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민주당 텃밭’ 경기 군포시 민심 분석
전국·전 세대에서 민주당 지지층 이탈
‘민주당 텃밭’ 경기 군포시 민심 분석
전국·전 세대에서 민주당 지지층 이탈
경기도 군포시 군포역 앞 사거리에 6·1 지방선거에 출마한 각 당 후보자들의 펼침막이 내걸려 있다. 김진수 선임기자
2006년 지방선거 이후 처음 보수정당 시장 <한겨레21>은 한 지역에 집중해 수도권 민심이 민주당에서 돌아선 이유를 자세히 살펴봤다. 최대 격전지인 경기도, 그중에서도 전통적인 민주당 텃밭으로 분류되나 이번 선거에서 균열이 감지되는 곳을 찾았다.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의 실제 모델이 된 경기도 군포시에 주목한 이유다(드라마에서는 군포에 속한 산본동과 군포를 합쳐 ‘산포시’라는 가상의 지역을 만들어냈다). 군포 유권자는 2000년 총선 이후 지역구 국회의원, 2010년 지방선거 이후 시장을 모두 민주당으로 밀어줬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군포시장 선거에서 국민의힘 소속 하은호 후보가 민주당 한대희 현 시장을 제치고 당선됐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하은호 당선자의 득표율(50.44%)은 한대희 현 시장과 불과 0.89%포인트(1134표) 차이였다. 군포에서 보수정당 쪽 시장이 당선된 것은 2006년 지방선거 이후 처음이다. 믿었던 민주당에 대한 실망이 가장 큰 ‘이탈’ 이유였다. 30년째 군포에 사는 정택민(41)씨는 민주당에서 발생한 각종 성추행 사건과 자녀의 입시비리 등 불공정 이슈에 크게 실망했다. 그는 “권력형 성추행은 용서할 수 없는 범죄라 생각한다. 깨끗함을 내세우고 공정을 외쳤던 진영에서 그런 일이 발생한 것을 대단히 유감으로 생각한다”며 “입시비리나 불공정, 계급 대물림 문제로 (민주당에서) 이탈한 젊은층과 중도층이 상당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국민의힘과 차별되지 않는 정책,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추진 같은 민심과 동떨어진 행보”(김해영 전 민주당 최고위원)에 대한 비판도 나왔다. 신도시 개발 때부터 군포에서만 30여 년을 지낸 60대 ㄱ씨는 “정치라는 게 국민을 위해 싸우는 게 아니라 자기들 밥그릇 때문에 싸우는 것 아니냐. ‘검수완박’도 서민과 무슨 관계가 있나. 군포에선 민주당이 당연히 된다고 생각한 것 같은데 이젠 진보·보수 구분도 희미해진다”고 말했다. 군포에서 보수계열 정당 후보가 당선된 건 15대 총선(1996년)에서 김부겸 당시 한나라당 후보가 유일했다. 그나마도 김부겸은 열린우리당 창당 때 당적을 옮겨 내리 3선(16~18대)을 군포에서 했다. 김부겸이 지역구를 대구로 옮긴 19대(2012년) 총선 이후로는 현 이학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다시 내리 3선(19~21대)을 했다. 군포시장 역시 열린우리당·민주노동당·민주당으로 표가 갈린 2006년 지방선거를 제외하고, 모두 현 민주당 계열 후보가 당선됐다. 20대 대선에서도 이재명 민주당 후보(52.29%)가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후보(44.23%)를 8%포인트 이상 앞섰다. 군포는 2017년 이후 민주당이 주요 선거(2017년 대선, 2018년 지방선거, 2020년 총선)에서 연승하며 압도적 정치권력을 획득하는 과정에서 핵심 지지기반이 된 지역 중 하나다.
20년이 지나자 ‘머물 사람만 머무는 곳’으로 그랬던 곳에서 국민의힘 후보가 시장으로 당선됐다. 여기에는 민주당이 지역 개발에 소홀했다는 주민들의 불만이 자리하고 있었다. 문재인 정부 때 서울과의 부동산값 격차가 더 벌어지면서 군포 주민들의 낭패감을 부추겼다. 서울 흑석동에 살며 학교에 다니다 직장 때문에 10년 전 군포로 왔다는 ㄴ(36)씨는 “군포시엔 미래가 없다고 느낀다”고 했다. “젊은 사람은 군포에서 많이 빠져나가고 나이 든 사람만 많이 남았다. 군포에선 민주당이 잘못해도 불만을 표출할 세력이 없다. 민주당이 실질적으로 해낸 게 아무것도 없다. 문재인 대통령을 뽑았지만 부동산 문제가 심각했다. 원래 여유 있는 친구는 부자가 됐고 힘든 친구들은 더 힘들어졌다. 군포에 있는 집을 팔아버리고 서울로 가고 싶지만 흑석동으로 돌아갈 순 없을 것 같다.” ㄴ씨에게 군포는 ‘계란의 흰자’, 서울은 더는 함부로 넘볼 수 없는 ‘계란의 노른자’다. 1980년대까지 시흥군이었던 군포는 광명시, 안양시와 함께 경부선 철도를 따라 발달했다. 초기엔 주로 제조업 공장이 들어섰고, 호남·충남·경북 출신이 옮겨와 살았다. 그러다 노태우 정부 때인 1990년대 초 산본이 1기 신도시로 조성되면서 대규모 주거단지가 들어섰다. 당시 분당과 일산, 안양시 평촌 등 5대 신도시에 30만 호의 아파트가 지어졌다. 세월이 흐르며 신도시는 빛바랜 구도시가 됐다. 군포는 2014년 28만8600여 명 이후 꾸준한 인구 감소세에 있다. 같은 기간 경기도 인구의 뚜렷한 증가세(2014년 1271만 명→2021년 1393만 명)와는 대조적이다. 주변 지역으로 인구가 빠져나가는 것이다. 60대 ㄱ씨는 “같은 신도시인 분당이나 평촌에 비해 집값이 오르지 않았다. 20년 정도 지나며 확연하게 머물 사람만 머물게 됐다”고 말했다. 정택민씨도 군포의 쇠락이 안타깝다. 그는 “살기가 괜찮은 편이라 신혼부부와 아이가 많았는데 개발이 안 되니 교육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인근 평촌으로 넘어갔다. 이제 사람들은 군포가 어디인지도 잘 모른다. 항상 안양 옆, 과천 옆이라고 설명해야 알아듣는다”고 말했다. 군포에서 10년을 살며 아이를 키우는 양희철(37)씨는 서울 신림동까지 50분 거리를 매일 운전해 출퇴근한다. <나의 해방일지> 삼 남매의 이야기가 낯설지 않다. 양씨는 “드라마를 보고 군포 사람들이 창피해한다. 다들 군포를 시골이라 생각한다. 나중엔 서울로 가거나 과천 같은 상급지로 가고 싶지만, 가능할지 모르겠다”며 “안양과 군포, 의왕을 묶어 ‘안군의’라고 했는데 (상급지 순서가 바뀌어서) 지금은 ‘안의군’이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군포 유권자는 시장 선거에서만 민주당을 ‘심판’했다. 경기도지사 선거에서 김동연 민주당 후보에게 경기도 전체(49.06%)보다 많은 득표율(51.65%)을 몰아줬다. 군포시의원 등 기초의원 선거에서도 민주당 후보들이 1위를 차지했다. 국민의힘으로 완전히 ‘전향 이탈’하지 않은 셈이다.
인천 계양구 시민들이 6·1 지방선거를 이틀 앞둔 2022년 5월30일 펼침막이 즐비한 인천 계양역으로 걸어가고 있다. 류우종 기자
2018년 ‘정치 지형 대변동’ 다시 돌아서 민주당의 전반적인 참패 가운데서도 이재명을 국회의원으로 만든 인천 계양을 역시 ‘민주당의 텃밭’이긴 군포와 마찬가지다.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가 이 지역에서만 5선(16~18, 20~21대)을 했다. 이번 인천시장 선거에서도 계양을 유권자는 낙선한 박남춘 민주당 후보에게 국민의힘 유정복 당선자(6만6117표)보다 많은 7만2090표를 몰아줬다. 하지만 이곳에서도 민주당에 대한 실망감은 군포와 엇비슷하게 나타났다. 13년째 계양구에서 산다는 50대 초반 ㄷ씨는 여전히 민주당을 지지한다면서도 “180석을 만들어줬을 때 빨리 했어야 하는 검찰개혁 등의 일을 왜 이제 와서 하려 하나. 그러니 당연히 반발을 부르는 게 아닌가”라고 말했다. ‘텃밭’ 민심의 이탈은 수도권에서만 나타난 게 아니다. 민주당의 ‘아성’인 광주광역시의 투표율은 37.7%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민주당에 실망한 이들은 아예 투표장을 찾지 않았다. “민주당에 대한 정치적 탄핵”이라는 평가도 나왔다.
택지로 개발 중인 경기도 군포시 대야지구 모습. 이정규 기자
“지지층 이탈했으나 아직 지지 정당 바꾸진 않아” 군포 같은 ‘민주당 텃밭’ 지지층의 이탈은 앞으로 어떤 정치적 재편으로 이어질까. “이번 선거에선 경기·인천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또 전 세대에서 민주당의 지지층 이탈이 발생했다. 다만 아직 낮은 투표율 등으로 보아 이탈이 다른 정당으로 지지 정당을 바꾸는 정도의 중대한 변화(전향 이탈)라기보다 단지 투표를 포기하거나 무당파로 빠지는 ‘탈동원 이탈’로 봐야 할 것 같다. 민주당에 대한 불만, 심판 같은 성격이고 ‘검수완박’이나 유권자를 무시한 후보 선정 과정 등에 대한 실망이 작용한 것이다. 이 사람들이 돌아올 명분을 앞으로 민주당이 줘야 한다.”(정한울 한국리서치 전문위원) 박기용 기자 xeno@hani.co.kr·이정규 기자 jk@hani.co.kr
이슈6.1 지방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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