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삼청동 감사원 건물의 모습.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더불어민주당에서 감사원이 특별감사에 착수하기 전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의 승인을 받도록 하는 내용 등을 담은 ‘감사원 정치개입 방지법’을 추진하자 국민의힘이 “문재인 정권 감사에 눈을 감으라는 거냐”며 반발하고 나섰다. 하지만 정치권 안팎에선 제왕적 대통령제 종식을 위해 대통령 소속 기관인 감사원을 국회 소관으로 둬야 한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박정하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15일 논평을 내어 민주당의 ‘감사원 정치개입 방지법’을 두고 “헌법기관인 감사원을 국회 하위 기관으로 두고 국회 다수당이 시키는 것만 감사하라는 발상”이라며 “결국 문재인 정권 관련 감사에는 눈을 감으라는 소리”라고 밝혔다. 박 수석대변인은 이어 “권력 견제의 기능까지 무너트리며 ‘감사완박’에 나서는 민주당의 행태는, 도둑이 경찰을 지휘하는 형국”이라고 덧붙였다.
문재인 정부 감사원장이었던 최재형 국민의힘 의원도 이날 페이스북에 “헌법상 감사원은 대통령 소속 기관이지만 대통령으로부터도 직무상 독립하여 감사를 한다. 대통령에게도 미리 감사계획서를 제출해 승인받거나 그 결과를 보고하지 않는다”며 “헌법 체계를 파괴하는 민주당의 기상천외한 발상은 가리고 덮어야 할 지난 정부의 불법과 비리가 얼마나 많은지를 스스로 자인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고 적었다.
윤석열 정부 출범 뒤 감사원은 전임 정부에서 임명된 기관장들이 재직 중인 공공기관(국민권익위원회, 방송통신위원회 등)과 서해 공무원 피살과 강제북송 사건 등에 대한 감사에 나서면서 ‘정치감사·표적감사’ 논란의 중심에 섰다. 지난 7월29일 최재해 감사원장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감사원이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지원하는 기관인가’라는 질의에 “지원하는 기관이라고 생각한다”며
정치적 중립성을 스스로 훼손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뒤이어 민주당은 감사원의 정치적 중립을 위한 법제화를 당론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고 신정훈 의원과 박홍근 원내대표, 진성준 원내수석부대표 등 60명은 지난 14일 ‘감사원 정치개입 방지법’(감사원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개정안은 △감사원 임직원의 정치적 중립성 유지 의무 부과 및 위반 시 형사처벌 △감사위원회의 의결 공개 △감사원 공무원 임면권자를 대통령에서 감사원장으로 변경 △감찰 금지 사항에 정부 중요 정책 결정 및 정책 목적의 당부(옳고 그름) 추가 △특별감찰 시 감찰계획서 국회 소관 상임위에 제출 및 승인, 감사 결과 국회 보고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감사원법 개정을 둘러싼 논란이 정치권 공방으로 흐르고 있지만 정치권 안팎에선 그동안 대통령 소속의 감사원이 제왕적 대통령제의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는 비판이 꾸준히 나왔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는 지난 2일 국회에서 열린 초당적 정치개혁 연속토론회에서 “한국의 대통령은 인사권, 예산권, 정책결정권, 법률안 제출권, 감사권, 개헌안 발의권을 포함한 초강력 대권을 지니고 있다”며 “최소한 입법권, 인사동의권, 감사권은 의회로 옮겨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2월 국회예산정책처가 펴낸 <예산정책연구>에 실린 ‘국회의 결산 심의 및 감사권에 관한 연구’ 논문에도 비슷한 주장이 나왔다. 논문을 보면, 대통령제 국가인 미국에선 감사원 격인 정부책임처가 의회 소속이며, 정부책임처장은 특별양원위원회의 추천, 상원의 동의를 거쳐 대통령이 임명한다. 의원내각제 국가인 영국의 감사원은 의회 소속이며 감사 수행을 결정할 때 하원 공공회계위원회 요구에 따라 의회를 지원할 사실상의 의무를 지닌다. 독일의 감사원 격인 회계법원은 입법·사법·행정부에서 독립돼 있지만 원장과 부원장은 연방정부의 제청으로 의회에서 선출된 사람을 대통령이 임명한다. 논문을 쓴 김건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전문위원은 “대통령 소속 하에 감사원을 둔 우리 헌법 제97조는 우리나라의 정치문화를 고려할 때 감사원이 대통령의 영향력으로부터 벗어나기 어렵고 이로 인해 대통령과 관련된 사안 등에 있어서 감사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감사원 감사 과정에서도 조력을 받을 권리 등이 명시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회입법조사처가 지난달 펴낸 <2022 국정감사 이슈 분석Ⅰ>을 보면, 헌법상 형사 피의자, 피고인은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보장되며, 체포·구속·압수·수색은 검사의 신청으로 법관이 발부한 영장에 의해야 하는 등 절차상 권리가 보장되는데, 감사원법에는 변호인의 참여에 관한 명시적인 규정이 없다. 김홍걸 무소속 의원은 이날 감사 과정에서 변호인 참여를 보장하는 감사원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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