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14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하며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이 기업들을 위한 규제 완화에는 속도를 내면서 화물연대 파업 등 사각지대에 몰린 노동자들의 민생 문제에는 거리를 두고 있다. 대선후보 시절부터 주 120시간 노동, 최저임금 폐지 논란 등을 일으켰던 윤 대통령이 ‘경제위기 타개를 위한 성장’을 명분으로 친기업-반노동 기조를 밀어붙이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윤 대통령은 지난 13일 대통령실에서 주재한 수석비서관회의에서 화물연대의 파업을 ‘집단 운송거부’로 규정했다. 특수고용노동자로 분류되는 화물차 기사는 ‘개인사업자’일 뿐 고용된 노동자가 아니기 때문에 노동법이 보장하는 ‘파업’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시각이 반영돼 있다. 지난 10일 약식회견에서는 “정부가 법과 원칙, 중립성을 가져야만 노사가 자율적으로 자기들의 문제를 풀어갈 수 있는 역량이 축적돼 나간다”며 화물연대 파업은 노사 협상으로 풀 문제라고 강조했다.
안전운임제는 고질적인 화물운송 저운임 구조의 대안으로 이명박 정부 때부터 논의됐고 문재인 정부 들어 3년 시행 뒤 연장 여부를 결정하는 조건으로 2020년에 도입됐다. 노·사·정 대화의 결실이었던 만큼 정부는 안전운임제 도입 협상의 당사자다. 하지만 국토교통부는 ‘노사 협상의 중재자’라며 발을 빼고 있으며, 이는 정부 역할을 외면하고 있는 윤 대통령의 태도와 무관하지 않다.
윤 대통령은 “노동에 적대적인 사람은 정치인이 될 수 없는 거 아닌가”(6월10일)라며 반노동적이라는 지적을 일축했지만 행보는 반대인 셈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파업 1주일 동안 자동차·철강·석유화학·시멘트·타이어 업종에서 1조5868억원의 생산·출하 차질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화물연대 파업이 국내 산업에 미치는 영향이 막대하다는 점을 강조했지만, ‘문제 해결은 노사가 알아서 하라’는 건 모순적 행태라는 비판이 나온다.
반면 윤 대통령은 지난 13일 한덕수 국무총리와의 첫 주례회동에선 “규제개혁이 곧 국가 성장”이라며 “각종 규제 개선과 현장 애로 해소 방안을 각별히 챙겨달라”고 했다. 안전운임제를 요구하는 화물연대와, 규제를 완화해달라는 기업을 대하는 태도 차이가 극명하다. 한 총리도 14일 정부세종청사 브리핑에서 대통령이 주재하는 ‘규제혁신전략회의’ 신설 계획을 밝혔다.
윤석열 정부는 국정과제로 명시한 노동시간 유연화, 최저임금 차등 적용,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완화도 추진 중이다. 정흥준 서울과학기술대 교수(경영학)는 “겉으로는 규제를 완화하겠다고 하고, 노동 문제에 대해서도 과도하게 편향된 걸 바로잡겠다고 하는데 이해당사자가 명확하게 존재하는 문제여서 실현 가능성이 크지 않다”며 “(윤석열 정부가) 전형적인 정치적 언사를 하고 있고 실제로는 일을 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병훈 중앙대 교수(사회학과)는 “윤석열 정부는 기업이 살겠다며 노동은 후퇴시키는 그런 식의 ‘노동 없는 노동정책’을 펴고 있다”며 “사람이 죽거나 장시간 노동, 저임금, 임금 격차 문제를 방치한 채 경제만 살리면 지금처럼 재벌이나 일부 잘사는 사람들만 정책 효과를 보고, 저임금 불안정 노동자 등의 삶은 더욱 팍팍해지고 불안정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서영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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