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모피아(재정·금융 관료+마피아), MB(이명박 정부 출신), 서울대, 지인(가까운 사람), 남성….
윤석열 대통령의 인사 코드를 보여주는 열쇳말 여섯 가지다. 윤 대통령은 2022년 5월19일까지 장차관급 이상 64명과 대통령실 비서관급 이상 50명 등 모두 114명을 주요 인사로 임명 또는 후보자로 지명했다. <한겨레21>은 이들의 나이, 학력, 성별, 출생 지역, 과거 핵심 이력 등을 분석했다. 윤 대통령의 첫 인선에 내포된 의미를 제대로 분석하려, 낙마한 김인철 교육부 장관 후보자와 김성회 대통령실 종교다문화비서관도 분석 대상에 포함했다.
윤 대통령은 “인선 기준은 다른 거 없이 국가와 전체 국민을 위해서 해당 분야를 가장 잘 맡아서 이끌어주실 분인가에 기준을 뒀다”(4월10일 장관 후보자 8명 발표 때)고 말했지만, 새 정부 국무위원과 대통령실 인사안에 현미경을 들이대보니 ‘기준’이 또렷하게 드러났다. 서울대를 나온 고시 출신 검사와 기획재정부 공무원, 즉 검찰과 ‘모피아’의 약진이다. 사법·행정고시 등 성적순으로 줄 세운 이른바 ‘엘리트’들이 어느 때보다 권력의 핵심을 장악했다.
114명 가운데는 이명박 또는 박근혜 정부 때 청와대에서 근무한 이가 47명으로 가장 많았다. 서울대 법대 출신(12명)과 교수·학자 그룹(11명), 국민의힘 전·현직 국회의원(10명), 검찰 출신(8명)도 많은 몫을 차지했다. 여섯 열쇳말을 중심으로 윤석열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을 정리해봤다.
검찰 출신 인사들의 요직 등용은 과거 정부와 확연히 다른 인사 포인트다. 이전에도 교수·학자 그룹이나 전·현직 의원을 발탁하는 일이 많았지만, 검찰 출신 인사를 대통령실과 내각의 주요 자리에 이렇게 많이 배치한 것은 처음이다. 대통령실 비서관급 이상 자리에만 검찰 출신이 5명 들어갔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통령실을 개편하면서 과거 청와대 인사수석을 대체하는 인사기획관 자리를 만들었다. 그 자리에 복두규 전 대검 사무국장을 앉혔다. 정부 전 부처와 공기업 인사를 담당하는 요직이다. 인사비서관에는 이원모 전 검사, 공직기강비서관에는 이시원 전 검사, 법률비서관에는 주진우 전 검사를 임명했다.
특히 대통령실 총무비서관과 부속실장으로 검찰 출신인 윤재순 전 대검 운영지원과장과 강의구 전 검찰총장 비서관을 발탁한 것이 눈에 띈다. 총무비서관은 대통령실의 살림살이를 책임지고, 부속실장은 대통령의 일정뿐만 아니라 보고까지 챙긴다. ‘문고리 권력’으로 불리던 자리다. 검찰 출신 인사가 대통령실 핵심 곳곳에 포진한 셈이다. 옛 청와대에선 유례없던 일이다.
“역대 정부도 청와대에 측근을 배치했지만 견제 시스템을 함께 깔아놓았다. 가장 핵심인 인사와 총무를 그냥 검찰 직계 라인으로 깐 것은 당장은 윤 대통령이 편할지 몰라도 자기 말만 잘 듣는 ‘예스맨’을 주변에 둔 것이 결국 부메랑으로 돌아올 것이다.”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전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이 5월19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앞서 문재인 전 대통령은 총무비서관에 최측근을 임명하던 관례를 깨고 일면식도 없던 이정도 기획재정부 행정예산심의관을 임명해 화제가 된 바 있다.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뿐만 아니라 내각에도 검찰 출신인 ‘가까운 이들’을 전면 배치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 자신의 징계 소송 변호인이던 이완규 법제처장, 이노공 법무부 차관 등이 대표적이다. 한동훈 장관은 취임 하루 만인 5월18일 단행한 검사 고위직 인사에서 이른바 ‘윤석열 사단’을 검찰 주요 보직에 배치하면서 대통령실과 검찰 모두 ‘검사동일체’(검찰총장을 정점으로 검사들은 한 몸처럼 움직여야 한다는 원칙)의 확대판으로 만들었다
(기사 참조:
http://h21.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52031.html).
윤석열 대통령이 2022년 5월10일 취임 뒤 첫 오찬을 서울 용산의 대통령 집무실에서 수석비서관들과 함께 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기획재정부 관료 출신들도 약진했다. 새 정부를 가장 앞에서 이끌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부터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김대기 대통령비서실장과 최상목 경제수석 등은 모두 경제관료 출신이다. 행정고시 기수를 바탕으로 선후배 관계로 끈끈하게 묶이는 이들이 다시 경제권력의 중심이 됐다. 재정·금융 관료가 마피아처럼 일종의 그룹을 형성하면서 퇴직 이후에도 로펌, 대기업, 금융회사로 옮겨가 정부 관료들과 유착관계를 이어가던 흐름이 윤석열 정부에서 되살아난 셈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정부 초반에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홍장표 청와대 경제수석 등 개혁적인 학자 그룹을 주요 인사로 발탁해 소득주도성장 등의 개혁 의제를 추진했다. 이들이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등을 놓고 경제관료와 격렬한 파열음을 내면서, 정부 초반 혼란을 자초한 측면이 있지만 ‘모피아’가 득세했던 과거 정부들과는 선을 그었다.
‘대통령실 용산 이전’ 외에 윤석열 정부가 추진하는 핵심적인 개혁 의제가 보이지 않는 까닭을 이같은 관료 중심 인사 때문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이름을 밝히길 꺼린 한 경제부처 고위 공무원은 “관료라는 게 뭘 바꾸는 사람들이 아니다. 인수위에서 나온 이야기를 보면 10년 전에 했던 정책 이야기를 반복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 경제는 과거 공무원이 주도했던 개발경제 시대를 지난 지 오래다. <한겨레21>이 2017년 8월 ‘문재인 정부 취임 100일’을 맞아 장차관급과 청와대 비서관급 이상 168명을 분석했던 결과와 비교하면, 문재인 정부는 교수·학자 출신이 14%(23명)였으나 윤석열 정부는 9.6%(11명)에 그친다.
윤석열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참여했던 한 관계자는 “이번 정부의 경제 관련한 인사는 대외 경제환경이 불안한 상황에서 리스크를 관리해야 할 때라고 생각해 ‘안전 운행’할 사람을 찾은 것”이라며 “역동적 혁신성장이라는 정책 방향을 세웠고 공무원들이 (그걸) 못할 게 없다”고 밝혔다.
윤석열 대통령 인사에 나타난 또 하나의 코드는 ‘이명박(MB) 정부’의 그림자다. 김대기 대통령비서실장은 이명박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냈고, 김성한 국가안보실장은 이명박 정부에서 외교통상부 제2차관을 했다. 이명박 정부의 ‘외교안보 실세’로 불렸던 김태효 전 청와대 대외전략기획관은 2012년 7월 일본과의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체결을 비밀리에 추진한 게 문제가 돼 물러난 지 10년 만에 국가안보실 1차장으로 돌아왔다.
내각의 장·차관급 인사도 이명박 대통령 때의 청와대 근무 경험이 ‘연결고리’가 된 것으로 보인다. 추경호 기재부 장관, 이종섭 국방부 장관, 한화진 환경부 장관, 조승환 해양수산부 장관 모두 이명박 대통령 시절 청와대에서 일했다. 차관급도 방기선 기재부 1차관, 최상대 기재부 2차관, 조현동 외교부 1차관, 한창섭 행정안전부 차관, 장영진 산업통산자원부 1차관, 박일준 산업통산자원부 2차관, 조규홍 보건복지부 1차관, 김창기 국세청장 등 8명이 모두 MB 정부 시절 청와대를 거쳤다.
국민의힘의 한 관계자는 “차관 인사를 보면 윤한홍 의원이 청와대 인사비서관실에 있을 때 행정관으로 일했던 사람이 많다”며 “핵심 자리는 검찰 출신이 챙겼지만 검찰이 잘 모르는 자리는 ‘이명박(MB) 라인’의 옛날 친분을 따라갔다”고 짚었다. 이른바 ‘윤핵관’(윤석열 대통령 핵심 관계자)인 윤한홍, 장제원, 서일준 의원 등은 모두 정치권에서 ‘MB 라인’으로 꼽힌다.
사법시험을 본 검찰, 행정고시를 본 경제관료가 대통령실과 정부에 대거 입성하다보니, 서울대 출신 비중도 늘어났다. <한겨레21>이 문재인 정부 장차관급과 청와대 비서관급 이상 168명을 분석한 결과와 견줘보면, 서울대 출신 주요 인사는 42%에서 47%(윤석열 정부 114명 분석)로 조금 늘었다.
‘윤석열의 사람들’이 졸업한 대학은 서울대(47%)에 이어 고려대(11%), 연세대(9%) 순이었고, 이른바 ‘스카이’(SKY)인 서울대·고려대·연세대 출신을 합한 비중은 문재인 정부 때의 59%에서 67%로 늘었다. 윤 대통령이 강조하는 ‘능력’이 사실상 서울대를 정점으로 한 학력 서열화를 뜻함을 보여주는 셈이다.
지역별로 보면, 문재인 정부 때보다 호남 출신 인사가 크게 줄었다. 문재인 정부 초기 27%였던 호남 출신이 이번 인사에서는 8.8%로 감소했다. 반면 영남 출신은 27%에서 36%로, 수도권 출신은 21%에서 29%로 늘었다.
윤석열 대통령의 첫 인사에서 여성은 9%에 불과했다(21쪽 기사 참조). 연령별로 보면 30대는 아예 없고 40대는 3%에 그쳤다. 평균나이는 57살이었다. 윤 대통령은 학연 중심 친분이 있는 남성들을 등용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윤 대통령의 충암고 4년 후배다. 권영세 통일부 장관은 윤 대통령의 서울대 법대 2년 선배다. 김성한 국가안보실장은 윤 대통령과 같은 서울 대광초등학교 4회 졸업생으로 ‘50년 지기’다. ‘아빠 찬스’ 등 각종 의혹에 휩싸인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도 윤 대통령과 ‘40년 지기’라고 알려졌다.
윤 대통령의 인사에 ‘여성’과 ‘청년’은 없고 ‘아는 사람’만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취임사부터 국회 시정연설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인사 철학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한국갤럽이 윤 대통령의 직무수행에 대해 여론조사(5월10~12일 전국 성인 1천 명 조사)해 5월13일 내놓은 결과를 보면, 부정적 평가가 37%였다. 이들은 평가를 부정적으로 한 이유로 ‘대통령 집무실 이전’(30%)과 ‘인사 문제’(17%) 등을 꼽았다(자유응답).
김형준 명지대 교수(정치학)는 “옛날에는 ‘고소영’(고려대·소망교회·영남 출신) 등 비판을 받으면서도 정부 초기에는 여성이나 지역 등을 배려하는 모습을 보이려 했지만, 윤석열 대통령의 인사는 아예 다른 것 같다”며 “윤 대통령이 광주에 내려가 ‘5·18 정신은 국민통합의 주춧돌’이라고 했으면 호남 인사를 발탁하는 등 인사에 반영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성회 정치연구소 씽크와이 소장은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된 뒤 완전히 돌변해 선거운동을 도왔던 국민의힘 쪽 사람들을 쓰지 않겠다고 하면서 국민의힘 쪽이 많이 당황했다고 들었다. 관료 중심으로 나라를 이끌겠다는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국민의힘의 또 다른 관계자 역시 “능력이 월등히 차이가 나는데 지역이나 성별 균형을 맞춘다면 공정하지 않다고 할 수 있지만, 능력이 객관적인 점수로 확인되는 건 아니지 않냐. 능력이 비슷하다면 지역과 성별을 고려해 편중되지 않게 하면서 국민 통합을 꾀하는 게 정치”라고 말했다.
이완 기자 wani@hani.co.kr·손고운 기자 songon1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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