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10월25일 오전 2023년 예산안 시정연설을 하기 위해 국회 본회의장을 찾았다. (왼쪽 사진부터)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대통령의 시정연설을 전면 거부한 채 손팻말 시위를 하고 있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본회의장으로 들어서는 윤 대통령을 향해 일어서서 박수를 치고 있다. 정의당 의원들이 본회의장 좌석 앞에 항의 손팻말을 붙이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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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치열한 여야 공방의 배경에는 2024년 4월10일 실시될 22대 국회의원 총선거 승리라는 지상 목표가 깔려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총선에서 이겨야 여소야대에서 벗어나 국정을 제대로 이끌어갈 수 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윤석열 대통령,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그리고 장제원·권성동 의원 등 이른바 윤핵관(윤석열 핵심 관계자)들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문재인 전 대통령을 집중적으로 공격하는 이유입니다. 민주당의 중심축을 무너뜨려야 국민의힘이 이긴다고 보는 것입니다. 민주당도 마찬가지입니다. 2024년 4월 총선에서 이겨야 윤석열 대통령을 식물 대통령으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래야 정권 탈환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2024년 4월 총선에서 국민의힘이 승리해 국회 과반 의석을 차지하면, 실제로 어떤 장면이 벌어질까요? 윤석열 대통령이 원하는 법안들을 국회에서 다 통과시킬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전례가 있습니다. 2020년 4월15일 21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은 163석을 차지하며 압승을 거뒀습니다. 더불어시민당 17석까지 더하면 180석이었습니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은 2022년 5월 퇴임 전까지 2년 동안 법안을 마음대로 통과시키지 못했습니다. 국민 여론을 거스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윤석열 대통령도 그럴 것입니다.
반대로 2024년 4월 총선에서 민주당이 승리해 지금처럼 국회 과반 의석을 차지하면 어떻게 될까요? 윤석열 대통령이 총선 패배의 책임을 지고 퇴임할까요? 그럴 리가요. 우리나라 대통령 5년 임기는 헌법에 정해져 있습니다. 탄핵이 아니면 대통령을 몰아낼 수 없습니다. 지금과 똑같은 상황이 그냥 계속되는 것입니다.
거대 양당의 ‘정쟁 무한반복’ 악순환
결국 2024년 4월 총선에서 어느 쪽이 승리하든 지금과 별로 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아마도 여야는 2026년 6월3일 9회 전국동시 지방선거 승리를 향해 달려갈 것입니다. 지방선거가 끝나면 또 2027년 3월3일 21대 대통령 선거 승리를 향해 달려갈 것입니다.
대화와 타협에 의한 정치, 국정과 민생은 사라지고 거대 양당이 죽기 살기로 선거만 치르는 전쟁이 계속되는 것입니다. 영원히 끝나지 않는 ‘네버 엔딩 스토리’인 셈입니다. 도대체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질까요?
첫째, 정치 양극화 때문입니다. 디지털 혁명과 모바일 혁명으로 유권자들의 확증편향이 심화하고 있습니다. 정치적 경쟁 상대를 악마화하고 증오와 배제를 부추기는 선동 정치가 횡행하고 있습니다. 전세계적 현상입니다.
둘째, 제도 탓입니다. 승자독식 대통령제 때문입니다. 여기에 소선거구제 지역구 중심의 국회의원 선거제도가 사태를 악화시키고 있습니다. 소선거구제 지역구 중심의 선거제도는 거대 양당에 유리합니다. 미국과 우리나라의 특징입니다.
미국에서 먼저 큰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대통령은 고사하고 정치인 자격조차 의심스러운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됐던 사건 말입니다. 우리나라는 어떤가요? 아직 그 정도는 아닌가요? 아니라면 다행입니다.
선거법을 개정해 거대 양당의 국회 의석 나눠 갖기를 막고, 대화와 타협의 정치로 나가야 한다. 사진은 지난 4월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오른쪽 둘째)와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왼쪽 둘째)가 각각 상대 당 원내 수석부대표와 인사하는 모습. 공동취재사진
어떻게 해야 할까요? 도대체 어떻게 해야 정치를 제로섬 게임에서 건져낼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해야 여당과 야당이 국정의 파트너로서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하도록 만들 수 있을까요?
개헌해야 합니다. 의원내각제는 국민이 반대합니다. 대통령제를 유지하되 대통령 권한을 국무총리와 국무위원, 국회, 지방정부로 분산시키는 분권형 대통령제로 개헌해야 합니다. 당장은 어렵습니다. 동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 당장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일은 선거법 개정입니다. 특정 지역을 특정 정당이 독식하고 거대 양당이 국회 의석 대부분을 나눠 갖게 돼 있는 현행 소선거구제 지역구 중심 선거제도를 손질해야 합니다. 양당 체제를 다당 체제로 바꿔야 합니다. 현행 선거법에서도 제3정당이 출현한 전례가 몇 차례 있었습니다. 1988년 총선 민정당, 평민당, 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 4당 체제, 1996년 총선 신한국당, 새정치국민회의, 자민련 3당 체제, 2016년 총선 민주당, 새누리당, 국민의당 3당 체제였습니다. 오래 가지 못하고 다시 양당 체제로 회귀했습니다. 그래도 어쨌든 양당 체제보다는 다당 체제에서 대화와 타협의 정치가 이뤄졌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8월1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21대 국회 후반기 신임 국회의장단 초청 만찬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 사진기자단
총선 결과 특정 정당의 특정 지역 독식을 막고 다당 체제가 쉽게 출현할 수 있도록 하려면 선거법을 어떻게 바꿔야 할까요? 첫째, 특정 지역을 특정 정당이 독식하지 못하도록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야 합니다. 둘째, 비례성을 대폭 강화해서 정당 득표율과 의석을 가급적 일치시켜야 합니다. 권역별 비례대표제, 중대선거구제, 석패율제 도입 등 다양한 방법이 있습니다. 어떤 제도를 도입할 것인지는 선택의 문제입니다. 어차피 완전한 선거법은 없습니다. 조금씩 고쳐가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현행 소선거구제 지역구 중심 선거제도를 바꿔야 한다는 것입니다.
2020년 21대 총선을 앞두고 자유한국당(미래통합당·국민의힘)을 제외한 다른 정당들이 연대해서 선거법을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로 개정했습니다. 그러나 거대 양당이 ‘비례대표 위성정당’을 만들면서 양당 체제로 되돌아가고 말았습니다.
‘변화의 움직임’ 있지만
21대 총선의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아 이번에는 선거법을 제대로 고치기 위해 많은 사람이 노력하고 있습니다. 지난 9월1일 김두관 민주당 의원이 ‘허대만법’이라고 불리는 선거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습니다. 국회 의석을 6개 권역별로 인구 비례에 따라 나눈 뒤, 정당 득표율에 따라 비례 의석을 배분하는 권역별 비례대표제입니다. 지난 10월4일 이상민 민주당 의원이 정치개혁 법안을 대표 발의했습니다. 지역구 의원을 253인에서 127인으로 줄여 4~5인 중대선거구제로 바꾸고, 비례대표는 173인으로 늘리되 전국 46인과 권역 127명으로 구성하자는 제안입니다. 국민의힘 이명수·이용호 의원을 포함해 여야 의원 21명이 공동 발의했습니다. 10월5일 민주당 영남권 5개 시도당이 합동으로 연 토론회에서 하승수 변호사는 ‘독일식 연동형·권역별 비례대표제’와 ‘덴마크·스웨덴식 순수비례대표제(권역별)’를 대안으로 제시했습니다.
조금 더 조직적인 움직임도 있습니다. 지난 9월부터 여야 의원 46명이 시작한 ‘초당적 정치개혁 연속 토론회’가 전국 순회 현장 토론에 들어갔습니다. 11월18일 오후 광주 김대중 컨벤션센터에서 ‘승자독식 정치 극복’을 주제로 토론회를 했습니다. 11월25일에는 대구무역회관에서 토론회를 합니다.
청년 정치인 모임 ‘정치개혁 2050’도 선거법 개정을 위해 밀도 있는 토론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국민의힘 김용태 전 최고위원, 천하람 혁신위원, 최재민 비대위원, 민주당 이동학 전 최고위원, 이탄희 의원, 전용기 의원, 정의당 조성주 전 정책위 부의장,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 등 4개 정당 8명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11월29일 광주에서 국민의힘, 민주당, 정의당 청년들 모임을 규합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이관후 서강대 사회과학연구소 연구원은 11월18일 ‘다른 미래 네트워크’ 포럼에서 “지역구와 비례대표가 1 대 1 비율로 구성되는 국회 개혁을 위해 중대선거구제, 권역별 비례대표제, 석패율제 등이 혼합된 중간 단계를 거쳐서 세번의 선거를 통해 단계적, 점진적으로 선거제도를 개혁”하자고 제안했습니다. 이 밖에도 많은 정치인, 학자, 전문가들이 지금보다 나은 선거법 개정을 위해 고민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선거법 개정은 쉽지 않습니다. 결국 이해 당사자인 국회의원들이 법안에 찬성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현재의 정치 지형에서는 윤석열 대통령과 민주당 의원들의 의사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정치도 사람 일, 결국 이기는 쪽은
의외로 윤석열 대통령은 선거법 개정에 전향적입니다. 지난 8월19일 국회의장단과 함께한 만찬에서 김진표 국회의장이 개헌 필요성을 제기하자, 윤석열 대통령은 “개헌도 개헌이지만 선거법, 정당법 등을 시대에 맞게, 변화된 정치 상황에 맞게 고치는 것도 같이 논의해볼 필요가 있지 않으냐”고 말했습니다. 2월25일 중앙선관위 대선 후보 2차 토론회에서 “개인적으로는 국민들의 대표성이 제대로 보장되도록 중대선거구제를 오랫동안 정치하기 전부터도 선호해왔다”고 밝힌 적도 있습니다.
문제는 적극성입니다. 국민의힘 의원들의 체질상 윤석열 대통령이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국민의힘이 선거법 개정에 찬성할 수 있을 것입니다.
민주당 의원들의 의사는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자신에게 불리한 선거제도 도입에 찬성할 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두 가지 이유로 결국 찬성할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첫째, 대안으로 검토되고 있는 권역별 비례대표제, 중대선거구제, 석패율제 등은 지명도가 높은 현역 의원들에게 유리한 제도입니다. 둘째, 선거제도 개혁은 고 노무현 대통령의 꿈이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 자서전을 인용하겠습니다.
“성숙한 민주주의,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이루려면 사람만이 아니라 제도도 바꾸어야 한다. 지역감정을 없애지는 못할지라도 모든 지역에서 정치적 경쟁이 이루어지고 소수파가 생존할 수 있는 제도적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인재와 자원의 독점이 풀리고 증오를 선동하지 않고도 정치를 할 수 있다. 나는 지금도 여전히, 국회의원 선거구제를 바꾸는 것이 권력을 한번 잡는 것보다 훨씬 큰 정치발전을 가져온다고 믿는다.”
정치도 결국 착한 쪽이 이깁니다. 민주당 의원들이 새겼으면 좋겠습니다.
정치부 선임기자
shy99@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