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13일 오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당 비상대책위원회 체제 전환에 대한 가처분 신청 등과 관련해 직접 입장을 밝히던 중 눈시울이 붉어지고 있다. 연합뉴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와 ‘윤핵관(윤석열 대통령 핵심 관계자)’이 서로에게 전면전을 선포하면서, 집권 100일도 채 되지 않은 여권의 혼란이 최고조로 치닫고 있다.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이대로 가면 모두 침몰”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가운데 대통령실과 여당 지도부는 침묵만 지키고 있다.
이 대표는 이 사건의 발단으로 윤 대통령을 지목하며 ‘반윤’(반윤석열) 기조를 이어나가고 있다. 이 대표는 15일 <시비에스>(CBS) 라디오에서 “(윤 대통령이) 다른 사람 있는 자리에서 이 XX, 저 XX 하는 것은 소위 윤핵관과 윤핵관 호소인들이 저를 때리기 위해 들어오는 약간 지령 비슷한 역할을 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 대표는 지난달 8일 당 윤리위원회에서 ‘당원권 정지 6개월’ 징계를 받고, 지난 9일 당이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돼 대표직을 박탈당하는 과정에서 윤핵관들이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보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윤 대통령이 있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결국에 (일이) 터진 건 체리따봉이다. 뒷담화를 할 거면 들키지나 말지”라고 비꼬았다. 앞서 지난달 26일 국회사진기자단에 포착된 권성동 원내대표의 휴대전화 화면 사진에는 윤 대통령이 이 대표를 향해 “내부 총질이나 하던 당대표”라고 한 메시지와 함께 ‘엄지를 든 체리 모양 이모티콘’이 담겨 있었다. 또 윤 대통령의 취임 100일 점수를 매겨달라는 질문에 “한 25”라고 말했다.
지난달 26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제 398회 임시회 6차 본회의 대정부 질문도중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문자대화를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이 대표는 윤 대통령의 ‘이중 플레이’도 폭로했다. 윤 대통령을 향해 “앞뒤가 다르면 곤란하다. 100년 만에 나올 만한 당 대표, 그리고 XX를 조합하면 ‘100년 만에 나올 XX라는 거냐”고 되물었다. 윤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인 지난해 12월3일 잠적한 이 대표에게 화해의 손짓을 보내면서 “정당사에서 가장 최연소이고,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하는 당 대표”라고 말한 바 있다.
이 대표는 지난 13일 국회에서 연 62분간 기자회견에서도 “대통령이 원내대표에게 보낸 메시지가 국민의 손가락질 받는다면, 대통령 지도력의 위기” “대통령실에 따르면 대통령은 저를 만나지 않았지만, 저는 (6월12일) 독대했다”며 윤 대통령에 각을 세웠다.
이 대표는 이날 저녁 <제이티비시> (JTBC) 인터뷰에선 “대통령이 잘해야 한다는 인식에는 변함이 없다“, “정권 초라도 용기를 내서 지적하는 게 중요하다”며 윤 대통령을 향한 자신의 비판이 정권의 성공을 위한 것이라는 ‘진정성’도 강조했다.
당내에서는 윤 대통령과 회복 불가능한 관계가 되어버린 이 대표가 반윤 기조로 정치적 공간을 노린다고 보고 있다. 중진 의원은 “대통령과 관계가 만천하에 드러난 상황에서 이제 선택지는 반윤 밖에 없다. 특히 윤 대통령 지지율이 높지 않은 상황에서 기회를 노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당장 이 대표가 지난 13일 기자회견에서 수도권 열세지역에 출마하라며 권 원내대표와 장제원·이철규 의원을 ‘윤핵관’으로 정진석·김정재·박수영 의원을 ‘윤핵관 호소인’으로 콕 찍어 말한 뒤 반발이 나온다. 이철규 의원은 <한겨레>에 “사실이 아닌 거로 공격하면 책임을 물어갈 것이다. 다들 상대하지 않겠다고 피하는데 나는 끝장을 본다. 이준석도 예외는 아니다”라며 “지역구민들의 정치적 이익을 대변하기도 바쁘지만, 저런 후안무치하고 몰염치한 자들을 막는 것도 소임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한 발도 물러서지 않겠다는 것이다.
당내에는 “공멸”(영남 초선 의원)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 대표에게 우호적인 목소리를 내왔던 조해진 의원도 지난 14일 자신의 유튜브에서 “이 대표의 억울한 심정은 이해하면서도 저건 곤란하다”며 “이런 상태로 계속 가면 당도 주저앉고, 정권도 가라앉고 국정은 엉망이 되고 나라는 위기에 빠진다”고 말했다. 또 다른 중진 의원은 “국민의힘에 ‘국민’은 안중에도 없다. 벌써 1년 반 뒤에나 있는 (2024년) 총선 공천권을 둔 자리다툼으로 보이지 않겠냐”고 한숨을 내쉬었다.
대통령실과 여당 지도부 모두 부글부글하면서도 따로 공식 입장을 내지 않고 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한겨레>에 “우리 쪽에서 입장을 낼 사안도 아니고, 당에서 대처할 것”이라며 “이 대표가 따로 이쪽에 연락을 취한 바 없고, 더 상대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무반응이 최선’이라는 게 대통령실 내부 기류다.
또 다른 관계자는 “윤 대통령이 더 이상 정쟁이나 대립에 얽히지 않고, 미래지향적인 정책 등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이는 게 최선이라고 본다”며 “이 대표가 계속 비난 기조로 나오지만, 생각보다 젊은층에 동원력이 있는 것도 아니라고 판단하고 있다”고 이 대표를 평가 절하했다. 괜한 대응으로 이 대표의 발언을 더 키워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원내지도부 관계자도 “공식적으로 낼 말이 없다”며 “개인적으로는 당 대표로 지나친 부분이 많다고 보지만, 우리가 괜히 이 대표의 발언을 키워줄 필요가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이 오는 17일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이 대표의 저격 등 여권 내부 상황에 대해 직접 언급할지 주목된다.
서영지 기자
yj@hani.co.kr 이재훈 기자
nang@hani.co.kr 배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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