 외교부에서도 이 문제를 맡아서 처리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밝혔으나, 개정안에 따르면 외교부는 여가부 업무를 나눠 맡는 부처가 아니다.
여가부의 역사적 소명이 다했다는 지적도 문제가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권 원내대표는 개정안을 제안하며 “오늘날 여성·남성이라는 집합적 구분과 그 집합에 대한 기계적 평등이라는 방식으로는 남녀 개개인이 직면한 구체적 상황에서의 범죄 및 불공정 문제를 해결하기가 어렵다는 점에서 여가부의 기존 특임부처로서의 역사적 소명은 종료됐다”고 했다.
이를 두고 “한국 사회에서 ‘남녀의 기계적 평등’은 이뤄진 적이 없다”는 비판이 나온다. 여가부가 지난달 발표한 ‘2021년 양성평등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여성의 가사 노동 시간은 남성보다 2.5배 이상 많았다. 하지만 일자리에선 차별받았다. 기업분석 전문기관 한국시엑스오(CXO)연구소가 지난 3월 발표한 조사에서 국내 주요 대기업 150곳에서 여성 직원 비중은 4명 중 1명꼴인 것으로 나타났다. 평균 연봉은 여성이 남성의 68% 수준이었다. 사기업뿐만이 아니다. 발표된 ‘공공부문 여성 대표성 제고 계획 4년간 추진성과’를 보면, 2018∼2021년 사이 중앙부처 고위공무원 여성 비율은 10명 중 1명꼴에 불과했다.
전문가들은 개정안에 대해 “어차피 통과되지 못할 것을 알고 있으면서 국민의힘 지지자들에게 ‘우리는 노력했다’라고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김은주 한국여성정치연구소 소장은 “지지자들이 국정과제에서 ‘여가부 폐지’가 빠졌다고 반발하니, 자신들은 관련 법안을 발의했는데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이 막아서 법안을 통과시키지 못했다고 주장하려는 의도가 보인다. 여가부 폐지론자까지 무시한 행태”라고 지적했다. 박선영 선임연구위원도 “허술한 내용을 보니 어차피 통과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작성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관련기사:
[뉴스AS] 국민 과반이 ‘여가부 폐지’ 찬성? 2주간 여론조사 뜯어봤다 https://www.hani.co.kr/arti/society/women/1028973.html
이주빈 기자
ye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