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수 국무총리가 1일 개최된 ‘이태원 사고 관련 외신기자 브리핑’에서 답변 도중 농담을 하거나 웃음을 지어 논란이 되고 있다. (사진=MBC 방송화면 캡처)
자유 말고는 이 정부가 딱히 내세우는 슬로건은 없다. 그럴 수도 있다고 여겼다. 굳이 국정 기조를 그럴듯하게 만들어 보일 필요가 있나 싶기도 했다. 가령 ‘사람이 먼저다’ 같은 문구는 너무 착한 척하는 것 같았고, 때론 욕만 두 배로 하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이태원 참사의 전후 맥락을 알아버린 지금, 슬로건에 담긴 철학과 기조는 잘하든 못하든 정권을 이끌어가는 이들에게 은연중에 배어든다는 걸 새삼 떠올린다. 사람을 위하고 아끼기는커녕 의례적인 사과조차 마치 매뉴얼이 없어 못한다는 듯 앞다투어 발뺌하는 참사 책임자들을 보니, 이 정권의 텅 빈 국정 기조가 유난히 불안하게 다가온다.
참사를 막지 못한 것도 놀랍지만 벌어진 뒤 수습을 못하는 모습은 두렵기까지 하다. 경찰과 소방이 막을 일이 아니었다고 연이틀 책임 회피를 하던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섣부른 추측이나 선동성 주장을 하지 말라”며 응당 해야 할 문제 제기에 ‘딱지’부터 붙였다. 그런 장관을 따끔하게 질책해도 모자랄 한덕수 국무총리는 하나 마나 한 말로 변명했다. 사람 목숨 지키는 일에는 그리 태만하던 이들이 권력자에게 불똥이 튀는 데는 기민했다. 가장 먼저 한 일은 애도를 내세워 입을 틀어막는 것이었다. 시민단체 등의 동향을 파악한 사실상 사찰 문건을 만들어 돌렸다. 정쟁에 이용하지 말라는 프레임부터 짜는 낯부끄러운 정쟁도 버젓이 했다. 왜 이럴까. 국민을 보지 않고 권력자 한 사람만 보기 때문이다.
그나마 그 한 사람을 위한 일조차 잘하지 못했다. 저마다의 셈속으로 머리 굴리며 뭉개기만 했다. ‘책임총리’라는 한덕수가 가장 두드러졌다. 책임지고 비통해하는 민심을 다독이거나 사태를 수습하기는커녕 대통령을 대신한 ‘욕받이’ 노릇도 제대로 못했다. 오히려 상처에 소금 뿌리는 짓을 했다. 자청해 한 외신 기자회견 자리에서 정부 책임을 묻는 말에 시스템 부재 탓만 하더니 급기야 실실 웃으며 농담까지 덧붙였다(사진). 미국 프로야구팀을 들먹이며 군중 밀집을 대수롭지 않게 취급하기도 했다. 안이하기 짝이 없을 뿐만 아니라 거의 ‘악의’까지 느껴졌다.
공직을 마치고 민간 법률회사인 김앤장의 고문으로 일하다 다시 공직으로 온 것에 대해 일찍이 총리 인사청문회에서 일말의 변명이나 양해도 없이 법이 정한 범위 안에서 자기가 가진 것을 활용한 것이라고 대놓고 궤변을 늘어놓던 모습이 겹쳐졌다. 해외 출장 간 대통령의 동선을 모르고, 영빈관 신축 같은 큰 예산이 들어간 일도 신문을 보고 아는 분답다. 건건이 이토록 ‘영혼 없는 보필’이라니.
대통령이 자초한 일이다. 사람을 잘못 앉혔다. 국정 철학과 기조의 빈자리는 다 수사로만 채웠다. 그러니 이 정권의 공직자들은 전임 정권에 덧씌우는 직무유기나 권한남용이 언젠가 부메랑처럼 자신에게 돌아올지 모른다고 본능적으로 느끼는 게 아닐까. 이번 참사에 책임 있는 이들마다 입이라도 맞춘 듯이 수사로 밝혀질 거라는 말만 반복한다. 누구에게 책임을 씌울까만 궁리하는 듯하다.
매일 국화꽃 들고 조문하는 게 대통령이 할 일은 아니다. 초동 대처에서 정체가 들통나버린 총리와 장관, 경찰청장 등 임명직 책임자들은 지체 없이 경질하기 바란다. 그래야 일이 돌아간다. 무엇보다 하루라도 더 보고 있기가 괴롭다.
위기 상황에서는 모든 감각이 더 생생해진다. ‘리더십 재난’ 한가운데서 절감한다. 재난은 여러 징후를 보인다는데, 우리가 지금 목격하는 징후는 그 끝일까 시작일까. 정신을 바짝 차려야겠다.
김소희 칼럼니스트
*김소희의 정치의 품격: ‘격조 높은’ 정치·정치인 관찰 칼럼입니다. 격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