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 겸 국무위원장이 지난 9월 8일 평양 만수대의사당에서 열린 최고인민회의 14기7차 회의에서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북한은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요격 회피 능력과 타격 정확도가 향상된 신형 전술유도무기들을 개발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불규칙하게 아래 위로 움직여 요격이 힘든 북한판 이스칸데르(KN-23), 북한판 전술지대지미사일 에이태큼스(KN-24), 초대형 방사포(KN-25) 등 신종 단거리 탄도미사일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발사하고 있다. 이 무기들에는 전술핵탄두를 탑재할 수 있다.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을 통해 미 본토에 대한 보복 능력 확보(보복적 억제)에 주력해오다, 남쪽을 겨냥한 전술핵 능력도 꾸준히 키우고 있다.
특히 북한이 지난 9월8일 채택한 ‘핵무력정책법’을 두고 북핵이 대미 ‘억제 수단'에서 대남 ‘선제공격 수단'이 됐다는 보도가 많이 나왔다. 북한에 대한 비핵공격에 대해서도 핵을 선제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규정해 ‘선제 핵 공격’ 교리가 명문화됐다는 것이다. 특히 핵무력정책법이 밝힌 ‘핵무기 사용 5가지 조건’을 근거로 들어, 북한 핵 교리(핵 독트린)가 매우 자의적이고 공격적이며 급진적이란 우려가 널리 퍼졌다. 또한 ‘핵무기 또는 기타 대량살육무기 공격이 감행됐거나 임박했다고 판단되는 경우’까지 핵무기 사용 문턱을 낮춰, 오판과 사고로 인한 우발적 핵전쟁 발발의 위험도 커졌다는 지적이 있다.
북한이 핵무력정책법을 통해, 핵무기를 사용해 실제 전쟁에서 승리를 도모하는 핵전쟁 수행능력(nuclear war-fighting capability)을 뒷받침하는 사용조건과 지휘통제 분야를 구체적으로 명시했다는 해석도 나왔다. 김정은 조선노동당 총비서 겸 국무위원장이 지난 9월25일부터 10월9일까지 북한군 전술핵운용부대·장거리포병부대 훈련에서 다양한 핵탄두 운반수단의 실전 운용태세를 점검해, 이런 해석에 한층 힘을 실어줬다.
이와 달리 핵무력정책법이 ‘전쟁 억제'를 기본으로 하되, 억제 실패 시 결정적 승리를 위한 ‘작전적 사명'을 수행한다고 명시하는 등 큰 틀에서 억제전략의 일환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국방부 기획조정실장을 지낸 김정섭 세종연구소 부소장은 “북한이 핵 교리를 법제화하여 공개 천명한 것은 언제, 어떤 조건에서, 어떤 방식으로 핵이 사용된다고 공언함으로써 불필요한 오해와 위기 고조를 막으면서 핵 억제력을 확실히 하겠다는 의도”라고 말했다.
김정섭 부소장은 “비핵공격에 대해 핵무기를 선제 사용할 수 있다는 핵 교리는 적대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으면서 재래식 전력이 열세인 핵보유국들이 항상 채택해왔다”며 “냉전 시대 나토, 냉전 종식 이후 러시아, 인도와 분쟁 중인 파키스탄의 핵 교리”라고 설명했다. 이례적이고 급진적이란 통념과 달리 북한 핵 교리가 냉전 시대부터 형성되어 온 핵 억제의 보편적 논리와 역사적 경험을 차용했다는 것이다.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