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지난 24일 오후 영국·미국·캐나다 순방을 마치고 성남 서울공항에 도착, 공군 1호기에서 내리며 손을 흔들고 있다. 연합뉴스
와, 이런 사랑. 윤석열 대통령이 878억원에 이르는 영빈관 신축 예산안을 거둬들이는 것을 보고 조금 놀랐다. 무슨 욕을 먹더라도 일단 뭉개고 보는 분 아니었던가. 그런데 이번에는 알려진 지 하루 만에 철회를 지시했다. 그 큰 나랏돈 쓰임을 빈대떡처럼 뒤집는다는 비판도 아랑곳없었다. 김건희 여사에게 튀는 불똥을 막으려는 의도였으면, 성공했다. 안 그랬다면 사람들은 “응, 옮길 거야”라던 그의 목소리를 줄곧 떠올렸을 테니까. 이런 사랑, 어지간해서는 응원해주고 싶다.
문제는 두 분이 보통 분이 아니라는 거다. 윤 대통령을 찍었던 한 친구는 영국 여왕 조문과 관련해 애초 두 시간 일찍 출국하기로 돼 있었다는 보도를 들어 “대통령이 숙취로 일찍 못 일어났거나 김건희 여사가 꾸미는 데 시간이 걸렸겠지”라고 말했다. 어쩌다 김건희 여사는 ‘국민 밉상’이 됐고, 대통령은 뭘 해도 못한다는 ‘통치불능감’ 상태에 빠진 걸까.
‘김건희 리스크’는 대략 세 덩어리다. 첫째는 본인과 주변의 미숙함 혹은 ‘오버질’로 야기된 것이다. 대통령 집무실에서 촬영한 사진이나 대통령의 동선을 팬클럽을 통해 공개하거나 취임식에 부적절한 인사를 초대하거나 비싼 장신구를 신고하지 않았다는 따위로, 보는 각도에 따라서는 구설에 오르고 말 일이다. 둘째는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연루나 논문 조작 등 위법 의혹이다. 검찰과 대학이 권력의 눈치를 보면서 법과 양심에 따를 의무를 방기하지 않는지 엄격히 따져야 할 일이다. 셋째는 대통령실 용산 이전과 관저 변경, 영빈관 신축 논란까지 ‘공간의 이동’과 관련해 이해할 수 없는 선택이다. 이게 좀 고약하다. 앞의 두 덩어리는 적어도 맥락은 알겠다. 주변에서 설명도 변명도 내놓는다. 그런데 이 셋째 영역에 이르면 그만 어리둥절하다. 대통령실도 그저 침묵뿐이다.
갑자기 툭 튀어나와 누가 이런 제안을 하고 어떤 논의 과정을 거쳤는지는 일절 밝히지 않고 그저 밀어붙였다. 집무실을 광화문으로 옮긴다더니 하루아침에 용산으로 바꾸고, 국방부 장관 관저를 쓴다고 수리비까지 타놓고는 어느 날 마치 쇼핑하듯 외교부 장관 관저를 골랐다. 영빈관 신축은 총리도, 수석급 참모들도 몰랐다(고 했다). ‘몰래 예산’이었다는 소릴 듣는다. 다들 이 이해할 수 없는 과정에서 김 여사의 그림자를 짙게 느낀다. 하필 김 여사의 관심사인 무속과 풍수 따위와 연결을 지어가며 말이다.
‘참사랑꾼’ 대통령이 한 번 더 결단할 시간이다. 청와대로 들어가시라. 마음은 충분히 확인했다. (전 대통령과 달리) 국민 가까이 소통하고 싶은 마음, (전 정권 보란 듯이) 청와대를 활짝 열어주고 싶은 마음 아닌가. 알았으니 이제 화끈하게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시라. 설상가상 대통령실 이전에 따른 국방부, 합동참모본부, 수도방위사령부 등의 연쇄 이전 비용도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당장 출퇴근을 위한 인력과 경비도 만만치 않지만, 위기 컨트롤타워 기능이나 국정 헤드쿼터 역할에 필요한 공간과 동선 문제도 해결이 안 되고 있다. 임기 내 마무리도 안 되고 두고두고 논란만 일 게 뻔하다. 게다가 지금은 그 언제보다 허리띠를 졸라매야 할 시기 아닌가. 다음 대통령은 누가 되든 이런 이유로 청와대로 되돌아갈 공산이 크다.
대통령이 청와대에 있어도 사람들은 충분히 청와대를 누릴 수 있다. 업무 공간 출입은 막고 관저는 보호하면 된다. 국회 개방을 떠올리면 어렵지 않다. 본관과 의원회관을 빼고는 누구든 자유롭게 산보하거나 쉴 수 있고, 편의시설이나 도서관 이용도 가능하다. ‘자유, 자유, 자유’로운 ‘글로벌 스탠더드’ 풍경이다.
모쪼록 두 분이 손 꼭 잡고 청와대로 들어가셔서, 좋은 사랑 하길 바란다. 혹시 ‘독특한 믿음 체계’를 위해 ‘어떤 행사’가 따로 필요하다면 우리가 또 눈감아드릴 수 있다. 나랏돈도 많이 굳으니 그쯤이야.
김소희 칼럼니스트
*김소희의 정치의 품격: ‘격조 높은’ 정치·정치인 관찰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